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장. 시위 (8)
승훈이 형이 백미러로 내 쪽을 살피면서 재차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김두정, 그 사람이 또 시위하기 시작했다고?”
“어.”
“미쳤구만.”
저번에 교통사고하고 몬스터 출몰 사건이 난 이후로 처음이었다.
올라온 기사도 그렇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방금 나한테 그런 겁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시위대를 이끌고 거리로 나섰다는 게 황당할 따름이다.
예정에 잡혀 있던 시위는 아닌 거 같고.
집회 신고도 미리 해 두지 않은 모양인지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는 소식도 같이 올라왔다.
‘나에 대한 항의의 뜻이라도 보여 주고 싶었던 건가?’
아무렴 어떠랴.
김두정이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다 방법이 있지.’
다시 한번 QWE 미디어와 기자들의 힘이 필요해졌다.
* * *
한편, 김두정은 자신이 이전처럼 사람들을 이끌고 헌터들의 공식 활동에 반대한다는 팻말을 든 채 길거리로 다시 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는 다시 시위 활동을 재개할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나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제이커와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태오에게 들켰다는 연락을 하자마자, 곧바로 다시 시위 활동을 재개하라는 연락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김두정과 제이커는 수평 관계가 아닌 수직 관계다.
제이커가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면, 김두정은 거기에 따라야 하는 신세였다.
사업에 실패하고, 인생의 밑바닥까지 가게 된 그를 어찌어찌 구제해 준 인물이 바로 제이커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두정이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그는 정당한 대가를 받으면서 제이커의 명령을 수행하는, 한 마디로 근로관계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하라고 하면 김두정은 군말 없이 해야 한다.
‘하필이면 이 시기에…….’
김두정은 자신들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을 본의 아니게 온몸으로 만끽하게 되었다.
갑자기 소집된 시위인 데다 요즘은 헌터들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탓에 시위대로 모인 사람들의 숫자도 많지 않았다.
겨우 두 자릿수를 넘길 정도.
평소에 비하면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제이커는 김두정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하라고.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일단은 시작하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시위대를 모으긴 했는데.
다들 의욕이 착 가라앉은 상태였다.
이전 시위에서는 그래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 주려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존재했는데.
지금은 차가운 시선만 가득이니, 의욕이 날 리가 없었다.
그래서 김두정은 제이커의 말이 더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녀석이라니까.”
쯧쯧쯧.
여러 차례 혀를 찰 때였다.
한 여성이 김두정에게 다가와 그의 태도를 지적했다.
“시위연대 소집하신 분께서 그렇게 얼굴에 불만이 가득하시면 어떻게 하나요?”
“…….”
긴 흑발에 거의 180cm 가까운 큰 키를 지닌 여성이었다.
김두정은 이 여자를 오늘 처음 봤다.
미리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아니고, 현장에서 자신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자기도 평소에 헌터들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서 시위에 동참하게끔 해 달라고 해서 즉석으로 받아 준 거였다.
한국인이라고 보기에는 굉장히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미인.
그러나 김두정은 여성을 보면서 예쁘다는 본능적인 감정보다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더 크게 느꼈다.
정확히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감정.
마치 오늘, 강태오와 직접 대면했을 때 느꼈던 그것과 굉장히 흡사했다.
단지 강태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성은 김두정과 같은 목적으로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된 시위대 일원이라는 점일 것이다.
김두정과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는 건 틀림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김두정은 여성에게 묘하게 정이 가질 않았다.
오히려 쎄한 느낌만 가득 들었다.
이때, 경찰들이 와서 이들을 제지하기 시작했다.
“신고받고 왔습니다. 집회 허가 없이는 이곳에서 소란을 피우시면 안 됩니다.”
김두정은 이전에도 그랬듯이 막무가내식으로 경찰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허가 같은 소리 하네! 내가 신청해 봤자 어차피 허가 내주지도 않을 거잖아! 이미 헌터들이 뒤에서 다 수작을 부렸겠지. 경찰도 막 조종하고. 어?”
경찰들의 표정이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김두정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 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의 고집을 부드럽게 받아 주기만 해야 할 의무 따윈 없었다.
“계속 그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신다면,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다면, 뭐. 왜! 죽이기라도 하게? 그러시든가! 한번 해 보시지! 자!”
김두정이 대놓고 배 째라고 나오자, 경찰들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소란을 피우면 피울수록 사람들의 이목이 더욱 집중되기 시작했다.
오히려 김두정은 이걸 노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사람들한테 관심을 못 받는 시위를 계속 이어 나가고 있는데, 이런 걸로나마 어그로를 끌어야 시위의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될 수 있지 않겠나.
그의 작전대로 되어 간다고 생각할 때쯤이었다.
그 순간,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김두정의 가슴팍에 날카로운 검 한 자루가 튀어나왔다.
“어……?”
김두정은 지금 벌어진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김두정뿐만 아니라 경찰들 역시 눈앞에서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 벌어진 탓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김두정도 아는 목소리였다.
“왜요. 죽여 보라고 해서 소원을 들어준 것뿐인데.”
