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장. 수수께끼 (2)
그 수수께끼투성이 여자한테서 제이커의 현 위치를 들었을 때에는 긴가민가했었다.
어쩌면 우리들을 교란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다른 장소를 알려 준 거라는 의심도 들었다.
그런데.
“진짜로 있다고요?”
-어, 있었어. 네가 해 줬던 그 여자 말이 사실인가 보더라.
“제이커로 둔갑한 누군가가 아니라요?”
-감시 중인 헌터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고 하더라.
“어디 있는데요?”
-인천항. 정확한 위치는 내가 너한테 데이터로 보내 줄 테니까, 그쪽으로 바로 넘어와라. 데이브하고 다른 헌터들한테도 연락 돌리고 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와.
“네, 알겠습니다.”
한시가 급하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이는 편이 좋다.
이 절호의 기회가 또 언제 날아가 버릴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왜 하필이면 나한테 이런 정보를 흘린 거지?’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제이커와 같은 편이 아니었나?
그러면 김두정을 왜 죽였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김두정이 죽어도 제이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제이커가 김두정에게 거금을 주면서까지 반헌터 시위를 이어 가라고 지시를 한 거였는데.
김두정을 죽이면, 그런 의미가 없어지지 않겠나.
물론 꼬리 자르기일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내가 김두정을 직접 압박해 본 결과, 녀석은 제이커에 관한 유효한 정보 따윈 가지고 있지 않았다.
꼬리 자르기가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죽이려 했으면 홍콩에서 붙잡힌 그 녀석들을 죽이는 게 더 이득이었을 텐데.
‘모르겠어.’
하도 이상한 발상들을 많이 하다 보니까 나도 헷갈릴 정도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여자가 알려 준 위치에 제이커가 있다는 것이다.
‘가 보면 알게 되겠지.’
함정이라 할지라도 딱히 상관없다.
함정이든 뭐든.
‘다 박살 내 버리면 그만이니까.’
* * *
조용한 새벽 시간.
밤하늘과 함께 인천항 역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 고요함은 잠시 뒤에 벌어질 일을 예고하는 것처럼 평화롭기보다는 섬뜩함에 가까운 분위기를 취하는 중이었다.
폭풍전야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현장에 도착한 나는 미리 와 있던 데이브, 준서와 합류했다.
데이브는 그렇다 치더라도.
“준서, 너도 여기에 와도 괜찮냐?”
“저도 이래 봬도 헌터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준서가 나나 데이브처럼 전투력이 엄청 강한 편은 아니니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니암하고 딜런도 이곳으로 오는 중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 때쯤, 마침 타이밍 좋게 협회장의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전달되었다.
-A랭크 이하의 헌터들은 후방에서 대기한다. 현장 투입은 S랭크 이상 되는 헌터들만 한다. MML 버프 효과 적용 이전의 기준이니까 착오 없이 움직이도록.
현장 지휘는 협회장이 직접 맡기로 했다.
MML 버프를 받으면 전투력이 거의 두 배로 뻥튀기되니까. 그러면 너도 나도 S랭크 헌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제이커가 또 MML 버프를 해제시킬 어떤 수단을 강구해 왔을지 모르는 법이다.
그래서 협회장은 일찌감치 이렇게 등급 기준을 나누기로 했다.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조용히 자리를 이동해 제이커의 동태를 살폈다.
인천항에서 바다를 바라본 채 아무런 행동도 취하고 있지 않는 녀석.
미리 현장에 와서 놈을 감시하던 헌터 한 명이 내게 작게 속삭였다.
“30분째 저러고 있습니다.”
“저대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고?”
“네. 제가 보기에는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인 거 같습니다만.”
누군가를 기다린단 말이지.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까지는 정확히 드러난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내게 그간의 상황을 보고해 준 헌터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고.
정말로 그렇다는 것까진 아니었다.
나야 현장에 방금 오다시피 했으니까 잘 모른다.
그러나 시간의 여유를 두고 제이커의 상태를 살피다 보니 내게 앞서 말했던 헌터의 보고가 사실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만약 제이커였다면, 어디로 급하게 몸부터 숨기려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미 제이커가 권주영의 몸속에 들어가 있다는 걸 아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와 이철민 소장 덕분이다.
내가 출동한 사이, 이철민 소장은 내가 알아낸 정보들을 협회장뿐만 아니라 헌터들에게도 빠르게 공유해 줬다.
덕분에 이렇게 빨리 포위망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녀석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고 있지 않을 때가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협회장님, 저 태오입니다.”
통신기 버튼을 꾹 누르면서 협회장을 찾았다.
협회장이 곧장 내 말에 반응을 보였다.
-어, 태오야. 현장에 도착했나 보구나.
“네. 그보다 제이커가 뭔가 저지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선수를 치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제이커가 어떤 방식으로 게이트를 소환할 수 있을지 어떨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걸 마냥 지켜보면 안 된다.
괜히 놈에게 시간을 줬다가 다시 게이트가 열리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두 번째 레이드 시대가 도래한다면.
그만큼 큰일도 없을 것이다.
협회장도 내 말에 동의하는 모양인지 곧장 작전 명령을 하달했다.
녀석을 붙잡는다.
이것이 우리의 목표다.
“가자.”
데이브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뿐만 아니라 출동한 헌터들도 빠른 속도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목표는 권주영의 몸을 차지한 제이커다.
