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68화 (168/250)

제43장. 의도 (1)

우리 HTB 그룹 활동이 공식적으로 종료됨과 동시에 나와 데이브는 숙소에서 짐을 빼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숙소 생활을 했다 치더라도, 애초에 나하고 데이브는 숙소에서만 지냈던 게 아니었다.

각자 본인의 집이 있었기에 필요에 따라서는 숙소가 아니라 자신들의 집에 머물곤 했었다.

나도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라든지, 아니면 긴급 출동을 했다가 돌아올 경우에는 괜히 멤버들의 생활패턴에 방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내 집에서 자고 들어갔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이렇다 보니 숙소에 놔둔 짐이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다.

덕분에 이사도 쉬웠다.

따로 인력을 부를 필요도 없이 그냥 승훈이 형과 같이 옷가지하고 개인 물품 몇 개 싸서 내 차에 옮겨 싣기만 하면 됐다.

그것으로 이사는 끝이다.

데이브의 경우에는 나보다 더 짐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의 짐을 뺀 것만으로도 숙소가 굉장히 휑해 보였다.

니암이 아쉬움을 담아 말했다.

“당분간 여기가 썰렁해지겠네요.”

“이번 기회에 각방 쓰고 좋지, 뭐.”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서 니암에게 알려 줬다.

그럼에도 니암의 아쉬움은 바로 사라지지 않는 듯했다.

겉으로 봤을 때에는 혼자 조용히 생활하는 게 더 잘 어울리는 이미지였는데. 의외로 니암은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좋아했나 보다.

뭐, 준서는 당연히 후자였다.

“형들, 그냥 숙소에서 지내시면 안 돼요? 어차피 거리도 안 멀잖아요.”

준서의 말에 나는 어깨를 한 차례 으쓱했다.

“어차피 다음 앨범 활동 시작하면 또 들어오니까, 조금만 참아.”

처음에는 난 내 집이 좋다고 생각했었다.

숙소 생활보다는 그냥 혼자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공간에서 머무르는 게 나았으니까.

그러나 숙소 생활을 하면서, 이런 내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 같이 모여서 생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느낌을 조금씩 받게 된 것이다.

HTB는 가요계 활동뿐만 아니라 내 생활 습관에 대한 고정관념 역시 조금씩 깨뜨려 줬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데이브도 마찬가지였다.

숙소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당시, 데이브는 꽤나 골치 아프다는 반응을 보였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 생활에 많이 익숙해진 모양인지, 준서의 말에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데이브에게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중요한 사정이 있었다.

“나는 여동생이 있으니까.”

데이브의 여동생 사랑은 방송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드러났었다.

아이리스도 본인 입으로 오빠가 자기 생활에 너무 간섭하려 해서 짜증이 나려고 할 때가 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런 데이브가 먼저 여동생을 놔두고 숙소 생활을 하겠다고 말할 리가 없었다.

물론 아이리스는 데이브와 따로 떨어져 사니까 너무 좋다고 환호성을 내지르긴 했었지만 말이다.

참고로 데이브가 마음 아파할까 봐 일부러 말은 안 했다.

예전에 나하고 데이브가 서로 티격태격하긴 했지만, 이제는 같은 팀이니까.

이 정도 배려는 해 주기로 했다.

우리 둘과는 다르게 준서하고 니암, 그리고 딜런은 계속해서 이 숙소에 머물기로 했다.

지난번처럼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는 하는데.

가 봤자 큰 메리트가 없을 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차라리 앨범 활동을 쉬는 동안 한국이라는 나라에 좀 더 적응하는 기간을 가지고 싶다고 말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어차피 이 숙소는 빌린 것도 아니고, 회사가 아예 건물째로 사 버렸으니까.

관리비, 공과금 정도만 나가니까 멤버들이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겠다고 해도 큰 상관은 없었다.

우리 입장에서도 큰 유지비가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소속 연예인이 한국의 대중문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곳에 남겠다고 하는데 안 된다고 막아설 이유가 전혀 없었다.

니암하고 딜런은 그렇다 치더라도.

“준서, 너는 왜 여기에 남기로 했냐?”

데이브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준서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러자 준서가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면서 말했다.

“저는 두 형들이 우리나라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우미 역할을 하기로 했거든요.”

“거짓말하지 마라. 너희 부모님한테 잔소리 듣기 싫어서 일부러 여기 남아 있기로 한 거 내가 모를 줄 아냐.”

데이브의 날카로운 일침에 준서는 윽! 하는 반응을 보였다.

몸만 컸지, 아직 속은 어린애다.

그래도 준서 덕분에 우리가 숙소 생활을 하는 내내 밝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높게 칭찬해 주고 싶다.

팀 생활을 할 때 이런 멤버가 꼭 한 명씩은 있어야 한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준서는 우리 HTB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임에 틀림없다.

물론, 가끔씩 분위기 파악 못 하고 까불까불하는 건 좀 혼나야 하지만 말이다.

숙소에 머무르는 동안, 멤버들 역시 개별 활동을 이어 나갈 예정이다.

안 그래도 이런 멤버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저번 팬 미팅 때 내가 대기실에서 했던 말, 다들 들어서 알고 있지?”

김두정을 살해한 의문의 헌터가 내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던 일에 관해서였다.

멤버들 모두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녀석은 그런 식으로 언제든지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어. 그러니까 방송이라고 항상 방심하지 말고. 어딜 가든 조심하도록 해. 무슨 일이 벌어지면 언제든 우리한테 연락하고. 알겠지?”

“네!”

HTG한테도 미리 이런 말을 전달했었다.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제이커는 우리들의 연예계 활동에 꽤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이 활동을 이어 가기로 했다.