오늘 처음으로 시위에 참가했던 그 키 큰 여성이었다.
검 아이템을 뽑아 들고서 몰래 그의 뒤로 접근한 그녀가 싱긋 웃으면서 물었다.
“이제 와서 후회하시는 건가요? 그러니까 말을 함부로 내뱉으면 안 돼죠.”
검을 뽑아 들자, 뻥 뚫린 김두정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경찰들은 다급하게 총기를 꺼내 들었다.
레이드 시대를 겪고 난 이후, 경찰들의 총기 사용에 대한 규제가 어느 정도 풀린 덕에 이렇게 바로 강경 대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경찰들의 손은 파르르 떨렸다.
아이템을 지니고 있다는 건.
다시 말해서 여성의 정체가 각성 능력자임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편,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머물고 있던 이들 역시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피 칠갑을 한 여성은 흡사 사람이 아닌 귀신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김두정의 피가 묻은 손가락으로 립스틱처럼 자신의 입술을 붉게 칠한 여성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말 그대로 섬뜩한 미소가 펼쳐졌다.
“나중에 또 볼 수 있으면 보도록 하죠.”
여성의 몸이 붕 떠올랐다.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듯이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에 경찰 한 명이 다급하게 외쳤다.
“쏴! 어서!”
실탄 발포 명령이 떨어졌다.
상대가 각성 능력자라면, 3단봉이고 뭐고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실탄을 쏜다고 해도 제압이 가능할까 말까 한 게 각성 능력자인데, 도망치지 못하게 발포라도 해야 했다.
그러나 여성은 경찰들을 농락하듯,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아예 그들의 시야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이 모든 것들이 불과 1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벌어졌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탓에 경찰들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 * *
촬영을 마치기 무섭게 승훈이 형한테서 놀랄 만한 소식 하나를 전해 듣게 되었다.
“태오야, 김두정, 그 사람…… 죽었다고 하더라.”
“뭐? 왜? 사고라도 당했어?”
“아니.”
승훈이 형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같은 시위대에 참가한 사람한테 갑자기 공격당했대. 뒤에서 칼로 찔렀다더라.”
“칼이라면. 설마…… 아이템?”
“어, 현장을 목격한 경찰들이 여자가 각성 능력자라고 증언했으니까, 확실할 거다.”
“…….”
QWE 미디어를 통해서 여론전으로 김두정을 압박해 갈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이런 결말이 펼쳐지게 되어서 나도 적지 않게 당황스럽다.
그보다도 승훈이 형이 한 말 중에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었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 중 한 명이 죽였다고 했지?”
“어.”
“목적은?”
“당연히 모르지.”
뭐, 예상하고 있었다.
애초에 왜 갑자기 시위 도중에, 그것도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김두정을 죽인 이유가 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김두정은 지금 나쁜 의미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다.
어그로 끄는 것에 특화된 인물답게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에게 쏟게끔 만드는 것만큼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아마 그래서 제이커가 김두정에게 시위 관련 일을 맡긴 것일지도 모른다.
가만, 제이커라고?
“설마, 그 녀석이 의도적으로 김두정을 죽인 건가?”
“뭐, 일단 직접 죽인 건 아닌 거 같아. 현장에 있던 사람은 여자라고 했으니까.”
“제이커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어?”
“남자겠지. 아마 녀석하고 같이 행동하는 일원인 거 같은데. 하…… 골치 아프다, 야. 대체 게이트 사건 말고 또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이런 사건들이 자꾸 벌어지는지 무서울 정도야.”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다.
세상이 흉흉해도 너무 흉흉하다.
제이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나마 다행인 건 녹화가 끝나고 나서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는 점이다.
만약에 시작 전에 김두정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면, 제대로 녹화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이다.
“협회장님은, 뭐라셔?”
“일단 각성 능력자가 살인 용의자니, 협회 차원에서도 조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래.”
“뭐 때문에 그러는데?”
“CCTV로 김두정을 죽인 여자의 얼굴하고 인상착의를 전부 확인했다고 하는데, 협회 내에 한 번도 등록되었던 적 없는 각성 능력자라고 하더라. 그 정도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는 각성 능력자를 헌터협회가 파악 못 하고 있었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아무튼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승훈이 형의 말이 맞다.
일반인과 거의 차이가 없는 각성 능력자라면 몰라도, 사람 하나를 순식간에 살해하고 경찰들의 발포를 손쉽게 피하면서 도주까지 할 정도면 나름 실력자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자가 왜 갑자기 이런 짓을 할까?
‘뭐, 제이커도 있는데, 이상한 일은 아니지.’
게다가 그 여자가 제이커와 연관이 있는지 어떤지도 모른다.
“이철민 소장이 현장 조사 끝내고 조만간 협회장님한테 보고서 작성해서 올리기로 했다니까, 너도 관심 있으면 가서 같이 들어 보는 건 어때? 마침 이후의 일정도 없고.”
“무조건 그렇게 해야지.”
일단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나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난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다.
김두정이 어떻게 살해되었는지, 그리고 제이커가 또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