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97화 (197/250)

제51장. 지원사격 (3)

Hip to the Hop 무대는 우리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다른 무대들과는 확실히 성격이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도 편안한 점……이라고 해야 할까.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아무튼 나름 좋다고 생각한 편이 하나 있었다.

이전처럼 빡세게 안무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물론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이라면 퍼포먼스 측면을 전혀 고려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Hip to the Hop의 경우는 달랐다.

이 프로그램은 아이돌을 뽑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래퍼를 뽑는 게 주된 목적이다.

그러면 우선적으로 자신의 랩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것을 퍼포먼스로 떼우려고 하면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욕을 먹는 경우가 발생한다.

‘실제로도 그랬었고.’

오늘 리허설 무대에 오르기 전에 나는 Hip to the Hop 지난 편들을 모니터링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나는 기본적으로 내가 나갈 프로그램이 정해지면, 그 프로그램에 대한 모니터링은 다 마치고 가는 편이다.

시간적 여유가 아무리 없다 할지라도 최근 방영되었던 편은 죄다 챙겨 보고 가야 내 속이 편했다.

이런 헌터 시절 때 길러졌던 습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거 하나하나에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할 몬스터가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고 가면, 전투 중 사망할 확률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른 시기부터 이런 조사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준비 다 되셨으면 시작하겠습니다!”

PD의 외침에 따라 무대에 나란히 올라선 니암이 먼저 마이크를 들고서 랩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와 준서는 1절 후렴구 파트가 시작되었을 때, 그 타이밍에 맞춰서 무대에 등장할 예정이었다.

처음부터 관객들 앞에 서 있으면, 그건 서프라이즈라고 할 수 없으니까.

한창 니암의 랩에 빠져 있는 사이, 이 타이밍에 나하고 준서가 깜짝 등장해야 무대를 좀 더 극적으로 연출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나와 준서는 리허설이 시작하는 단계부터 무대 좌, 우측 계단에 발을 올려놓고 대기만 하고 있었다.

비트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니암이 빠른 랩을 구사했다.

니암은 발음이 상당히 정확한 편이었다.

한국으로 넘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니암은 전혀 어눌하지 않은 한국어 솜씨를 뽐냈다.

한국어 발음도 잘하는데.

힙합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영어 발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미국인인데, 특유의 혀 굴리는 발음을 못할 리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실제로 니암은 우리 그룹 노래의 영어 파트 대부분을 소화했다.

여기에 기본적인 랩 실력이 밑바탕이 되니까, 사람들의 귀를 충분히 사로잡을 만한 요소로 거듭날 수 있었다.

우리 HTB의 노래가 대박이 난 이유도 이런 장점들이 하나하나씩 모여 덩어리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헌터들이 MML 버프를 대다수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그 증거가 된다.

우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MML 버프는 발동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혼자 무대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니암은 마치 여러 명이 무대에 오른 것처럼 사운드로 빈자리를 꽉꽉 채워 가기 시작했다.

준서가 놀란 얼굴로 무대 한가운데에 서 있는 니암을 바라봤다.

니암이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랩을 하는 모습을 우리는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준서가 저렇게 놀라는 것일 수도 있다.

나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역시, 가수는 무대 아래에서와 무대 위에서의 모습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아마 내 모습을 보는 다른 지인들도 같은 생각을 하겠지.

1절 후렴구가 끝나자, 내가 준서를 향해 손으로 지시를 했다.

굳이 내가 이렇게 제스처를 펼치지 않아도 어차피 준서와 같은 쪽에 서 있는 스태프가 알아서 신호를 주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손동작을 취했다.

준서는 내게 고개를 한 차례 힘 있게 끄덕여 준 뒤, 곧장 걸음을 옮겼다.

마이크를 든 준서가 감미로운 목소리와 함께 등장하자, 스태프들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HTB 한 명 합류한 것에 불과한데도 무대가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줬다.

여기에 나까지 더해지면.

무대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오늘의 내 역할은 화룡정점인가.’

나쁘지 않은 포지션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차례를 알리는 2절 후렴구 MR이 무대에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맞춰서 나도 무대에 올라섰다.

두 멤버들이 나를 반겨 주기 위해서 짧게 손 터치를 했다.

Hip to the Hop은 모든 무대가 라이브로 진행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경연 프로그램인데, 라이브로 진행하지 않으면 그게 무슨 경연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성공적으로 리허설을 마치자, 객석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짝짝짝! 하는 소리가 내 이목을 집중시켰다.

준서도 마찬가지였다.

“어? 저분들. 언제 저기 올라가 계셨대?”

우리와 같이 오늘 2차 본선에 참가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짧은 대답으로 준서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줬다.

“아까부터.”

앉아 있는 건 진작에 알아차리긴 했다.

그런데 저렇게 열띤 반응을 보여 줄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 했다.

니암은 저들에게 있어서 강력한 라이벌이 될 텐데 말이다.

그러나 얼굴 표정에는 경쟁심으로 인한 시기와 질투가 일절 보이지 않았다.

잘한다.

순수하게 무대에 감동했다.

이런 감정들만이 그들의 표정에 가득 깃들어 있었다.

난 이래서 음악이라는 게 좋다.

세대, 성별, 악 관계를 뛰어넘어서 이렇게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는 징검다리를 놔 주니까.

그래서 가수의 꿈을 계속 이어 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 * *

무대에 내려오자마자 우리 무대를 봤던 경쟁팀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니암 씨, 리허설 대박이던데요?”

