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66화 (166/250)

제42장. 접촉 (3)

승훈이 형과 함께 정해진 스케줄들을 소화하다 보니 금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게 되었다.

바로 내일, 팬 미팅이 있을 예정이다.

그 전에 우리들은 미리 팬 미팅이 열릴 장소를 방문해서 현장에 문제점이 없는지, 직접 점검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준서는 점검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장소 엄청 큰데요? 이렇게 큰 곳에서 해도 돼요? 소리 울리는 거 봐요!”

대관한 장소가 그저 신기한 모양인지, 마치 눈 오는 날을 처음 본 새끼 강아지처럼 여기저기를 잘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원래는 더 큰 곳을 빌릴까 생각도 했지만, 다들 미리 예약이 잡혀 있었기에 그나마 내 욕심에 부합되는 이곳으로 최종 확정을 짓기로 했다.

다른 멤버들에게도 소감을 물었다.

“어때, 괜찮아 보여?”

딜런이 주변을 빠르게 훑으면서 가장 먼저 첫 소감을 말했다.

“네. 장소도 깔끔하고. 새 건물 느낌이 나는 곳이네요.”

“그럴 수밖에. 왜냐하면 여기 신축이거든.”

올해 초에 완공되고, 사용 승인이 떨어진 이후로 우리가 이곳을 세 번째로 사용하는 팀이 되었다.

그렇다 보니 여타 다른 현장보다 훨씬 깔끔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깨끗한 곳을 좋아한다.

이런 거 하나하나가 그날 이벤트의 이미지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환경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어떤 환경인지에 따라 그 이벤트가 좋은 기억으로 남을지, 나쁜 기억으로 남을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좌석들도 전부 새거고. 한번 앉아 봐.”

“영화관 온 기분인데요?”

“그렇지?”

오랫동안 앉아 있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우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먼 지역에서 팬 미팅을 위해 올라올 팬들을 위해서 이 정도 배려는 당연히 해야 하지 않겠나.

어느새 데이브도 우리가 앉아 있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상태였다.

의자 테스트를 하는 건지, 아니면 오랫동안 서 있어서 다리가 아프니까 쉬려고 그러는 건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데이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여기서 잠들면 안 된다.”

“누가 잔다고 그러냐.”

데이브가 내 말에 곧장 날카롭게 반응했다.

그냥 웃자고 해 본 말인데, 하여간 그놈의 성격은 여전하다.

객석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내일 공연을 펼칠 무대 상태도 중요하다.

스태프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장비를 설치하고, 동시에 무대에 이상이 없는지 점검을 진행하고 있었다.

촬영 감독이 나를 보자마자 짧게 인사를 건넸다.

“오셨군요, 태오 씨.”

“안녕하세요, 감독님. 무대는 어때요?”

“완공된 지 얼마 안 된 곳이라서 그런지 아주 좋습니다. 콘서트장만큼 공간이 엄청 넓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웬만한 연출은 다 할 수 있습니다. 조명부터 한번 보시겠습니까?”

“네, 그러죠.”

“잠시만요. 최 감독! 잠깐만 일로 와 봐.”

조명감독에게 몇 번 몇 번 작동시켜 보라고 지시를 내리는 촬영감독.

무대 위에 설치되어 있는 조명 장비들이 우리 머리 위로 다양한 빛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나름 무대에 자주 서 봐서 그런 걸까.

같은 조명이라 할지라도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미세한 차이점을 느끼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촬영감독이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던 것처럼, 확실히 상태가 좋다.

“어떻습니까?”

“괜찮네요. 다른 것들도 볼 수 있을까요?”

“예, 잠시만요.”

기왕 시간 내서 왔는데, 확인할 수 있는 건 다 확인하고 가는 게 좋지 않겠나.

한편, 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서 있던 준서가 작은 목소리로 다른 멤버들에게 속삭였다.

“이렇게 보니까 태오 형이 촬영감독님 같지 않아요?”

“다 들린다, 최준서.”

내 일침에 준서의 어깨가 한 차례 크게 움찔했다.

하여간 저 녀석은 방심할 수가 없단 말이야.

간단한 무대 점검을 마치고 아래로 내려온 나는 촬영감독과 스태프들에게 내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

오늘의 일정은 이것으로 모두 종료되었고.

이제 숙소로 들어가서 푹 쉬기만 하면 된다.

팬 미팅을 마지막으로 우리 HTB의 두 번째 앨범 활동이 공식적으로 종료될 예정이다.

마지막인 만큼 내일의 행사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 * *

팬 미팅 당일.

이른 아침부터 눈을 뜬 우리들은 간단하게 씻은 후에 바로 샵으로 향했다.

샵 직원들도 우리의 2집 활동이 오늘로써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굉장히 아쉬워했다.

그러나 앨범 활동이 마지막이라는 것뿐이지, 멤버들이 개별적으로 방송에 출연하는 것까지 마지막이란 소리는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팬 미팅이 끝나는 다음 날, 나는 바로 라디오 촬영에 참가할 예정이다.

데이브도 아이리스하고 같이 남매가 모여서 토크 예능에 출연하기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개별 활동까지 따로 막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권장하는 편이다.

그래야 HTB라는 그룹 홍보도 되고 그럴 테니까 말이다.

아쉬워하는 직원들을 향해 내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렇게 다섯이서 다 같이 오는 경우는 다음 앨범 활동 기간까지는 아마 없을 텐데, 그래도 개인 일정은 계속 있을 테니까요.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내 말 덕분인지 직원들의 표정이 그나마 조금 밝아졌다.

그렇게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링이 끝난 뒤, 우리들은 의상을 갈아입고 팬 미팅 현장으로 향했다.

