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장. 시위 (4)
한동안 잠잠했던 몬스터들이 오랜만에, 그것도 타국이 아닌 여기 대한민국에 출몰했다는 소식에 헌터 협회가 긴장의 끈을 바짝 조였다.
급하게 기자회견을 마친 나는 데이브, 준서, 그리고 승훈이 형과 함께 바로 현장으로 출동했다.
운전대를 잡은 승훈이 형이 내게 빠르게 몬스터 관련 정보를 공유해 줬다.
“이번에 나온 놈들, 스작이라고 하더라.”
“그 사마귀처럼 생긴 몬스터 말씀하시는 거죠?”
준서의 물음에 승훈이 형이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어, 맞아. 준서는 상대해 본 적 있어?”
“아니요. 헌터 훈련소에서 이론 교육받을 때 본 적이 있어서요. 그게 기억나서 말씀드려 본 거예요. 제가 알기로는 그 몬스터, 꽤 강한 걸로 기억하는데…….”
“맞아. 단체로 막 무리를 지어서 몰려다니는 놈들은 아니고. 3~4마리씩 소수로 이동하는 녀석들인데, 한 마리 한 마리가 꽤 강하지. 한 놈 상대하려면 A랭크 헌터 몇 명이 달라붙어야 할걸?”
“아니, 그러면 지금 엄청 큰일 아니에요?”
“그렇지.”
승훈이 형의 대답과 달리, 데이브는 다른 말을 꺼냈다.
“그렇게까지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다.”
“네? 무슨 말이에요, 형?”
나도 데이브의 말에 공감한다.
우리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바로 통신기에서 실시간으로 들려오는 헌터들 간의 대화 덕분이었다.
―C-23 구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헌터들은 응답 바람.
이에 대해 한 헌터가 이렇게 대답했다.
―현재 홍나빈, 아이리스. 대기 중.
마침 그 근처에 나빈이와 아이리스가 일정이 있었나 보다.
S랭크 헌터가 둘이나 있으니, 우리는 여유롭게 가도 될 것 같다.
* * *
HTB가 앨범 활동을 하는 동안, HTG의 경우에는 활동을 잠시 쉬어 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룹 활동’만 쉴 뿐이지, 개개인의 방송 활동까지 제한을 걸진 않는다.
실제로 홍나빈은 얼마 전에도 강태오와 함께 홍콩으로 넘어가서 던전탐험대 촬영을 마치기까지 한 적도 있었다.
오늘도 그녀는 그룹이 아닌 개인 방송 활동을 위해 이곳 판교 근처로 오게 되었다.
언니와 함께 게임 광고 촬영을 위해 판교에 위치한 어느 게임사를 방문한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갑자기 몬스터가 출몰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그녀가 있는 판교 근처에서.
인근에 있는 헌터들은 전부 현장으로 출동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 홍나빈은 게임사와의 미팅 도중에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저, 먼저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그리고 여러분들도 혹시 모르니까 대피소로 이동해 주세요. 아셨죠?”
“네, 알겠습니다.”
일시 중지된 미팅.
홍나빈은 언니인 유이빈과 매니저에게도 사람들을 따라 잠시 피신해 있으라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유이빈은 본인 몸보다 여동생 걱정이 더 앞섰다.
“괜찮겠어? 네가 상대하기에 버거운 몬스터라도 나타났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알았지?”
“알았어.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사람들하고 같이 피신해 있어, 얼른.”
사실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고를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뒤로 물러선다는 건, 이 인근에 있는 사람들이 몬스터에게 전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말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홍나빈은 헌터로 활동하면서 단 한 번도 자의로 먼저 현장에서 물러선 적이 없었다.
이 모습을 본 태오는 가끔 홍나빈에게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었다.
너무 융통성이 없다고.
가끔은 자신의 목숨을 소중하게 여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몇 번 잔소리를 하곤 했었다.
물론 그 잔소리가 효과를 발휘했던 적은 아직까지 없었다.
