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43화 (143/250)

제37장. 협박 (2)

드디어 오늘 시상식에 참가해서 처음으로 수상의 영광을 거머쥐게 된 ‘그날, 우리’ 팀.

최기호 감독이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서서 수상 소감을 전했다.

“어…… 이 자리를 통해서 저희 영화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정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일일이 다 열거하기에는 너무 많은 거 같아서 줄이고 줄일까 하는데…… 특히 저희 배우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출연자이면서 동시에 제작에도 많은 도움을 줬던 강태오 씨에게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최기호 감독이 저렇게까지 내 이름을 강조하는 이유가 뭔지, 나는 매우 잘 안다.

나 아니었으면 영화가 고증 오류투성이가 되었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몬스터나 아이템에 관한 정보가 아직도 명확하게 다 공개된 건 아니었기에 최기호 감독이나 영화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들도 모르는 게 한가득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내 조언이 특히나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런 디테일들을 챙겨 간 것도 영화가 호평을 받는 데에 크게 한몫을 했다고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인공을 헌터가 아닌 레이드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으로 잡았던 것도 굉장히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금까지 헌터, 몬스터를 대상으로 삼았던 영화는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했던 영화는 없었다.

새로운 시각으로 레이드 시대를 바라보는 영화였다는 호평이 이어지면서 입소문을 타게 되고, 이 입소문이 결국 ‘그날, 우리’라는 영화를 이렇게 유명한 영화 시상식으로 초대하는 기회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최기호 감독이 약간 어설픈 영어 솜씨로 통역가 없이 직접 자신의 소감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계속 만들어 가는 감독이 되겠습니다.”

무대 아래로 내려오는 최기호 감독을 우리는 단체로 일어서서 환영했다.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다 수현 씨나 진연 씨, 태오 씨 덕분이죠.”

그래도 작품상 하나라도 건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사실 작품상 하나를 타긴 했지만, 원래 사람의 욕심이라는 건 끝이 없는 법이다.

상 하나 탔으니까 두 개, 세 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공을 들여 만든 영화니까.

좀 더 나은 성적표를 받기를 원했다.

이런 내 바람이 통한 건지, 남우주연상에 수현 씨가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모두의 이목이 한곳으로 집중되었을 때.

진행자가 남우주연상의 정체를 밝혔다.

“용수현!”

수현 씨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우리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수현 씨의 남우주연상 수상을 축하했다.

수현 씨는 자신이 상을 탈 거라는 사실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이름이 불린 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수현 씨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강제로 마사지를 해 줬다.

“수현 씨, 무대 올라가셔야죠.”

“그, 그렇죠. 이거 참……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그럴 것이다.

수현 씨 영화배우 인생에 있어서 해외에서 시상식에 참가해 상까지 타 본 적은 오늘이 처음이니까 말이다.

시상식에는 몇 번 참가해 봤을지 몰라도,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던 모양인가 보다.

아직도 얼떨떨한 얼굴로 마이크 앞에 선 수현 씨.

옆에 통역가가 나란히 서서 그가 하는 말을 받아 적기 위해 수첩과 펜을 꺼내 들었다.

“이 자리에 막상 올라오니까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 버리네요. 아까 최 감독님은 여기에 서서 어떻게 그렇게 말씀을 잘하셨는지. 갑자기 최 감독님이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수현 씨의 유머러스한 말에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조금씩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는지 수현 씨가 능숙하게 자신의 수상 소감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오랜 시절을 무명 배우로 보내왔습니다. 거의 한…… 10년? 그 정도까지 월에 백만 원도 못 받고 일했던 거 같아요. 그럴 때마다 배우의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나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가지곤 했었습니다. 그래도 한번 버텨 보자고 마음을 먹은 계기가 바로 여기 앉아 계신 최 감독님 덕분입니다.”

최 감독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조언 같은 걸 해 준 적이 없다고 하는데.

조언이라는 형태가 아니었다.

“제가 예전에 최기호 감독님 작품들을 본 적이 있거든요. 감독님 영화를 보고서 ‘내가 배우 생활을 관두는 때가 있더라도 어떻게든 최기호 감독님의 영화에 한 번이라도 나오고 난 다음에 관두겠다!’ 하고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건 최기호 감독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 진지한 얼굴로 수현 씨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감독님께서 예전에 제가 오디션을 볼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신은 언젠가 크게 성공할 거라고. 그러니까 배우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걸어가 줬으면 좋겠다고 그러셨죠. 그 말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건넨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사소하게 여겨질지 몰라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인생을 바꾸는 중요한 조언이 될 수 있다.

최기호 감독이 한 그 말이 지금의 수현 씨를 만든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제 인생을 바꿔 주신 감독님께 이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통해서 계속 연을 이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용수현이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던 그런 수상 소감이었다.

