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73화 (173/250)

제45장. 체포 (2)

제이커 체포 작전은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정보가 새어 나가면, 무조건 작전 실패와 직결될 수 있다.

그만큼 제이커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 녀석이 우리가 움직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다른 곳으로 도망칠지 몰랐기에 놈의 신원이 확인되자마자 우리는 바로 전용기에 올라타게 되었다.

미국으로 향하는 길.

지금 이 기분은 마치 몬스터가 출몰했는데, 미국 지부의 전력만으로 감당하기 힘들다고 지원 요청이 와서 그곳으로 급하게 출동하는 느낌과 굉장히 흡사했다.

‘위험도로 따지고 보면, 제이커가 그 정도는 되겠지.’

몬스터보다도 위험한 존재.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인정한 사실이다.

이동하는 동안, 나는 그동안 이철민 소장이 수집한 제이커에 대한 정보를 다시 한번 쭉 훑어보기 시작했다.

녀석의 태어난 연도부터 시작해서 학교 성적이 어땠는지, 이런 것 등등을 일일이 다 확인했다.

보면 특별할 건 없었다.

그냥 평범한 가정에 태어나서 평범하게 자란 남자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각성 능력자가 되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이상해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남들과는 다르다는 우월함에 취해 버리기라도 한 건가?’

헌터들 중에 몇몇은 실제로 이런 우월감에 중독되어 버리기도 했다.

나는 너희 같은 열등한 존재들과는 다르다.

내 능력은 특별하다.

이런 생각으로 사람들을 깔보는 그런 태도를 취하던 헌터들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중의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견디다 못해 스스로 헌터로서의 자리를 내려놓는 경우도 허다했다.

특별한 힘.

그것이 주는 또 다른 감각.

이것은 간혹 평범한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줄 때가 있다.

제이커의 경우에는 이 시련을 극복하고 말고의 단계를 넘어서 아예 그것과 일체화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제이커는 어쩌면 헌터들의 오만함이 실체가 되어 나타난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까지 도달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별의별 생각을 다 하네.’

오랜 시간 끝에, 익숙한 미국 공항의 모습이 아래에 펼쳐졌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우리들은 미국 지부에서 제공한 차량을 타고 곧장 쉴 틈 없이 현장으로 향했다.

나와 데이브, 그리고 승훈이 형은 미리 챙겨 온 아이템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승훈이 형이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은퇴하고 게이트가 닫히고, 이제는 아이템 들고 싸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 같네.”

“뭐, 원래 사람 인생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른다잖아. 그러려니 해.”

승훈이 형은 헌터 활동을 하면서 당한 부상과 후유증이 있기 때문에 오늘 작전에선 전면이 아닌 후방 대기조로 활약할 예정이다.

원래는 아이리스하고 나빈이도 데려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번 작전은 앞서 말했듯이 최대한 은밀하게, 조용하게 진행시켜야 한다.

많은 헌터 인력들이 갑자기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기라도 한다면 제이커가 우리의 작전을 미리 눈치챌 가능성이 있다.

그런 위험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아이리스하고 나빈이에게는 말하지 않은 거였다.

그리고 애초에 데이브가 이런 위험한 현장에 자신의 여동생을 데리고 오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어차피 한국 쪽에서는 나하고 데이브, 승훈이 형까지, 세 명만 있어도 충분하다.

아니지, 엄밀히 따지면 데이브는 한국 소속이 아니라 미국 소속 헌터니까. 그러면 한국에서 온 헌터는 나하고 승훈이 형, 둘뿐이라는 소리네.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겠지.’

사실 나만 있어도 되긴 할 거다.

현장에 도착한 우리들은 근처에서 감시하고 있던 헌터들에게 빠르게 보고를 받았다.

“13시 10분경에 본거지로 추정되는 장소로 복귀한 이후 밖으로 나온 적은 없습니다.”

“그럼 아직 저 안에 있다는 뜻이겠군.”

“예, 그렇습니다.”

4층으로 구성된 작은 건물.

저게 제이커와 테러리스트들의 본거지인가 보다.

겉으로 봤을 때에는 굉장히 평범하게 생겼다.

1층에 카페도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 입장에선 그냥 도심의 풍경 일부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만큼 특이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 장소였다.

‘하긴, 이런 곳이니까 오히려 더 사람들 눈에 안 띌 수 있었겠지.’

오랜만에 만나는 미국 지부 쪽 지부장이 협회장에게 작전에 대해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당장 급습합니까?”

“아니, 시간은 저녁으로 한다. 지금은 근처에 민간인들도 많이 있으니까. 전투가 벌어질 경우에는 분명 인명 피해도 생길 거야.”

그렇게 되면 뒷감당은 오롯이 협회장의 몫이다.

나중 일을 처리하는 게 귀찮아서 작전을 저녁으로 미룬다기보다는, 앞에서 말이 나왔듯이 일반 시민이 이 작전에 휘말리는 일이 없게끔 해야 했기에 일부러 저녁 시간대로 잡기로 한 거였다.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조용히 다른 곳으로 피신시키도록 해. 단, 절대로 티를 내지 말고. 어디 여행을 간다든지, 이런 느낌으로 이동시켜.”

“예, 알겠습니다.”

너무 노골적으로 사람들을 피신시키는 티를 내면, 제이커는 분명 눈치챌 것이다.

그래서 협회장은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동안 우리들은 맞은편 건물에서 저녁이 되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아직 밥도 제대로 못 먹었으니까.

‘먹어야 힘이 나는 법이지.’

잠시 골치 아픈 생각은 접어두고.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고민을 해 보기로 했다.

