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85화 (185/250)

제48장. 아는 동생 (3)

다음 앨범을 발표할 때까지 레코딩과 안무 연습 등으로 시간을 보내기로 해서 그런지 이전보다 확실히 방송 스케줄이 많이 줄었다.

덕분에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가끔씩 숙소 말고 우리 집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몬스터 출현도 요즘은 잠잠해진 탓에 실전의 기회도 많이 줄어들어서 감을 잃을까 봐 훈련소를 찾아 자체 훈련을 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훈련소를 찾은 나를 보면서 고설중 교관이 환한 미소로 손을 크게 흔들었다.

“왔냐, 태오야.”

“안녕하세요, 교관님. 사람들이 엄청 늘었네요.”

“그렇지, 뭐.”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에 레이드 시대 때 주로 쓰이던 아이템이나 장소 같은 것 등이 갑자기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것들을 그대로 방치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래서 현재 고설중 교관은 일반인들에게 헌터 훈련 과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 겸 안전요원 겸 교관 역할을 맡고 있었다.

“오늘도 몸 풀려고 왔냐?”

“네, 안무 연습만 하니까 좀 부족한 거 같아서요.”

일반 가수들 입장에선 안무 연습 하나만으로도 상당히 지칠 법도 할 것이다.

그러나 헌터들에게는 이 정도는 약과였다.

몸풀기의 강도를 좀 더 높이고 싶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오늘처럼 이렇게 훈련소를 찾아오곤 한다.

고설중 교관도 이런 내 모습이 많이 익숙해진 모양인지 잘 왔다는 말을 하면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훈련소 1층 내부에 위치한 작은 카페였다.

“커피라도 한잔할래?”

“네, 좋죠.”

안 그래도 목을 축일 수 있을 만한 음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였는데, 잘됐다.

고설중 교관이 카드를 꺼내면서 자신이 음료 정도는 쏘겠다고 말했다.

나는 타인의 친절을 딱 잘라 거절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한번 받았으니까 나도 나중에 돌려주는 편이기도 하고.

그렇게 하면서 인간관계를 다져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고설중 교관과 내가 각각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카페라떼가 하나씩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제일 큰 사이즈인데도 불구하고 커피가 나오자마자 그것의 반을 비워 낸 고설중 교관이 내 근황에 대해 물었다.

“가수 생활은 할 만하냐?”

“그럭저럭요. 최근에는 가수 말고 다른 거에 집중하는 중이지만요.”

“어떤 거?”

“배우요. 오세평 감독님 작품에 출연하기로 했거든요.”

“그래? 그거, 아직 기사로 안 나간 거지? 나는 본 기억이 없어서.”

“네, 맞아요.”

“그럴 줄 알았다. 내가 너 관련된 기사는 계속 보고 있거든. 그래서 방금 그 말 듣자마자 이상하다 싶었지. 기사 나올 때까지는 비밀로 하고 있으마.”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 기사를 일부러 찾아보실 때도 있나 보네요?”

“그렇지, 뭐. 너는 특별하니까.”

지금이 평화의 시대가 아니라 레이드 시대였다면, 나는 고설중 교관이 말하는 ‘특별하다’라는 말을 유일무이한 SSS랭크 소유자라는 타이틀 쪽으로 연관 지어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고설중 교관이 말하는 건 그것과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네가 일반 사람들에게 ‘헌터는 위험하지 않은 존재다.’라는 것을 계속 TV 활동을 통해서 어필하고 있으니까. 일반 사람들과 헌터들 사이에 쌓여 있는 벽을 제거해 가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관심이 안 갈 수가 없는 거지.”

제이커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특수범죄자들의 활동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헌터들을 대하는 차가운 시선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것을 조금이나마 없애려면, 헌터가 위험한 존재가 아님을 지속적으로 보여 줄 필요가 있다.

헌터도 사람이다.

이걸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일반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헌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이 선두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교관님이 해 주시는 그 말씀, 협회장님하고 연 대표님한테도 자주 듣고 있는 거예요.”

“다른 헌터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으니까, 당연하겠지. 아무튼 네가 정말 고생이 많다, 태오야.”

“저야 뭐, 각성하기 전부터 줄곧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니까요.”

그래서 특별히 내 어깨에 무거운 사명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은 그렇게 들지 않았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계속하자.

이런 생각을 주로 하는 중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지칠 거 같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에게 스스로 최면을 거는 거라고 생각하면 간단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다.

“저뿐만 아니라 데이브나 나빈이나 아이리스도 열심히 노력 중이니까요.”

“그러고 보니까 아이리스가 얼마 전에 여기에 왔었는데.”

“왜요?”

훈련소에 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절로 관심이 생겼다.

고설중 교관이 말하기를 살짝 꺼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이 말 너한테 했다는 거, 절대로 비밀로 해라. 알았지?”

굉장히 심각해 보이는 듯한 반응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이리스는 우리 HT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니까.

이곳의 수장이 나다 보니 관심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괜히 우리 소속 아티스트에게 큰 문제라도 벌어진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의 불씨가 점점 커져 갈 무렵.

고설중 교관의 한마디가 이 불씨를 금세 진화시켰다.

“살 빼고 싶어서 왔대.”

“……살이요?”

“어.”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하고 말았다.

“살을 빼려면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든가 하면 되잖아요.”

“이유는 너하고 똑같아.”

“그거 가지고는 부족해서 그렇대요?”

“어.”

이해는 한다.

헌터로 활동할 당시의 우리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었다.

