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74화 (174/250)

제45장. 체포 (3)

원래 레이드 시대 당시에도 파이어 골렘이란 소환수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그런 존재였다.

나도 상대해 본 적은 기껏해 봤자 네다섯 번 정도? 그게 다였다.

오히려 레이드 시대가 끝난 이후에 파이어 골렘과 싸워 본 일이 더 많을 정도였다.

이게 다 눈앞에 있는 제이커 덕분이다.

물론 고마운 마음은 일절 없었다.

덕분에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다 귀찮아지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제이커는 계속해서 불속성 소환수들을 우리 앞에 소환시켰다.

파이어 골렘뿐만 아니라 대전에서 봤었던 네발 달린 짐승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놈들은 우리를 향해 매섭게 날아들었다.

온몸이 불로 휘감겨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맨손으로 녀석들을 상대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미리 챙겨 온 검을 뽑아 들었다.

푸른 빛이 검신에 깃들었다.

그것을 크게 휘두르자, 전방을 향해 커다란 검기가 발사되었다.

검기는 파이어 골렘 하나와 네발 달린 소환수 두 마리를 동시에 두 동강 내 버렸다.

그러나 핵까지는 파괴하지 못한 모양인지, 놈들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귀찮은 녀석들.’

한편, 날개 달린 소환수들을 상대하는 헌터들 역시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펼쳐진 전투인 데다 제이커가 만반의 대비를 갖추며 만든 소환수들이다 보니 확실히 우리가 이전에 상대했던 놈들에 비하면 강했다.

이렇게 된 이상.

“다음 작전을 준비해라!”

내 외침에 헌터들은 찰떡같이 알아들은 모양인지, 각자 주머니 속에서 이어폰을 하나씩 꺼내 귀에 꽂았다.

이어폰을 두 번 탁탁 터치하자,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MML 버프를 몸에 두르기 시작하자, 헌터들의 전투력이 상승했다.

우리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것처럼 제이커는 다음 수단을 꺼내 들었다.

“그 정도는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다.”

제이커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기자, 건물 안에 감춰져 있던 기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딱 봐도 무슨 목적으로 저걸 설치했는지 알 수 있었다.

“EMP냐?”

“물론.”

네크로맨서도 일시적으로 전자 기기들의 작동을 멈추는 기교를 부리면서 우리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기계가 작동하는 순간, 주변에 있는 모든 건물들의 불빛이 꺼졌다.

이럴 때에는 제이커의 소환수들의 몸에 붙은 불이 시야 확보에 도움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그러나 헌터들은 제이커가 만든 소환수와 호각으로 다투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 이제는 놈들을 압도하면서 하나하나씩 제압해 가기까지 했다.

제이커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어째서…….”

“어째서긴.”

나는 방금 제이커가 내게 들려준 말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되갚아 줬다.

“그 정도는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다.”

“…….”

이미 네크로맨서를 상대함으로 인해 나는 기껏 고안하고 만들어 낸 MML 버프가 어쩌면 쓸모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네크로맨서처럼 EMP 기능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들이 출몰하기라도 하면 곤란하지 않겠나.

내 노래는 세계를 구할 노래라고 열심히 홍보하고 다녔는데 이제 와서 버프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나는 사기꾼으로 몰릴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단계까진 안 가겠지만, 그래도 말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짜증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철민 소장과 여러 논의 끝에 이런 방해를 받지 않는 물건을 만들어 내기로 했다.

아니, 물건이 아니라 아이템이다.

소리를 저장했다가 틀어 주는, 전자 기기가 아닌 마법으로 움직이는 아이템 말이다.

“EMP 대신에 차라리 안티 매직 마법을 사용하는 게 좋을걸. 뭐, 네가 그걸 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야.”

제이커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굳어졌다.

안티 매직 기술은 고차원의 마법이라 할 수 있다.

마법이라는 존재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마법인 만큼, 이걸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제이커의 개인 자료들을 샅샅이 확인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녀석이 마법 쪽에도 일가견이 있을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내 예상대로 제이커는 헌터들이 MML 버프의 힘을 받는 걸 막지 못했다.

“네크로맨서보다도 못하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실성이라도 한 걸까, 제이커가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벌써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강태오. 이제부터가 시작이니까.”

녀석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홍콩에서 제이커에게 던전 광물을 몰래 훔쳐 공급했던 남자 중에 파이어 골렘으로 변했던 자가 꺼낸 그 물건과 똑같았다.

“이것이…… 내가 발견해 낸 인간의 궁극적인 모습이다!”

아이템을 꿀꺽 삼키자, 놈의 가슴이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 머리까지.

점점 그 크기를 기괴한 형태로 부풀리더니, 순식간에 건물 하나 크기만큼의 몸집까지 자라났다.

내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파이어 골렘들이 어린아이로 보일 정도로 커다란 화염 거인이 눈앞에 강림했다.

데이브가 마지막 남은 소환수를 직접 처리하면서 내가 있는 쪽으로 다급히 다가왔다.

“인간의 궁극적인 모습이, 자신이 직접 괴물이 되는 거래? 어?”

“그런가 봐.”

아무리 생각해도 녀석의 생각은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 * *

홍콩에서 도주자들 중 한 명도 이런 식으로 스스로 몬스터가 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녀석은 완전히 자아를 상실한 채 몬스터가 되어 버렸다.

물론 약간의 이성이 남아 있긴 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수많은 몬스터들을 상대해 왔었던 내가 보기에는 다른 몬스터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아주 약간 지능이 좋았을 뿐.

그러나 제이커…… 아니, 화염 거인의 경우에는 행동뿐만 아니라 말도 구사하는 높은 지능을 보였다.

