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88화 (188/250)

제49장. 투잡 (2)

HTB의 세 번째 앨범 타이틀곡인 ‘크게 외쳐 봐’의 중간에 제목 그대로인 가사가 들어가 있었다.

노래 후렴구에는 실제로 고함을 외치는 듯한 모션이 포인트 안무 동작으로 들어가 있었다.

세 번째 곡을 대표하는 포인트 안무다 보니 이 부분을 특히나 더 열심히 연습해야 했다.

이 노래하면 이 안무라고 딱 떠오를 만큼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미지가 박히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인기 비결은 얼마나 오랫동안 대중의 뇌리에 남아 있느냐, 여기에 따라 갈리게 된다.

그래서 후크송 같은 장르가 아이돌 그룹의 메인 타이틀곡에 채용되곤 했던 것이다.

그 멜로디와 가사가 머릿속에 계속 맴도니까.

우리도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으로 사용되었던 세비올라에서 이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세 번째 앨범에도 뇌리에 계속 떠도는 식의 반복되는 멜로디가 채용되었다.

그래서일까.

안무 연습을 하는 동안 우리의 노래를 계속 듣고 있어야 하는데, 이 노래가 머릿속에 자동적으로 새겨지고 있었다.

준서가 머리를 가볍게 가로저으면서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머릿속에 가사밖에 안 떠올라요, 지금.”

그 말에 댄스 트레이너가 작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은 현상이네.”

“좋은 현상 맞나요?”

“자나 깨나 노래 생각뿐이니까, 좋은 거지.”

“그런가요?”

고개를 갸우뚱하는 준서.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만큼만 아니면 될 테니까 말이다.

가수와 배우, 두 분야에 발을 걸치고서 나란히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연기하는 것보다 이렇게 땀 흘리면서 안무 연습하는 게 재미있긴 하네.’

만약에 내가 배우 일에 더 재미를 느꼈다면, 각성하기 전부터 가수가 아니라 배우를 꿈꿨어야 했을 것이다.

투잡을 뛰어 보니까 가수 쪽이 역시 내 성격에 맞구나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렇다고 연기 일이 싫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이제 막 활동 분야를 넓혀 가는 편이어서 아직 내가 제대로 된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가수의 경우에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해 왔던 일이기도 하고, 헌터 활동을 끝낸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가수 활동에만 집중해 왔었으니까.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이긴 했다.

뒤늦게 연기하는 일에 재미를 느낀다 할지라도 배우로 아예 전업할 생각은 없겠지만 말이다.

댄스트레이너가 손뼉을 두세 번 마주치면서 앉아 있는 우리들을 일으켜 세웠다.

“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맞춰 보고 오늘은 이만 끝내도록 합시다. 다들 아직 할 만하죠?”

“네!”

헌터들이니까, 이 정도 체력 소모는 일도 아니다.

단지 집중력이 얼마나 유지되느냐, 이게 약간 문제이긴 하다.

그래도 댄스트레이너가 있는 덕분에 안무 연습에 계속 집중할 수 있었다.

“원, 투, 쓰리, 포! 여기서 턴! 네, 좋아요!”

이렇게 직접 타이밍까지 알려 주니까, 우리들은 훨씬 편하게 마지막 합을 맞출 수 있었다.

댄스 트레이너가 만족감을 드러내면서 말했다.

“확실히 연습을 반복할수록 많이 나아지고 있네요. 이대로라면 컴백 전까지는 걱정 없겠어요.”

우리 트레이너는 다른 댄스트레이너들에 비해서 상당히 엄한 축에 속한다.

게다가 본인이 담당하는 아이돌들에게 요구하는 기준치도 꽤나 높은 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너는 우리들의 연습 결과에 상당한 만족도를 표했다.

트레이너가 이렇게 말해 주니까 우리도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하루의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음을 댄스트레이너가 몸소 확인시켜 준 셈이니까 말이다.

안무 연습실 바로 근처에 마련되어 있는 샤워실에서 간단하게 샤워를 마친 뒤에 땀으로 흠뻑 젖은 옷 대신 미리 가져온 여분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차피 이거 끝나고 바로 숙소로 들어가서 쉴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냥 일반 트레이닝복을 가져와서 입었다.

카메라 앞에 서지 않을 때에는 편하게 입는 게 좋다.

몸이 편해야 마음도 편해지는 법이니까.

승훈이 형이 미리 대기시켜 놓은 차에 올라탄 멤버들.

집으로…… 아니지, 숙소로 향하는 동안, 니암은 우리 말고도 다른 아이돌 그룹들의 무대를 체크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옆에 있던 딜런이 관심을 보였다.

“이 팀, 저번 달에 컴백한 분들이지?”

“어, 무대 좋더라. 노래도 괜찮고.”

그런 둘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라이벌들 체크하고 있어?”

내 말에 두 사람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우리가 처음에 무대 준비를 할 당시, 나와 준서를 제외한 멤버들은 뭐라고 해야 좋을까…… 무대에 오르는 일을 의무적인 업무로 보는 듯했다.

헌터들에게 MML 버프를 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가수가 되었다. 이런 느낌 말이다.

