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62화 (162/250)

제41장. 시위 (7)

솔직히 말해서 김두정이 도망친다는 선택지를 고를 줄은 몰랐다.

내가 방심을 했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바로 앞에서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감히 도망갈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를 아예 예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랴부랴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는 김두정.

오피스텔 높이가 22층이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두정은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직접 계단을 내려가는 선택지를 고르게 되었다.

다다다다다.

녀석의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김두정과 다르게 나는 느긋한 걸음으로 녀석의 집에서 나왔다.

밖에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대기 중이었던 헌터들이 내 지시를 기다렸다.

“가서 잡아올까요?”

“아니, 됐어. 1층까지 내려가게 놔둬 봐.”

놔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녀석이 절대로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만들어 주기 위함이었다.

어디 보자.

소리로 파악하건대…….

‘슬슬 1층에 도착할 때가 되었나.’

빠르기도 하지.

생긴 것도 쥐 새끼 비스무리하게 생겼더니만, 도망치는 것도 참 빠르다.

그러나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만약에 일반인이었다면, 김두정의 도주는 매우 훌륭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랬다면 애초에 녀석이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갈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진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슬슬 가 볼까.”

계단과 계단 사이.

난간 틈으로 몸을 날렸다.

일일이 발로 계단을 밟고 내려가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거의 낙하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마침 김두정이 1층 마지막 계단으로 내려가려고 하던 찰나였다.

쿵! 소리와 함께 내가 김두정의 바로 앞에 착지했다.

“히익!”

너무 놀란 나머지 김두정은 뒷걸음질을 치다가 계단에 걸려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래, 열심히 도망쳐 본 소감이 어때?”

“어, 어떻게 여기까지…….”

“이 정도도 못 하면 어떻게 괴물들하고 싸우겠어. 안 그래?”

“…….”

22층 높이에서 1층까지 단번에 내려오는 것보다 몬스터와 목숨 걸고 사우는 게 당연히 백 배 천 배 더 힘든 일이다.

김두정도 내 활약상에 대해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보기 싫어도 뉴스에서 지겹도록 내보냈을 테니까.

“그래서, 협력은 거부하겠다, 이 뜻이지?”

김두정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이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녀석도 잘 알 것이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밀려오는 듯했다.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갔다.

김두정이 뒷걸음질을 쳤다.

막다른 길에 놓여 있을 때, 김두정은 팔을 X 자로 교차시키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난 여기서 죽는구나.

이런 공포가 녀석을 옥죄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입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뻗었던 내 손의 행방은 녀석의 목이 아닌, 어깨였다.

툭, 툭.

가볍게 두 번 정도 쳐 주고 난 다음에 녀석의 긴장을 풀어 줬다.

“너무 그렇게 움츠려 있지 마. 누가 보면 너 잡아먹으려고 온 사람인 줄 알겠어?”

“……??”

김두정이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굉장히 반항적이기만 했던 인상이 어느 순간 아무것도 모르는 토끼 눈이 되어 있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여하튼 나중에라도 나한테 협조할 생각이 든다면, 언제든지 나한테 연락하라고.”

녀석에게 나의 개인 명함을 건네줬다.

어안이 벙벙한 놈을 놔두고 나는 그대로 오피스텔 밖으로 향했다.

잠시 뒤.

김두정의 오피스텔 앞에서 나와 마주쳤던 헌터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내 쪽으로 합류했다.

“어땠어?”

내 물음에 헌터 한 명이 USB 파일을 건넸다.

“일단 녀석의 집을 수색해 봤는데, 제이커와 접점이 있다고 보이는 증거물은 없었습니다.”

“혹시 몰라서 놈의 컴퓨터에 있는 자료들을 전부 다 복사해 왔습니다.”

이 안에 제이커를 붙잡을 수 있는 실마리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고생했어.”

내가 김두정을 일부러 도망치게 만든 이유가 사실 여기에 있었다.

놈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헌터들을 시켜서 제이커와 김두정이 엮여 있을 만한 자료를 확보하라고 한 것이다.

결과가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USB를 확보하긴 했지만,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내가 김두정을 죽일 것같이 몰아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녀석도 제이커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거겠지.’

그냥 제이커한테 일방적으로 금전적인 지원을 받고 일을 하는 역할에 불과했다.

만약에 제이커에 대해 뭐라도 알고 있다면, 죽기 싫어서라도 나한테 아는 걸 전부 털어놨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두정은 침묵했다.

겁에 질려서 바들바들 떨기만 했을 뿐, 그 이상의 행동은 보여 주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직감했다.

이 녀석을 털어 봤자 뭔가 나올 ‘건덕지’가 없을 거라는 사실을.

그래서 헌터들이 USB로 자료를 확보해서 내게 가져다줬음에도 불구하고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오피스텔에서 완전히 벗어난 나는 이철민 소장에게 곧장 연락을 취했다.

* * *

헌터, 그리고 가수 겸 배우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다녔다.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직종을 가진,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을 알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한결같은 사람이 있다.

바로 이철민 소장이다.

이 소장은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간에 사람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레이드 시대가 종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가 연구해 오던 것을 계속 연구하고 있었다.

아이템이라든지, 던전 내부에서 발견된 광물 등을 과학기술에 접목시켜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최근에는 그쪽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는 듯했다.

