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46화 (146/250)

제37장. 협박 (5)

뒤늦게 배우들과 감독들은 자신들이 방금 겪은 일들이 테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쩐지! 그 남자…… 아니지. 그 골렘? 아무튼 이상해 보였어요!”

“주최 측이 이런 재미없는 이벤트를 준비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정말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는 처음에 제가 취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헛것이 보이나 싶었어요.”

피해자들이 경찰에게 자신들이 보고 들었던 것을 그대로 알려 주고 있었다.

나와 승훈이 형은 다른 사람들처럼 일일이 이런 걸 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미국 지부 쪽과 직통으로 접선을 가졌기 때문이다.

바로 출동한 헌터협회 미국 지부 직원들이 현장 검증에 나섰다.

쓰러져 있는 누더기 골렘부터 먼저 수거한 뒤, 나와 승훈이 형이 기능을 정지시켰던 마나 폭탄들도 같이 회수해 갔다.

“그리고 이것도 잊지 마시고요.”

직원에게 동그란 무언가를 하나 건넸다.

직원은 이걸 보자마자 무슨 물건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누더기 골렘의 핵이군요.”

“네. 보니까 파이어 골렘의 것하고 형태가 유사합니다. 제이커, 그자의 소행이겠죠.”

바로 감이 왔다.

애초에 이런 대규모 테러를 자행할 사람은 지금 단계에서는 제이커가 유일했다.

배우, 감독 들이 테러 사건에 휘말렸다는 공포를 뒤늦게 토로하고 있을 때.

나는 승훈이 형과 함께 현장을 찾은 헌터협회 미국 지부 지부장을 따로 만났다.

지부장이 우리들과 짧게 악수를 나누면서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여러분들 아니었으면, 오늘 밤 미국은 테러 관련 뉴스로 떠들썩했을 겁니다.”

“지금도 그렇게 보이긴 하지만요.”

게다가 인질이 하나같이 다 유명한 영화감독, 배우 들이라서 그런지 더더욱 대서특필되었다.

“만약 현장에 여러분들이 안 계셨더라면, 더 큰 일이 벌어졌겠죠.”

“네. 그럴 겁니다.”

각 나라별로 일반 경호원에 더해서 헌터들도 추가로 경호원으로 등록해야 한다는 법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들었다.

이런 식으로 테러리스트들이 활개를 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이번 테러리스트 사건으로 인해서 아마 이 법안이 빠르게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헌터들이 활약할 무대가 또 늘어나긴 할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각성 능력을 악용하는 각성자들을 막기 위해 헌터들을 고용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 상황을 마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할 수는 없었다.

각성 능력을 지닌 자들이 특수 범죄를 일으키면 일으킬수록.

우리 헌터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게 될 테니까 말이다.

‘안 그래도 테러리스트들 때문에 요즘 내 활동 영상에 악플이 많이 늘어난 기분이었는데.’

아니, 단순히 기분만 그런 게 아니다.

실제로 비율이 많이 늘었다.

그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대전에서 벌어진 사건의 피해자가 그런 식으로 울분을 토해 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헌터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하면 대중은 주저 없이 나를 택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거였다.

제이커가 날뛰면 날뛸수록, 이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골치 아프네.’

내가 제이커를 잡는 데에 더욱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 * *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숙소가 아닌 헌터협회로 바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협회장이 나를 보자고 따로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협회장만이 아니었다.

연 대표하고 이철민 소장도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협회장이 나를 보자마자 반가운 얼굴로 손짓했다.

“고생 많았다. 와서 커피라도 한잔 마셔라.”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살짝 피곤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협회장이 직접 준비해 준 커피 덕분에 약간이나마 이 피곤함을 쫓아낼 수 있었다.

협회장이 나를 보면서 승훈이 형에 대한 행방을 물었다.

“승훈이는? 같이 안 왔어?”

“급한 볼일이 있어서 잠깐 자리 비웠습니다. 조금 있다가 올 거예요.”

“그 볼일이 화장실인가 보군.”

“네, 미국에서 기름진 걸 너무 많이 먹었나 봅니다.”

“그럴 수 있지.”

협회장은 이런 거에 크게 신경 쓰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그리고 나와 승훈이 형이 미국의 유명 셀럽들이 테러를 당할 뻔한 걸 구해 줬는데, 협회장의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도 했다.

안 그래도 협회장과 연 대표는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감사 인사를 받고 왔다고 알고 있다.

그러면서 테러리스트에 대한 경계를 더욱 높이겠다고 선포했다.

“미국에서 조만간 1천 명 이상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의 경우, 반드시 헌터들을 경호원으로 고용하게끔 법으로 제정하겠다고 하더라.”

“대규모 행사라는 단어가 굉장히 추상적이네요.”

“뭐, 콘서트장이라든지, 정부 공식 행사라든지. 이런 게 될 수 있지. 아무튼 제이커인지 제이터인지, 이 녀석이 하도 날뛰니까 나라별로 아주 난리도 아니다, 난리도 아니야. 미국이 스타트를 끊었으니까, 아마 다른 나라들도 이런 법 제정이 신속하게 통과될 거다.”

“그럴 수밖에 없겠죠.”

차라리 나는 그게 낫다고 본다.

