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65화 (165/250)

제42장. 접촉 (2)

승훈이 형이 팬 미팅에 관해 말을 꺼낸 김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용케도 우리 HTB가 데뷔한 이후로 한 번도 팬 미팅을 안 했었구나 하고 말이다.

물론 그동안 팬 미팅을 바라는 목소리는 계속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팬 미팅이 열리지 않았던 것은 일부러가 아니다.

그냥 순전히 ‘바빠서’였다.

멤버들 다섯 명이 다 같이 스케줄을 맞추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준서나 니암, 딜런의 경우에는 어찌어찌 맞출 수 있다 치더라도.

나와 데이브가 문제였다.

내가 가능하면 데이브가 안 되고.

데이브가 가능하면 반대로 내가 안 된다.

가수로 데뷔하기 전부터 우리 두 사람의 스케줄은 이미 웬만한 톱스타보다도 더 바쁜 지경에 이르렀었다.

여기에 HTB라는 그룹 활동까지 병행하고 있으니, 안 바쁜 게 말이 안 된다.

그리고 이 와중에 가끔씩 몬스터들이 출연하면 출동도 해야 하고.

이렇다 보니 팬 미팅의 팬 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슬슬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내부 의견이 나와서 마침내 일정을 잡기로 했다.

이제 야심 차게 준비한 만큼, 팬 미팅 이벤트를 진행하면 되는데.

이 와중에 김두정이 낯선 여자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인 데다 각성 능력을 지난 자의 소행이다 보니 김두정 관련 사건이 연일 뉴스에서 다뤄지고 있었다.

게다가 김두정이 일반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영향력이 없던 사람은 아니었다.

헌터들이 맹활약을 하든 말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연일 헌터들을 향해 시위 공세를 늦추지 않았던 사람이다 보니 다른 의미에서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다.

그렇다 보니 녀석의 일거수일투족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부분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행동인 건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어그로의 황제.

이 말만큼 김두정에게 잘 어울리는 것도 없을 것이다.

‘참 대단한 녀석이었지.’

내가 녀석을 오랫동안 알고 지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신기한 녀석인 건 확실했다.

그렇다고 동정심이 생겼다는 건 아니다.

나는 나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사람한테까지 동정을 베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차피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니까.

그러려니 싶다.

대신에 짜증 나는 게 하나 있긴 하다.

바로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이동할 때마다 마이크를 들고 나에게 따라붙는 기자들의 행보다.

“혹시 김두정의 죽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시는 게 있을까요?”

“김두정을 죽인 여자가 각성 능력자라는 말이 있던데, 아시는 분입니까?”

나는 김두정의 죽음에 대해 굳이 내 의견을 드러낼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나하고 김두정하고 사적으로 친한 관계도 아니니까.

그러나 특수 범죄가 일어날 경우, 이런 식으로 경찰이나 헌터협회가 아닌 나에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해 오는 기자들이 몇몇 있었다.

내가 이들에게 해 줄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김두정이 죽임을 당한 날 오전에 내가 그와 만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 그리고 나와 함께 그곳을 찾았던 헌터들, 마지막으로 김두정. 이렇게밖에 없었다.

CCTV 내에도 우리들의 모습은 찍히지 않았다.

내가 김두정을 찾아갔을 때 이런 조치조차 안 취했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막무가내로 쳐들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대비를 다 하고 갔다 이거지.

그래서 기자들은 나와 김두정의 관계에 대해 수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냥 형식적인 질문만 쏟아 낼 뿐이었다.

물론 이런 질문조차도 귀찮지만 말이다.

방송국으로 향하던 도중에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궁금하신 게 있다면 경찰이나 헌터협회 쪽에 문의해 보시는 게 훨씬 빠르고 자세하게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제가 협회장님과 사적으로 친분이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이런 사건까지 저에게 일일이 공유해 주진 않거든요. 여러분들도 현 협회장님 성격, 어느 정도 아시죠? 공과 사는 철저하게 구분 짓는 분이라는 거.”

기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침묵이 계속해서 이어질 때, 나는 미소와 함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

“그럼 오늘 하루도 수고하세요.”

앞으로는 더 귀찮게 안 했으면 좋겠다.

* * *

방송국으로 들어오자마자 승훈이 형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자들도 참 대단하네.”

“어쩔 수 없지. 이게 일이니까.”

기자들은 자신의 업무에 충실할 뿐이다.

물론 무엇을 하든간에 과몰입은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원인이 되지만, 오늘은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았다.

내가 헌터로 활동할 때 해 줄 말도 없는데 게이트 사건에 대해서 이것저것 집요하게 물어보던 기자들을 떠올리면,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하다.

“협회는 언제쯤 조사 결과 발표할 거래?”

“오늘 오후 2시쯤.”

“그 이후부터는 좀 편안해지겠네.”

적어도 방금처럼 기자들에게 시달릴 일은 없어질 것 같다.

“팬 미팅 전까지는 조용해졌으면 좋겠는데.”

“아마 그렇게 될 거야. 팬 미팅, 다음 주잖아. 맞지?”

“어. 그렇지.”

“시간이 좀 있으니까, 그때쯤이면 지금보다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지 않을까?”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아예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다.

일주일. 사람의 머리를 차갑게 식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레이드 시대 때에도 대부분 그랬으니까 말이다.

승훈이 형이 피식 웃었다.

“네가 헌터 활동할 때 진짜 별의별 일을 다 겪긴 했나 보다.”