물론 테러리스트들의 뒤를 쫓는 조사 역시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건네준 USB를 보면서 이철민 소장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뭡니까?”

“김두정의 PC에서 몰래 빼 온 데이터들입니다. 중요한 자료들이 나올 수 있을 거 같아서요. 그래서 소장님한테 가장 먼저 온 겁니다.”

“태오 씨가 왜 그자의 PC를 뒤진 겁니까? 반헌터연대 시위를 주도하고 있어서 그런 건가요?”

“제이커하고 내통하고 있다는 제보가 있어서요. 그래서 자체 압수 수색을 했습니다.”

이철민 소장이 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영장은 당연히 없는 채로였겠군요.”

“물론이죠.”

“알겠습니다. 그럼 이 일은 협회장님껜 당분간 비밀로 하겠습니다.”

역시 이철민 소장이다.

정식으로 수색 영장을 발부받고 난 다음이었다면 너무 늦는다.

그래서 내가 자체적으로 일을 진행했다.

만약 이 사실을 협회장이 아는 순간, 엄청난 잔소리가 쏟아질 것이다.

처벌까지도 받을 수 있지만, 그동안 내가 세운 업적들이 있다 보니 위쪽에서도 나를 함부로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안 들키는 거겠지만 말이다.

“일단은 그럼, 이것부터 확인해 보도록 하죠.”

이철민 소장이 자신의 컴퓨터에 USB 포트를 꽂아 연결했다.

데이터양을 보자마자 이철민 소장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시간이 좀 걸리겠네요.”

“저도 여기서 당장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 온 건 아니니까요. 시간 날 때 천천히 조사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뭔가 알아내는 거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철민 소장에게 자료 조사를 맡기자마자 승훈이 형한테서 바로 연락이 왔다.

“여보세…….”

-야, 강태오! 지금 스케줄 가야 하는데 너, 어디 있어! 얼른 안 튀어 오냐!

“알았어. 금방 갈게.”

차를 끌고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할 거 같고.

통화 내용을 들은 모양인지, 이철민 소장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아이템이라도 빌려줄까요?”

“기왕이면 이동속도 많이 올려 주는 그런 아이템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긴급 상황이 아니면, 웬만하면 아이템 사용을 자제하라는 말을 듣긴 했는데.

뭐, 혼날 짓을 이미 저질러 버렸으니까. 여기서 몇 마디 더 듣는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

* * *

차는 협회에 두고, 이철민 소장이 준 이동속도 아이템을 이용해서 빠르게 길거리를 누비며 겨우 승훈이 형과 멤버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확실히 이철민 소장이 개발한 아이템이라서 그런지 성능이 말도 안 되게 좋았다.

지면에 착지하자마자 승훈이 형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뭐 하다가 이제 온 거냐, 어?”

“김두정하고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왔지.”

승훈이 형이 운전석에 오르면서 물었다.

“알아낸 거라도 있어?”

“아직은. 이철민 소장이 시간 좀 걸릴 거라고 하던데.”

“우리가 바라는 결과라도 나왔으면 좋겠네.”

“글쎄.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왜?”

나는 승훈이 형에게 내가 이렇게 말한 이유에 대해 설명해 줬다.

만약에 김두정이 제이커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었다면, 내가 1층에서 겁박을 했을 때 얌전히 털어놓았을 거라는 사실까지 전부 다 공유해 줬다.

“딱 보니까 그 녀석, 제이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만약에 알았더라면 바로 자백했겠지. 제이커에게 그만큼의 충성도가 있어 보이진 않았으니까.”

“하긴. 나도 그렇게 보이긴 하더라.”

승훈이 형이 운전대를 돌렸다.

나 혼자 하는 스케줄이었기에 차 안에서도 이렇게 민감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제이커가 김두정을 시켜서 일부러 시위대를 움직이고 있다는 거, 정말이야?”

“어, QWE 미디어가 조사한 거니까. 다른 건 몰라도, 내가 부탁한 거는 잘 들어주거든.”

게다가 둘이 같이 있는 사진까지 나란히 찍혔으니까.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나온 셈이다.

“형 쪽은 어때?”

“나?”

“어. 연 대표하고 협회장도 계속 다른 국가들하고 협력해서 제이커의 행방을 찾아내겠다고 했잖아. 알아내는 거 있으면 그쪽에서 형한테 연락해서 나한테 알려 줄 거라고 들었는데.”

“내가 그쪽에 관한 일 말고 스케줄에 대한 이야기만 주야장천 하는 이유가 있지 않겠니.”

알아낸 게 없으니까.

홍콩에서 붙잡았던 다른 두 녀석들의 증언도 결과적으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제이커의 속셈이 뭘까?”

“글쎄.”

그걸 알면 나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고생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생각 없이 그냥 스마트폰을 들고 시간을 때우려고 했다.

이때, 유독 눈에 띄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기사 내용을 살피던 나는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김두정, 이 새끼. 아주 지독한 녀석이네.”

“왜?”

잠시 신호가 바뀔 때까지 대기하는 동안, 나는 승훈이 형에게 직접 내 스마트폰 액정 화면을 보여 주면서 말했다.

“시위 또 시작했대.”

“방금 너한테 그 일을 겪고도 또?”

아무래도 내가 녀석을 얕본 것 같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