* * *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새파랗던 하늘이 어느새 어둠으로 물들어 갈 때쯤.

협회장이 교대로 감시를 맡고 있는 헌터에게 물었다.

“상황은?”

“그대로입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제이커는 단 한 번도 밖을 나온 적이 없었다.

“제이커 말고 다른 사람들의 출입 흔적은 없었나? 예를 들자면 장신의 여자라든지.”

김두정을 죽인 범인의 모습은 아직 이곳에서 포착되지 않았다.

어쩌면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은 없다.

이들의 우두머리인 제이커부터 먼저 잡는 게 급선무니까 말이다.

최종적으로 작전 시간은 새벽 2시로 정해졌다.

그사이, 협회장은 헌터들로부터 시간 단위로 인근 주민들의 피신 상황을 보고받았다.

“95퍼센트 정도 완료되었습니다.”

“나머지는?”

“설득하는 일에 꽤나 애를 먹고 있다고 합니다. 한 분이 꽤나 고집 세신 분이라고 하셔서…….”

“돈을 써서라도 잠깐만 어디 가 계시라고 해. 금액은 달라는 대로 준다고 하고.”

“예,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장 골머리를 앓게 만들었던 고집 센 가정이 얌전히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역시, 돈이 치트키라는 건 만국 공통 사항인가 보다.

이렇게 해서 주변의 모든 거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피신시키는 작업이 완료되었다.

대신에 이들이 한꺼번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는 티를 내면 안 된다.

그래서 헌터들이 직접 거주민들의 가정집에 들어가서 불을 켜 놓고 제이커의 주변에 평소처럼 생활 반응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건물 안에서 이 모든 현황을 체크하고 있던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 녀석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이 고생하네요.”

“이 정도야 뭐. 레이드 시대 때에는 몬스터들 잡는다고 일주일을 잠 안 자고 대기한 적도 있었잖아. 너도 기억하지?”

“네, 그때 정말 최악이었죠.”

그거에 비하면, 이번에는 그래도 천국이다.

적어도 실내에 머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대기 시간도 짧고.

충분히 할 만하다.

문제가 있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이 안 된다는 것 정도다.

작전 시간이 다가올수록, 우리가 있는 곳에 긴장감이 번졌다.

자정을 넘어서, 새벽 2시가 되었다.

“현장 지휘는 태오, 너한테 맡기마.”

“예, 알겠습니다.”

미국 헌터들과 함께 건물 주변을 포위한 우리들.

어떻게 진입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려고 할 때쯤.

데이브가 내게 조언했다.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해서 들어가는 게 좋을 거다.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

“나도 알아.”

데이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다.

주먹을 휘둘러 1층 카페 측면 벽을 그대로 박살 내 버렸다.

‘우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 굉음이 퍼졌다.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헌터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곧장 데이브의 쓴소리가 날아들었다.

“너, 미쳤냐! 뭐 하는 짓이냐!”

“뭐 하긴, 어차피 녀석은 우리가 낮 시간대부터 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화려하게 막을 여는 게 더 좋잖아.”

“알고…… 있었다고?”

고개를 끄덕인 나는 무너진 벽 건물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내 말이 틀렸냐, 제이커?”

조용히 있던 한 남자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아는 제이커의 모습이었다.

그는 피곤함에 가득 찌든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국에서는 이 시간에 남의 집 벽을 부숴도 된다는 문화라도 있는 모양인가 보군.”

“개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나오기나 해라.”

녀석이 우리의 행동을 눈치 못 챘을 리가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봐 온 제이커라면, 권주영이 자신의 본거지를 실토했을 거라고 이미 예상했었어야 한다.

그렇다면 권주영이 기억하는 본거지를 버리고 다른 거주지로 옮기는 게 정상인데.

제이커는 이곳에 계속 남아 있었다.

나는 이걸 일부러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워낙 엉뚱한 행동을 해 온 녀석이니까.

우리가 이렇게 놈의 본거지를 알아낼 날이 올 거라는 사실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제이커가 아래로 풀쩍 뛰어내렸다.

구부정했던 등을 펴면서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푸는 여유로움마저 보였다.

이런 제이커의 모습이 데이브의 신경을 자극한 모양인 듯했다.

“이 새끼가……!”

바로 그때였다.

하늘 위에서 불길에 휩싸인 창 여러 개가 우리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

헌터들은 크게 당황했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허둥대는 사이, 제이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불붙은 날개를 단 인간형 소환수 셋이 마치 제이커를 보호하듯 지면에 우뚝 섰다.

바닥에 꽂힌 창 하나를 든 소환수들은 우리를 향해 초점 없는 눈동자를 고정시켰다.

제이커가 자신의 소환수들에게 짧게 명령했다.

“해치워라.”

그 한마디에 녀석들이 움직였다.

마치 악마 같은 형상을 한 소환수들은 불붙은 창을 휘두르면서 헌터들을 위협했다.

데이브가 무기를 꺼내 들면서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할 거냐, 강태오!”

“그걸 굳이 나한테 물을 필요가 있어?”

이미 상황은 벌어졌고.

우리가 해야 할 일 역시 정해져 있었다.

“싸워야지.”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네크로맨서 때에도 말했지만, 소환사의 약점은 바로 소환사 자신이다.

제이커를 직접 노리기 위해 달려든 나였지만.

아직 녀석이 꺼내 들지 않은 카드는 여럿 있었다.

그중 하나인 파이어 골렘들 다수가 지면 속에서 불타오르는 모습을 드러내며 내 앞을 막았다.

이 모습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짧게 혀를 차며 말했다.

“가지가지 하네, 정말.”

제이커는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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