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장. 시위 (6)
제이커라는 이름이 나왔음에도 나는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최재현 보도국장이나 남지덕 부장한테는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사실 시위대 뒤에 제이커가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이미 약간씩 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서 녀석의 본거지를 습격한 이후부터 갑자기 세계 곳곳에서 헌터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 하는 시위가 연달아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처음부터 이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그때부터 의심이 계속 들긴 했었는데.
QWE 미디어 덕분에 이 의심이 사실로 드러나게 되었다.
최재현 국장과 통화하기 위해 잠시 멤버들에게 양해를 구하기로 했다.
내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은 뒤, 최재현 보도국장의 번호를 찾았다.
신호음이 몇 번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여보세요?’라고 묻는 최재현 국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국장님.”
―제가 보낸 메시지 보시고 바로 전화 주실 줄 알았습니다.
역시. 기자의 감은 무시할 수가 없다.
통화를 건 목적이 뭔지도 다 아는 마당에, 굳이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었다.
최재현 국장이 곧장 본론을 꺼냈다.
―저희가 조사해 본 결과, 예전에 제이커와 자주 접선을 가졌던 이가 있습니다. 그자에 대한 자료를 전부 태오 씨한테 보내 드릴 테니까, 시간 날 때 확인해 주세요.
“지금 바로 보내 주실 건가요? 시간 날 때라고 하셨으니까 지금 당장 확인할까 생각 중입니다만.”
―하하, 알겠습니다. 그러면 남 부장한테 말해서 자료 바로 넘기게끔 하겠습니다. 지금 회사에 있으니까 오래 안 걸릴 겁니다.
“감사합니다, 국장님.”
최재현 국장이 말한 대로, 내 메일을 통해 바로 자료들이 넘어왔다.
하나하나씩 자료들을 살피다 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반헌터연대 시위를 이끌어 가고 있는 총 책임자, 김두정.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에도 얼굴을 비추면서 헌터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분위기를 열심히 조장 중인 사람이다.
워낙 이곳저곳에 출연해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으로만 봐도 김두정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뒤가 구린 남자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덜미를 잡으니까 내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차라리 잘됐다.
안 그래도 이 남자, 내가 한번 직접 손보고 싶었는데.
제이커의 꼬리라는 걸 알게 된 이상, 가만히 놔둘 수가 없게 되었다.
최 국장이 말했던 것처럼, 김두정과 제이커로 보이는 자가 기척이 드문 장소에서 몰래 접선을 하는 장면이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가까이서 찍은 건 아닌 거 같고. 상당히 멀리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체 어떤 장비를 쓰길래 이런 화질이 나오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뭐, 이런 게 기자들의 일이니까.
접선했던 장소들은 제각기 달랐다.
공통점이라고 볼 만한 게 없었다.
혹시나 다른 사람에게 꼬리가 밟힐까 봐. 그래서 일부러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 김두정과 접선을 펼쳤던 것 같다.
김두정에게 다수의 서류 봉투와 함께 현찰 뭉치를 건네는 장면도 포착되었다.
워낙 멀리서 찍은 사진이었기에 김두정의 정확한 표정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녀석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탐욕에 일그러진 표정. 아마 딱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제이커가 시켜서 우리 헌터들을, 더 나아가서 나를 규탄하려고 하는 김두정.
당연한 말이지만, 가만히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대신, 나한테 걸렸으니까 그 벌을 2배…… 아니, 3배 정도는 더 부풀려서 받아야겠지.
추가로 최 국장이 내게 건네준 김두정의 집 주소까지 확인을 마쳤다.
QWE 미디어가 나에게 해 줄 일은 딱 여기까지다.
이제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방향을 잡는 건 오롯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머리 좀 굴려 볼 시간인가.’
골치 아픈 시위 연대를 박살 내고.
여기에 더해서 제이커를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 * *
최근 김두정은 굉장히 기분이 언짢은 상태였다.
어렵게 사람들을 긁어모아서 시위대를 꾸리고, 헌터들이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열심히 알리고 있는데.
하필이면 헌터들이 맹활약할 기회가 연달아 주어지다 보니 김두정은 그간 자신이 쌓아 올린 공든 탑이 우르르 무너져 내린 기분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 평소대로라면 원래는 시위를 나갔어야 했지만, 도저히 그럴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오늘도 조용히 방구석에 앉아서 술만 들이켜야 했다.
한창 시위대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이럴 때에는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었는데.
지금은 방송국들도 대중의 눈치가 보이는 탓에 김두정에게 그런 연락도 해 오지 않았다.
물 대신 술로 목을 축이면서 자신들과 함께 반헌터연대를 꾸리고 있는 간부진에게 연락을 취했다.
조만간 이 분위기가 수그러들면 다시 시위에 나설 예정이니까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미리 준비해 놓으라는 내용의 메시지들을 보냈다.
여기에 더해서 다른 그룹 쪽 멤버들에게도 추가로 메시지를 전달해 두기로 했다.
이쪽은 악플 전담팀이다.
헌터들이 티비에 나오는 영상마다 악플을 달면서 그들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가장 유명한 헌터가 강태오다 보니 아무래도 그의 지분이 가장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내심 걱정되는 게 있었다.
“이러다가 꼬리가 밟히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제이커도 김두정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어딜 가든 항상 내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말라고.
즉, 쉬는 때에도 항상 행동 조심하라는 뜻이기도 했다.
김두정 역시 제이커 못지않게 요주 인물이 되어 버렸으니까.
메시지를 보내던 도중에 악플 전담 팀원들한테서 항의가 날아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돈은 언제 줄 거냐, 이런 뜻이었다.