그럼에도 홍나빈은 언니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서 일부러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건물을 나서자마자 그녀는 가장 먼저 몬스터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C-23이면 바로 이 근처인데.’
그녀가 막 나온 이 회사 건물에서 멀지 않았다.
그러나 도로에는 몬스터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스작이라고 했지?’
스작은 덩치가 꽤 큰 몬스터다.
4층 빌라 정도 되는 크기를 가진 몬스터가, 그것도 4마리로 추정되는 것들이 판교 도심 내에서 꼬리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순간 홍나빈은 위화감을 느끼며 고개를 위로 추켜올렸다.
하늘 위. 그곳에 스작들이 날갯짓을 하면서 떠 있었다.
홍나빈이 자신들을 목격했음을 확인하자마자 얇은 곤충 날개를 접고서 아래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
홍나빈은 마른침을 삼킨 채 몸을 날렸다.
쿵! 쿠웅! 쿵! 쿵!
스작 네 마리가 각각 도로에 떨어졌다.
근처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은 스작의 날카로운 다리에 관통당해 반파당해 버렸다.
끼룩, 끼룩.
듣기 거북한 소리를 내면서 네 마리의 시선이 홍나빈에게 집중되었다.
스작은 생긴 것과 다르게 승부욕이 있는 몬스터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가 있으면,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고 강자를 먼저 꺾기 위해 달려드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도심 한복판에 스작이 나타나도 홍나빈 같은 헌터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다.
물론 C랭크나 D랭크처럼 전투력이 굉장히 약한 헌터가 있다면, 스작으로부터 어그로를 끌 수 있는 확률도 같이 낮아지겠지만 말이다.
스작들의 어그로를 끌기 위해 홍나빈은 이어폰 한 짝을 꺼내서 HTB 그룹의 노래를 반복 재생시켰다.
HTG보다는 HTB의 노래가 MML 수치가 더 높기 때문에 일부러 다른 그룹의 노래를 택한 거였다.
그리고 HTG는 아무래도 홍나빈이 속해 있는 그룹이다 보니 노래를 워낙 많이 들어서 기분이 업 되거나 하질 않는다.
노래를 듣는 사람의 기분과 마음가짐에 따라 MML 수치가 반영되기 때문에 더더욱 HTB의 노래를 픽할 수밖에 없었다.
S랭크에서 한층 더 전투력이 상승하자, 스작들의 이목이 아예 홍나빈에게 집중되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아이템이라도 몇 개 챙겨 올 걸 그랬네.’
요즘 몬스터들이 거의 나타날 일이 없다 보니 홍나빈도 어딜 가든 아이템을 챙기고 다니진 않았다.
레이드 시대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평화의 시대에는 아이템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 게 오히려 일상이 되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조심해야겠어.’
나름 높은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는 몬스터를,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닌 네 마리나 혼자서 상대를 해야 하다 보니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맨 앞에 있던 스작 한 마리가 칼날보다도 더 날카로운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 자신의 앞발을 휘둘렀다.
공기마저 베어 버리는 섬뜩한 소리가 홍나빈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홍나빈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면서 스작의 공격을 가볍게 회피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한 마리가 협공을 가해 왔다.
스작은 전투력도 전투력이지만, 두뇌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거의 인간에 가까운 지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스작을 상대하는 게 더더욱 까다로웠다.
이번에도 허리를 숙이면서 회피 동작을 펼친 그녀.
크게 한 번 공격을 흘린 뒤, 홍나빈은 마나로 강화시킨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서 두 번째 스작에게 달려들었다.
놈들의 약점은 바로 역삼각형 모양을 띄고 있는 저 머리다.
머리만 박살 내면, 놈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세 마리째 스작이 자신의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
낫과 같은 팔을 휘두르자, 이번에는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홍나빈은 손을 뻗어서 놈의 팔을 붙잡았다.
그대로 지면에 내리꽂힌 그녀.