레이드 시대가 끝나고, 너무 많은 헌터들이 할 일을 잃고 무기력함과 싸우고 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일할 수 있는 자리라도 주는 게 좋지 않겠나.

물론 몬스터를 상대할 때보다도 경호 일이 더 힘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상대는 같은 사람이니까.

그래도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고 본다.

“태오, 너도 조심해라. 이번에는 우연히 사건에 휘말렸다 치더라도, 녀석이 너도 노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글쎄요. 과연 우연일까요?”

조용히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연 대표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이커가 일부러 너를 노렸다는 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가 거기 있을 거란 걸 제이커가 모를 리는 없을 텐데요.”

“하긴, 그렇지. 대놓고 방송에도 나오고. 무대에 서진 않았지만, 인터뷰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그 꼼꼼하고 세심한 제이커가 내가 마침 현장에 있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테러를 자행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론은 하나다.

내가 있는 걸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이런 짓거리를 저지른 것이다.

의미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원래부터 나를 노렸든가.

아니면.

나를 X으로 보고 있거나.

후자의 경우에는 내가 있어도 자신의 테러 계획에 딱히 큰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을 안 하고 있다는 전제가 깔린다.

전자든, 후자든.

내 기분이 나쁘다는 건 변함이 없다.

“여튼 항상 조심하도록 하고. 너야 뭐, 별걱정을 안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휘말릴 수 있으니까.”

“네, 저도 그걸 각별히 주의하고 있습니다.”

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역시 제이커를 잡는 거다.

협회장과 연 대표에게 제이커에 대한 흔적이 추가로 발견되었는지에 관해 이런저런 걸 물어봤지만, 두 사람은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아직 그런 소식은 없더라.”

“미국 지부도 여러모로 노력 중인 거 같긴 한데. 지난번에 그 제조 공장을 발견한 이후로 아직까지는 별다른 소득이 없어 보였어.”

“그렇군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무렵.

지금까지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철민 소장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 제이커라는 녀석이 어디에 연줄을 두고 있는지는 알 거 같습니다.”

“뭐?”

“어떻게 알아냈는데? 아니, 그보다 그 중요한 걸 왜 나한테는 보고 안 했어.”

이철민 소장이 협회장의 닦달에 이렇게 답했다.

“이제 막 알아냈거든요.”

우리가 이렇게 회의 시간을 가지기 바로 직전에 이철민 소장이 심어 둔 정보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한다.

“제이커가 소환수들을 소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매개체들을 어떻게 제조하는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원료들은 얼추 파악해 냈습니다.”

“그래?”

“그걸 어떻게 알아낸 건가? 시간이 많이 부족했을 텐데.”

미국에서 보내온 샘플 자료들이 이철민 소장이 속한 연구소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을 것이다.

그래서 협회장이나 연 대표는 그걸 다 알아내기까지 시간이 많이 촉박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건 두 사람이 속사정을 몰라서 하는 오해에 불과하다.

사실 이철민 소장에게는 시간이 넘치고 넘쳤다.

왜냐하면 내가 몰래 미국의 제조 공장에서 가져온 매개체를 이철민 소장에게 건네줬으니까.

그래서 이철민 소장은 조사하는 데에 들어가는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물론 이철민 소장은 이걸 두 사람에게 말해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비밀로 한다는 전제하에서 내가 협력을 해 준 일이니까.

그걸 말하는 순간, 나는 이 자리에서 바로 징계 조치에 들어갈 수 있다.

다행히도 이철민 소장이 그렇게까지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며칠 밤새우면 됩니다.”

이철민 소장의 연구 방식과 스타일을 잘 알기에 협회장이나 연 대표는 크게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넘어갔다.

“그렇구만.”

“그래서, 그 원료들을 어디서 조달했는데?”

이철민 소장의 대답은 아주 짧았다.

“홍콩입니다.”

홍콩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을 스치는 던전 코드가 있었다.

“설마 DN-009입니까?”

“예.”

역시나.

DN-009는 홍콩에서 모습을 드러낸 아홉 번째 던전으로, 여타 다른 던전들과 달리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던전 내부에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광물들이 한가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업계 내에서는 DN-009라는 코드 대신에 ‘광물 던전’이라는 별칭으로 더 자주 불리곤 했었다.

“그곳에서 나온 광물들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직 원료로 뭐가 쓰였는지밖에 알아내지 못했지만, 좀 더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가공 방식 같은 것들도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만큼 제이커의 흔적을 찾아내기가 더 수월해지겠군.”

“예. 아마도요.”

이래서 파티에 머리 좋은 사람이 한 명은 꼭 있어야 하나 보다.

만약에 이철민 소장이 이런 것들을 밝혀내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홍콩의 DN-009 던전이 아니라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던전들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어야 할지도 모른다.

협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러면 홍콩 지부하고 한번 연락해 보고, DN-009에서 광물을 캐서 그걸 시장에 유통한 업체들 명단을 싹 작성하도록 해야겠군.”

이철민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그 명단, 저한테도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았어. 그렇게 하지.”

“감사합니다, 협회장님.”

회의가 거의 마무리되어 가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고 했던 승훈이 형이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협회장이 그런 승훈이 형을 보면서 괜찮다고 말했다.

“어차피 회의 다 끝났으니까, 신경 쓰지 마.”

“예?”

승훈이 형은 한동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