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장. 수수께끼 (1)
내가 생각이 짧았다.
제이커가 미국에서 자신의 본거지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가만히 있었다는 게 일종의 기만이라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기만이 아니었다.
우리들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수작이었다.
즉,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우리들 눈앞에서 직접 보여 주고 확인시킨 다음에 방심을 유도하게 만들려는 그런 작전인 셈이다.
연구소를 벗어나자마자 나는 바로 권주영이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로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무의미한 신호음만 반복될 뿐 내 전화를 받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협회장에게도 바로 연락을 취하려고 했다.
그런데, 때마침 협회장이 내게 먼저 연락을 해 왔다.
“네, 협회장님.”
-권주영이 탈옥했다고 하더라. 방금 연락받았다.
역시, 내 예상대로였다.
“지금 그 녀석,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아니, 몰라. 지금 헌터들을 총동원해서 찾고 있는 중이긴 한데…… 아마 멀리 가진 못했을 거다. 서울 내에 있을 거야.
그게 더 안 좋은 소식이다.
서울은 우리나라에서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은 도시다.
권주영이 마음만 먹으면 지난번처럼 미국 영화 관련 시상식에서 인질들을 붙잡았던 것처럼 그런 짓을 언제든 벌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녀석은 테러리스트니까.
언제, 어느 때에 무슨 행동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 녀석, 권주영 아닙니다.”
-응? 권주영이 아니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
“제이커입니다.”
-……뭐?
협회장이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
권주영을 두고 제이커라고 주장하는 내 말을 믿기가 힘들 테니까.
-잠깐만. 제이커는 죽었잖아. 네가 직접 없앴다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녀석은 살아 있어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지난번에 제가 권주영하고 만나서 무슨 대화를 나눴었는지 협회장님한테도 공유해 준 적 있죠?”
-어, 그랬지.
“그중에서 권주영이 왜 제이커의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는지도 혹시 기억하시나요?”
-뭐였더라. 영웅이 되고 싶다고 했나 어쨌나 그랬잖아. 그게 제이커의 영향 탓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방향으로 왜곡되어서 결국 테러 짓을 자행하는 녀석으로 변모하게 되었다고 들은 거 같은데.
정확하다.
제대로 잘 기억하고 있는 협회장 덕분에 내가 설명해 줄 거리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게 만약 권주영의 이야기가 아니라면요.”
-권주영의 것이 아니라고? 그럼 누구 이야기인데?
“제이커요.”
-잠깐만. 나, 지금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는데. 천천히 설명 좀 해 봐라.
“방금 이철민 소장이 확보한 제이커의 일지를 봤습니다. 그곳에 자신은 예전부터 영웅이 되고 싶었다고 적혀 있더라고요.”
내가 권주영한테 들었던 말들이 대부분 적혀 있었다.
그게 왜 제이커의 일지에 적혀 있는 걸까?
이것만 보면 단순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 등장한 제이커의 또 다른 기록 일지를 통해서 내 머릿속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퍼즐이 하나로 합쳐지게 되었다.
“제이커는 다른 사람과 육신을 바꾸는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소환술을 넘어서 영혼까지 바꿀 수 있는 방법까지도 터득했던 거 같아요.”
-그러면 설마…….
“네, 저희가 권주영을 붙잡았을 때에는 이미 제이커가 권주영의 몸을 차지하고 있었을 겁니다.”
크게 당황하던 협회장이 이내 이해가 안 간다는 목소리로 추가 질문을 건넸다.
“가만. 그럼 네가 처리했던 제이커는?”
“녀석이 만든 소환수겠죠.”
이미 제이커는 인간형 소환수까지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증명되었다.
미국 시상식 테러 현장에서도 그랬고 말이다.
게다가.
“녀석은 마지막에 스스로 화염 거인으로 모습을 바꿨습니다. 어쩌면 저희가 진짜 제이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힘들게 만들려고 일부러 변신을 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원래 권주영은?
“죽었겠죠. 제이커의 원래 몸과 같이.”
물론 어디까지나 내 추측에 불과하지만, 확률은 매우 높다.
제이커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권주영인 척하면서 지내는 게 우리들의 수사망을 쉽게 피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그래서 일부러 이 방법을 택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권주영은 제이커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바로 교도소를 탈출했다.
녀석은 이미 탈옥을 하고도 남을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얌전히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척을 했다.
지금처럼 때를 노리기 위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전까지 알음알음 느껴졌던 어색한 것들이 마침내 하나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맞추고 나니까 제이커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이걸 알아냈으니.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해졌다.
“권주영을 어떻게든 찾아내야 합니다. 최대한 빨리!”
녀석이 게이트를 열기 전에 말이다.
* * *
당연한 말이지만,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권주영을 찾아낸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녀석이 마음만 먹으면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 도심은 워낙 사람들이 많으니까.
권주영…… 아니, 제이커는 어쩌면 이걸 노리고 일부러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닌 한국 사람의 육신을 차지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숨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설마 나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니겠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이커는 나에게 꽤나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헌터로 활동할 당시에는 녀석과 접점도 없었는데.
아니, 어쩌면 자신의 계획을 내가 계속 방해하니까 없던 복수심이라도 생겼을지 모른다.