물론 이 점도 아예 부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아니지, 이게 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야 원래부터 가수가 되고 싶어 했다가 그 후에 MML 버프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케이스지만, 다른 사람들은 역순으로 무대에 서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의무감이 더 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우리는 세 번째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 가요계에서 숱한 일들과 수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멤버들은 가수란 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카메라 앞에 서서 춤추고 노래하고 이러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내 노래를 들어 주고 기뻐해 준다는 것에서 오는 기분 좋음을 멤버들도 점점 알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지금의 니암과 달리 애초에 다른 가수들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어차피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이런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을 지워야 할 때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가수고, 그들도 가수니까.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료이자 라이벌.

그래서인지 다른 팀이 꾸민 무대 영상을 바라보는 니암과 딜런의 시선에 관심과 의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런 거 하나하나를 보면서 자신들도 배워야겠다는 자세가 느껴졌다.

변화된 멤버들의 태도를 보니까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데이브는 아직까지 딱히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난 잔다. 숙소 도착하면 깨워 줘라.”

“네, 형.”

데이브가 미리 챙겨 온 안대를 꺼내 착용하고 시트를 한껏 뒤로 젖힌 다음에 몸을 눕혔다.

뭐, 사실 데이브한테는 많은 걸 바라진 않는다.

이렇게 우리랑 같이 앨범 발표를 위해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만으로도 나는 대만족이다.

그리고 의외로 데이브는 문제 안 일으키고 순순히 잘 따라오는 편이다.

카메라 앞에서는 간혹 열심히 보이 그룹 멤버로서 어필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멤버들 사이에서 나 다음으로 인기 순위 2위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개별 활동이 가장 적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멤버들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각자의 공간으로 향했다.

나는 거실 소파를 차지한 상태로 대본에 집중했다.

물을 마시러 잠시 거실로 나온 준서가 이런 나를 보면서 물었다.

“형, 크랭크인 언제라고 하셨죠?”

“다음 달.”

“우리 컴백보다 영화 촬영이 먼저 시작되겠네요?”

“뭐, 그렇지.”

“일정은 괜찮아요?”

“괜찮아. 이미 다 조율도 해 놨고.”

만약에 내가 이제 막 가수 활동을 시작하는 상황이었더라면, 아마 지금쯤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어디서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나도 나름 연예계에서 경험을 많이 쌓은 모양인지 이제는 어느 타이밍에 얼마만큼 어떻게 하면 되겠다는 게 대충 감으로 잡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화 촬영과 앨범 작업 활동 기간이 서로 겹치니까 많이 빡세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아직까지는 괜찮다.

그리고 오 감독이 나를 많이 배려해 주려고 하니까.

이래서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배려만 받으면서 지낼 수는 없다.

오 감독님이 내 사정을 많이 봐주는 만큼, 나 역시도 연기력으로 이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한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이런 식으로 대본을 보는 거였다.

슬쩍 고개를 돌려 달력을 확인했다.

빨간색 동그라미로 따로 표기해 둔 영화 ‘사랑길’ 첫 촬영일.

‘이번에는 또 얼마나 다사다난한 일이 벌어지려나.’

기대와 함께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 * *

영화 ‘사랑길’ 첫 촬영일의 아침이 밝았다.

오세평 감독과는 여태껏 단 한 번도 같이 작업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촬영장 분위기가 어떨지 내심 궁금했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편했다.

오세평 감독이 사람들에게 막 윽박지르면서 군기를 잡으려고 하는 그런 스타일도 아니고.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는 식으로 융통성 있게 촬영을 진행하려는 스타일이다 보니, 스태프들도, 배우들도 그리고 감독 본인도 한결 편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첫 촬영에 임했다.

S#2-1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나와 아이리스는 서로 마주 앉아서 리딩을 진행했다.

편한 현장 분위기와 다르게, 아이리스는 긴장을 제법 많이 한 모양인지 살짝 말을 더듬는 모습을 보였다.

오전 촬영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후 촬영에 약간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오빠, S#5 있잖아요. 여기에 ‘카메오’라고 적혀 있는데. 어느 분이 오기로 했는지 모르세요?”

“글쎄. 나도 들은 바가 전혀 없어서.”

사실 일부러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다지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사라고 해 봤자 ‘어서 오세요.’하고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정도밖에 없었다.

그냥 간단한 일상 파트 촬영이었기 때문에 특출한 연기력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오든 상관없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그러려니 하면서 그냥 넘겼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카메오의 정체가 신경 쓰이는 모양인 듯했다.

“아니면 오 감독님한테 직접 물어봐도 되고. 마침 저기 오시는 거 같은데.”

“그럴까요?”

아이리스는 신경 쓰이는 게 있으면 나처럼 그냥 흘려넘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꼭 확인하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감독님!”

아이리스가 손을 들면서 오 감독을 불렀다.

오 감독이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문제는 아니고요. S#5에 카메오로 출연하시는 분이 누군지 궁금해서요. 혹시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아, 스태프 중 누구도 안 알려 줬나 보군요.”

오 감독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카메오의 정체에 대해 알려 주려고 하던 순간.

“마침 저기 오네요.”

오 감독이 우리의 뒤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나와 아이리스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오 감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에서 내리는 익숙한 얼굴의 여성을 본 순간, 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는 기분을 느꼈다.

카메오의 정체 때문에 그렇다.

‘오늘 출연하기로 한 게 나빈이였어?’

아직 촬영이 시작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오늘 하루가 험난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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