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71화 (171/250)

제44장. 실토 (2)

권주영한테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나한테 연락을 하라고 말은 했었다.

그러나 큰 기대는 안 했다.

지금까지 녀석을 면회했던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그다지 협조적으로 나올 거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태껏 그래 왔다.

홍콩에서 붙잡았던 그 녀석들도 배 째라는 식으로 나왔고, 김두정도 죽었고. 제이커와 연관되어 있던 사람들은 우리에게 있어서 그다지 큰 도움을 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권주영이 나한테 모든 걸 실토하겠다고 하니까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요?”

-어.

“왜요?”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따지고 보면 권주영이 나한테 실토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녀석이 입을 꾹 닫고 있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뭐 마땅히 대응할 만한 수단 자체가 없고.

그냥 녀석을 철창 안에 가둬 두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될 텐데, 먼저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사실이 나는 의아하게 느껴졌다.

“혹시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겠죠?”

-나도 그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닌데…….

연 대표가 말끝을 흐렸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말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이진 않더라.

“직접 그 녀석을 만나고 오신 겁니까?”

-어. 처음에 아는 것을 털어놓겠다는 녀석의 연락을 받자마자 내가 먼저 녀석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었지. 보니까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진 않은데, 근데 꼭 너한테만 사실을 털어놓겠다는 희한한 고집을 부리더군. 그래서 너한테 연락한 거야.

한마디로 말해서.

“저보고 가서 권주영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들어 보고 오라는 뜻이군요.”

-맞아.

“왜 제가 아니면 말을 안 해 주겠다고 한 걸까요?”

-기왕이면 네가 그것까지 알아내서 나한테 알려 주면 좋을 거 같은데.

연 대표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녀석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후딱 가서 말을 들어 보는 건 어떨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연 대표와의 통화를 마치고 곧장 승훈이 형을 찾았다.

“형. 나, 저녁에 일정 하나 있었잖아. 무슨 행사 참가하는 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자그마한 지방 행사이긴 한데, 왜?”

“그거, 오늘 취소할 수 있어?”

“갑자기?”

“권주영이 나한테 제이커에 대해 아는 걸 전부 실토하겠다고 했다고, 방금 연 대표님한테 연락받았거든.”

중요한 일이다.

적어도 지방 행사에 참가하는 것보단 말이다.

승훈이 형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흔쾌히 말했다.

“알았어. 주최 측에다간 내가 잘 설명할게. 나도 같이 가야 되나?”

“아니, 권주영이 조건으로 내건 게 ‘나한테만’이라고 하더라고. 연 대표님이 갔는데도 말 안 해 줬대.”

“희한한 녀석이네.”

“그만큼 내가 호감도를 잘 쌓았다는 뜻이지 않을까?”

“호감도? 너, 권주영한테 말 안 하면 어떻게 될지 각오하고 있으라고 협박했었다며. 그걸 호감도 쌓았다고 표현하는 건 아니겠지?”

“뭐……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어필한 건 맞으니까.”

그래도 결과는 좋게 나오지 않았나.

아무래도 승훈이 형에게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인드가 필요해 보인다.

* * *

권주영이 수감되어 있는 특수 범죄자 전용 시설로 향했다.

사실 이곳에 올 일이 많지 않다.

특수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특별히 깊게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고 말이다.

오히려 녀석들하고는 웬만하면 거리를 두려고 하는 편이었다.

엮여 봤자 좋은 일도 없을 테고.

하지만 제이커는 다르다.

녀석은 일반 특수 범죄자에 비해서는 뭐라고 해야 할까, 좀 더 큰 그림을 보고 하나하나씩 자신의 계획을 실현해 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우선은 그 계획이 뭔지부터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서 행사까지 취소하고 이곳에 온 거였다.

헌터들이 나를 향해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짧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체한 나는 권주영이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잠시 뒤에 나올 겁니다.”

교도관의 말대로 양손에 각성 능력을 억제시키는 수갑을 착용한 채 죄수복을 입은 권주영이 모습을 나타냈다.

오랜 시간 동안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대전에서 테러를 벌였을 때에 비해서 표정이 더 나아져 있었다.

“교도소에서 잘 대해 주나 보네? 처음 만났을 때에는 굉장히 피곤하고 수척해 보이더니만.”

“…….”

권주영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뭐야, 나한테 사실을 털어놓겠다는 연락을 받고서 온 거였는데, 입을 다물면 온 보람이 없잖아. 안 그래?”

권주영이 슬쩍 교도관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녀석의 저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먼저 교도관들한테 양해를 구했다.

“저 녀석하고 둘이서만 있게 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원래는 교도소 내규상 면회 시 두 명 이상의 교도관이 배치되어 있어야 하지만.

오늘의 경우는 특수한 상황이다.

어쩌면 제이커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교도관들은 군말 없이 자리를 비켰다.

권주영이 수갑을 찬 손으로 면회실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두 대의 CCTV를 가리켰다.

녀석의 손짓에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해 줬다.

“소리는 녹음 안 되는 거니까 걱정 마라.”

신경 쓰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기야, 어떤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니까. 일단은 녀석이 먼저 입을 열기까지 조용히 기다려 보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 저녁 행사도 취소하고 왔으니까, 시간은 많이 남는다.

그렇게 5분간의 침묵이 흘렀다.

