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69화 (169/250)

제43장. 의도 (2)

누나는 사람들 앞에서도 표정 관리를 굉장히 잘하는 편이다.

아무리 불편한 생각이 들어도, 그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누나가 내 앞에서는 거짓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 된다.

왜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누나가 나한테는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 아니라, 내가 누나의 거짓말을 잘 간파하는 편일 수도 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누나가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구분하는 일 정도는 내게 굉장히 쉽다.

신경 쓰이는 사람 같은 거 없다고는 하지만, 내 눈에는 보인다.

누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이.

“누군데. 직장 동료?”

“없다고 했잖아.”

반응을 보면 볼수록 누나가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생겼네, 생겼어.

근데 상대가 누구인지는 나한테 죽어도 안 알려 주려고 했다.

이유야 뻔했다.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겠지.’

우리 누나는 부끄럼을 많이 타는 편이다.

특히 이성 문제에 관해서는 더 그렇다.

그래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먼저 꺼낼 때에는 누나는 항상 이렇게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하려고 애쓰는 편이었다.

“과, 과일 먹을래? 며칠 전에 샤인머스캣 샀는데, 먹을 틈이 없어서 방치하고 있었거든. 너 온 김에 먹어서 없애려고.”

“좋지.”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봐.”

누나가 곧장 자리를 이동했다.

내가 한번 봐준 줄 알아, 누나.

그나저나 승훈이 형한테는 뭐라고 말을 한담?

갑자기 고민거리가 생겼다.

* * *

그룹 활동을 마친 나는 아침부터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승훈이 형이 픽업을 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시간이 남는 동안, 나는 내 집에 보관되어 있는 아이템들을 자체 점검했다.

내가 모아 둔 아이템들은 따로 창고를 만들어서 서울 외곽 쪽에 보관 중이지만, 당장 실전에 쓰거나 혹은 내가 정말로 아끼는 아이템들의 경우에는 이렇게 집 내부에 진열장을 만들어서 따로 보관해 두는 편이다.

모든 물건들이 그렇듯, 너무 오랫동안 사용을 하지 않으면 그 기능이 많이 저하되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이렇게 주기적으로 점검을 꼭 해 줘야 한다.

이철민 소장한테 받은 마이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이번에 여러 가지 신기능을 넣어 뒀다고 하던데.

‘나중에 한번 설명서라도 읽어 보든가 해야겠어.’

워낙 많이 추가되어서 매뉴얼을 따로 만들어 내게 보낼 정도였다.

요즘은 이래저래 바빠서 확인을 못 했는데, 언제 날을 잡아서 찬찬히 살펴볼 생각이다.

마이크는 대부분 몬스터들이 출몰했을 때 사용하는 편이니까.

테러리스트들을 상대로 할 때에는 MML 버프 스킬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테러리스트들도 사람이니까.

만약 녀석들 중에서 나나 우리 HTB, HTG 그룹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큰일이지 않은가.

괜히 우리 팀들 전력을 올려 주겠답시고 노래를 부르는 순간, 적들의 능력치도 같이 올려 주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사람을 상대할 때에는 노래 대신 순수하게 주먹으로 때려눕힐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소장한테 다른 멤버들 전용 마이크도 만들어 달라고 할까?’

이미 프로토타입이 나와 있으니까 양산형으로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양산품이라 할지라도 이철민 소장이 만들어 준 마이크처럼 고성능을 갖춘 아이템을 만드는 데에는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 자본, 그리고 기술력이 들어간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우리 멤버들이 하나씩 다 이런 마이크를 가지고 있으면, 전력 증강에 많은 도움이 될 테니까.

어찌 보면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다.

‘한번 연락이라도 해 봐야겠네.’

이철민 소장이 받아들일지 말지, 그건 그때 본인이 알아서 잘 정할 것이다.

싫다고 하면 나도 할 말이 없는 거고 말이다.

마이크를 진열장 안에 넣어 두려고 하는 찰나.

마침 승훈이 형한테서 연락이 왔다.

거의 다 도착했으니까 나오라는 뜻이었다.

마이크를 넣어 두고 겉옷을 걸친 채 집 앞으로 향했다.

승훈이 형이 창문을 내리면서 손짓했다.

“타라, 태오야.”

승훈이 형의 말대로 곧장 차에 올라탔다.

“형도 부지런하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

“아니, 그냥. 아침마다 나 데리러 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잖아.”

가끔은 미안할 때가 있긴 하다.

차라리 나 혼자서 차를 끌고 촬영 현장으로 향할까, 이런 생각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승훈이 형은 힘들어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돈 버는 일 중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 그리고 나 정도면 네가 엄청 잘 챙겨 주는 편인데, 군말 않고 열심히 해야지. 안 그래?”

그 말에 나는 크게 웃었다.

승훈이 형이 받는 연봉으로 따지면, 확실히 탈매니저급 연봉이라고 볼 수 있다.

직원이 아니라, 웬만한 중소기업 매출 단위로 받아 가니까 말이다.

승훈이 형이 처음에 내 매니저로 일할 당시에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렇게 많이 줘도 되냐고.

당시에는 난 큰 금액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레이드 시대 때에는 지금처럼 일반적인 매니저 일을 한 게 아니었으니까.

