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72화 (172/250)

제45장. 체포 (1)

면회실을 나오자마자 교도관들과 같이 대기 중이었던 연 대표가 내게 물었다.

“그 녀석이 뭐라고 하든?”

“제이커가 어떤 목적을 위해 테러리스트가 되었는지에 대해 말해 줬어요.”

“그게 뭐래?”

교도관들이 다 듣고 있는 자리에서 함부로 말해 주기가 애매했다.

내가 슬쩍 눈짓을 하자, 연 대표는 고개를 짧게 끄덕인 뒤에 나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고생했는데 바람도 쐴 겸 잠깐 걸을까?”

“예, 그러시죠.”

나는 연 대표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교도관들이 없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연 대표가 교도소 입구 근처에 있는 벤치로 나를 이끌었다.

“여기라면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아무도 못 들을 거다.”

혹시나 해서 연 대표가 한 말에도 불구하고 내가 직접 주변을 훑어봤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지 않던가.

새와 쥐가 있을지 확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탐색해 본 결과, 연 대표의 말이 사실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녀석이 뭐라고 했는지 말해 줄 수 있냐?”

나는 연 대표가 원하는 대답을 짧게 요약해서 들려줬다.

“게이트를 다시 여는 게 목적이랍니다.”

“……뭐?”

연 대표도 놀란 모양인지 할 말을 잃고 만 모습을 보였다.

격하게 흔들리는 동공.

너무 의외의 말인 때문일까.

연 대표는 제정신을 차리기 위한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보였다.

잠시 뒤.

연 대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무거운 한숨을 내쉰 뒤에 내게 확인 차원에서 재차 물었다.

“정말로 그렇게 말했어?”

“네, 틀림없습니다.”

내 청각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이상, 나는 분명 그렇게 들었다.

게이트를 열기 위해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다고 말이다.

연 대표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대체 왜?”

“그것까지는 못 들었습니다. 그래도 오늘의 자리가 의미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제이커가 남몰래 품은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리고 또 하나 더 있었다.

“권주영을 조금만 더 어르고 달래면 우리 쪽에 전적으로 협조하게 될 가능성이 조금 보였습니다.”

“그래?”

“네, 영웅이 되고 싶었다고 하네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자기가 각성 능력자가 되었을 때, 저처럼 사람들한테 환호받고 존경받는 그런 영웅이 되고 싶었대요. 그런데 능력이 부족하니까 매번 어딜 가든 무시당했고. 그래서 어떻게든 강해지기 위해 더 노력하려고 했는데, 레이드 시대가 끝나 버렸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권주영은 제이커가 게이트를 열려고 하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협조를 하려고 했던 건가?”

“네. 다시 레이드 시대가 열리게 되면, 자신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늘어나게 될 테니까요.”

“추앙받고 싶어서 일부러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려는 짓을 벌이다니, 모순이군.”

나도 권주영한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여간 그 녀석도 제정신은 아니다.

“아무튼 대표님이 협회 측하고 연계해서 권주영한테 좀 더 정보를 뽑아낼 수 있도록 해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협회에는 다양한 인재들이 존재한다.

협상 전문가 같은 사람들도 그곳에 속해 있다.

마음의 벽이 한 단계 낮아지게 된 지금의 권주영이라면, 내가 아까 연 대표에게 말했던 것처럼 잘 구슬리면 제이커 편에서 우리 편으로 넘어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오늘 내 앞에서 말한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실토할 것이다.

연 대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협회장님하고 한번 통화해 보마.”

“계속 정보 들어오는 거 있으면 저한테도 바로 알려 주시고요.”

“네가 고생이 많다, 태오야. 안 그래도 연예계 활동하랴, 몬스터 출몰하면 출동하랴 이래저래 바쁠 텐데, 괜히 이번 일까지 맡게 해서 미안해.”

“아니요,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이커의 목적을 알게 되니까 더더욱 제가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게이트를 다시 연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제 슬슬 헌터에서 가수 겸 배우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데, 게이트가 열리게 된다면 그간의 내 모든 노력들이 다시 물거품이 될 것이다.

물론 게이트가 다시 열리기 시작해도 방송 활동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게이트에서 괴물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헌터로서의 본분을 놔두고 예능 방송 같은 곳에 나가서 하하호호 웃고 있으면, 누가 내 모습을 좋게 봐줄까.

사람들은 내가 헌터 일에 집중해 주기만을 바랄 것이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래서 사실상 게이트가 열린다는 건 내 연예계 생활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더더욱 내가 이번 제이커 사건에 개입해야 했다.

내가 쌓아 올린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있는 건 오직 나 스스로의 결정뿐이다.

‘다른 사람 손에 의해 무너지는 꼴은 절대로 못 봐!’

생각할수록 열이 받아서일까?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말았다.

* * *

연 대표와 헌터협회가 손을 잡고 권주영을 설득하기 시작한 지 3일째.

그동안 나는 예정되어 있던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서 승훈이 형과 함께 차를 타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오늘은 나와 승훈이 형, 둘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오랜만에 동행자가 생겼다.

승훈이 형이 내 옆에 앉은 동행자를 백미러로 힐긋 바라봤다.

딱딱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밝게 만들기 위함인지, 승훈이 형이 일부러 입을 열었다.

“데이브, 너 이 차 타고 이동하는 거 간만이지?”

데이브는 대답 대신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승훈이 형이 멋쩍은 미소를 짓고서 혼잣말을 흘렸다.

