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42화 (142/250)

제37장. 협박 (1)

최기호 감독과 수현 씨, 그리고 진연 씨를 포함해서 영화 ‘그날, 우리’ 팀은 반년 가까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각종 영화 시상식에 참여하곤 했었다.

나는 잘 몰랐는데, 영화 시상식이라는 것도 가수가 점점 대중을 상대로 인지도를 높여 가는 것과 비슷한 시스템이었다.

영화를 그냥 내기만 한다고, 그 영화가 덥석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시상식의 시상 후보로 오르는 건 아니었다.

전 세계 각지를 돌면서 온갖 시상식에 참가해야 하고, 거기서 꾸준하게 성적을 거두면서 영화 관계자들에게 이런 영화가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어필을 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영화 쪽에 전혀 무관심한 사람들조차도 이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법한 시상식에 겨우 작품을 올릴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이 되는 거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수현 씨한테 전해 들은 나는 무의식적으로 혀를 내둘렀다.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최 감독님. 물론 수현 씨하고 진연 씨도요.”

수현 씨가 허허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어차피 차기작이 계약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날, 우리’ 촬영 마친 다음부터 한 1년 정도는 쉬기로 해서 스케줄이 여유가 있어 가지고 최 감독님을 계속 따라다녔던 겁니다. 자처한 거죠, 뭐.”

“진연 씨는요?”

수현 씨와 달리, 진연 씨는 지금도 영화 프로그램이나 예능, 라디오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수현 씨와 다르게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터.

그런데도 진연 씨 역시 최 감독 그리고 수현 씨처럼 굵직한 영화제들은 웬만하면 다 참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통의 열의를 가지고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과 외국을 왔다 갔다 하는 강행군을 소화하기란 굉장히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수현 씨는 싱긋 웃으면서 괜찮다는 모습을 보였다

이 미소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저는 경험을 쌓고 싶어서요. 그래서 일부러 최 감독님을 따라다니고 있는 거예요.”

“경험?”

“네. 사실 제가 출연했던 영화 중에 이렇게 해외 시상식에 자주 거론되었던 작품은 없었거든요. ‘그날, 우리’가 처음이에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세계 영화 시상식은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는지, 그리고 분위기는 어떤지. 이런 걸 온몸으로 체험하고 배우고 싶었어요.”

“그러셨군요.”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진연 씨가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다른 외국 여성 배우에게 손을 흔들어졌다.

그녀 역시 한껏 미소를 지으면서 진연 씨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짧은 인사를 마친 진연 씨가 다시 말을 이었다.

“보다시피 외국 배우들하고 교류도 좀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동안 영어 회화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어쩐지. 저번에 진연 씨, 영어 한마디도 못 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반년 사이에 완전히 달라지셨더라고요. 저는 처음엔 진연 씨의 탈을 쓴 누군가인 줄 알았습니다.”

“오랜만에 공부하려니까 머리 터지는 줄 알았어요. 저, 학창 시절에도 공부하는 거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선배님도 그렇죠?”

수연 씨의 어깨가 크게 움찔했다.

“왜 가만히 있는 나한테 화살을 돌리는 거야.”

“공부 이야기만 나오면 일부러 입 꾹 닫고 있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보기가 싫어져서요.”

“무서운 후배네.”

수현 씨가 몸서리를 쳤다.

그렇게 우리들끼리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 최기호 감독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우리들 중에서 바쁜 사람이 누구냐 하면 단연 최 감독을 꼽을 것이다.

여기 불려 다니고, 저기 불려 다니고. 또 외국 언론사와 인터뷰도 나눴다.

“어후! 정신이 하나도 없네.”

“고생하셨습니다, 감독님.”

“수고하셨어요. 많이 힘드셨죠? 물이라도 좀 마시세요.”

“그래야지. 하도 말을 많이 해서 목이 바짝 마르는 거 같네. 태오 씨도 시상식 시작하려면 좀 남은 거 같은데, 돌아다니셔도 됩니다.”

“아니요. 저는 괜찮습니다. 지금 제 상황에서 괜히 사람들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더 안 좋을 거 같아서요.”

외국에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할지라도 최기호 감독 역시 국내 연예계 소식에 아예 까마득한 건 아니었다.

매번 아침에 일어나서 뉴스를 챙겨 본다고 했으니까.

나와 아이리스의 열애설에 관한 기사들도 분명 접했을 것이다.

최 감독의 입에서 세상 어색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태오 씨가 저보다 더 고생이 많으시군요.”

“뭐, 제 업보죠.”

아이리스하고 단둘이서만 놀러 다니기로 약속한 순간부터 사실 이런 기사가 나올 수도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예상했었어야 했다.

내가 기자들을 너무 얕본 것이다.

그만큼 내가 사람들에게 먹히는 존재라는 뜻도 되긴 하지만.

그래도 사생활 노출에 대해서도 엄중히 대응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약간의 후회가 좀 남았다.

나라고 아는 여동생이랑 같이 밥도 먹고, 방탈출 카페도 가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만약에 그런 법이 제정되려고 한다 싶으면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권력을 동원해서라도 통과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물론 비현실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테이블에 모여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마침내 영화 시상식의 오프닝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영화 관련 시상식도 많이 참여하지 못했었는데.

