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82화 (182/250)

제47장. 잠시의 평화 (5)

누나의 말에 내 눈이 절로 휘둥그레졌다.

“승훈이 형을 좋아한다고? 진짜?”

“……조용히 좀 해!”

누나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서 나를 퍽퍽 때렸다.

물론 누나가 이렇게 때린다고 해도 각성 능력자인 나로선 하나도 아프지 않겠지만, 그래도 방금 들은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내가 누나와 가족이긴 하지만, 사실 우리 누나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이에 대한 취향은 정확하게 모른다.

학창 시절에도 누나는 남자들에게 고백을 많이 받았지만, 정작 사귄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누나가 어떤 사람들과 사귀어 왔다는 걸 알면 대충 남자 취향이 보일 법도 한데.

토대로 삼을 만한 자료 같은 게 전혀 없으니까 그냥 막연하게나마 연예계에서 제법 잘나가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유명한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거나. 이런 쪽을 바라는 게 아닐까 하고 막연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누나 친구들 말을 가끔 들어 보면, 그런 사람들이 우리 누나한테 대놓고 호감을 표현하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누나도 아나운서로서 상당히 유명하니까.

게다가 예쁘고, 성격 좋고, 성실하고.

우리 누나를 데려가는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누나가 남자 보는 눈이 꽤나 높을 줄 알았는데.”

“어머? 얘 좀 봐. 승훈 씨가 뭐 어때서.”

“아니, 승훈이 형이 나쁘다는 게 아니고. 의외여서 이런 말을 한 거지. 근데 누나, 승훈이 형을 굉장히 좋게 보나 보네? 내 말에 바로 반박을 하고.”

“…….”

누나가 마치 자기 무덤을 팠다는 것처럼 아차 싶은 표정이 되었다.

아까보다도 더 빨갛게 물드는 누나를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나에게도 마침내 봄날이 왔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승훈이 형의 어디가 좋아서 그런 거야?”

“너는 나보다 승훈 씨하고 더 오랫동안 같이 붙어 있었으니까 더 잘 알 거잖아.”

“형으로서 좋은 사람이라는 건 나도 잘 알지. 그런데 누나가 보는 관점하고 내가 보는 관점은 당연히 다를 거잖아. 누나는 승훈이 형을 이성으로서 좋아하고 있다는 거 아니야?”

“그……렇지.”

“그 점이 궁금한 거야.”

승훈이 형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형이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은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누나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았을지가 궁금했다.

“그냥…… 사람이 착하고 성실하잖아. 어디 모난 구석도 없고.”

착하고 성실하다.

내가 생각하는 누나의 장점과 동일했다.

비슷한 사람에게 끌린 건가.

하긴. 이렇게 생각을 해 보니까 누나하고 승훈이 형이 생각보다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승훈이 형한테 고백 안 했지?”

고백이라는 말에 누나가 또다시 얼굴을 붉혔다.

뭐랄까. 여태껏 누나의 이런 반응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말을 할 때마다 왠지 모를 재미를 느꼈다.

“아직 제대로 된 대화도 안 해 봤는데 벌써부터 그런 걸…….”

하긴 누나 말대로 형하고 둘이서 만났던 경우가 내가 알기론…….

없는 거 같은데.

방금처럼 통화 정도는 나눴겠지만, 둘이서만 따로 밥을 먹는다든지 한 적은 없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자리 한번 마련해 줄까?”

“됐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꺼.”

누나가 버럭 화를 냈다.

승훈이 형은 누나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예 모르겠지.

하여간 참 마음 편한 형이다.

* * *

컴백일도 정해졌고.

성공적인 컴백 무대를 꾸미기 위해서 나는 멤버들과 같이 안무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오늘은 데이브가 개인적인 용무로 인해 같이 연습에 참석하지 못했다.

니암이 데이브의 부재에 대해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데이브 형, 안 좋은 일이 생겨서 빠지신 건 아니겠죠?”

