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64화 (164/250)

제42장. 접촉 (1)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승훈이 형이 제안했던 것처럼 우리는 집도, 회사도 아닌 헌터협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올 거라는 사실을 미리 연락받은 모양인지 헌터협회 소속 직원이 나와 우리들을 안내해 줬다.

어차피 협회장 사무실이 어디 있는지, 나나 승훈이 형이 모를 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이렇게 마중 인력을 내보내는 건 협회장의 한결같은 태도 중 하나였다.

그래도 자신을 찾아온 손님인데, 허투루 대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뭐, 이런 게 나쁜 건 아니니까.

그래서 나도 언제부턴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직원이 사무실 문을 직접 열어 주면서 우리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예상대로, 협회장의 사무실에는 이미 이철민 소장과 연 대표가 자리를 잡은 채 우리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협회장이 앉으라고 권유하면서 아직 오지 않은 또 다른 손님에 대해 언급했다.

“데이브도 거의 다 도착했다고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데이브도 와서 듣기로 했어요?”

“이번 테러리스트 건은 미국 지부 쪽하고도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데이브가 있는 게 편하지.”

어쩌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주로 활동하게 되었지만, 데이브는 여전히 미국 지부 소속임을 잊어선 안 된다.

협회장의 말대로, 나와 승훈이 형이 자리에 앉은 지 채 5분이 지나기도 전에 데이브가 사무실에 모습을 나타냈다.

협회장이 데이브에게도 앉기를 권했다.

“그럼 바로 이야기 시작하지.”

시간 끌 필요가 없다.

곧장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한 우리들.

이철민 소장이 협회장한테서 바통을 이어받아 자신이 수집한 이번 사건의 자료들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 주기 시작했다.

프린트물을 포함해서 영상 자료까지.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마 이철민 소장이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김두정이 살해당하는 장면부터 보시죠. 모자이크 처리는 따로 안 했으니까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뭐, 굳이 그런 것까지야.”

“안 하는 게 오히려 저희가 보고 분석하기 좋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걸로 비위 상해 할 사람들도 아니고.”

몬스터 사체를 보는 게 우리들의 일인데, 고작 이런 거 때문에 크게 불편해할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겠지.

이철민 소장이 재생 버튼을 누르자, 시위 당시의 상황이 펼쳐졌다.

경찰들이 와서 김두정과 실랑이가 벌어졌고.

이 와중에 갑자기 여성이 김두정의 뒤에 나타나 검을 푹 찔러 넣는 장면까지 전부 공개되었다.

여기서 특이점이 하나 있다면.

“거리를 좁히는 게 전혀 안 보였어.”

데이브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나도 처음엔 CCTV 영상의 프레임에 오류가 난 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게 아니라,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서 그렇게 보인 것뿐이었다.

“아무리 거리가 가까웠다 치더라도,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각성 능력자가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헌터라면 나름 이해는 한다.

왜냐하면, 각성 능력자들 중에서 몬스터와 싸워도 될 만큼 전투력이 어느 정도 높은 사람들이 헌터에 지원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래서 평균 수치를 놓고 본다면, 헌터로 등록되지 않은 각성 능력자들이 헌터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매우 낮은 편에 속했다.

그러나 협회장은 분명 내게 이렇게 말을 했었다.

“이 여자, 헌터 아니라고 했죠?”

“어, 맞아.”

혹시 몰라서 나는 협회장에게 다시 한번 확인 과정을 거쳤다.

헌터가 아닐 리가 없을 거 같은데.

이동하는 속도만 봐도 상당한 실력자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인데, 이 능력을 그냥 썩히고만 있었다는 사실이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최소 S랭크, 아니 어쩌면 데이브보다 약간 아래 단계까지 쳐줄 수 있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솜씨였다.

경찰들이 쏘아 대는 실탄을 피하는 것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여자가 오랜 시간 동안 싸운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들은 김두정을 살해하고 도주한 여성이 얼마나 강한 전투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협회 입장에서도 난감할 따름이었다.

“보니까 제이커와 같이 행동하는 여자인 거 같은데. 상대하기 힘든 골칫덩어리가 둘로 늘어났으니, 어제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더라.”

협회장은 본인이 한 말을 우리들에게 시각적으로도 표현해 주고 싶었던 모양인지, 자신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이때, 데이브가 다른 가설 하나를 들려줬다.

“제이커의 인형일 가능성은 없는 겁니까?”

제이커는 소환수를 다루는 소환사다. 김두정을 살해하고 도망친 여성이 제이커가 만든 인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철민 소장이 이에 대해 직접 의견을 표출했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증거가 나왔습니까?”

“네. 이 영상 자체가 그 증거입니다.”

이철민 소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페이지로 화면을 넘겼다.

마치 이런 질문이 나올 거라고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자료까지 다 명시되어 있었다.

“태오 씨는 아마 직접 제이커의 소환수들과 싸워 보거나 대화를 나눠 봐서 누구보다도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제이커의 소환수는 아직 인간처럼 완벽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을 만한 단계는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지난 미국에서 열렸던 영화 시상식 건을 떠올리시면 될 겁니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다수의 영화인들을 인질로 삼았던 희대의 인질극이기도 했다.

감히 상상조차 못 한, 기발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인질로 붙잡은 탓에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서 크기 회자되고 있었다.