면회 시간은 딱히 제한이 없었다. 일반인들의 경우에는 당연히 제한되겠지만, 오늘 나는 면회라기보다는 녀석을 심문하기 위해 온 거니까.

목적 자체가 달랐기에 아까 교도관들이 나와 권주영, 둘만 남게 해 주는 것도 그렇고,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것들이 많았다.

그렇게 길다면 길 수 있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침묵의 시간이 지난 뒤.

마침내 권주영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네가 궁금한 게 뭐지?”

“제이커에 대해서 네가 아는 것 전부 다.”

“왜 그런 걸 알려고 하지?”

“당연한 거 아니냐. 이 난리를 피우고 있는데. 오히려 알려고 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

말을 아낀 권주영은 다시 한번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녀석이 들려준 말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제이커는 다시 게이트를 열 생각이다.”

* * *

이전부터 제이커의 행보를 보면서 나는 혹시나, 설마 녀석이 정말로 다시 게이트를 열려고 하는 건 아닐까 의심했었다.

제이커가 지금까지 했던 일들은 두서없이 보여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바로 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거였다.

혼돈과 혼란.

그리고 두려움.

현재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명확하게 존재한다.

바로 레이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레이드 시대는 게이트의 존재 유무로 판별할 수 있다.

내가 드래곤을 쓰러뜨림으로 인해 최후의 게이트가 닫혔고, 인류는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그런데 만약, 정말로 만약에.

다시 게이트가 나타난다면?

그러면 인류는 다시 생존을 위해, 차원을 넘어서 미친 듯이 쏟아지는 몬스터들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

제이커가 원하는 게 바로 이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납득이 가지 않는 게 있었다.

“녀석은 게이트를 열어서 뭘 하려는 거지?”

“그거야 나도 모르지. 혼돈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일 수도 있고.”

제이커의 성향을 따져 본다면, 이 말이 마냥 이상하게만 들리진 않았다.

목표는 혼돈의 시대를 여는 것.

하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게 하나 더 있었다.

“인간의 힘으로 게이트를 다시 소환하는 게 가능한가?”

최초의 게이트는 내가 마지막에 쓰러뜨렸던 드래곤이 직접 열었다.

그래서 드래곤을 쓰러뜨림으로 인해 레이드 시대가 종결된 거라고 표현을 하는 거였다.

게이트를 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가 사라졌으니까.

드래곤 정도 되는 존재가 있어야 차원의 문을 열 수 있을 텐데.

제이커가 그렇게까지 능력이 출중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조차도 게이트를 여는 게 불가능한데. 그렇다면 적어도 제이커가 나보다는 강해야 한다는 소리 아닌가.

만약 정말로 제이커가 나를 능가하는 능력을 가졌다면, 녀석은 굳이 테러라는 수단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겁박하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본인이 나서서 직접 하면 되는 거니까.

아무도 제이커를 말릴 수 없는데, 뭐 하러 이렇게 눈치를 보면서까지 테러를 자행하려고 하겠나.

권주영이 제이커의 목적을 내게 알려 줬음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안 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역시.

“제이커를 직접 붙잡아서 물어보는 게 빠르겠네.”

내 말에 권주영은 작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뭐가 웃긴 거지?”

“아무리 네가 우수한 헌터라 해도, 그자를 마음대로 붙잡을 수는 없을 거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자는 특별하니까.”

특별하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주영은 거기까지 이야기해 주진 않았다.

그래도 상관은 없다.

제이커의 목적이 게이트를 직접 여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니까.

자리를 뜨기 전에 마지막으로 권주영에게 하나 더, 궁금한 걸 물어보기로 했다.

“왜 나에게 이런 것들을 말해 주기로 했는지, 결심을 굳히게 된 계기가 있나?”

권주영은 여태껏 침묵으로 일관했었다.

특별히 우리가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니고, 입을 열 만한 계기가 뭐였는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의미심장한 미소로 일관하던 권주영의 표정이 조금 변하기 시작했다.

“TV를 봤다.”

“TV? 감방 내부에는 TV가 없는 걸로 아는데.”

“식당에 가면 있지. 그곳에서 네가 사람들을 구하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모르게 입이 가벼워지더군.”

“테러리스트인 네가, 갑자기 마음의 변화라도 생겼나?”

악당이 아군으로 바뀌는 클리셰라도 되나 싶었다.

권주영이 너털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나도 한때는 너처럼 되고 싶었거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영웅적인 존재가. 하지만 나는 너만큼 능력이 출중하지 않았다. 영웅의 전제 조건이 재능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던 거야.”

재능이라.

솔직히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내 각성 능력을 온전히 내 노력만으로 얻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누구나 다 되고 싶었던 영웅이란 존재.

“어쩌면…… 제이커의 밑으로 들어간 것도, 사람들에게 나를 봐 달라는 일종의 관심병 같은 짓이었을지도 모르지.”

자조 섞인 미소를 짓는 권주영을 보면서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심병치고는 이번 건 너무 컸다. 너도 알고 있겠지?”

“안다.”

“그러면 됐어.”

면회실을 나서기 전에, 권주영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권주영이 내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영웅도 마냥 좋은 건 아니야. 그만큼 남들보다 고생을 더 많이 하거든.”

나도 처음에는 몰랐다.

그런데 내가 영웅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되어 보니까,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내 말에 권주영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이것까지 확인하진 않았다.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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