왜 연습에 불참하게 되었는지. 멤버들은 아직 들은 바가 없는 듯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크게 걱정은 들지 않았다.

“괜찮아. 문제 생겨도 데이브는 혼자 알아서 잘 해결하는 타입이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데이브에게는 아이리스가 있다.

데이브의 부족한 점을 아이리스가 잡아 주고도 남을 테니까 나는 그쪽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이 들지 않았다.

중요한 건 데이브보다 우리 쪽이다.

댄스 트레이너가 우리들을 향해 손뼉을 두세 차례 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잠깐만 다들 집중해 주세요.”

“네.”

나를 포함해서 멤버들 모두의 시선이 트레이너에게 집중되었다.

트레이너가 난색을 드러내면서 말했다.

“아침부터 쭉 보고 있었는데. 서로 동작이 어긋나는 부분들이 군데군데 보여서요. 사소한 실수라고 생각하기에는 같은 구간에서 동작 실수가 자주 반복되는 거 같고. 그래서 오늘은 약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공략해서 레슨을 진행할까 하는데, 괜찮죠?”

“네, 물론이죠.”

당연한 말이지만, 안무 쪽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트레이너가 더 전문가다.

게다가 우리는 스스로의 안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아무래도 본인들의 일이니까 주관적인 생각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 노래고 우리 안무니까 더 마음에 드는 것처럼 느껴질 수가 있다.

하지만 댄스 트레이너는 다르다.

우리처럼 주관적인 생각을 최대한 배제하고 안무를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우리가 모르는 것들을 댄스 트레이너는 알고 있다. 그래서 헌터 관련 업무가 아니라면, 웬만해선 트레이너들의 말에 곧잘 따르는 편이다.

나도 그렇고 말이다.

“먼저 준서부터.”

“저요?”

당황하는 준서를 보면서 댄스 트레이너가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흘렸다.

“지적하니까 왜 그렇게 놀라. 설마 넌 아닐 줄 알았어?”

“전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네 착각이고.”

니암과 딜런이 준서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나 댄스 트레이너의 타겟은 준서만이 아니었다.

“두 사람도 웃을 입장이 아니에요. 준서 끝나면 바로 둘의 차례니까 대기하고 있어요.”

“……네.”

장난스럽게 웃던 둘의 표정이 어느새 시무룩해졌다.

흐름이 이렇게 되다 보니 궁금해진 게 있었다.

“그럼 저는요?”

나는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알고 싶었다.

그러자 트레이너가 아까와 다른 표정으로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태오 씨는 완벽해요. 아까 하던 대로만 계속해 주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내가 멤버들에게 보란 듯이 어깨를 크게 으쓱였다.

이것이 리더라는 것이다, 짜식들.

* * *

세 번째 앨범 활동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사이, 나는 배우 활동을 위한 대본 검토 일을 다시 시작했다.

최근에 마음에 드는 대본 하나가 눈에 들어와서 그런지, 연습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생길 때 이 대본을 보는 일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우등생의 특권으로 휴식을 부여받은 나는 요즘 푹 빠져 있는 대본을 들고서 휴게실을 찾았다.

시끄러운 안무 연습실에서 대본을 보면 집중도 잘 안 되고.

그리고 멤버들이 보충 수업을 받고 있을 때 내가 아예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면, 댄스 트레이너나 멤버들도 신경 쓰게 만들 거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휴게실로 장소를 옮기게 되었다.

대본을 훑어보는 동안, 마침 승훈이 형이 내가 있는 곳을 찾았다.

승훈이 형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 왔네.”

“누구? 나?”

“어.”

“갑자기 무슨 소리냐, 뜬금없이?”

형한테는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다 알고 있는 난 아니다.

“형, 최근에 사주 봤다고 했었지?”

“어. 우리 어머니가 보시고 왔다더라. 근데 내 사주는 왜?”

“여복이 언제 있는지도 알아봐 주셨대?”