해외에서 열리는 시상식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도 최기호 감독이나 수현 씨, 진연 씨처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영화 홍보에 힘을 보태 주고 싶었지만, HTB 앨범 활동하고 겹치기도 했고. 그리고 헌터로서의 활동도 있었기에 나는 함께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마음의 빚을 진 것처럼 이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오늘 영화 시상식이 중요한 만큼 꼭 자리를 채워서 이들에게 지원사격을 해 주기로 했다.

여기서 아무리 유명한 영화배우가 있다고 한들, 나보다 대중적으로 인지도 있는 사람은 없을 거였기 때문이다.

배우나 가수로서의 내가 유명하다는 뜻은 아니고.

헌터로서의 강태오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시상식의 막이 오르자마자 사회자가 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오늘 여기에 굉장히 유명한 분이 참석하셨네요.”

“헌터 강태오 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죠?”

시상식에 참여한 셀럽들이 동시에 입을 모아서 그렇다고 답했다.

카메라들도 나를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영화 시상식의 주인공도 아닌데, 이렇게 과도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니까 조금 부담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뭐, 연예인은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존재 아니겠나.

이런 상황이 딱히 싫은 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오늘 시상식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소감을 간단하게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스태프가 내게 마이크를 건네줬다.

내가 특별히 무슨 상을 탄 것도 아니고.

심지어 시상식 행사가 이제 막 시작된 단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내가 첫 인터뷰를 담당하게 되었다.

영화 시상식 관례에 대해 잘 모르는 나조차도 이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노 코멘트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기껏 시상식 측에서 내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건데, 이걸 내 발로 걷어차 버린다는 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저는 여기 앉아 계신 우리 최기호 감독님의 영화, ‘그날, 우리’에 출연한 배우로서 이렇게 시상식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분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영광스럽습니다.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면, 저희도 뭔가 의미 있는 상을 몇 개 타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작품상이라든지, 아니면 남우주연상이나 여우주연상 같은 거 말입니다.”

내 말에 시상식에 참가한 사람들이 큰 박수를 보냈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이면서 이들의 호응에 답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기대 많이 하고 있을게요.”

상 욕심까지 포함해서 오늘 시상식에 참가한 소감을 마쳤다.

마이크를 다시 스태프에게 건네준 나는 이후에 최기호 감독이 엄지를 추켜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이스였습니다, 태오 씨.”

“감사합니다.”

그래도 다 같이 여기까지 왔는데.

상 몇 개 정도는 타 가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온 보람이 있지.

* * *

우리나라 시상식과 외국에서 열리는 시상식은 뭐라고 해야 할까, 크게 다르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차이가 아예 없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했다.

나도 외국에 자주 나가 봐서 알지만, 외국 특유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라는 게 존재한다.

그 분위기는 시상식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진행자들이 수상을 하게 된 배우나 감독에게 농담을 건네거나. 아니면 수상 소감을 읊을 때 거창한 말 대신 노래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뭐라고 할까, 엄숙한 시상식 자리라기보다는 모두가 다 같이 모여서 축제를 즐기는 듯한 그런 인상이 더 강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기호 감독이나 수현 씨, 진연 씨도 그간 여러 시상식장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분위기에 단련이 된 모양인지 다른 외국 배우, 감독 들과 함께 잘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마냥 웃고 떠들기만 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명확하다.

수상.

첫 오프닝 때 인터뷰를 했었던 내가 언급을 했듯이, 우리는 이곳에 온 이상 빈손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뭔가 상 몇 개라도 타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이 욕심이 주최 측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닿은 걸까.

“작품상 후보들을 만나 보시겠습니다!”

대형 화면에 후보에 오르게 된 작품들의 정체가 공개되었다.

다들 쟁쟁한 작품들뿐이었다.

이 중에 우리 영화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날, 우리’가 처음으로 후보자 명단에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이 오랫동안 우리 영화의 등장을 기다렸다는 듯이 박수갈채와 환호를 보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단순히 호응이 좋았다는 이유만으로 수상이 결정되는 건 아니다.

최기호 감독과 배우들이 숨을 죽인 채 MC의 발표를 기다렸다.

나도 이때만큼은 긴장이 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니까 괜히 내 인터뷰가 플래그가 된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좀 들기 시작해서 그렇다.

잠시 뒤.

진행자가 마침내 작품상을 수상하게 된 주인공을 발표했다.

“영화 ‘그날, 우리’입니다! 축하합니다!”

“무대로 올라와 주세요!”

최기호 감독이 대표로 무대에 올랐다.

우리는 최 감독을 향해 박수를 보내면서 수상을 축하했다.

배우들, 감독들 역시 최 감독뿐만 아니라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서도 박수를 보내 줬다.

우리가 출연한 영화가 상을 탄 거니까, 우리도 축하를 받을 권리가 있는 셈이었다.

내가 알기론, 우리나라 작품이 여기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탄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데.

‘한국은 난리 났겠네.’

기사가 무수하게 쏟아지고 있겠지.

안 봐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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