헌터들과 같이 위험한 현장에 들락날락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만큼 승훈이 형을 더 챙겨 주려고 했다.

그때 받던 연봉이 연예 매니저 업무로 바뀌어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거였다.

“형이 예전에 나 많이 도와줬으니까. 멘탈 크게 흔들릴 때에도 옆에서 여러 번 잡아 줬고.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

“하여간 짜식. 고맙다.”

참 착한 형이다.

이런 형이 내 매형이 된다면 좋을 텐데.

그러나 누나한테 외간 남자가 생긴 거 같아서 한편으로는 신경이 좀 쓰이긴 했다.

물론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니까.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형,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아무것도 아니야.”

“뭔데,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사람 궁금하게.”

“그냥. 지금 단계에서 말하면 형이 상처를 많이 받을 거 같아서.”

“내가? 뭔데.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해지잖아.”

“그냥 못 들은 척해.”

괜히 말을 꺼냈다.

승훈이 형이 계속해서 나를 보챘지만, 피곤하니까 자겠다고 핑계를 둘러대면서 시트를 그대로 뒤로 젖혔다.

이래서 사람은 항상 입조심을 해야 한다.

* * *

테러리스트들이 판을 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연예계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녀석들이 일부러 나를 겁박해서 대외적인 활동을 막으려고 하는 게 하나의 계획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헌터 시절 때부터 약간……은 아니고, 청개구리 심보가 심한 편이었다.

내게 적의를 가진 자들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나는 무조건 그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

그래서 데이브가 나한테 예전에 열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금이야 서로에 대해 많이 익숙해져서 그런 일이 줄어들긴 했는데.

옛날에는 그랬다.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한 나는 의자에 앉아서 진행자가 들려주는 질문을 차근히 들었다.

“예전에 비해서 요즘은 헌터들의 대중 활동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이 준 거 같은데, 태오 씨가 느끼기에도 그런가요?”

“예, 확실히 이전에 비해서는 많이 준 느낌입니다.”

계기는 명확했다.

바로 김두정 때문이다.

김두정이 수수께끼의 여자에게 죽은 덕분에 나는 때아닌 반사이익을 누리게 되었다.

반헌터 시위를 이어 가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잠잠해졌기 때문이다.

악플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건 제이커가 예상 못 했을지도.’

사람은 상상 이상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많이 지배되는 존재다.

나는 이걸 레이드 시대를 통해 확실하게 느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들을 할 때가 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순간, 인간은 이성의 존재가 아닌 본능의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이 본능은 생존과도 연결되어 있다.

언제 김두정처럼 암살당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생존 본능을 불러일으켜 지금과 같은 조용한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게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훨씬 속 편하긴 하다.

김두정 말고 신경 써야 할 일이 안 그래도 많았는데.

반헌터 연대 시위가 급속도로 줄어들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해서 헌터들의 사회 진출 역시 다시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협회장도 열심히 정계 쪽 인사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이를 장려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고.

나도 카메라 앞에 더 자주 서면서 사람들에게 헌터가 마냥 두려운 존재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연예계 활동을 지속하기로 했다.

우리 HT 엔터테인먼트 소속 헌터 연예인들의 활동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때는 마음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진행자가 내 진심을 묻는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행자가 나의 이런 반응을 예상 못 했던 모양인지 살짝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불편하진 않으셨어요?”

“저는 언젠가 많은 시민분들이 저의…… 아니, 헌터들의 진심을 알아줄 거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진 않았습니다. 잠시의 소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내 말에 진행자뿐만 아니라 스태프들 역시 감탄사를 흘렸다.

당연한 질문을 좀 더 한 차원 끌어올려서 대답했을 때 나오는 반응들이었다.

방금 나눈 대화는 대본에 없던 질문과 대답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감탄하는 것일 수도 있다.

A와 B, 둘의 거리를 좁히려면 먼저 다가가거나, 아니면 오해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번 일 경우에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웠다.

일부 선동가들이 헌터들은 나쁘다, 우리의 적이다 하면서 선동하는 목소리에 살짝 고개가 돌아갔을 뿐.

다시 원상 복귀될 거라고 나는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 *

녹화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가기 전에 나는 오늘 프로그램 촬영을 하면서 같이 고생했던 출연진, 스태프들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다음에도 또 좋은 기회 있으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네. 저희야 태오 씨가 나와 준다면야 늘 환영이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촬영이 끝났다고 오늘의 일정이 모두 끝나는 건 아니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차에 오르자마자 승훈이 형이 내게 다음 일정에 대해 알려 줬다.

“저녁에 예능 프로그램 녹화 잡혀 있는 거 알지? 그쪽으로 바로 이동할 테니까 피곤하면 잠시 눈이라도 붙이고 있어.”

“어째 그룹으로 활동할 때보다 솔로로 활동하는 게 더 바쁜 거 같은데.”

“그럴 수밖에 없지. 그룹보다는 그래도 혼자 일정 소화하는 게 훨씬 유동적이고 자유롭잖아. 안 그래? 그거 때문에 PD하고 작가님들도 이때다! 싶어서 너한테 막 섭외 요청 넣는 거겠지.”

헌터들에게 레이드 사냥을 당하는 보스 몬스터의 기분이 이랬을까.

……아니지. 이건 비유가 이상했던 거 같으니까 철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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