제이커가 더 큰 짓을 벌이기 전에 놈을 찾아내야 할 텐데.
‘방법이 없네.’
일단 수배령을 통해서 녀석의 인상착의를 다 공개하긴 했는데.
솔직히 이걸로 놈을 잡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만약 권주영의 몸속에 정말로 제이커의 영혼이 들어가 있다면, 우리가 지금쯤 권주영의 정체가 제이커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도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설마 이런 식으로 우리들을 따돌리려 할 줄이야.’
기상천외하다고밖에 볼 수가 없었다.
일단은 녀석이 수감되어 있었던 교도소로 향했다.
그곳에서 혹시 녀석이 어디로 갔을지, 흔적 같은 게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차를 꺾어서 코너를 돌려고 할 때.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한 여성이 도로 한복판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가 사람을 칠 뻔했다는 아찔함보다는 화가 먼저 밀려왔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도로에 멀뚱히 서 있었던 여성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차를 멈춰 세운 나는 여성을 응시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어떤 기억의 장면 하나가 스쳤다.
김두정을 죽이고 사라졌던 그 여자의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
나는 말을 아낀 채 차에서 나와 거칠게 문을 닫았다.
여성은 내가 차에서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말했다.
“교도소에 가 봤자 아무런 의미 없어. 제이커가 어디로 갔는지 못 찾을 테니까.”
“……정체가 뭐냐?”
나를 상대하기 위해 제이커가 일부러 보낸 자객인 줄 알았다.
그러나 여성은 싸울 의지가 없음을 나타내듯 양손을 활짝 펼쳐 보이면서 무기를 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내게 어필했다.
“당신한테 좋은 정보를 하나 알려 주고 싶은데.”
정체가 뭔지에 대해 물었는데, 여성은 전혀 엉뚱한 대답을 들려줬다.
애초에 내 질문은 일절 받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행동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
여성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또 한 번 더 벌어졌다.
방금 전까지 보였던 여자의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였다.
이때, 사라진 줄 알았던 여성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주먹보다는 대화로 하지 그래? 평화의 시대라며? 그러면 문제 해결 수단도 평화로워야 하는 거 아니야?”
“테러리스트가 평화를 운운하니까 코미디가 따로 없군.”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여성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하고 싶은 중요한 말이라도 있는 모양인지, 싱긋 웃으면서 이렇게 물었다.
“제이커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아?”
“왜, 알려 주기라도 하게?”
“그래, 그러려고 온 거야.”
당연하게도 난 이 여자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제이커와 같이 행동하는 여자 아닌가. 그런데 이 말을 누가 곧이곧대로 믿어 줄까.
적어도 나는 아니다.
여성이 주머니 속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걸로 종이비행기를 접더니, 내게 날려 보냈다.
정확히 내 발밑에 떨어진 종이비행기.
여성은 할 일을 다 끝났다는 듯이 기지개를 펴고선 말했다.
“내 말을 믿든 안 믿든, 그건 네 자유야. 하지만 웬만하면 믿는 게 좋을 거야. 제이커가 정말로 게이트를 열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녀석은 무슨 수로 게이트를 여는 방법을 알게 된 거지? 애초에 그럴 힘이 있긴 한가?”
드래곤처럼 방대한 양의 마나를 다룰 줄 알아야 게이트를 소환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인간의 몸으로 게이트를 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드래곤만큼의 마나양을 다루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보조해 주거나 대체할 수 있는 장치를 제이커가 개발했다면?
그러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녀석은 영혼마저 서로 바꿀 수 있는 방법조차 알아냈으니 말이다.
어떻게 이런 기술력들을 단기간 내에 손에 넣을 수 있었는지, 이것 또한 의문이다.
여성이 내게 손 키스를 날리면서 말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그렇게 말하면서 여성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캐스팅 과정도 없이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이는 적어도 현존하는 헌터들 중에선 없었다.
협회장도 여성을 ‘존재할 수 없는 존재’라고 표현했었는데.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눈앞에서 보니까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 * *
협회장은 내가 제이커가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장소를 알아냈다고 말하니,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이 정보를 맹신하면 안 된다는 거, 나도 잘 안다.
그래서 협회장에게 김두정을 죽인 여성이 알려 준 정보니까, 함정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염두에 두고 헌터들을 파견하라고 말을 전했다.
거리가 가까우면 내가 직접 가 볼 텐데, 부득이하게 꽤나 먼 거리에 있었기에 협회장에게 연락해서 먼저 근처에서 대기 중인 헌터들부터 보내기로 했다.
그동안 나는 다른 곳을 돌아다니면서 제이커를 찾을 생각이었다.
단서가 없으니까 내 두 발로 직접 뛰어다니는 수밖에 없다.
크게 도약하려고 하기 전에.
갑자기 협회장한테서 연락이 왔다.
“네, 협회장님.”
-태오야, 지금 네가 보내 준 주소로 빨리 가 봐야겠다.
“무슨 일인데요?”
역시 함정이었나.
그 여성을 믿었으면 안 됐다는 후회가 밀려오려고 할 때쯤.
협회장이 내게 충격적인 말을 전달해 줬다.
-정말로 그곳에 있었어. 제이커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