불안감을 느끼고 오히려 모든 연예계 활동을 접겠다고 하면, 그거야말로 제이커가 바라는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게 아닐까 하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놈들의 노림수대로 움직이는 것보다, 계속해서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좋다.

놈들의 뜻대로만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보여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기세를 조금이라도 꺾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데이브, 너도 솔로 활동은 계속할 거라고 했지?”

“그래야지. 어차피 제이커는 다른 헌터들이 쫓고 있고. 내가 미국으로 가 봤자 별 소득은 없을 테니까. 오히려 너처럼 여기에 있으면 녀석들이 알아서 모습을 나타낼 가능성도 있고.”

그때를 노려서 우리가 역공을 가하는 작전을 취할 수도 있다.

선택은 제이커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들도 선택할 수가 있다.

그걸 이번 기회에 놈들에게 여실히 보여 줄 생각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고. 아이리스한테도 미리 말해 줘.”

“알았다.”

“오케이. 그럼 할 이야기 다 끝났고. 슬슬 가 보자고.”

멤버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에 나는 내 차로 향했다.

시동을 막 건 찰나에 승훈이 형이 손으로 똑똑 창문을 두드렸다.

“운전 내가 할까?”

“괜찮아. 어차피 바로 집에 안 갈 거니까.”

“약속이라도 있어?”

“우리 누나하고 오랜만에 같이 식사하기로 했거든.”

“아, 아송 씨랑?”

승훈이 형의 목소리가 가득 상기되기 시작했다.

하여간 이 형도 참, 너무 솔직해서 탈이다.

“형도 같이 갈래?”

“아, 아니, 괜찮아. 나는 연 대표님이 불러서 좀 있다가 가 봐야 돼.”

목소리에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 왔다.

“내가 연 대표님한테 전화해서 승훈이 형하고 약속, 뒤로 미루게 해 줄게.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괜찮아. 이것도 두 번 정도 미뤘던 약속이라서, 더 미루기에는 너무 눈치 보여.”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뭐.”

승훈이 형이 그렇다는데, 제3자인 내가 계속해서 이래라저래라 강요할 입장이 아니었다.

“아송 씨한테 안부 잘 전해 주고. 알았지?”

“알았어.”

미련을 못 버리는 모습도 승훈이 형다웠다.

* * *

HTB 그룹 활동이 종료된 덕분에 내 스케줄이 숨통이 트였다.

덕분에 나도 그동안 기약 없는 약속이었던 누나와의 점심 식사 자리를 오랜만에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나하고 누나가 같이 외식을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우리 쪽으로 쏠리곤 한다.

그래서 누나는 자신의 집에서 같이 밥을 먹는 걸 선호했다.

한 번쯤은 누나한테 비싼 음식을 대접하고픈 마음도 있는데,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어 버린 누나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무조건 ‘비싸서 안 돼.’라는 반감을 드러내곤 한다.

나뿐만 아니라 누나도 돈을 굉장히 잘 버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가 사 준 차는 잘 타고 다니지? 비싼 차라고 막 환불하려 했다거나 그러진 않았을 테고.”

환불이라는 말에 누나의 작은 어깨가 움찔했다.

보아하니 생각은 했던 모양인가 보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얌전히 포기하고 그냥 누나가 타. 중고로 팔면 오히려 손해라는 거, 누나도 잘 알지?”

“알아, 안다고. 어휴, 정말…… 왜 그런 거에 돈을 써 가지고.”

“누나 일인데, 나한테는 ‘그런 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

내게는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데, 비싼 차가 뭐가 대수일까.

마음 같아서는 이 낡은 아파트도 싹 갈아치우고 싶다.

누나에게 수차례 집을 사 주겠다고 말을 했지만, 당연하게도 누나는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누나, 버는 돈은 다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건물 샀지.”

“차익으로 몇십억 벌었다면서.”

“응.”

“그러면 그 돈으로 뭐 하게?”

“가지고 있다가 너 결혼할 때 주려고.”

“……누나, 제발.”

나도 모르게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누나는 자나 깨나 내 생각뿐이다.

문제는 이게 너무 심하다.

부모도 없이 자란 우리들. 그래서 가난은 늘 우리 곁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일까, 누나는 어렸을 때 내게 못 해 준 게 가슴속에 한으로 자리 잡은 듯했다.

그래서 뭐만 하면 나에게 이것저것 챙겨 주려고 노력 중이었다.

나도 누나의 이런 마음 씀씀이가 늘 고맙다.

하지만.

“이제는 나 신경 안 써 줘도 돼. 그 돈들, 누나를 위해서 써.”

그리고 누나에게도 누차 했던 말이지만, 이미 나는 먹고살고도 남을 만큼의 많은 부를 축적해 뒀다.

누나가 굳이 자신의 돈을 내게 줄 필요까진 없었다.

그러나 동생을 인생의 1순위로 삼았던 생각과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질 리 만무했다.

나도 그걸 잘 안다.

그래서 이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누나에게 내가 아닌 본인을 위해 살라는 어필을 계속하고 있는 거였다.

“그리고 슬슬 결혼 생각도 하고. 누나, 예전부터 자기 가정 꾸리고 싶어 했잖아.”

“그거야 술 취했을 때 나온 헛소리고.”

“원래 그럴 때 본심이 나오는 법이야.”

“…….”

누나가 말을 아꼈다.

이 모습만 봐도 내가 정곡을 제대로 찔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나 자신이 잘 살아야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 그리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다 잘 살아야 행복해진다는 것을 나이가 듦에 따라 깨닫게 되었다.

“요즘 관심 있는 남자 없어?”

내 말에 누나가 시선을 회피하면서 말했다.

“……없어.”

아니, 이거 누가 봐도 있다는 반응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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