한편, 우리의 기척을 느낀 제이커는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눈치챘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로써 나는 그 여자와 제이커가 서로 진정한 동료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품게 되었다.
권주영의 몸을 차지한 제이커라 할지라도 각성 능력은 그대로인 모양인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빛을 뿜어내는 각성 문양을 보이면서 급하게 자신의 소환수들을 꺼냈다.
그러나 아예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소환수들을 꺼내려고 하다 보니, 미국에서 벌였던 전투처럼 강력한 소환수들을 바로바로 꺼내진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데이브의 창끝에 강한 스파크가 일렁였다.
파지직! 소리와 함께 제이커가 소환한 소환수들을 전부 다 태워 버렸다.
그사이, 나는 제이커에게 빠른 속도로 접근해 녀석의 복부에 내 주먹을 꽂아 넣었다.
뻐억! 하는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녀석의 몸이 기역 자 형태로 꺾였다.
숨도 못 쉬면서 앞으로 몸이 고꾸라진 녀석.
그 상대로 나는 놈의 팔을 뒤로 꺾은 다음에 그대로 체중을 실어 녀석을 제압했다.
바닥에 엎어진 채로 바둥거리는 제이커였지만, 내 손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제이커가 강하다 할지라도 녀석의 강함은 소환 능력이나 마법에 의한 것일 뿐, 맨손 격투로 붙으면 나를 이길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손을 봉인해 두면, 미국 때 우리가 겪었던 것처럼 제이커가 허튼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도 하니까.
제이커는 나를 매섭게 노려보면서 말했다.
“어떻게 나를 찾아낸 거냐……!”
“제보자가 있었거든.”
“제보자라고?”
“김두정을 죽인 그 여자 말이야. 네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얌전하게 알려 주더라.”
“……!”
내 말에 제이커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하늘이 무너진 만큼의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크나큰 절망감에 휩싸여 있었다.
동료의 배신이 그렇게 뼈아프게 다가왔던 걸까?
자신의 흔적이 드러날 것 같으면 손을 잡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손절하던 제이커가 이런 식으로 반응하니까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올 정도였다.
“네가 그동안 쌓아 올린 업보가 제대로 터진 거라고 생각해라.”
그동안 녀석이 한 게 있는데, 동료들이 모두 다 제이커 자신에게 평생 충성하고 따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사치다.
그러나 제이커는 이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말을 흘렸다.
“그 여자가…… 모든 걸 준비하기로 했는데…….”
나는 처음엔 제이커가 그 여자한테 책임 전가를 하는 줄 알았었다.
하지만 이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하늘 위에서 번쩍이는 무언가가 떨어지더니, 그대로 제이커의 심장을 꿰뚫어 버리고 말았다.
내가 미처 반응하지도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심장을 꿰뚫린 제이커는 그대로 즉사해 버렸다.
마나 덩어리로 만든 기다란 무언가는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근처에 있던 데이브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뭐, 뭐냐, 방금 그건? 듣도 보도 못한 기술인데.”
“……나도 마찬가지야.”
마나로 만든 어떠한 형태가 나와 가까운 곳으로 접근해 오는데, 내가 미리 감지조차 하지 못했을뿐더러 반응도 못 했다는 게 스스로에게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그 순간, 멀리 떨어져 있는 상가 건물 옥상에 서 있던 여성이 나를 향해 눈웃음을 짓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여성은 또다시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금세 모습을 감춰 버렸다.
제이커의 암살이 그녀의 목적인 듯했다.
싸늘한 시체가 되어 버린 제이커를 내려다보면서 나는 오만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쩌면 우리의 진정한 적은 제이커가 아니라.
사라진 그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아주 짧게나마 뇌리를 스쳤다.
* * *
권주영의 몸속으로 들어가 있던 제이커까지 죽음으로 인해 그와 연관되어 있던 모든 사건들이 종료되었다.
마무리가 영 찝찝하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제이커가 게이트를 열게 되는 일은 무사히 막아 내게 되었으니까, 크게 상관은 없었다.
단지 의문이 몇 개 남았을 뿐.
‘결국 그 여성의 정체는 뭐였던 거지?’
여전히 이에 대한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조금이나마 단서가 될 만한 게 있는지 없는지, 우선은 이철민 소장이 제이커가 지니고 있던 소지품들을 조사하면서 최대한 정보를 알아내 보기로 했다.
뭔가 알아내는 게 있으면 나한테도 따로 알려 주기로 했으니까. 우선은 이철민 소장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제이커 일이 일단락되고 난 이후에는 또 하나의 변화 아닌 변화가 생겼다.
반헌터 시위를 포함해서 종종 문제를 일으키곤 했던 테러리스트들까지, 이전에만 하더라도 활발하게 활동했던 자들이 갑자기 잠잠해졌다.
그동안 제이커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뒤를 많이 봐줬다는 사실을 이번 일을 통해 알게 되었다.
돈이나 물자 등을 지원해 주는 사람이 없어졌으니까 활동이 자연스레 뜸해질 수밖에 없다.
제이커의 추가 활동 이력을 밝혀 내기 위해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협력 체계를 갖추고 조사에 임할 것을 선언했다.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던 나는 뉴스들을 살피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풀리지 않는 의혹들.
‘내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는 듯한 느낌인데.’
그게 뭔지, 아직도 명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