-오늘이야말로 네놈들을 없애고…… 내 이상을 실현시키겠다!

주먹 쥔 손으로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있는 힘껏 내려치려 했다.

데이브가 짧게 혀를 차면서 헌터들에게 외쳤다.

“깔려 죽기 싫으면 당장 여기서 벗어나! 어서!”

움직임이 꽤 빠르다.

이전에 상대했던 골렘보다도 훨씬 더.

전진하면서 놈과의 거리를 좁힌 나는 주먹질을 피하면서 동시에 녀석의 다리를 노렸다.

몸집이 커졌다고 무작정 좋은 건 아니다.

그만큼 공격당하기 쉬운 틈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발목 같은 곳 말이다.

검날을 날카롭게 세우고서 마나를 불어 넣었다.

놈의 발목을 아예 잘라 내어 버릴 심산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깡! 소리와 함께 오히려 내 검이 튕겨 나오고 말았다.

제이커와 상대하면서 처음으로 당황스러웠다.

방어력이 얼마나 높기에 내 일격이 통하지도 않는 것인지.

몸의 무게중심을 다시 잡으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번에는 좀 더 강하게 검을 휘둘러 봤다.

그러나.

쩌적! 소리와 함께 오히려 내가 든 검에 균열이 생겨 버렸다.

화염 거인은 이런 나를 내려다보면서 비웃기라도 하듯 웃기 시작했다.

-그딴 얄팍한 공격 따위가 통할 거라고 생각했나!

놈이 내게 발길질을 날렸다.

아무리 행동이 빠르다 할지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몸집이 큰 것에 비해서 빠르다는 소리일 뿐 나보다는 느렸다.

피하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

‘공격이 안 먹히니까 곤란하네.’

계속 피하기만 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놈을 쓰러뜨리는 게 우리의 목적이다.

그런데 마땅한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이때, 데이브가 내게 힌트를 줬다.

“저 녀석도 결국은 자기가 소환했던 소환수들처럼 핵 같은 게 있지 않나?”

핵이라.

맞는 말이다.

이전에 괴물로 변했던 녀석도 다른 소환수들처럼 핵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 핵을 찾아서 제거하는 게 우리들의 목적이다.

어디 있을까?

여태껏 내 경험에 의하면 가슴 쪽에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거의 반파된 검 아이템에 마력을 불어 넣고 있는 힘껏 녀석의 가슴 쪽에 던졌다.

예상대로 팅!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템이 튕겨 나왔다.

지금까지 내가 파괴하지 못했던 갑옷은 없었다.

단단한 드래곤의 피부조차도 뚫어 버렸던 나인데.

제이커는 그 이상 가는 갑옷을 두르고 우리들을 유린하듯 팔과 다리를 휘적였다.

녀석이 움직일 때마다 미국 수도의 복잡한 도심 풍경이 점점 엉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놈의 몸에 붙은 불덩이의 일부가 떨어져서 곳곳의 화제를 유발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기만 하면 아무런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뭔가를 하긴 해야 한다.

결국 비장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데이브.”

“왜?”

나는 데이브에게 손을 슬쩍 내밀었다.

“그거 빌려줘라.”

“그게 뭔데?”

손으로 데이브의 왼쪽 귀에 착용되어 있는 이어폰을 가리켰다.

“그거 말이야, 이어폰.”

* * *

여태껏 나는 적극적으로 MML 버프를 활용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MML 버프 능력을 지녔던 사람이 나밖에 없었고. 내가 내 노래를 들으면서 호감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나는 전투 중에 노래를 안 듣곤 했었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굳이 나 스스로에게 MML 버프를 걸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난 충분히 강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예외로 두기로 했다.

제이커가 도대체 무슨 수단을 써서 이렇게까지 뛰어난 전투 능력을 손에 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녀석을 제거하는 데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더 큰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말이다.

“승훈이 형! 던질 만한 무기 아이템 있어?”

“잠깐만!”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승훈이 형이 내게 창 한 자루를 던졌다.

“투창용 아이템이다. 먼 거리에서 던질수록 대미지가 높아지는 창이야.”

“그래?”

데이브한테 부탁할 게 생겼다.

“저쪽 건물에 올라가서 저격 준비할 테니까, 그동안 네가 여기 헌터들하고 같이 잠시만 시간 좀 끌어 줘.”

“알았다. 준비 다 끝났으면 나한테 바로 말해라.”

“오케이.”

데이브가 헌터들과 함께 시간을 끄는 동안, 나는 화염 거인을 저격하기 좋은 위치로 이동했다.

순식간에 건물 위로 올라간 나는 데이브가 준 한쪽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마침 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도 내 노래를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다른 노래가 좋겠지.’

내 솔로 노래를 포함해서 우리 HTB 그룹의 노래도 플레이리스트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너무 많이 들어 봤으니까.

그러면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역시 걸 그룹이 대세지.’

HTG의 노래를 틀었다.

물론 HTG도 우리 회사 소속 가수라 다른 대중가요에 비해 노래를 많이 들어 보긴 했는데, 그렇다 해도 내 솔로 앨범이나 HTB 그룹 앨범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굉장히 적게 들은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분명 여러 번 들어 봤던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다.

동시에 어디서 온지 모를 에너지가 내 전신을 훑는 기분이었다.

‘이런 느낌이구만.’

창을 쥐고서 곧장 투창 자세를 취했다.

SSS랭커 헌터가 MML 버프를 받고 더 강해지면, 그 등급은 과연 어떻게 될까?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저 건방진 녀석의 몸을 꿰뚫을 정도만큼은 강해져 있겠지!’

짧은 기합과 함께 있는 힘껏 창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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