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장. 체포 (4)
있는 힘껏 던진 창이 매서운 속도를 뽐내면서 화염 거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예전에 몬스터와 싸울 때 근접해서 전투를 펼치기 힘든 몬스터가 있으면 이런 식으로 원거리에서 요격을 하곤 했었는데.
그때보다도 어째 더 힘이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MML 버프 때문일지도.’
아마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바람을 꿰뚫으면서 날아간 창끝이 화염 거인의 오른쪽 가슴을 꿰뚫었다.
놈의 단단한 피부도, 주변의 모든 것을 녹여 버릴 것만 같은 강력한 불길도.
내가 던진 창을 막진 못했다.
시원하게 뻥 뚫려 버린 구멍 사이로 핵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저기 있군!’
핵을 꿰뚫진 못했지만, 그래도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한편, 화염 거인으로 변한 제이커는 노골적으로 당황했다.
-어, 어떻게 이런……!
제 딴에는 최강의 육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실제로 그렇긴 했다.
내 능력이 통하질 않았으니까.
물론 전력을 다해 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공격은 게이트를 열고 닫고 할 정도로 방대한 능력을 지녔던 드래곤에게도 통할 정도였다.
이렇다 보니 화염 거인이 지금껏 보여 준 방어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만한 스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놈이 강해진 만큼, 나도 더 강해지면 된다.
나는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성장해 왔다.
화염 거인의 몸이 빠르게 재생되어 갔다.
그래도 상관은 없다.
핵이 어느 곳에 있는지, 그걸 알아내는 게 1차 목표였으니까.
‘목적은 달성했고.’
2차 저격에 들어갔다.
한편, 화염 거인은 내가 어디서 요격을 하고 있는지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위치가 들통나면 안 된다.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어.’
방금의 공격으로 인해 녀석은 내가 어디 있을지 대충 감을 잡았을 것이다.
실제로 화염 거인은 내게 거리를 벌리도록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서 쿵, 쿵, 쿵! 하는 소리를 내면서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아아, 데이브, 내 말 들리지?”
-잘 들린다. 왜.
“녀석이 한동안 나를 찾으려고 할 거야. 내가 다시 창 던질 준비 끝낼 때까지 네가 시간을 좀 벌어 줘.”
-알았다.
강한 적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데이브도 평소처럼 나에게 반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말에 고분고분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은 서로가 헐뜯고 견제하는 것보단 강한 적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니까.
이건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 레이드 시대 때에도 줄곧 보여 줬던 태도다.
MML 버프로 강해진 데이브와 헌터들이 화염 거인의 진로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쓰잘데기없는 방해를……!
헌터들의 방해가 과연 정말로 쓸모없는 일일지 어떨지.
그건 나중에 내가 결과로 보여 줄 생각이다.
고층 빌딩에 올라선 나는 여분의 창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오른쪽 가슴팍을 꿰뚫었을 때, 나는 녀석의 핵 위치가 어딘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정 중앙이었지.’
어느 한쪽에 치우쳐져 있는 것도 아니고, 몸 한가운데에 핵이 위치해 있었다.
“데이브, 녀석이 못 움직이도록 붙잡아 줄 수 있겠어?”
-그건 어려운 부탁인데.
“힘들어?”
-내가 ‘어려운 부탁’이라고 말했지, ‘못 하겠다’고 말한 건 아니잖아.
하여간 녀석도 참.
데이브의 반농담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잠시만 기다려 보라고 한 데이브가 헌터들을 이끌고 녀석을 향해 총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화염 거인이라 할지라도 계속해서 헌터들의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 내는 건 부담이 꽤 컸던 모양인지 수비 자세를 취했다.
저것이 녀석의 목숨을 앗아 갈 선택지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다시 한번 창을 거꾸로 쥐고서.
“하앗……!”
사력을 다해 창을 던졌다.
아까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간 창은 이번에도 예외 없이 화염 거인의 몸을 꿰뚫었다.
푸직! 하는 소리와 함께 화염 거인의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겼다.
몸 안에 깊숙하게 박혀 있던 거한 핵이 내 창끝에 파괴되었다.
핵이 파괴되자마자 제이커가 괴로움이 가득한 비명 소리를 내면서 쓰러져 갔다.
녀석의 몸집이 작아지더니, 나중에 가서는 원래 인간의 몸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몸이 꿰뚫린 채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제이커.
녀석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아직 숨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이 희미한 생명의 불꽃은 머지않아 꺼질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다.
웬만하면 나도 녀석을 생포하고 싶었지만, 달리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한번 인간을 포기한 녀석에게 다시 인간성을 바란다는 건 무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놈의 목숨보다 다른 사람들의 목숨이 수십 배 더 중요한 건 변함이 없으니까 말이다.
대신에 놈에게 꼭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게이트를 어떻게 열려고 했지?”
제이커는 생각이 없는 놈이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똑똑하다.
어쩌면 이철민 소장보다도 더.
실제로 이철민 소장은 소환 부문에 관한 지식만큼은 자신이 제이커보다도 한참 부족하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학식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강한 자존감으로 똘똘 뭉쳐 있는 이철민 소장이 그렇게 말을 하는 건 난 처음 봤다.
그래서 더 묻고 싶었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게이트를 소환하려고 했는지.
아니, 인간의 힘으로 게이트를 소환하는 것 자체가 가능한 것인지.
만약 이게 정말로 가능한 일이라면.
언제 또 레이드 시대가 오게 될지 모른다.
굉장히 민감하고 위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제이커는 나를 올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말해 줄 거라고 생각했냐?”
“아니.”
