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79화 (179/250)

제47장. 잠시의 평화 (2)

이철민 소장한테서 연락이 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된다.

또 어떤 급박한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달랐다.

제이커에 대해 뭔가 알아낸 게 있으니까 나를 부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승훈이 형도 이철민 소장한테서 연락이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와 함께 차를 타고 연구실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나와 승훈이 형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철민 소장에게 물었다.

“뭔가 알아낸 거 있습니까?”

“제이커가 대체 어떤 식으로 게이트를 열려고 했던 겁니까, 네?”

쏟아지는 질문 앞에서 이철민 소장은 평소처럼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했다.

“우선은 진정 좀 하시는 게 어떨까요.”

이철민 소장의 말이 맞다.

제이커에 대해 궁금한 게 너무 많다 보니까 우리도 모르게 조금 흥분한 모양이다.

내가 이철민 소장에게 듣고 싶은 건 두 가지였다.

아까도 나온 것처럼, 게이트를 여는 방법에 대해서.

그리고 또 하나는 제이커의 동료처럼 보였던 여자의 정체에 관해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철민 소장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전부 제시하지 못했다.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수단에 대해선 저도 굉장히 궁금했는데,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웬만한 소지품들은 다 살펴봤는데, 흔적조차 보이지 않더군요.”

“그럼 그 여자의 정체는……?”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신에 제이커는 그 여자를 ‘동업자’라고 표현하더라고요.”

“동업자라.”

승훈이 형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별 뜻은 없어 보이는데. 아니야?”

“아니지. 최소한 그 여자가 제이커의 ‘부하 노릇’을 했다는 뜻은 아니니까.”

나는 처음엔 그 여자가 제이커의 밑에서 수족처럼 일을 하다가 마지막에 그를 배신한 건 줄 알았다.

제이커를 없애고, 자신이 제2의 제이커가 되려 한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여성이 지녔던 쓰잘데기없는 강함이었다.

최소 S랭크 이상 가는 전투력을 지니고 있는 그녀가 제이커의 밑으로 가 자진해서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제이커도 그녀와 비슷한 수준의 랭크를 보유하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마지막에 자기 스스로를 제물로 바쳐서 소환했던 화염 거인의 경우에는 S랭크를 훨씬 웃도는 전투력을 보여 주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제이커가 본인의 모든 생명을 투자한 최후의 수단이었으니까.

제이커가 여성을 훨씬 웃돌고도 남을 정도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아주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여성의 성격으로 봐서는 누군가의 밑에서 일할 만한 타입은 아닌 것 같았고.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선 생각할수록 의문만 더 쌓여 가고 있었다.

“아무튼 추가로 뭔가를 발견하는 대로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장님.”

“저도 태오 씨가 바라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내가 궁금해하는 만큼 이철민 소장도 많은 것들이 궁금할 것이다.

호기심으로 따지면 이철민 소장이 가장 왕성할 테니까 말이다.

* * *

승훈이 형과 같이 다시 소속사로 돌아오면서 이철민 소장이 해 줬던 이야기를 다시금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거다.

소득 없음.

승훈이 형이 헛웃음을 흘렸다.

“점심 회식 자리만 놓쳤네.”

“어쩔 수 없지, 뭐.”

전화상으로도 할 수 있는 이야기었지만, 워낙 민감한 내용이다 보니까 내가 먼저 나서서 이철민 소장의 연구실로 가겠다고 말을 했었다.

나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니까,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비록 원하는 소식은 접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조사 작업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었는지는 알 수 있었으니까.

이것만으로도 나는 큰 소득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철민 소장의 말에 의하면, 추가로 제이커나 여성에 대한 단서가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제이커의 일지 중에서 자신이 여태껏 본거지로 삼았던 장소들의 주소가 적힌 수첩이 발견되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헌터들이 이철민 소장이 발견한 이 자료들을 근거로 직접 해당 주소지로 가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하니, 조만간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희망의 끈을 계속 붙잡고 있을 만한 가치는 있다는 뜻이겠지.’

이제 우리는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얌전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 이후의 결과는 이철민 소장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다시 회사로 돌아오자, 마침 회식을 마치고 돌아온 멤버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데이브는?”

내 물음에 준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중간에 스케줄 있다고 갔어요.”

“아, 그랬지.”

테러로 유명세를 떨치던 제이커가 사라지고.

본의 아니게 나와 데이브는 이에 대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었다.

제이커 사건에 대해 우리들의 입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사건 개요를 듣고 싶은 모양인지 뉴스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예능, 라디오 등 다양한 곳에서 섭외 요청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제이커 사건에 관한 모든 것들을 오픈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섭외 요청은 계속 들어오는 중이다.

우리가 굳이 사건 내용에 대해 입을 털지 않아도, 우리의 출연만으로도 화제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 데이브가 출연하기로 한 토크 프로그램 역시 이런 효과를 제대로 누리고 있었다.

데이브가 출연한다는 기사가 뜨자마자 평소보다 두 배 넘는 기사 조회 수가 기록됐고, 댓글 숫자도 이전에 비해 훨씬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관심들이 훗날 프로그램의 시청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렇다 보니 PD나 작가들이 나와 데이브를 탐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나도 당장 오늘 저녁에 프로그램 출연이 두 개나 예약되어 있고.

