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장. 익숙한 컴백 (2)
순식간에 다가온 HTB의 세 번째 컴백일.
예전에는 데뷔며 컴백이며 무대에 오를 때마다 바짝 긴장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이런 것들도 다 적응을 한 모양인지 긴장보다는 어떤 식으로 해야 이전 무대와는 다른 차별성을 보여 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더 깊었다.
앨범을 많이, 오래 발표할수록 점점 이러한 고민이 커지는 기분이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시피, 우리 HTB에게는 음악적으로 큰 제약이 하나 걸려 있었다.
발라드처럼 축 늘어지는 느낌의 곡을 타이틀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앨범에 하나 정도는 슬쩍 넣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곡들은 사람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투지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신이 나고 강렬해야 한다.
전투 도중에 들어야 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신경 안 쓰려야 안 쓸 수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타이틀곡 콘셉트 자체가 매번 겹칠 수밖에 없고. 이 말은 곧 매번 발표하는 앨범마다 사람들에게 비슷하거나 똑같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러면 신선함이 떨어진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그것만 계속 먹다 보면 어느새 질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수들이 매번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새로운 콘셉트를 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다.
우리도 가수인 이상, 이런 노력은 해야 하는데.
여타 다른 가수팀과 다른 특수한 상황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게 여러모로 골치가 아팠다.
이런 고민은 이미 내 솔로 활동 때부터 나오고 있었다.
이전 솔로 데뷔 앨범에서는 사실 이런 고민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MML 버프의 존재가 상세하게 드러난 것도 아니었고, 연구도 덜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철민 소장의 실험들 덕분에 MML 버프에 대한 자료들이 어느 정도 쌓이게 되었고. 우리는 여기에 맞춰서 노래를 만들고 불러야 한다.
그래서 더욱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멤버들은 컴백 쇼케이스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게 처음도 아닌데, 괜히 심장 떨리네요.”
가슴 위에 손을 올려놓는 딜런을 보면서 나는 등을 토닥여 줬다.
“벌써 3집 가수면서, 데뷔 때보다도 더 떨고 있으면 어떻게 해.”
“그러게요. 무대라는 게 참…… 적응할 수 있을 거 같으면서도 잘 적응이 안 되는 거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 노래와는 다르게, 무대라는 건 매 환경마다 새롭게 변하니까.
분명 같은 노래, 같은 안무지만, 무대를 보러 온 사람들이 다르고 장소가 다르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곧 쇼케이스 시작할 테니까, 파이팅 한번 외치자. 다들 손 모아 봐.”
멤버들이 내 말에 얌전히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차곡차곡 멤버들의 손이 내 손등 위로 올라갔다.
“하나, 둘, 셋! HTB 파이팅!”
“파이팅!”
기운 넘치는 파이팅 구호와 함께 현장에 마련되어 있는 디지털시계가 정각을 알렸다.
동시에 이빈이가 한 손에는 마이크, 다른 한 손에는 큐시트를 들고 무대 위로 먼저 올라섰다.
“HTB 세 번째 앨범 쇼케이스 현장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저는 오늘 진행을 맡게 된 유이빈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빈이를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마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솔로 가수니까.
게다가 요즘은 배우로 활동 중인 덕분에 그 인지도가 배가 된 상태였다.
이빈이의 등장에 사람들의 환호성은 벌써부터 커져 가고 있었다.
“그럼 오늘의 주인공들부터 만나 보실까요. HTB 여러분들, 나와 주세요!”
리허설대로 우리는 이빈이의 소개 멘트가 끝나자마자 무대로 향하는 계단 위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모습을 나타내자, 이빈이가 먼저 무대 위로 오를 때 들려주던 환호성과는 차원이 다른 함성이 현장 전체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시끄러웠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런 거 하나하나가 우리 HTB를 향한 관심과 애정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소음 차단 대신 미소로 화답을 했다.
이빈이가 먼저 우리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먼저 팬 여러분들에게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나라를 구한 아이돌, HTB입니다!”
예전부터 이 ‘나라를 구했다’라는 호칭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아예 팀 인사로 가져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
단체 인사를 하자, 다시 한번 사람들의 환호성이 이어졌다.
이빈이가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전에도 HTB의 인기가 매우 뜨겁다는 건 저도 잘 알았는데, 오늘은 유독 다들 활활 타오르시는 거 같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나도 마침 이빈이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텔레파시가 제대로 통한 모양이다.
“이번이 세 번째 컴백인데, 느낌이 어떤가요?”
엄밀히 말하면 내 기준에선 세 번째 컴백은 아니다. 솔로 활동까지 포함하면 그보다 더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HTB 쇼케이스니까, 이야기의 기준이 HTB를 중심으로 맞춰져야 하는 게 당연했다.
가장 먼저 리더인 내가 입을 열게 되었다.
“익숙한 컴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새로운 앨범으로 팬 여러분들을 찾아뵐 때마다 걱정이 조금씩 들곤 합니다. 과연 저희의 이번 곡도 좋아해 주실지, 이런 유의 걱정 말입니다.”
이빈이가 고개를 작게 가로저었다.
“제가 HTB분들 신곡 먼저 들어 봤는데, 이번 곡도 느낌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거 같던데요?”
“그래요? 선배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안심이 되네요.”
오랜만에 이빈이한테 ‘선배님’이라는 칭호를 사용해 본 것 같다.
