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장. 도주 (2)
호출기에서 이렇게 소리가 나는 경우는 보통 두 가지밖에 없었다.
몬스터가 나타나거나.
아니면 헌터의 도움이 필요한 기타 상황이 발생했거나.
레이드 시대 당시에 이 호출기가 울리는 경우, 90퍼센트 이상이 전자에 속했다.
아이리스가 나를 다급하게 찾았다.
“오빠! 이거, 몬스터 때문에 울리는 거겠죠?”
“글쎄.”
방금 내가 90퍼센트 이상이라고 말을 했지만, 평화의 시대에 접어들고 나서는 이 확률이 크게 변동했다.
몬스터들이 출현하는 일보다 더 인류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일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 승훈이 형이 이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전달했다.
“몬스터가 나타나서 울리는 게 아니야.”
“그러면?”
아무래도 승훈이 형이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던 것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어 보였다.
승훈이 형이 우리에게 던전 탐험대 촬영이 막 시작되었을 때의 일에 대해 물었다.
“아까 던전 안에 들어갔을 때 수상쩍은 남자 세 명 체포했던 거, 기억하지?”
“물론이지.”
몇 달 전에 있었던 일도 아니고, 불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을 내가 잊어버릴 리 없지 않은가.
승훈이 형이 복잡해 보이는 표정으로 방금 그 남자들을 언급한 이유에 대해 알려 줬다.
“그 자식들, 도주했대.”
* * *
승훈이 형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현장으로 향했다.
사거리 도로 바닥이 새카맣게 그을음이 져 있었다.
“이게 아까 그 남자들의 소행이다, 이거지?”
“어, 내가 듣기론 그렇다더라.”
나는 고개를 돌려 근처에 주차되어 있는 구급차들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까 우리들한테서 남자들을 넘겨받았던 헌터들이 부상을 치료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부에서 그자들을 심문해 봤는데, 그때도 신원이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었대. 무엇을 하려고 광물 던전에 들어갔냐고 물어도 횡설수설하기만 하고. 수상쩍다고 생각해서 그 남자들을 구금하려고 수송하던 와중에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더라.”
승훈이 형이 내게 알려 준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수송 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와중에, 갑자기 남자들이 불길에 휩싸인 소환수들을 소환했다고.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절로 연상되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제이커네.”
“맞아. 아무래도 그 남자들, 제이커의 수하였던 거 같아.”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그자들, 각성 능력자가 아니었는데도 소환수를 소환했다고?”
“그게 문제지.”
제이커 녀석, 설마 일반인도 일시적으로 소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뭔가를 개발했나?
이러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지금까지 이런 특수 범죄는 각성 능력을 가진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범죄였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일시적으로나마 각성 능력에 버금가는 힘을 손에 거머쥘 수 있다면, 이런 특수 범죄가 갈수록 늘어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제이커, 그놈은 이쪽 방면으로 참 고단수네. 누가 보면 테러리스트가 되기 위해 태어난 녀석인 줄 알겠어.”
“그럴지도.”
“근데 형, 그 도망쳤다는 세 명, 아직도 못 잡은 거야?”
“그게 문제지.”
일반인은 각성 능력의 무서움을 전혀 모른다.
자신이 일시적으로 힘을 얻었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릴 수도 있다.
힘에 심취한 나머지, 각성 능력자들보다 더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게다가 녀석들은 제이커가 만들어 준 소환 매개체를 가지고 있다.
그걸 잘못 사용하는 순간.
대전에서 벌어진 화재 사건보다 더 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승훈이 형이 실시간으로 현지 헌터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현재 상황에 대해 알려 줬다.
“일단 동원할 수 있는 헌터들은 죄다 동원해서 녀석들의 뒤를 쫓고 있는 중이래.”
“그러면 우리들도 움직여야겠네.”
“그러는 편이 좋겠지. 들어오는 정보 있으면 수신기를 통해서 알려 준다고 하니까, 미리 착용하고 있어.”
“오케이.”
수신기를 귀에 꽂자마자 아이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어디 있어요?
“아까 그 남자들이 문제를 일으켰던 곳에. 너는 나빈이, 준서하고 같이 출연자들하고 제작진, 무사히 숙소로 바래다줬어?”
-네. 오늘은 회포 풀 생각 하지 말고 얌전히 호텔 안에서 지내고 있으라고 했어요.
“잘했어. 괜히 돌아다녔다가 인질극에 휘말릴 수도 있으니까.”
그 남자들이 언제 어디서 트러블을 일으킬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도 언제 테러리스트들과 마주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얼굴에 보이고 있었다.
이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선.
‘우리가 빨리 놈들을 잡는 것 말고 방법이 없겠지.’
아이리스와 어디서 합류할지 대충 장소를 정한 나는 승훈이 형을 불렀다.
“형! 애들하고 합류할 거니까 우리도 움직이자.”
“어디서 모이기로 했는데?”
여기는 한국이 아닌 홍콩이다.
익숙한 장소가 아니다 보니, 어느 장소에서 만나자고 정하기가 상당히 애매했다.
우리 모두가 다 위치를 알고 있어야 하는 장소.
“어제 저녁 먹었던 그 식당 앞으로.”
여기가 지금 우리들에 한해서 최적의 약속 장소로 선정되었다.
* * *
승훈이 형과 함께 차를 타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아이리스 일행이 우리보다 한발 먼저 앞서서 이곳에 와 있었다.
어제 그렇게 북적이던 가게 안이 오늘은 굉장히 한산해 보였다.
준서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테러리스트들 때문에 아까부터 사장님이 장사 안 된다고 계속 한숨 쉬고 계세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어디서 무슨 테러가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다.