“오늘 준비 단단히 하고 오셨나 보네요.”

“무대 정말 잘 봤습니다. 머릿속에서 꽤 오랫동안 남을 거 같아요.”

경쟁자들한테서 과도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칭찬을 많이 받자, 오히려 니암이 더 멋쩍어하는 반응을 보였다.

나 같아도 니암하고 비슷한 리액션을 취했을 거 같다.

그래도 서로 라이벌이니까.

누가 붙느냐 떨어지느냐에 따라 내가 불합격 판정을 받을 수도, 합격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걸 생각한다면 다른 가수팀의 무대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할 텐데.

이곳 경쟁자들은 달랐다.

정말 솔직하게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 자체를 축제에 온 것처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분위기도 나쁘지 않지.’

아니, 확실히 좋다.

서로 헐뜯고 싸우고 그러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나는 헌터 출신이라서 그런지 경쟁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과격하고 부정적인 생각밖에 안 떠오르는데.

‘이런 걸 직업병이라고 하는 걸까.’

칭찬해 주는 타 가수 팀들과 달리, 정작 나는 절로 쓴 미소가 지어졌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성공적으로 리허설을 마쳤으니.

이제 본무대만 준비하면 된다.

대기실로 돌아와서 니암과 준서에게 혹시나 해서 말을 건넸다.

“리허설 때 아무리 잘해도 본선 무대에서 실수하면 안 된다. 아무리 녹화 방송이라 할지라도 청중평가단이 와서 직접 우리 노래를 평가할 거니까. 알았지?”

“네, 형!”

녹화는 한번 끊었다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평가는 끊었다가 다시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대중의 평가가 무서운 것이다.

한번 박힌 이미지는 수정되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청중평가단을 첫 대면하는 날인 만큼.

우리도 무대를 충분히 즐기다가 오자고 맹세했다.

* * *

마침내 시작된 본선 무대.

앞서 다른 팀들이 펼치는 무대를 우리들은 모니터를 통해서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다른 팀들도 다 잘하네요.”

내가 마침 하고 싶었던 말을 준서가 대신 흘렸다.

“잘할 수밖에 없지. 다들 그 경쟁률 뚫고 올라온 사람들이니까.”

못하는 게 말이 안 된다.

만약에 실력이 부족했다면, 이미 진작에 예선 단계에서 걸러졌을 것이다.

Hip to the Hop 심사위원들이 보는 눈이 없는 사람들도 아니고 말이다.

다들 ‘힙합씬’에서는 날고 기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평가받고 1차 본선까지 올라온 니암이 나는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만약에 나에게 이런 비슷한 프로그램에 나가서 무대를 펼쳐 보라고 한다면, 나는 압박감 때문에 제대로 솜씨도 못 보여 주고 그랬을 거 같은데.

아무튼 우리 멤버지만, 참 대단한 녀석이다.

“니암.”

“네, 형.”

나는 서서히 다가오는 우리 차례를 보면서 니암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을 들려주기로 했다.

“반드시 우리가 1위 먹자. 알았지?”

“네! 그래야죠!”

지난번, 1차 본선에서 원 패스로 아슬아슬하게 다음 라운드 진출에 성공했을 때 보여 준 그 니암은 지금 흔적조차 없었다.

이 자리에는 자신의 실력을 믿고, 무조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 확신하는 니암만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덕분에 나도 많은 용기를 얻었다.

* * *

무대 위에 먼저 오른 MC가 다음 차례를 소개했다.

“이제 마지막 무대만 남았죠? 누군지 알아보시겠나요?”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니암의 이름을 연호했다.

청중평가단들 중에서는 우리 HTB의 팬들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곳곳에 보였다.

이번 청중평가단들은 무작위로 추첨해서 사람들을 뽑았다고 들었는데.

소수의 팬이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천군만마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자, 마지막 래퍼를 힘차게 불러 볼까요? 하나, 둘, 셋!”

MC의 신호에 맞춰서 사람들이 큰 목소리로 니암의 이름을 연호했다.

무대 위에 불이 꺼지고.

잠시 뒤, 니암이 한가운데 선 채 양손을 모으고 머리를 푹 숙였다.

분위기 있는 자세에서 시작되는 니암의 오리지널곡, ‘직진’.

아무리 어려운 일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나는 오로지 앞만 보고 가겠다는 뜻으로 지은 타이틀명이었다.

어떻게든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겠다는 포부가 보이는 가사 덕분에 사람들의 호응은 굉장히 뜨거웠다.

게다가 비트 자체가 정적이고 조용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사람들을 방방 뛰게 만드는 신나는 곡이었기 때문에 현장의 분위기는 한층 더 올라갔다.

나도 아직 무대에 올라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몸이 근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내 순서가 찾아오려면 아직 멀었다.

먼저 준서부터.

준서가 후렴구를 부르면서 등장하자, 사람들의 눈동자는 더욱 커졌다.

설마 여기서 HTB 멤버가 나올 줄은 전혀 몰랐나 보다.

가능성이야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들은 일정이 꽉 들어찰 정도로 바쁜 아이돌이니까.

그래서 경연 프로그램 무대 준비할 시간조차 없을 거라고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같은 멤버들 간의 유대감 역시 중요하다.

때마침 스태프가 나에게 신호를 줬다.

“슬슬 준비해 주세요, 태오 씨!”

“예, 알겠습니다.”

니암의 지원사격에 나서기 위해서.

‘이제 가 볼까!’

준서에 이어서 나도 무대 위로 걸음을 옮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