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84화 (184/250)

제48장. 아는 동생 (2)

승훈이 형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만약에 데이브가 나와 아이리스가 키스신이 있는 영화에 공동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날은 데이브의 눈이 뒤집어지는 날이 될 거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데이브는 성격도 성격이지만, 여동생을 아끼는 마음은 진짜라고 할 수 있다.

그걸 생각한다면, 승훈이 형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데.

“방금…… 뭐라고 했냐? 너, 나한테 그 영화 캐스팅 제의 들어온 거, 받아들이라고 말한 거야?”

“그래.”

데이브는 굳은 얼굴로 다시 한번 본인의 말을 강조했다.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반대해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오히려 찬성이라고?

“왜?”

이유가 궁금했다.

혹여나 데이브가 무슨 꿍꿍이라도 꾸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건 이내 아닐 거라고 단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데이브는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의 여동생을 대상으로 이런 계략 같은 건 꾸미지 않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여동생을 워낙 애지중지하는 스타일이었기에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거나 혹은 상황을 곤란하게 만들 법한 건덕지를 아예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이게 데이브의 성격이다.

그래서 더더욱 데이브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

“너, 술 마셨냐? 혹시 취한 건 아니지?”

술 냄새는 안 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한번 물어봤다.

데이브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도리어 내게 쏘아붙이듯 물었다.

“넌 내가 취한 걸로 보이냐?”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근데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긴 해.”

“나도 알아, 내가 정신 나간 말을 하고 있다는 거.”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한 거냐?”

이유라도 알고 싶다.

아니, 반드시 알아야겠다.

데이브가 오히려 흔쾌히 오케이를 해 버리니까 찝찝해서 캐스팅 제의 들어온 걸 받아들이기가 더 싫어질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데이브가 내게 들려준 이유는 이러했다.

“내 여동생이 거기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 이상, 상대 배역이 누구든 간에 무조건 키스신을 찍게 될 거라는 소리잖아.”

“그렇게 되겠지.”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배우가 오 감독의 제의를 받아들이면 그 사람이 대신 아이리스와 호흡을 맞추게 될 것이다.

당연한 말이다.

“난 그게 싫다.”

“뭐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녀석이 내 여동생 입술 훔치는 거. 그럴 바에야 차라리 네 녀석이 훨씬 낫지.”

이제야 데이브가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이유가 뭔지 알 것 같다.

내가 마음에 드니까 허락하기로 한 게 아니다.

최악의 상황과 더 최악의 상황이 있는데, 데이브는 후자를 면하기 위해서 그나마 나아 보이는 차선책을 택하기로 결심한 거였다.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놀라운 건 마찬가지였다.

다른 남자한테 여동생을 맡길 바에야 나한테 맡기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내가 그래도 데이브한테 엄청 악독한 녀석으로 비치고 있는 건 아닌가 보네.’

하는 행동만 놓고 보면 부모의 원수 대하듯 하곤 했었는데.

데이브가 겉과 속이 다른 녀석이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또 이렇게 접하니까 웃음이 나올 뻔했다.

내 미묘한 반응을 보면서 데이브가 다시 한번 눈을 가늘게 떴다.

“뭐냐, 마음에 안 드냐?”

“그런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아무튼…… 나도 오세평 감독님이 보내 준 대본, 마음에 들기도 했고. 안 그래도 슬슬 연락해서 이거 받아들일지 말지 답변 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됐네.”

“…….”

데이브가 다시 한번 나를 노려보면서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무언의 압박을 줬다.

“걱정하지 마. 할 거니까.”

데이브가 백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양해를 먼저 보여 주기로 했는데.

이걸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 아깝다.

* * *

오세평 감독과의 미팅이 있는 날.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승훈이 형이 내가 배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연락을 취할 당시의 분위기를 전해 줬다.

“통화로 네가 캐스팅 제의 들어온 거, 오케이하기로 했다고 말하니까, 오세평 감독님이 뒤에서 막 환호 지르는 소리가 들리더라.”

“그렇게 좋아할 만한 일이었나, 모르겠는데.”

“좋아할 만하지. 오세평 감독님은 너를 1지망으로 생각하고 계셨다던데.”

흠, 그런가?

내가 연기 실력이 완벽하게 검증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오세평 감독이 보기에는 아닌가 보다.

“근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나도 그렇고 아이리스도 그렇고. 둘 다 연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잖아. 근데 오세평 감독님은 왜 하필이면 이렇게 둘을 묶기로 한 걸까?”

승훈이 형이 내 의구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내가 오세평 감독님도 아니고. 어차피 오늘 만나러 가니까, 조금 있다가 한번 물어보지 그래?”

“그게 좋겠어.”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고 확실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팅 장소에 도착한 나와 승훈이 형은 곧장 엘리베이터에 올라 목표 층수인 7층으로 향했다.

미팅룸에 먼저 와 대기하고 있던 오세평 감독과 제작진이 환한 미소로 우리들을 환대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실 거 준비해 드릴까요? 원하시는 거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저희가 다 준비하겠습니다.”

나와 승훈이 형은 둘 다 냉커피를 주문했다.

음료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들은 간단하게 본인 소개 시간을 가졌다.