제이커로부터 받는 돈이 오롯이 김두정에게만 가는 건 아니다.
그 돈을 가지고 시위대 운영에도 소모해야 한다.
하지만 제이커가 누군가에 얼마 정도의 돈을 지급하라, 이것까지 정해 준 건 아니었다.
오롯이 김두정의 뜻에 따라서.
그에게 전부 다 맡기다시피 했기에 김두정은 당연히 자신의 몫을 더 크게 가져가는 걸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본능이니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 모른다.
“거지새끼들. 틈만 나면 돈 달라고 ×랄 염병을 하네.”
오늘도 김두정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새어 나왔다.
담배가 필요한 시간.
그러나 찾으려던 담배는 없었다.
“망할. 되는 게 하나도 없네.”
짧게 혀를 찬 김두정은 마지못해 옷가지를 챙긴 뒤에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순간.
세 명의 남자들이 김두정을 에워쌌다.
“뭐, 뭐야, 당신들.”
김두정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남자들의 정체를 물었다.
그때, 남자들이 슬쩍 옆으로 몸을 뺐다.
그 사이에 한 남자가 싱긋 웃으면서 김두정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네가 김두정이냐?”
초면부터 반말로 임하는 젊은 남자.
그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김두정에게 호의를 가지고 이곳까지 찾아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 알지?”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면서 자신의 얼굴을 보여 주는 남자의 모습에 김두정은 기겁을 했다.
“가, 강태오……!”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했던 남자가 설마 이렇게 당당하게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 * *
김두정의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먼저 주변을 살폈다.
“집 좋네. 돈 좀 많이 벌었나 봐. 그치?”
“…….”
김두정은 내 말에 어떤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말만 안 할 뿐. 녀석은 나를 두고 굉장히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설마 내가 이런 식으로 대놓고 자신을 찾아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혹여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가 보일까 봐.
그러나 공교롭게도 나는 그딴 거 일절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다.
나쁜 일을 하러 온 것도 아니고 말이다.
“손님이 왔는데. 뭐 마실 거라도 줘야 하지 않겠어?”
김두정은 짧게 혀를 차면서 냉장고에 생수 하나를 꺼내 내 앞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땡큐.”
뜯겨 있지 않은 뚜껑임을 확인한 나는 생수병 하나를 뜯고서 잠깐 목을 축였다.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아서. 그래서 미리 물 좀 마셔 둔 거야.”
“내 주소는 어떻게 알아낸 거지?”
김두정은 자신의 개인 정보를 함부로 유출시키지 않았다.
방송에 출연할 때에도, 그리고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진행할 때에도.
자기 자신에 대한 건 철저하게 숨겼다.
마치 제이커처럼.
하지만 김두정은 제이커가 아니다.
철두철미한 그 녀석과는 달리, 허점을 여럿 남기고 말았다.
그 덕분에 QWE 미디어가 생각보다 쉽게 김두정의 뒤를 캐낼 수 있었던 거였다.
“주소는 내 지인이 알려 주더라고. 그래서 여기로 바로 올 수 있었지.”
“지인이라면…….”
“알고 싶으면 너도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면 돼.”
“…….”
김두정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내게 순순히 협력하지 않겠다는 뜻을 대놓고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나도 여기까지는 다 예상하고 왔다.
그래도 일단은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
“너한테 돈을 찔러주면서 시위를 하게끔 독려한 자가 누구냐?”
흑막의 정체를 네 입으로 직접 말해 봐라.
이렇게 물었다.
김두정은 이런 내 말에 이렇게 답했다.
“내 스스로가 했다. 너 같은 헌터들이 더 이상 우리 인간 사회에 필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왜, 찔리기라도 하나?”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갑자기 달라진 내 목소리에 김두정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김두정은 각성 능력을 지닌 자가 아니다.
설령 각성 능력을 지녔다 할지라도 나와 여기서 일대일로 붙어 봤자 아무런 승산이 없다.
헌터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나인데. 남을 시기하고, 질투만 할 줄 아는 김두정이 이런 나를 넘어설 리가 없다.
“제이커한테 뒷돈 받은 거잖아. 내가 그런 것도 조사 안 하고 여기로 온 줄 알았냐?”
“……!”
녀석이 거짓말을 하는지 어떨지. 한번 슬쩍 떠보려고 일부러 모른 척을 했던 건데.
아주 당연하게도 입만 열면 구라가 절로 술술 흘러나왔다.
뭐, 이것도 예상한 일이다.
만약에 김두정이 그렇게나 양심이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애초에 자신들을 도와준 헌터들을 오히려 통수치는 행동 따윈 하지 않았겠지.
아무리 돈의 유혹이 있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김두정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내, 내가 그딴 테러리스트하고 뒤, 뒷거래를 했다고? 즈, 증거 있어?”
“증거야 당연히 있지.”
QWE 미디어가 확보한 사진을 바로 보여 줬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찍혀 있는 사진을 본 순간, 김두정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거, 기사로 퍼뜨릴 수도 있었는데. 일 복잡하게 만들기 싫어서 그냥 너한테 온 거다. 고맙게 생각해.”
사실 녀석이 대책을 마련하기 전에 기습을 가하려고 일부러 온 거지만 말이다.
“자, 어떻게 할 거냐. 얌전히 나한테 털어놓을래? 아니면 끝까지 발뺌할래? 물론 후자를 택한다면 나도 끝까지 한번 해볼 생각이긴 한데. 자신 있으면 해보시든가.”
“…….”
오랜 고민 끝에 김두정이 택한 방법은 바로.
“×발!”
냅다 도망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