“그거야 뭐, 그렇지. 내가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좀 그렇지만, 지금 내가 딱 장가갈 나이이긴 하니까.”

부모 입장에선 자식의 결혼 여부가 굉장히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립해서 가정을 꾸리는 일이니까.

좋은 여자를 만나야 좋은 가정을 만드는 법 아니겠나.

“어떻게 나왔대?”

“그걸 니가 왜 궁금해하는데?”

“궁금해할 수도 있지. 형하고 나하고 하루 이틀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고. 거의 가족 같은 사이잖아. 안 그래?”

유독 ‘가족’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면서 말을 했다.

그래서일까. 나를 바라보는 형의 눈빛에 의구심이 가득 담겼다.

“좋은 여자가 나타날 거라고 하더라, 조만간.”

“조만간?”

“어. 근데 난 잘 안 믿어. 그런 거 믿어서 뭐 하려고.”

“때로는 믿어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형이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흘렸다.

“그런 미신은 나보다 네가 더 안 믿는 편이잖아.”

“그랬었지. 근데 최근에는 생각이 달라졌어.”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런데. 잔말 말고 커피나 마셔라.”

승훈이 형이 회사 앞에 위치한 카페에서 사 온 커피를 내게 내밀었다.

“땡큐. 근데 내가 여기 있다는 거 어떻게 알았어?”

“안무 연습하고 있을 줄 알고 연습실 가 보니까 너 없길래. 어디 갔냐고 물어보니까 휴게실 갔다고 준서가 대답해 주더라고. 그래서 온 거지.”

“아, 그래?”

하긴. 물어보면 될 일이니까.

간단한 건데, 내가 미처 생각을 못 했다.

승훈이 형이 사 온 커피를 손에 쥔 나는 빨대를 꽂아서 그것을 한 모금 크게 빨아들였다.

승훈이 형도 나와 같은 아메리카노 아이스를 들고서 내가 보고 있던 대본에 관심을 보였다.

“그거, 오세평 감독님 작품 대본이지?”

“어, 맞아. 어떻게 알아?”

“대본집이 두꺼운 거 보고 알았지. 너한테 대본 가져다줄 때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거의 2배 가까이 대본집이 두꺼운 게 있었거든. 그게 오 감독님 작품 거였어.”

대사량이 많은 것도 한몫했지만, 각 신마다 디테일한 설명이 들어가 있어서 대본집이 두꺼워진 것 같다.

오세평 감독 역시 나와 ‘그날, 우리’를 통해 호흡을 맞춰 본 적 있었던 최기호 감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디테일에 상당히 많은 신경을 쓰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아니, 어쩌면 최기호 감독보다도 더할지도 모른다.

평소에도 대본 두께가 두껍기로 소문이 자자한 오세평 감독.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본을 보는 내내 지루하다는 생각이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형도 대본 봤어?”

“나? 자세히는 못 봤고. 대충 개요만 알고 있지.”

하긴 형이 작품에 출연해서 연기할 건 아니니까.

승훈이 형이 작품에 대한 대략적인 스토리를 떠오르는 대로 읊었다.

“장르가 로맨스 아니었나?”

“맞아. 심리묘사 표현이 좋더라고.”

“너 원래 그런 거에 별로 관심 없었잖아.”

“그랬었는데. 의외로 이런 것도 좋아 보이더라고.”

헌터 활동을 하다가 레이드 시대가 끝나고. 다시 일반 사회에 적응하려 하는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다는 그런 내용의 스토리였다.

나는 여기 남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긴 했는데.

“여주가 누군지를 모르겠네.”

“안 그래도 오늘 그쪽 조연출이 나한테 문자로 알려 준다고 했었는데. 잠깐만…… 어?”

승훈이 형이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왜?”

“문자 아까 보냈었네. 내가 미처 확인을 못 했나 봐.”

“여주인공이 누군데?”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승훈이 형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이리스라는데?”

아이리스와 로맨스 촬영이라니.

데이브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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