우리 쪽은 나하고 승훈이 형 둘밖에 없는 데다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에 특별히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제작진 쪽에선 오세평 감독이 먼저 나서서 자신을 소개했다.

“오세평입니다. 먼저 저희 캐스팅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해 주신 점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태오 씨 아니면 다른 배우를 데려올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거든요. 이 배역은 오직 태오 씨만이 할 수 있는 거라고 각본 작업할 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셨군요.”

“제 욕심 같으면 작업하기 전부터 태오 씨한테 이러이러한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출연해 주실 수 없겠냐고 부탁하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보여 줄 수 있는 대본을 드리면서 정식으로 출연 제의를 하는 게 수순이라고 생각해서 좀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요. 오히려 그게 정상적인 과정이니까요. 죄송하다는 말씀까진 안 하셔도 됩니다.”

오히려 이전부터 나를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점이 고맙게 느껴졌다.

내가 연기자로서의 경력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듣는다는 건 좋은 일이다.

대화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아까 승훈이 형에게 물었던 질문 내용을 오세평 감독 본인에게 슬쩍 꺼내 보기로 했다.

“여주인공 역할로 아이리스까지 캐스팅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왜 저하고 아이리스를 먼저 고려하셨던 건지 듣고 싶습니다.”

이유가 궁금하다.

이에 대해 오세평 감독은 정석에 가까운 대답을 들려줬다.

“두 분이 굉장히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예. 언제였나…… 작년쯤일 겁니다. 태오 씨하고 아이리스 양하고 둘이서 같이 모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적 있었는데, 그때 두 분이 같은 팀이었거든요.”

그러면 대충 어느 프로그램이었는지 기억이 난다.

‘스피드맨’이라는 제목의 예능 프로그램인데, 토크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몸으로 때우는 그런 종류의 예능이다.

나나 아이리스는 애초에 헌터 출신이어서 몸을 움직이는 일에는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몸을 써 가면서 촬영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당시에 둘씩 짝을 지어 움직이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때 헌터 특집으로 나왔던 게스트들 중에서 나하고 아이리스가 팀을 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과적으로는 우리 팀의 승리였다.

댓글 반응도 살펴봤는데, 우리 팀의 우승 여부보다 나하고 아이리스가 너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나중에라도 우결식 프로그램에 둘이 꼭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었다.

이걸 다른 방송국 PD하고 작가들도 꽤 봤었던 건지, ‘스피드맨’ 방송이 나간 이후로 나와 아이리스에게 동시에 출연 요청을 보내오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럼에도 정작 출연은 못 했다.

출연하더라도 내가 혼자 나가거나, 아니면 아이리스가 혼자 나가거나, 둘 중에 한 명이 못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 의도적으로 피했던 건 아니다.

정말 단순하게 서로 일이 너무 많고 바빠서 그랬던 거였다.

그러다가 이번에 이렇게 영화에서 서로 연인으로 출연하는 기회를 붙잡게 되었으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오세평 감독은 아직도 당시 나와 아이리스가 보여 준 활약상을 기억하는 모양인지 옛일을 회상하는 사람의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두 분이 같이 나오는 투샷을 보니까 저도 모르게 창작 욕구가 마구 샘솟더라고요. 이번 작품도 두 분을 모티브로 작업한 겁니다.”

어쩐지, 남자 주인공 설정이 나와 굉장히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헌터 생활을 하다 은퇴하고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 주인공.

여기서 지금의 나와 다른 점을 찾아본다면, 일단 나는 고군분투하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것들이 좀 낯설게 느껴졌을 뿐.

그리고 남자 주인공의 경우에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는데, 나는 잘나가는 연예인으로 활동 중이다.

이런 점들이 약간씩 다르다.

아예 나와 똑같은 설정으로 잡을 순 없었을 테니까, 충분히 이해한다.

최기호 감독도 그랬다.

나를 모티브로 캐릭터를 설정했지만, 그렇다고 나와 완벽하게 똑같이 설정을 잡진 않았다.

아무래도 이래저래 문제가 될 만한 게 생길지도 모르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반면에 아이리스는 여주인공에 비해서 큰 공통점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헌터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작중 설정이 모델 겸 방송인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상당한 미인이라는 설정은 맞다.

아이리스의 미모 정도면 전 세계에서 내로라할 정도는 되고도 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이리스도 같이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서로가 연기할 캐릭터들 설정에 관한 질문들을 좀 더 면밀하게 할 수 있어서 좋고.

또 감독이 우리에게 바라는 남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도 한꺼번에 들을 수 있어서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오늘, 자신의 본업이라 할 수 있는 모델 일로 인해서 잠시 한국을 떠나 미국에 가 있는 상태다.

시차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화상 통화를 이용해서 미팅을 잡기도 어렵고.

어차피 오세평 감독이 아이리스하고도 따로 미팅을 가질 테니까, 이건 내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다.

“아이리스도 제가 남자 주인공 맡기로 한 거, 알고 있죠?”

오세평 감독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요. 저희는 태오 씨가 먼저 말했을 거라고 생각해서 아직 연락은 안 했습니다만.”

“그렇군요. 그러면 아이리스한테는 제가 따로 알려 주겠습니다.”

아이리스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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