“말이라도 해 주면 좋을 텐데.”

그럼에도 데이브는 계속 창밖에만 시선을 던질 분이었다.

오늘은 나와 데이브, 이렇게 둘이서 같은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할 예정이다.

그래서 다른 매니저와 함께 움직이고 있던 데이브가 오랜만에 우리 쪽에 합류하게 된 거였다.

어차피 같은 소속사고 같은 그룹의 멤버인데, 굳이 따로따로 움직일 필요가 뭐가 있나 해서 그랬다.

데이브도 이 생각에 어느 정도 공감한 모양인지, 승훈이 형이 나 픽업하고 자기를 데리러 오겠다고 연락했을 때 그렇게 하라고 얌전히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타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데이브가 내게 며칠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물었다.

“권주영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지?”

내가 연락을 받고 녀석을 만나러 교도소에 갔던 일을 데이브도 어디서 들은 모양인가 보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모습으로 이렇게 답해 줬다.

“제이커가 게이트를 열고 싶어 한대.”

“……게이트를?”

“어.”

데이브는 연 대표에 비해서 크게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아마 데이브도 나처럼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나 보다.

내 말을 들은 데이브가 짧은 소감을 들려줬다.

“미쳤군.”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 이야기를 듣고 제이커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녀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더더욱 열심히 개입해야겠군.”

오랜만에 데이브와 생각이 일치했다.

승훈이 형도 우리들의 말에 슬쩍 한마디를 보탰다.

“그러면 우선 제이커가 어디 있는지 찾아야 할 텐데.”

일의 시작은 그것부터 이루어진다.

어디 극지방에라도 숨어 있는 모양인지, 녀석은 여전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세계 숨바꼭질 대회 같은 게 있다면, 제이커는 분명 강력한 우승 후보가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지구가 넓다 할지라도 이 많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계속해서 숨어 있을 수가 있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닐 텐데.

어떤 의미로 참 대단한 녀석이다.

그러나 이 대단함은 이내 사라지게 되었다.

내 스마트폰이 작게 진동했다.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나는 그것을 확인한 순간, 데이브와 승훈이 형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숨바꼭질을 끝낼 시간이 왔나 봐.”

“그게 무슨 소리야?”

승훈이 형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해 줬다.

“제이커가 어디 있는지 알아냈대.”

* * *

연 대표에게 권주영을 잘 설득해 보라고 말하고 간 게 정답이었다.

오랜 설득 과정 끝에, 마침내 권주영이 제이커가 숨어 있는 곳을 알려 준 거였다.

협회장과 연 대표, 그리고 나와 데이브, 승훈이 형까지 전부 협회장의 사무실에 모였다.

미리 와 있던 이철민 소장이 우리들도 앉을 수 있도록 슬쩍 자리를 비켜 줬다.

승훈이 형이 협회장과 연 대표에게 사실 확인을 위해 다급히 물었다.

“정말로 제이커가 숨어 있는 곳을 알아내신 겁니까?”

“어, 그쪽에 미리 사람을 보내서 확인도 했어. 확실해.”

이번에는 데이브가 질문했다.

“그 자식,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겁니까?”

“미국. 워싱턴 D.C.”

“…….”

데이브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나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도통 소식이 없길래 나는 문명사회와 아예 동떨어진 곳에 본거지를 차린 줄 알았다.

그런데.

설마 미국의 수도 한가운데에 본거지를 마련했을 줄이야.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나 보네.’

미국 지부 소속 헌터들도 이 사실을 알아내고서 굉장히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연 대표가 미국 지부가 확보한 자료들을 우리들에게 직접 보여 줬다.

“잠복해 있던 헌터들이 몰래 찍은 사진들이다.”

멀리서 찍은 사진이었기에 화질 저하는 어쩔 수 없었지만, 사람의 얼굴은 충분히 분간이 가능했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 그리고 초췌한 인상까지.

저번에 협회장이 보여 줬던 제이커의 모습과 똑같았다.

그 모습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마치 자신의 정체를 전혀 숨기고 다닐 생각이 없어 보이네요.”

그런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이제야 제이커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게 참 웃기기도 하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찾아냈다는 게 어딜까.

협회장이 피곤함에 가득해 무거워진 몸을 겨우 일으키면서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말했다.

“일단은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아무 짓도 하지 말고 감시만 하라고 말 전해 뒀으니까 당장 전투가 벌어질 일은 없을 거다.”

“그게 낫죠.”

제이커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녀석이 언제 또 도망칠지 모른다.

지금이 아니만 영영 기회가 없을 수도 있는데, 괜히 조급해져서 당장 놈을 붙잡으려고 했다간 그나마 생긴 기회조차 같이 날아가 버릴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신중하게.

레이드 시대 때 온갖 몬스터들을 상대하면서 체득한 교훈이다.

물론 이번 상대는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사람은 몬스터보다도 훨씬 교활하기 때문이다.

연 대표가 나와 데이브, 승훈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비행기 준비되어 있으니까 바로 출발하자.”

시간이 없다.

나는 고개를 승훈이 형 쪽으로 돌리고서 말했다.

“형, 당분간 내 앞으로 잡힌 스케줄, 전부 취소해 줘.”

“그래, 알았다.”

데이브도 나와 같이 일정 취소를 요구했다.

훗날 다가올 더 큰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

연예인으로서의 강태오는 임시 휴업하기로 했다.

눈앞의 일부터 해결하고, 그다음 마음 편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생각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