물론 따지고 보면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그러나 서로 동갑내기다 보니까 사석에서는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애초에 이빈이가 먼저 그걸 원하기도 했고 말이다.
다른 멤버들에게도 앨범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이빈이가 이번에 다시 내게 물었다.
“태오 씨는 이번 앨범 준비하시면서 많이 고생하셨을 거 같아요. 영화 촬영까지 들어가셨잖아요. 보통은 두 개를 겸직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영화 촬영의 경우에는 요즘 막 재미를 붙이고 있어서 그런지 힘들다는 느낌이 잘 안 들더라고요. 아, 물론 앨범 준비하는 것도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가식이 아니라, 진심이 꽤나 많이 함유되어 있는 멘트였다.
실제로 나는 아직도 부스 안에 들어가서 레코딩을 하는 것도, 안무 연습실에 가서 멤버들과 구슬땀을 흘리며 춤 연습을 하는 것도, 그리고 대본 리딩을 하는 것도 다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연예계 일 자체가 흥미롭다.
이전에 내가 해 보고 싶었던 일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게다가 내가 가수로 데뷔할 때에는 방송국이나 PD, 소속사 눈치 살필 입장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재미를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에 각성하기 이전에 연습생 시절 때처럼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는 연예계 생활을 했더라면, 이런 재미를 못 느꼈겠지.
이빈이도 내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모양인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 자체가 우리가 원해서 하는 것이지 않은가.
이건 이빈이도 공감할 것이다.
이런저런 토크를 나눈 뒤.
드디어 팬들이 기다리던 시간이 다가왔다.
“HTB의 세 번째 앨범 타이틀곡, ‘크게 외쳐 봐’ 무대를 직접 보도록 하겠습니다. 멤버분들 준비해 주시고요. 저는 무대가 끝난 다음에 다시 올게요.”
짧은 작별 인사를 건넨 이빈이가 내려가고, 우리들은 각자 포지션별로 위치에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렬한 비트가 무대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여기에 맞춰서 나를 중심으로 멤버들이 안무를 소화했다.
이전 앨범들도 그랬듯이 아이돌 안무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단연 칼군무가 아닐까 싶다.
이 칼군무를 위해 나와 멤버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안무 연습실을 찾았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짐이 없도록 완벽한 동작을 취해야 했다.
이 노력이 어느 정도 빛을 본 모양인지, 실제 무대에서 우리들은 연습 때 보여 줬던 것 그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손에 거머쥘 수 있었다.
특히 멤버들 모두를 다 애먹게 했던 2절 사비 부분도 실수 없이 잘 넘겼다.
원래는 여기서 누구 한 명 실수해서 다시 하는 게 패턴으로 굳어졌었는데.
‘역시 우리는 실전에 강하단 말이지.’
몬스터들이 지겹도록 단련시켜 준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노래 제목대로 나는 전방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동작을 취했다.
여기에 맞춰서 고음 파트도 소화를 해냈다.
우리는 웬만한 무대는 립싱크가 아닌 라이브로 소화해 낸다.
그만큼 체력적인 여유가 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세 번째 앨범 무대를 마무리 짓자, 사람들의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예상대로 좋은 반응이 나왔다.
이빈이가 다시 무대로 올라왔다.
“잘 봤습니다! 역시 HTB는 믿고 볼 수밖에 없는 그룹이네요. 퍼포먼스가 너무 화려해서 저도 보는 내내 입을 닫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특히 데이브 씨가 공중으로 크게 점프할 때, 마치 서커스를 보는 줄 알았어요. 몇 바퀴를 도셨던 거예요?”
“한 일곱 바퀴 정도 될 겁니다.”
“그게 가능해요?”
“가능하니까 한 거겠죠.”
데이브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농담식으로 말했다.
이 정도는 우리한텐 일도 아니다.
이보다 더한 아크로바틱 동작들도 무대에서 충분히 선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어려운 안무 동작만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곡에 잘 어울리는 안무를 펼쳐야 한다.
지금의 안무도 우리 안무 담당 트레이너와 수차례 상의를 한 끝에 완성한 동작들이다.
몇 날 며칠 동안 아이디어 회의를 거친 끝에 만든 안무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으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열심히 노력을 했으니까.
이제 사람들이 우리가 준비한 결과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얌전히 기다리면 된다.
* * *
쇼케이스 후에 음원이 공개되고, 하루가 지난 다음에 각종 스트리밍 플랫폼의 순위가 공개되었다.
단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외쳐 봐’는 벌써부터 차트 인을 했다.
내가 봤을 때에는 다음 주…… 아니, 이번 주 내로 1위는 무조건 찍을 것 같다.
사람들의 평가도 굉장히 좋았다.
HTB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곡들을 좋아하는데, 이번에도 이전에 보여 줬던 그런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평은 우리들의 노래를 듣고 힘을 얻고 간다는 내용의 평가였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우리들의 노래가 힘이 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보람을 가져다주는 일이다.
나뿐만 아니라 멤버들도 이런 평가를 보고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준서가 이런 말을 꺼냈다.
“가수로 데뷔하길 잘한 거 같아요.”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된다.
이제 컴백을 했으니까.
“스케줄 소화하러 가야지. 곧 승훈이 형 온다니까 준비하자.”
“네!”
이제부터 다시 바빠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