물어는 봤지만, 제이커가 순순히 대답해 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실제로 녀석은 답변하기를 거부한 채 그렇게 싸늘한 시체가 되어 버렸다.
데이브가 뒤늦게 내 쪽으로 다가오면서 물었다.
“녀석이 뭐라고 했냐?”
이에 대해 내가 해 줄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아무 말도 안 했어.”
놈은 끝까지 알 수 없는 존재로 남게 되었다.
* * *
제이커의 사망 소식은 전 세계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다.
권주영이 갇혀 있는 교도소에도 제이커가 죽었음을 알리는 뉴스 속보가 TV를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야심한 시각.
죄인들이 갇혀 지내는 방들을 확인하기 위해 복도를 걷던 두 교도관들은 제이커가 죽었다는 소식을 두고 짧게 대화를 이어 갔다.
“제이커라는 그 사람, 죽었다더라.”
“그 테러리스트?”
“어. 뭐 이상한 거 먹고 괴물로 변했었다고 하던데, 강태오가 제압했대.”
“역시 강태오구만. 그런 일 있으면 무조건 강태오가 있어야지.”
“아무튼 오늘에서야 나도 두 발 뻗고 잘 수 있겠더라고. 이제 이걸로 테러리스트들도 많이 줄겠지?”
“그러지 않을까? 테러리스트들 대장이 죽었는데.”
두 교도관의 대화를 조용히 듣던 권주영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글쎄, 내가 보기에는 이전하고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거 같은데.”
“뭔 소리냐, 그게.”
“너하고 한솥밥 먹었던 식구라고 애도해 주는 거냐?”
교도관들은 어이가 없었다.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불러일으켰던 제이커가 죽었는데, 오히려 권주영의 배짱은 더 커졌다.
제이커의 테러로 인해 실제로 지인을 잃은 교도관이 험상궂은 얼굴로 권주영을 노려봤다.
“말조심해라, 너. 지금에야 그렇게 평화롭게 있는 거지, 나중에 네 죄목들이 다 밝혀지게 되면 그때 넌 무조건 사형이야.”
그 말에 권주영은 피식 웃었다.
“아무도 날 죽이지 못한다.”
그 순간.
그의 눈빛이 권주영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뀌었다.
* * *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유명 테러리스트의 사망 소식에 사람들은 크게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는 더 이상 테러의 두려움에 떨면서 살지 않아도 된다.
이런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마침내 찾아온 평화.
물론 그렇다고 완벽하게 평화의 시대가 찾아온 건 아니었다.
제이커 말고도 여전히 활동 중인 몇몇 테러리스트들이 존재하는 건 그대로고.
그리고 몬스터들도 간간이 출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확실히 예전에 비해 사람들이 많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테러에 대한 불안감이 많이 줄어든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한편, 헌터협회 직원들과 함께 제이커의 부검 현장에 참여하고 왔던 이철민 소장이 나를 반겼다.
“일찍 오셨군요, 태오 씨.”
“고생 많으셨습니다. 협회장님은 아직 안 오셨나요?”
“네. 잠깐 급한 볼일이 생겼다고 하셔서요. 데이브 씨는요?”
“데이브도 오늘 일이 있어서 좀 늦을 거래요.”
“테러리스트들의 우두머리가 죽었다고 다들 벌써부터 평화로워지신 모양인가 보군요.”
이철민 소장의 작은 농담에 내 입에서 웃음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평화에 찌들어서 나태해졌다기보다는, 제이커 때문에 그동안 못 하고 밀려 있던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한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실제로 데이브의 경우에는 자주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제이커의 흔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를 벌이곤 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는 다 끝났다.
이철민 소장이 양손에 가득 든 종이 박스 여러 개를 협회장의 사무실 안쪽에 놓아두기 시작했다.
“도와드릴까요?”
“네. 그래 주신다면야 좋겠군요.”
이철민 소장이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둘이 달라붙으니까 일이 금세 끝났다.
모든 박스들을 다 옮기고 나서야 뒤늦게 궁금증이 밀려왔다.
“근데 이것들은 다 뭡니까?”
“제이커의 본거지에서 발견된 증거품들입니다.”
“그래요?”
PC는 기본이고 녀석이 사용했던 태블릿, 스마트폰, 그리고 집 내부에 있던 다수의 종이 다발과 소지품까지.
거의 하나도 빼놓지 않고 싹 쓸어 왔다.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거 하나하나가 다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철민 소장과 내가 공통적으로 제이커에 대해 궁금히 여기는 부분이 있었다.
녀석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게이트를 소환하려고 했던 걸까.
자료를 낱낱이 살펴봤지만, 마땅한 근거는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수수께끼투성이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 태오 씨, 그거 좀 주시겠습니까?”
“스프링 노트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근데 이건 뭡니까?”
아직 이 노트는 확인해 보지 못했다.
“아까 제가 얼핏 봤는데, 일기장 같아 보였습니다.”
“일기장이요? 한번 봐도 될까요?”
“네.”
종이를 촤라락 넘기면서 녀석의 일기장을 살폈다.
안에는 녀석의 평소 생각에 대한 것들이 다수 적혀 있었다.
이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히어로가 되고 싶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인데.
마침 이철민 소장이 다른 자료를 둘러보면서 혼잣말을 흘렸다.
“제이커라는 자, 타인과 자신의 육신을 바꾸는 연구도 성공했었나 보네요.”
“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다른 사람과 몸을 바꾸는 실험을 진행했던 거 같습니다. 성공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몸을 바꾼다.
히어로가 되고 싶었다.
‘…….’
“망할!”
뒤늦게 제이커에게 속았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