테러의 위협에서 벗어나 다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만큼, 우리들도 다른 의미에서 다시 한번 바빠질 예정이다.

이때에 맞춰서 HTB 그룹 활동도 시작해야 하는데.

‘할 일이 많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벌인 일들이니까, 수습도 내가 하는 수밖에.

최 프로듀서가 아까 회의 때 나왔던 이야기를 마저 이어 가기 시작했다.

“곡 콘셉트는 아까 회의하면서 나왔던 대로 한번 잡아 보겠습니다. 나중에 가이드곡 나오면, 그때 들려드릴게요.”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프로듀서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사님이야 워낙 노래를 잘 부르시고, 퍼포먼스도 뛰어나시고 그래서 걱정이 안 드는데, 제가 더 걱정입니다.”

“아니, 왜요?”

“이사님의 실력에 걸맞은 노래를 뽑아내야 하는데, 잘 안 나올까 봐요.”

창작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걱정을 주기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결과물이 대중에게 과연 좋은 반응을 받을 수 있을지.

그러나 나는 이런 건 건전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꾸준히 생각하고 고민해야 그만큼 양질의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 프로듀서는 실력 있는 사람이니까.

“저번 앨범처럼만 작업해 주시면 됩니다.”

해 왔던 대로만 해도 나는 크게 만족한다.

그러나 최 프로듀서는 방금 들려준 내 말이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 모양인가 보다.

“가장 어려운 부탁을 하시네요.”

나와 최 프로듀서는 동시에 하하 웃고 말았다.

* * *

곡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이제껏 들어왔던 영화, 드라마 대본 검토 일도 같이 시작했다.

그동안 틈틈이 대본을 살피면서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는지 없는지 살피곤 했었는데, 이제 또 다른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세 번째 앨범 활동 기간하고 안 겹치도록 해야 할 거 같은데.’

물론 대본을 보내 준 제작진 측에서는 전부 다 내 앨범 활동 기간까지 고려해서 촬영 일정을 짤 테니까 제발 출연만 해 달라고 따로 연락을 해 오긴 했었다.

그래도 너무 내 위주로만 일정이 짜이면, 나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니까.

괜히 나를 생각해서 전부 일정을 맞췄는데, 정작 내가 만족스럽지 못한 연기 실력을 보여 주면 할 말이 없지 않은가.

물론 예전에 비해서 지금은 나름 연기 활동에 대해 자신감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가수 활동에 비하면 아직은 좀 멀었다.

더 경력을 쌓아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출연한 작품이 손에 꼽을 정도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할 수밖에 없다.

‘나중에 노래 나오는 거에 따라서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네.’

우리 앨범 활동 기간이 정해지면, 그때 가서 영화나 드라마 활동도 윤곽을 잡아 가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연기자 활동도 겸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어디까지나 내 본업은 가수니까.

‘……아니지, 헌터가 본업이잖아.’

레이드 시대가 끝나고 연예계 활동에 너무 집중했던 탓일까.

가끔씩 나도 내가 헌터인지 가수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외부에는 둘 다라고 말을 하고 다니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쪽에 더 큰 비중을 두느냐에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여기에 따라 본업과 부업으로 나뉜다.

회사에 출근해서 오랜만에 내 사무실에 앉아 열심히 대본을 살피던 와중에 누군가가 똑똑 하며 노크 소리를 냈다.

연수하 대표가 오래간만에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태오야, 바빠?”

“아니요. 무슨 일이신가요?”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 전에 먼저 연 대표에게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좋은 소식입니까, 아니면 안 좋은 소식입니까?”

제이커가 한창 테러 활동을 할 때, 뭐만 하면 안 좋은 소식들만 계속 이어진 탓에 나도 모르게 이런 확인 작업을 거치게 되었다.

연 대표가 내 반응을 접하더니 작게 웃었다.

“너한테 있어서는 좋은 쪽이겠지?”

“그래요? 그러면 앉으셔도 됩니다.”

“왜, 나쁜 소식 가져왔으면 내쫓기라도 하려고 했어?”

아주 살짝 그럴까 생각도 해 봤다.

소파에 앉은 연 대표가 양손으로 깍지를 낀 뒤에 나를 응시했다.

“회사 운영은 좀 어때?”

“HT 엔터테인먼트요?”

“어, 승훈이한테 들어 보니까 괜찮게 잘한다고 그러던데.”

갑자기 회사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걸까?

머릿속에 어느 한 가설이 떠오르긴 했지만,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다.

괜히 설레발치는 거 같아서 그렇다.

“정신없이 바쁠 때가 있긴 한데, 그래도 나름 재미있더라고요.”

“그래? 어려운 점은 없고?”

“어려워도 다른 사람들이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니까요. 할 만합니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익숙해졌다.

연 대표가 ‘그렇단 말이지…….’라는 말을 흘렸다.

그러더니 내게 큰 제안을 하나 해 왔다.

“그러면 HT 엔터테인먼트, 너한테 넘길까.”

“저한테요?”

“어, 예전부터 회사 지분을 너한테 양도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거든. 마침 제이커 일도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지금이 타이밍이다 싶어서 해 본 말이야. 어때, 생각 있어?”

본의 아니게 이런 식으로 승진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네, 생각 있습니다.”

회사를 통째로 넘기겠다는데, 당연히 오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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