“우리도 여기 현지 헌터들과 같이 그 녀석들 찾는 데에 협력하자고. 조를 나누어서 움직이는 게 좋겠지?”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리스하고 나빈이하고 같이 움직이고, 승훈이 형은 준서 데리고 가.”
“너는?”
“난 작전 수행할 때에는 혼자가 편해.”
물론 팀플레이가 필요할 때에는 팀을 짜서 움직이는 게 더 편하겠지만, 지금은 최대한 많이 나뉘어서 수색 활동을 펼쳐야 했기에 일부러 이렇게 세 개 조로 나누게 되었다.
나빈이하고 아이리스가 평소에는 투닥거려도, 둘 다 프로 정신이 매우 투철한 편이었기에 중요한 작전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에는 얌전히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준서는 혼자 돌아다니게 만들기에는 너무 불안하고. 그래서 경험이 많은 승훈이 형을 일부러 붙여 뒀다.
나는 혼자서 잘하는 타입이니까.
그래서 나만 따로 떨어져서 움직이기로 했다.
오면서 미리 챙겨 온 아이템들을 장착했다.
마력을 불어 넣자, 뜨거운 바람이 내 주변에 일렁였다.
‘여기 오기 전에 아이템을 한 번씩 점검해 두길 잘했네.’
움직이기 전에 이철민 소장한테 들러서 마이크 아이템이라도 받아 올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갑자기 전장의 아이돌이 필요해지는 상황이 올지도.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상대는 각성 능력자가 아닌 일반인이다.
전적으로 소환 아이템에 의존하는 상대이기 때문에 굳이 내 노래 버프의 힘까지 필요하진 않아 보였다.
‘슬슬 이동해 볼까.’
한국에서 가끔 차가 막힐 때 아이템을 사용해서 건물 사이를 크게 도약해 이동했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같은 이동 방식을 취했다.
역시 홍콩이라고 해야 할까.
고층 건물이 상당히 많다.
덕분에 나는 시야를 최대한 확보하면서 이동할 수 있었다.
시력을 강화시킨 덕분에 고층 빌딩 위를 뛰어다녀도 아래가 훤히 보였다.
‘어디 보자. 수상쩍어 보이는 사람은 없는데.’
던전 내에서 남자들과 실제로 마주쳤던 적이 있었기에 얼굴을 떠올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도망친 자들 중에서 한 명은 체형이 비대했고 살짝 서구적인 요소가 섞인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두 명은 평범한 체형이긴 하지만, 인상이 상당히 독특했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있거나, 턱이 사각 턱이거나.
특징으로 잡을 만한 요소들이 하나씩 있어서 지나가다가 녀석들을 놓칠 일은 거의 없어 보였다.
이동하는 와중에도 나는 수신기에서 들려오는 실시간 정보를 놓치지 않았다.
-B-1구역, 이상 없음.
-C-3구역, 이상 없음.
-D-5구역에 수상한 거수자 발견. 지원 요청 바람. 이상.
홍콩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지 헌터들은 B구역이 어딘지, D구역이 어딘지 바로바로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나 승훈이 형, 아이리스, 나빈이, 준서는 잘 모른다.
대충 눈치로 때려잡는 수밖에 없다.
마침 나빈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그 세 명 중 한 명, 저희 근처에서 발견된 거 같아요.
“헌터들이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너희도 같이 이동해 봐. 혹시 녀석이 위험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현장에 S랭크 이상 가는 전투력을 보유한 헌터가 있으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그러면 그쪽은 마음 놓고 안심해도 된다는 소리다.
‘그럼 나는 나머지 두 명을 찾는 데에 집중하면 되려나.’
이렇게 많은 인력들이 한꺼번에 분산되어서 도주한 녀석들을 쫓는 거니까.
금방 발견할 수 있을 거다.
내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태오 형! 저희, 한 명 찾았어요! 지금 승훈이 형이 뒤쫓고 있어요!
이쪽은 아이리스, 나빈이 조와 다르게 아예 본인들이 직접 도주자를 찾은 모양인가 보다.
“조심해. 특히 준서, 너. 현지 헌터들이 도착할 때까지는 웬만하면 직접적인 전투는 피하고, 시간만 끌도록 해. 승훈이 형도 내 말 들었지?”
-그래, 알았다.
준서는 잠재력은 있으나 실전 경험이 별로 없으면서 랭크도 낮고.
승훈이 형의 경우에는 부상을 입어서 현역으로 활동할 당시만큼의 전투력을 보여 주진 못한다.
그래서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승훈이 형이 엄청 약하다는 소리는 아니고.
부상을 당했다 할지라도 A랭크 헌터들은 우습게 제압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이리스, 나빈이를 놔두고 준서를 형에게 붙여 준 거였다.
각각 두 팀에게 현재 발견된 녀석들의 신체적 특징을 물었다.
사각 턱 한 명, 광대뼈 한 명.
그렇다면.
‘남은 건 뚱땡이인가.’
몸집이 커서 잘 도망 못 다닐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른 동료들과 다르게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이미 수배령이 떨어진 상태고.
얼굴을 드러낸 채로 쉽게 거리를 돌아다니진 못하고 있을 텐데.
‘어딘가에 짱박혀 있는 거 아니야?’
사실 이 가능성이 제일 크다.
어설프게 도망칠 바에야, 그냥 확실한 장소 한 군데에 들어가서 상황이 잠잠해질 때까지 몸을 숨기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눈치를 좀 보면서 도망치면 되는 거니까.
아니면 협력자가 올 때까지 존버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고.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 전에 어떻게든 녀석을 찾아내야 한다.
가만있어 보자.
‘체형이 크고 약간 외국인 느낌을 풍기는 남자가 별다른 수상한 시선을 받지 않은 채로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소가 과연 어디일까?’
답은 이미 나왔다.
‘호텔밖에 없어!’
내 걸음이 절로 빨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