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장. 도주 (3)
호텔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불현듯 내 머릿속에 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필이면 던전 탐험데 출연진, 제작진이 지금 머물고 있는 곳도 호텔이다.
도주자들은 제이커와 같이 행동하는 테러리스트들이고.
두 가지 요소가 맞물리니, 예감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 근처에 있는 호텔들을 빠르게 추슬렀다.
외국인들이 자주 머무르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호텔들을 위주로 검색을 시작했다.
‘도망친 녀석들이 발견된 위치를 고려한다면…… 그 뚱땡이 녀석도 여기서 멀리 도망가진 못했을 거야.’
반경을 설정하고 검색을 하니, 대략 다섯 개의 호텔이 나왔다.
공교롭게도 그중 하나의 호텔이 우리 던전 탐험대 관계자들이 묵고 있는 곳이었다.
나는 이런 사실들을 다른 헌터들에게도 전부 공유해 줬다.
헌터들이 알겠다면서 내가 지목한 다섯 개의 호텔을 먼저 집중적으로 훑어보기로 했다.
나는 던전 탐험대 출연진, 제작진이 머물고 있는 호텔로 먼저 향하기로 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나도 지인들이 머물고 있는 호텔을 우선적으로 살펴보게 되었다.
괜히 기분 좋게 녹화하러 홍콩까지 왔는데 테러 사건에 휘말리면, 그만큼 재수 옴 붙은 상황도 없을 것이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이아담과 양성빈, 그리고 박민진 PD가 나를 보면서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태오 씨?”
“태오야, 왜 여기에 있어?”
“도망쳤다고 했던 그 남자들은 벌써 다 잡은 건가요?”
이들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두 명은 지금 추격 중이고, 한 명은…….”
내가 말을 하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호텔 로비 쪽이 시끄러워졌다.
“다들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다. 조금이라도 허튼수작 부리는 순간, 이 호텔 전체를 불태워 버릴 테니까…… 크큭!”
아까 던전 안에서 봤었던 셋 중의 한 명, 그 뚱땡이가 음침한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인질극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황하는 세 사람을 향해서 나는 미처 말하지 못했던 것을 말해 주기로 했다.
“한 명은 지금 막 발견했네요.”
* * *
남자의 이름이 뭔지, 나는 정확하게 모른다.
헌터들한테 처음 끌려가서 취조를 받았을 때 말했던 이름은 원하오라고 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진짜인지 어떤지는 확인이 불가했다.
아무튼, 자신을 원하오라고 주장한 남자는 호텔 로비 카운터를 지키던 여직원들을 인질로 삼으면서 로비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지금부터 이곳은 내가 접수한다! 당장 입구 문 닫고 다들 엎드려! 어서!”
호텔 투숙객과 직원 들은 남자의 말을 듣기 위해 황급히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협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원하오의 한쪽 눈썹이 꿈틀했다.
“네 녀석은 뭔데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서 있냐. 엉?”
“나 벌써 잊었냐? 잘 봐 봐. 기억이 안 날 수가 없을 텐데.”
원하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내 얼굴이 잘 안 보이는 듯했다.
그렇다면, 내가 친절하게 가 주는 수밖에 없겠구만.
이동속도를 올려주는 버프 아이템을 이용해서 순식간에 녀석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원하오는 내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전혀 몰랐던 모양인지 크게 놀랐다.
놀라는 것조차 반 박자 느렸다.
내 행동이 반응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빨라서 그랬던 것도 있긴 하겠지만.
원하오의 반응 속도가 그만큼 느린 탓도 있었다.
왜냐하면 녀석은 일반인이니까.
제이커에게 어떤 힘을 받았는지 나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힘을 하루아침에 자유자재로 사용하지는 못할 터.
우선 손쉽게 여직원을 구한 뒤 내 뒤로 보냈다.
그러자 원하오가 기겁을 했다.
“너, 넌……!”
“안녕, 돼지 녀석아. 아까 던전에서 보고 또 보네?”
입에서 욕지거리를 내뱉던 녀석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했다.
충분히 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녀석이 무엇을 어떻게 할지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일시적으로 각성 능력자의 힘을 얻게 해 주는 그 장치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녀석의 행동을 방치했다.
녀석의 품 안에서 붉은 보석이 튀어나왔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그 붉은 보석과 비슷했다.
하지만 아예 똑같은 건 아니었다.
크기가 좀 더 컸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색깔이 더 짙게 보였다.
“그래서, 그거 가지고 뭘 어떻게 할 건데?”
“……!”
원하오는 내가 빤히 보고만 있자, 당황한 모양인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방심하고 있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그 보석을 양손으로 거머쥐었다.
그리고…….
보석을 머리 위로 내려쳤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마나가 원하오의 몸 전체를 감쌌다.
“어, 어어어……?”
원하오의 몸이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자신도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 살려 줘……!”
내게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해 보지만.
이미 늦었다.
붉은 마나는 녀석의 몸을 집어삼키고서 불태우기 시작했다.
화르륵!
새로운 장작을 손에 넣은 불씨처럼 계속해서 몸집을 부풀려 가더니, 파이어 골렘 한 기를 내 눈앞에 소환해 냈다.
그러나 대전에서 상대했던 그 파이어 골렘과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자체적으로 인격이라는 걸 가지고 있는 소환수처럼 보였다.
‘인간을 양분으로 흡수해서 그런가.’
어이가 없었다.
원하오는 보석을 사용하기 전까지 자신이 무슨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었다.
오죽하면 나한테 살려 달라고 애원까지 했겠나.
결국 이건 제이커의 실험에 불과했다.
이제 어떻게 한다?
이 녀석을 산 채로 데려가야 하나?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 때.
나빈이 쪽에서 소식이 들려왔다.