그래서 헬스장에서 운동기구를 깔짝깔짝 다루는 것만으로는 몸을 풀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이것 때문에 나도 오늘 이곳에 오게 된 거고 말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이이리스 정도면 늘씬한 편이잖아요.”

내가 오세평 감독한테서 받은 캐스팅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기 전, 회사 내에서 우연히 아이리스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아이리스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살이 쪘다고 생각하기에는 힘들다.

고설중 교관도 나의 이런 생각에 깊이 공감했다.

“나도 아이리스가 뺄 살이 어디 있나 생각하긴 하는데, 남자가 보는 시선과 여자가 보는 시선이 다르다고들 하잖냐. 본인이 보기에는 살이 찐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

“그럴지도 모르죠.”

나는 오히려 아이리스가 살이 좀 더 찌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본인 욕심은 그쪽이 아닌가 보다.

“그리고 최근에 영화 출연하기로 했다고 해서. 몸매 관리에 더 힘을 써야 한다더라. 오세평 감독 작품이라고 하던데…… 어?”

고설중 교관이 말을 하던 도중에 물음표를 띄웠다.

“가만, 너도 방금 오세평 감독 작품에 출연하기로 했다고 하지 않았냐?”

“네, 그렇죠.”

“설마, 너희 둘이 같은 영화 출연하는 거야?”

이제야 눈치챈 고설중 교관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며 말했다.

“네. 로맨스물에 각각 남주, 여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이야, 헌터들 몇몇이 소원 풀었다고 외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몰랐냐? 너하고 아이리스가 한창 헌터 활동 할 때 너희 둘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막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헌터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특히 너희가 같이 현장에 출동하는 날만 되면, 그런 소문이 무성했어. 너 연예인으로 데뷔하기 전에 헌터들 사이에서는 이미 연예인 취급받고 있었잖아. 아이리스는 원래부터 연예인이었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런 소문이 돌았었나?

전혀 몰랐다.

당시에는 헌터들 사이에 도는 소문보다, 어떻게 하면 몬스터들을 효과적으로 때려눕힐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컸으니까.

“아무튼 축하한다, 태오야.”

“축하받을 일 맞아요?”

“아닌가?”

애매한 문제다.

* * *

다음 날.

아이리스가 새로운 프로필 촬영차 우리 회사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스튜디오에 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마침 나도 회사에 이미 출근해 있는 상태고.

오전 안무 연습도 다 끝났기에 샤워하고, 옷을 깔끔하게 갈아입은 다음에 아이리스가 있는 스튜디오로 향했다.

스튜디오 문을 열자, 크게 외치는 촬영감독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나를 반겼다.

“네, 좋습니다! 아이리스 씨, 허리를 좀 더 펴 주실 수 있나요? 머리카락 살짝 뒤로 넘겨 주시고요. 그 자세 그대로 한 번 더 갈게요!”

찰칵, 찰칵! 소리가 촬영 감독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스튜디오를 가득 채워 가고 있었다.

반사판 앞에서도 환한 미소를 잃지 않는 아이리스를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참 예쁘다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에 잘나가는 모델다운 균형 잡힌 몸매.

성격도, 집안도, 그리고 아이리스 본인의 능력도.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여성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내가 왔다는 것을 중간에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리스는 눈짓으로만 내게 인사를 할 뿐 촬영에 계속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도 차라리 아이리스가 저렇게 해 주는 게 더 편하고 좋다.

괜히 나 왔다고 스태프들이 잘 이어 가던 촬영을 중단하고서 내게 단체로 인사를 하면, 받는 내 입장이 오히려 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사 정도는 일 끝나고 해도 괜찮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촬영감독이 셔터에서 손을 뗄 때까지 나는 최대한 기척을 숨긴 채 아이리스의 프로필 촬영 현장을 지켜봤다.

5분 정도 지난 뒤.

“네, 좋습니…… 우왓! 까, 깜짝이야!”

촬영감독이 그제야 뒤에 서 있는 나를 눈치챈 모양인지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대, 대표님! 언제 오셨습니까?”

다른 스태프들도 나와 몇 걸음 안 떨어져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제야 내 존재를 눈치챘다는 듯이 크게 놀랐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이렇게 기척을 죽이고 존재감을 숨기는 일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보다도 쉽다.

아이리스는 나와 같은 각성 능력자니까. 그래서 나를 보자마자 바로 눈치를 챘었다.

촬영감독이 민망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오셨다고 말씀해 주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촬영에 괜히 방해가 될까 봐요. 이제 다 끝났나요?”

“아니요. 조금 있다가 옷 하나 더 갈아입고 찍으면 끝납니다.”

“그러면 잠깐 아이리스하고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네, 그러셔도 됩니다.”

잠시 아이리스를 데리고 스튜디오 밖으로 나왔다.

추울까 봐 겉옷을 벗어서 아이리스에게 덮어 줬다.

“고마워요, 오빠. 근데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별건 아니고. 실은 오세평 감독님 작품 있잖아.”

“네.”

“그거, 내가 남자 주인공 역할 맡기로 했거든.”

“……정말이에요? 어머, 세상에!”

아이리스가 손뼉을 마주치면서 마치 산타의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마지막에 키스신 파트가 떠오른 모양인지, 아이리스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말했다.

“오빠가 상대 배역이라면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네요.”

“그렇다고 너무 훈련소에 자주 나가진 말고. 그러다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제가 훈련소 나간 거, 어떻게 아셨어요?”

놀라는 아이리스에게 나는 씩 미소를 보였다.

“이 오빠는 모르는 게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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