나도 여태껏 기억하고 있는 걸로 봐서는 제이커의 테러 방식이 굉장히 허를 찔렀다는 느낌을 당시에도 많이 받긴 했었나 보다.

그때 무대에 올라서 우리들에게 경고했든 존재가 바로 제이커가 만든 소환수…… 아니, 인형이라고 가깝다고 봐도 좋을 만한 존재였다.

사람들과 어느 정도 의사소통도 가능했었고.

데이브도 이걸 알고 있다. 그래서 여성이 제이커의 소환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었던 거 같다.

하지만 그런 존재를 직접 봤던 나로서는 이철민 소장과 같은 의견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말을 하긴 하는데, 뭔가 어눌해. 사람과 대화한다는 생각보다는 AI 컴퓨터에 인형처럼 스킨만 씌워서 이야기한다는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으니까.”

시선 처리나 말투, 그리고 행동 하나하나가 세심하게 관찰해 보면 인간의 것과 상당히 동떨어지고 어눌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영상을 통해 확보한 여성의 모습은 내가 이전에 무대 위에서 봤던 그 소환수와는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움직임도 너무 자연스럽고.

말할 때 보이는 입 모양과 표정이 흡사 인간의 것과 비슷했다.

아니, 이건 소환수가 아니라 사람이다.

틀림없다.

이철민 소장이 추가로 경찰들의 증언을 확보해 알려 줬다.

“당시 경찰들도 그 여성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처럼 느껴지진 않았다고 합니다. 뭔가 성격이 많이 뒤틀린 그런 여성처럼 보였다고 하더군요.”

성격이 많이 뒤틀렸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데이브하고 비슷하네요.’라고 말을 할 뻔했다가 간신히 참아 내는 데에 성공했다.

지금의 데이브는 열심히 잘하고 있으니까.

굳이 핀잔을 줄 필요가 없지.

그럴 이유도 없고 말이다.

이야기를 해 본 결과.

협회장의 고민거리가 맞아떨어졌다.

“제이커하고 같이 손을 잡은 각성 능력자 중 한 명이군요.”

“그리고 하필이면 꽤나 실력자이기도 하고요.”

우리는 단순히 흑막인 제이커만 붙잡으면 이 일이 전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이번 사건은 우리가 잡아야 할 대상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테러리스트‘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협회장이 머리를 거칠게 긁적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은 이 정보를 다른 국가 정상들한테도 공유해 줘야 하니까, 당분간 또 바쁘게 움직여야겠네.”

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니까 협회장 입장에서는 당연히 짜증이 날 만도 할 것이다.

게다가 가벼운 일도 아니고 중요한 일이니까.

차라리 좋은 소식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안 좋은 소식을 가지고 세계 각국 정상들에게 알려 줘야 하니 협회장의 머리가 벌써부터 복잡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 * *

회의를 마치고 나온 나와 데이브를 향해 승훈이 형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 상황 속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거 아는데, 그래도 정해진 일정이 있으니까 일단 말은 해 줄게.”

승훈이 형이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내일 우리, 팬 미팅 있는 거, 알지?”

HTB의 두 번째 앨범 활동이 거의 마무리되어 갈 때쯤, 그 전에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팬 미팅을 해 보자고 계획했었다.

팬들도 이걸 강력히 염원하고 있었기에 소속사 측에서 지금이나마 빨리 준비에 착수하자는 의견이 나오게 되었다.

“대관하고 팬 미팅에 필요한 것들 준비는 다 끝내 뒀고. 너희가 시간 내서 가기면 하면 돼.”

“당연히 가야지. HTB 팬 미팅인데,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좀 그렇잖아.”

내가 제일 바쁘긴 하지만, 그래도 팬 미팅은 무조건 갈 생각이었다.

데이브도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나와 같은 뜻을 표출했다.

그제야 승훈이 형이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또, 너희가 갑자기 바쁜 일 생겼으니까 참석 못 할 거 같다고 말할까 봐 조마조마했네.”

“제이커 일은 제이커 일이고, 우리 일은 우리 일이니까 당연히 가야지. 애초에 그룹 활동의 이유가 사람들한테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였으니까, 중간에 일 생겼다고 이걸 내팽개치면 안 되잖아.”

그래야 우리 노래가 지닌 버프 능력에 힘이 실리게 된다.

더 많은 노래를, 더 좋은 퀄리티로, 그리고 이걸 가지고 더 왕성하게 활동을 해야 일반인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헌터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게 된다.

결국 이것도 어찌 보면 업무인 셈이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다른 멤버들은 이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대에 올라가면 여태껏 느껴 보지 못했던 신선한 활력을 받을 수 있으니까.

여기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굉장히 힘들다.

이건 아마 데이브도 공감할 것이다.

데이브도 나와 같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갈 겁니다.”

“오케이. 그럼 스태프들한테 일정대로 진행하겠다고 연락해 둘게.”

스태프들한테 말을 해 주겠다는 걸 보니.

“그쪽도 우리가 참석 못 할까 봐 걱정 많이 했나 보네.”

“말만 안 했지, 어마어마했어. 나한테 시도 때도 없이 계속 연락 왔었다니까.”

이 말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만약 내가 헌터 일에만 집중했다면 불참할 가능성도 있을 텐데.

가수 활동도 병행하고 있으니까.

가수 태오로서의 면모도 확실하게 챙겨 가고 싶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