-선배님, 그 테러리스트, 잡았습니다.
“생포했어?”
-네. 품 안에 붉은 보석이 있는데, 이전 것보다 크기가 좀 더 커요.
“그거, 아무도 만지지 말라고 해.”
-네?
“방금 그 뚱땡이 녀석이 붉은 보석을 지가 스스로 깨뜨렸는데, 파이어 골렘으로 변했어.”
-인간을 매개체로 소환수를 소환했다고요? 그게 가능한 일이에요?
“가능하니까 실제로 벌어졌겠지. 아무튼 웃자고 한 농담 아니니까 녀석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 싹 다 찾아내서 분리 조치 시켜 둬. 그 녀석도 불타는 돌덩어리 신세가 되기 전에.”
-네, 알겠어요.
이런 정보를 추가로 승훈이 형하고 준서에게도 전했다.
“형, 내가 한 말 들었지?”
-어. 안 그래도 우리도 거의 다 잡아 가고 있…… 준서야! 그 새끼 잡아! 나이스!
준서가 나름 활약을 했나 보다.
역시, 형하고 준서하고 같은 팀을 맺게 짠 게 신의 한 수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테러리스트 셋 중 둘을 확보했다.
무사히 생포했다는 소식에 내 고민 역시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너 말고도 인간의 말로 증언해 줄 수 있는 녀석들이 둘이나 있단다.”
파이어 골렘은 고개를 까닥하면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말을 이해 못 하는 거 같아서 다시 한번 더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로 했다.
“넌 나한테 뒈진 목숨이라고, 이 새끼야.”
* * *
다른 테러리스트들을 붙잡았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눈앞에 있는 파이어 골렘을 처치하는 데에 망설일 필요가 없어졌다.
골렘을 움직이게 하는 핵을 찾아내기 위해 손을 뻗어 녀석의 가슴팍을 꿰뚫으려 했다.
그러나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골렘이 몸을 살짝 옆으로 비틀면서 내 움직임을 피해 냈다.
마치 격투술을 배운 사람과 같은 움직임이었다.
“오,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그대로 발을 뻗어 놈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파이어 골렘의 몸이 벽에 처박혔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몰라서 나는 아까 마주쳤던 출연자, 제작진에게 외쳤다.
“사람들하고 같이 밖에 나가 있으세요. 그쪽이 훨씬 더 안전할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호텔 밖을 향해 피신하는 이들.
한편.
벽에 박힌 파이어 골렘이 주먹 쥔 손으로 벽을 쿵! 쿵! 부숴 대면서 몸을 빼내기 쉽도록 공간을 만들어 냈다.
인간의 몸을 매개체로 해서 소환된 소환수이기 때문에 일반 파이어 골렘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추측이 확신으로 변했다.
녀석은 생각이라는 걸 하고 있었다.
물론 지능이 엄청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골렘의 특성상 두뇌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이철민 소장이 이 광경을 봤다면 아주 눈이 뒤집혔을지도 모르겠네.’
듣도 보도 못한 케이스가 나타났다면서 좋아할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철민 소장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 녀석은 여기서 없애는 게 좋아 보인다.
만약에 저놈이 학습이라는 걸 하기 시작하면, 지금보다 더한 짓을 벌일 수도 있다.
파이어 골렘도 지금은 나를 상대로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인지, 싸우는 것보다 도망치기를 택했다.
녀석은 호텔 벽을 부수고 밖으로 향했다.
“내가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줄 알았냐?”
마나로 얇은 보호막을 만들어 맨손으로 놈의 발을 붙잡았다.
힘을 주면서 녀석의 왼쪽 다리를 아예 박살 내 버렸다.
콰지직!
돌덩이가 부서지면서 육중한 몸이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그러나 녀석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근처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집어 들고서 내게 냅다 던져 버렸다.
시간을 끌기 위한 행동이었다.
보면 볼수록 어이가 없었다.
파이어 골렘의 행동 하나하나가 정말로 인간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변종 중에서도 변종이다.
날아드는 차를 가볍게 회피한 나는 파이어 골렘의 위에 올라탔다.
주먹을 휘두르면서 내게 저항해 보려고 했지만.
“끝났어, 이 자식아.”
오른발을 살짝 들어 올린 다음에 그대로 내리찍었다.
파이어 골렘의 가슴팍이 쩌적! 하고 갈라지면서 핵이 드러났다.
핵을 보자마자 나는 짧게 혀를 찼다.
내가 알고 있는 일반 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심장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녀석은 살아 있는 것도, 죽어 있는 것도 아닌 애매한 존재가 되었다.
제이커 때문에.
미리 챙겨 온 단검을 들고서 놈의 핵을…… 아니, 심장을 찔렀다.
그제야 파이어 골렘의 모든 기능이 정지했다.
레이드 시대에서 별의별 몬스터들을 다 상대해 봤지만.
이렇게 황당한 경우는 난생처음이다.
* * *
사건이 어느 정도 종료되고 난 뒤, 이철민 소장이 현장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과 융합되어 소환된 파이어 골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단걸음에 찾아온 거였다.
이철민 소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미쳤군요.”
“혹시 몰라서 묻는 건데, 저한테 말한 거 아니죠?”
이철민 소장은 작게 웃었다.
나도 그냥 웃자고 해 본 말이다.
핵을 제거하자, 우리가 아는 일반 파이어 골렘처럼 녀석은 기체가 되어 공중분해되었다.
물론 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핵을 천천히 살피던 이철민 소장은 내가 느꼈던 것과 동일한 말을 꺼냈다.
“인간의 심장 같네요.”
“그렇죠?”
이 사건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일반인도 언제든 각성 능력으로 특수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셈이니까 말이다.
벌써부터 우리 협회장님의 머리가 아파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