다른 영화감독, 배우 들도 수현 씨의 수상 소감이 인상적이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수현 씨는 자신이 손에 거머쥔 상을 번쩍 들어 올리면서 마지막으로 소소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다시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최기호 감독이 수현 씨에게 물었다.

“술자리에서는 그런 이야기 한 적 없었잖아?”

“술자리 말고 이렇게 의미 있는 자리에서 들려주고 싶었거든요.”

수현 씨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내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에피소드니까. 처음 밝히는 장소 역시 특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용수현 씨의 남우주연상 수상 역시 우리나라 최초일 것이다.

아니, 우리가 여기서 어떤 상을 타든, 모든 것들이 다 대한민국 영화계에 한 획을 긋는 역사가 되고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내가 상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하고 있고.

‘여기서 하나만 더 받고 집에 가면 좋을 거 같은데.’

과연 내 이런 소망이 통할지, 어떨지.

한번 지켜보기로 했다.

* * *

요즘 내 촉이 굉장히 좋은 모양인가 보다.

깔끔하게 상 하나 더 타고 집에 가자, 이렇게 생각을 굳힌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감독상에서 최기호 감독이 수상의 영예를 차지게 되었다.

그가 세계적인 감독이라는 사실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다른 해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타 본 적은 있었는데,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이 무대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기쁘고 설레네요. 마치 어렸을 적에 처음으로 상장을 받았던 그런 기분입니다.”

상 하나가 최기호 감독에게 일시적으로 유년 시절의 그 감동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까는 태오 씨에 대한 감사 인사에만 너무 집중한 거 같아서 이번에는 다른 분들에게 골고루 감사의 뜻을 전하고 내려가겠습니다.”

수현 씨에 이어 두 번째로 웃음이 터졌다.

그냥 농담으로 한 게 아니라, 최기호 감독은 정말로 영화 제작에 크나큰 도움을 줬던 사람들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수상 소감 무대에 할당된 시간을 꽉꽉 채운 뒤에 아래로 내려왔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감독상, 작품상, 남우주연상. 3관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시상식이 마무리되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몰려들었다.

덩달아 정신이 없어진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우리 담당 통역가였다.

한 명에게 붙어서 통역을 하는 것도 정신없는 일인데, 최기호 감독과 수현 씨, 그리고 진연 씨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의 말 모두를 해석해서 들려줘야 하니 몸이 여러 개여도 모자란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도와주기로 했다.

“수현 씨, 이분이 수현 씨 이번에 연기하는 거 보시고 감명을 많이 받았다고 하네요. 영화 잘 봤다고, 나중에 혹시 시간이 나면 자기들하고 같이 작업할 수 있는지 물어보십니다.”

“어? 네!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태오 씨. 안 그래도 통역가분한테 해석 좀 해 달라고 말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너무 바빠 보이셔서 쉽게 말을 붙이기가 힘들더라고요.”

“저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물론 그 와중에 나한테 먼저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매너도 잊지 않았다.

한 영화감독은 내가 수상을 못 했다는 사실에 굉장히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방금 수현 씨한테 말이 들어온 것처럼 자신도 헌터 관련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데, 기왕이면 이번 만남을 통해서 나와 좋은 연을 이어 가고 싶다는 말도 했었다.

아무래도 업계 관계자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다 보니 일적인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이 중에 상당수는 내 캐스팅을 노리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아직은 배우로서의 역량이 뛰어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 들어오는 모든 제안들을 받아들이기는 힘들어 보였지만, 그래도 배우 활동은 당분간 계속 이어 갈 생각이니까.

‘미국에서 한번 작업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차피 나는 회화가 가능한 사람이다.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한번 쭉 미팅의 시간을 가져 보든가 해야겠다.

* * *

시상식 하나를 마친 우리들은 곧바로 뒤풀이 현장으로 향했다.

어찌 보면 이 자리가 진짜배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사교의 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영화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유명한 셀럽들, 사업가들까지.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기사로 실리면 안 되는 중요한 이야기들도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최재현 국장하고 남지덕 부장이 여기에 있었다면 아주 그냥 천국이라고 외쳐 댔겠네.’

특종거리가 한가득이니까. 연예부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여기만 한 천국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천국은 이내 지옥으로 바뀌게 되었다.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영화인의 밤을 즐길 무렵.

모자를 깊게 눌러쓴 작은 체구의 한 남자가 무대 위로 천천히 올라왔다.

사람들의 어리둥절한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끌벅적한 회장 환경에도 불구하고 마치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남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남자는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남자가 손에 무언가를 거머쥐고서 우리들에게 그것을 직접 보여 줬다.

그것은…….

마나 폭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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