일반 사람이었더라면 이미 몸이 터졌을지도 모르지만, 각성 능력을 지닌 그녀에게는 부상조차 되지 않았다.
“하압!”
짧은 기합을 내지르면서 스작의 팔을 뽑아내 버렸다.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가느다란 스작의 오른쪽 앞발이 쑥 뽑혔다.
놈들의 파란 피가 도로를 가득 적셨다.
괴성을 지르는 스작. 동료가 치명상을 입는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나머지 스작들의 공격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홍나빈은 유연한 몸놀림으로 스작들의 공격을 피해 냈다.
그사이, 앞발을 잃었던 스작의 팔이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스작을 상대하기 까다롭게 만드는 그 두 번째 요소가 바로 저 재생 능력이다.
나머지 스작들은 동료 스작이 무사히 앞발을 재생시킬 수 있도록 시간을 벌기 위해 세 마리가 동시에 홍나빈을 공격해 댔다.
몸집에 비해 상당히 빠른 공격들이 홍나빈에게 집중되었다.
회피하는 건 일도 아니지만.
‘공격할 찬스가 없어.’
이게 문제였다.
단순히 피하기만 한다고 해서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놈들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목적이다.
어떻게 할까.
만약에 강태오였다면, 여기서 과연 어떤 승부수를 던지려 했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이때.
세 마리 중 한 마리의 머리가 콰직! 하고 터졌다.
홍나빈이 뭔가 일격을 가한 건 아니었다.
그냥 가만히 있다가 허무하게 죽임을 당한 거였다.
쓰러진 스작 위로 한 여성이 머리를 쓸어 내렸다.
바람에 휘날리는 금발.
홍나빈이 잘 아는 여성이었다.
“아이리스 씨?”
아이리스는 자신의 신발에 묻은 몬스터의 파란색 피를 보면서 불쾌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이렇게 피를 튀기면서 죽는 몬스터들을 제일 싫어하는데. 재수 없게도 딱 걸려 버렸네요.”
그렇다고 몬스터들이 활개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가만히 있을 순 없고.
그래서 아이리스도 홍나빈을 돕기 위해 이 전투에 참전하기로 했다.
갑자기 늘어난 또 다른 S랭크 헌터.
아이리스가 홍나빈을 보면서 물었다.
“보니까 맨몸 전투는 약간 어려워하시는 거 같은데요?”
“오랜만이라서 그런 거예요.”
“어머, 그래요?”
두 여자의 미묘한 신경전은 전장에서도 계속되었다.
한편, 동료의 죽음으로 인해 완전히 눈이 돌아간 스작들이 아이리스를 노리기 위해 달려들었다.
육중하지만 상당히 빠른 몸놀림을 선보이면서 그녀의 머리를 노리기 위해 앞발을 휘둘렀다.
아이리스는 코웃음을 치면서 위로 크게 도약했다.
그사이, 홍나빈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가느다란 철근 봉 하나를 집어 들었다.
여기에 마나를 최대한 실은 뒤.
후우웅―!
그것을 있는 힘껏 던졌다.
빠르게 날아든 철근 봉이 다른 스작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했다.
이제 남은 건 두 마리뿐.
아이리스가 홍나빈을 내려다보면서 시선을 마주쳤다.
그 모습에 홍나빈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별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여성은 알아서 척척 각기 다른 스작들을 노렸다.
죽은 스작의 앞발에서 칼날 부분만 떼어 낸 홍나빈은 그것을 들고서 다른 한 녀석의 목을 그어 버렸다.
한편 아이리스는 아래쪽으로 파고들어서 올려 차기 형태로 스작의 턱과 머리를 통째로 박살 냈다.
콰직! 푹!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두 마리의 스작이 동시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네 마리를 제압한 두 여성.
피해 있던 사람들은 헌터들의 승리를 확인하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홍나빈이 아이리스를 향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저희, 나름 호흡이 잘 맞네요.”
“그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