“왜?”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런 일 겪으면 학을 떼던데. 너는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대처를 하니까.”

“경험만큼 훌륭한 스승이 없다잖아.”

나를 성장시켜 준 여러 스승님들을 향해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의 스케줄로 잡혀 있는 웹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나는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요즘은 TV 프로그램 말고도 웹 예능이 한창 떠오르고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일까, 솔직히 웹 예능 섭외 요청이 들어왔을 당시에는 정식 촬영이 아니니까 가볍게 생각하고 왔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웬만한 방송 프로그램 녹화 규모만큼은 되는 것 같다.

카메라 숫자뿐만 아니라 장비, 오디오까지.

갖출 건 다 갖추고 있었다.

현장을 점검하던 PD가 나를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태오 씨! 올 때 괜찮으셨어요? 앞에 기자들 몇 명이 대기 중이던 거 같던데. 딱 보니까 태오 씨 추궁하려고 온 사람들 같더라고요.”

“안 그래도 여기 오면서 마주쳤습니다. 적당히 달래서 보냈으니까, 기자들이 PD님이나 여기 계신 스태프들한테 민폐 끼치는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괜찮습니다. 뭐, 태오 씨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요. 그리고 은근히 이런 일, 자주 겪었습니다. 많이 익숙하니까 민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래도 이해심이 넓은 PD를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벼운 메이크업을 받고, 출연자들과 짧게 리딩을 나눈 뒤에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웹 예능이라서 그런지 촬영 시간 자체가 엄청 길진 않았다.

기껏해 봤자 1시간 정도?

인터넷 영상 플랫폼에 업로드되는 러닝타임은 10분밖에 안 된다고 하니까, 1시간가량 녹화해도 분량은 충분히 나올 것 같다.

진행자들이 매회마다 게스트를 초대하고, 이 게스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요리해 주는 방식으로 방송이 진행된다.

내가 택한 음식은 우리 누나가 예전부터 나에게 가끔씩 해 줬던 제육볶음이었다.

“좀 맵게 해 드릴까요?”

“네. 그렇게 해 주셔도 됩니다, 선배님.”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맛있게 해 줄게. 주선 씨, 그쪽에 있는 프라이팬 좀 줄래요?”

“네!”

진행자 두 명이 주방으로 꾸며진 스튜디오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요리가 진행되는 동안, 진행자들이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최근에 엄청 바빠 보이시던데, 요즘 정신없으시죠?”

“네. 바쁜 걸로 따지면 레이드 시대 때보다도 더 바쁘죠.”

그때는 무한 대기했다가 몬스터가 출현하면 출동해서 임무 수행하고, 쉬고. 이런 패턴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연예계에 뛰어든 이후부터는 계속해서 스케줄의 연속이다.

그래서 레이드 시대보다 평화의 시대 때가 더 바쁘게 느껴졌다.

아니, 느껴지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다.

“피곤하진 않으세요?”

“괜찮습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하니까요. 적어도 ‘오늘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일은 없지 않습니까.”

“우와…… 이건 개그로도 못 받아치겠네.”

진행자 둘은 코미디언 출신들이다. 게스트가 하는 말들을 유머러스하게 받아치는 게 그들의 일인데, 내가 너무 신랄하게 멘트를 날려서 그런지 살짝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레이드 시대 때 치열하게 몬스터를 때려잡던 헌터들만 할 수 있는 멘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코미디언들이 내 멘트를 받아 내기 힘들어하면.

내가 직접 내 멘트를 웃음으로 승화시켜 주면 된다.

“웹 예능은 원래 이렇게 세게 나가야 한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나요, 선배님?”

“어후, 맞아요. 제대로 배우셨네.”

어디까지나 예능이니까.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진지하게 상담하고 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벼운 분위기로 쭉 가는 콘셉트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나도 거기에 맞춰서 행동했다.

내가 이렇게 자진해서 멘트를 쳐 주니까 진행자들 입장에서는 다행이라는 반응이 몰래 흘러나왔다.

뭐랄까, 진행자와 게스트가 바뀐 느낌인데.

연예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신 분들이라 할지라도 나만이 구사할 수 있는 멘트들 앞에서는 내성이 없는 듯한 반응들이 가끔씩 튀어나오곤 한다.

오늘도 이것과 비슷했다.

너무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가면 곤란할 테니까.

연예계 이야기로 화두가 돌아가게끔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까 저희, 이제 앨범 활동 얼마 안 남았는데.”

“맞다. 이번이 2집이었죠? HTB요.”

“네. 노래 나온 지는 꽤 됐는데, 저희가 일반적인 가수팀이 아니다 보니까 앨범 활동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거든요. 대신에 활동 기간을 좀 길게 가져서 움직이고 있긴 한데, 이것도 아마 다음 주면 끝나게 될 겁니다.”

“길거리 가면 맨날 HTB 노래 나오던데, 인기 많죠?”

선배님의 물음에 보조 진행자 역할을 맡고 있던 젊은 후배가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답했다.

“어후, 인기 최고죠.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기 있으신 분들인데요. 이번에 처음으로 팬 미팅도 하신다면서요?”

나이스 패스.

안 그래도 팬 미팅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잘됐다.

“네. 다음 주에 열릴 예정입니다. 저희 첫 팬 미팅이니까 팬 여러분들하고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시국이 시국이라서 좀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나는 나름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 편이었다.

아마 우리 멤버들도, 그리고 팬들도 다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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