콘서트나 음방의 경우에는 무대 의상을 입을 텐데. 이번 팬 미팅의 경우에는 최대한 편안하게, 그리고 친근하게 팬들과 소통하자는 취지에서 무대 의상보다는 일상복에 가까운 캐주얼 콘셉트로 방향을 정했다.

나 같은 경우에는 흰색 니트에 브라운 면바지, 그리고 초록색 캔버스 운동화. 이렇게 코디를 했다.

머리는 평소와 동일하게 가르마 펌을 유지했다.

다른 멤버들도 나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 캐주얼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준서, 너는 그렇게 입으니까 더 어려 보인다.”

“실제로 어린 거 맞아요.”

옆에서 니암이 준서의 말에 태클을 걸었다.

“너, 이제 성인 된 거 아니냐? 20살이잖아.”

“마음만은 아직 10대니까 괜찮아요.”

그런 걸로 따지면 여기서 10대 아닌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네.

하여간 우리 막내는 한마디를 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의상을 갈아입는 동안, 팬들의 입장이 시작되었다고 스태프가 우리들에게 알려줬다.

입장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모든 좌석이 꽉 찼다.

잠시 뒤, 팬 미팅 시작과 함께 우리 다섯 명이 동시에 무대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무대 오르자마자 팬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고막이 울릴 정도였다.

정면, 오른쪽, 왼쪽 번갈아 가면서 손을 흔들어 주자 이 함성 소리는 더욱 커졌다.

단체 인사를 하기 위해 내가 멤버들에게 신호를 줬다.

“둘, 셋.”

“안녕하세요, HTB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래도 헌터 아이돌이니까.

아이돌답게 단체 인사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겨우 인사 하나 끝났을 뿐인데, 팬들의 환호성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분위기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이크를 들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내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침착해, 침착해.”

내 말에 따라 팬들도 다 같이 ‘침착해’를 연호했다.

진행자가 따로 없었기에 우리가 알아서 현장을 정리해야 했다.

원래는 진행자를 섭외할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팬 미팅의 테마 자체가 ‘소통’이었기 때문에 진행도 우리가 맡아서 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팬들이 보고 싶고 듣고 싶어 하는 건 우리의 모습과 목소리 아닌가.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멘트를 많이 하기 위해선 진행도 같이 동반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일부러 이런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난 이미 던전 탐험대 촬영을 통해서 어느 정도 MC로서의 경험도 해 봤다.

그래서 이번에도 팬 미팅 행사를 잘 이끌어 갈 자신 있었다.

그러나 이 자신감은 시작과 동시에 많이 줄어들었다.

‘녹화하고 행사 진행은 확실히 다르구나.’

뒤늦게 이벤트를 전문으로 진행하는 MC를 향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샘솟았다.

난이도로 따지면 확실히 현장 진행이 더 어려운 것 같다.

녹화 같은 경우에는 대본이 있으니까. 그대로 진행하거나 중간에 실수하는 일이 있어도 생방송이 아니니까 도중에 끊고 가도 되는데, 이벤트 진행은 그런 게 아니니까.

모든 게 다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일단은 저희 첫 팬 미팅에 와 주신 여러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원래는 좀 더 일찍 했었어야 했는데, 이제야 팬 미팅을 열게 되었네요. 이 점에 대해서는 저희가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첫인사부터 사과를 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팬들한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팬들은 괜찮다면서 우리들의 잘못이 아님을 누차 알려 줬다.

바쁘니까. 그리고 세상을 지키는 중책까지 도맡고 있다 보니 충분히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헌터로서의 우리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HTB에 입문한 사람들도 꽤 된다. 그래서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팬들 덕분에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만큼 우리가 더 열심히 노력해서 재미있고 즐거운 팬 미팅이 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우선은 저희, 무대부터 보고 가실까요!”

“네에!”

오프닝을 장식할 무대는 우리 HTB의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인 ‘세비올라’였다.

우리가 여태껏 발매했던 노래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음원 차트 1위를 유지했던 곡이기도 하면서 해외에서도 가장 높은 성적을 낸 노래다.

이 기록은 내 개인 앨범을 포함해도 깨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는 대한민국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HTB라는 그룹이 하나의 브랜드로 정착했음을 알려 주는 지표가 아닐까 싶다.

세비올라 무대가 펼쳐지자, 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무대에 어울리는 컬러를 지닌 응원봉을 들어 올렸다.

팬 미팅이라 그런지 다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졌다.

단합이 잘되는 객석을 보고 있자니 우리들도 기분이 좋아졌다.

데이브도 그런 모양인지, 생전 안 하던 애드리브도 섞고. 아주 난리가 아니다.

그렇게 오프닝 환영 행사를 마친 우리들은 뒤이어서 약간의 토크 타임을 가진 뒤, 팬들과 악수회를 가졌다.

무대 위로 올라오는 팬들.

대부분은 양손 가득 선물을 가지고 올라왔다.

“태오 오빠, 이거 드세요!”

“이게 뭐예요?”

“저희 어머니가 담근 술이에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아 버렸다.

이것뿐만 아니라 팬들끼리 서로 경쟁이라도 붙은 모양인지 계속해서 선물 공세가 이어졌다.

이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팬이 한 명 있었다.

훤칠한 키에 안경을 쓰고 마스크로 입가를 가린 여성.

또각또각. 힐 굽 소리를 내면서 내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여성 팬에게 말을 붙였다.

그러자 팬이 눈웃음을 지으면서 내 인사에 답했다.

“안녕하세요, 태오 씨.”

처음 듣는 목소리.

하지만 얼굴은 처음 보는 게 아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여성의 모습에 나는 순간 김두정이 살해당하던 모습을 찍은 CCTV 영상을 떠올렸다.

그 여자다.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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