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장. 뜬금없는 열애설 (3)
내가 살다 살다 밀반입이라는 것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만약 협회장이나 연 대표한테 이철민 소장과의 몰래 한 협약이 들킨다면, 무조건 징계가 떨어질 것이다.
레이드 시대가 끝났다 할지라도 아직 잔여 몬스터들이 남아 있기도 하고.
그리고 제이커나 다른 특수 범죄자들의 행동이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에 헌터협회는 아직도 레이드 시대 때의 기능을 여전히 발휘하고 있었다.
당연히 관련 법안이나 규약 같은 것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내가 징계라는 단어를 언급했던 거였다.
물론 대상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이번 일을 주도한 이철민 소장도 같이 징계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제이커처럼 막 제명 수준까지 되는 건 아닐 테고.
이철민 소장도 협회 내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기에 근신이나 이런 것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철민 소장이 하는 일은 결국 공익을 위한 것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사실 이철민 소장이 사리사욕 때문에 미국에서 발견된 붉은 보석을 가져와 달라고 한 건지 어떤지도 모르겠다.
이 소장이 워낙 기행을 많이 저지르는 인물이기도 하니까. 나조차도 무슨 짓을 할지 감히 상상이 안 간다.
그래도 우리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은 안 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믿고 이철민 소장을 돕기로 한 거였다.
여기에 더해서 내 마이크 아이템도 확실하게 업그레이드를 하고 말이다.
협회장이 제공해 준 전용기를 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우리들.
데이브는 피곤하다면서 바로 숙소로 돌아갔다.
승훈이 형도 내게 ‘데이브하고 같이 숙소로 갈 거지?’라며 물었다.
“아니, 나는 협회에 볼일이 있어서, 잠깐 들렀다가 가려고.”
“무슨 볼일인데? 나도 같이 갈까?”
“아니야. 이 소장하고 따로 할 이야기가 있는 것뿐이니까 형은 안 와도 돼.”
“뭐야,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냐?”
“뭐…… MML 버프가 발견되고 난 다음부터?”
그때부터 이철민 소장하고 대화 나누는 빈도가 급격하게 늘었으니까.
승훈이 형도 이해하는 모양인지 알겠다고 하고 따로 끌고 온 차에 올라탔다.
“자, 그러면…….”
이철민 소장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물건을 전해 주러 가 볼까.
* * *
헌터협회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연구실을 찾았다.
내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던 이철민 소장이 곧바로 자신의 연구실로 나를 초대했다.
“여기, 택배 왔습니다.”
농담조로 말하면서 이 소장에게 미국에서 챙겨 온 붉은 보석들을 몇 개 건네줬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곧바로 붉은 보석들을 살피기 시작하는 이 소장.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까 들었던 궁금증을 풀기 위해 물었다.
“근데 그건 왜 필요합니까?”
이미 제이커가 사용했던 붉은 보석 샘플은 여러 개 확보해 두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철민 소장이 내게 따로 부탁을 할 만큼 꼭 이게 필요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철민 소장이 집어 들었던 붉은 보석을 잠시 내려놓고서 내게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 이유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태오 씨, 이거 보이십니까?”
이철민 소장이 다른 곳에 미리 놔뒀던 다른 붉은 보석을 가리켰다.
“네, 잘 보입니다.”
“저건 대구에서 확보했던 붉은 보석입니다. 그리고 이건 방금 전, 태오 씨가 가져다준 거고요. 두 개의 차이점이 보이십니까?”
“차이점이라면…….”
두 개를 놓고 번갈아 바라봤다.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대충 봤을 때에는 약간의 크기 차이? 이 정도밖에 안 보이는 거 같은데.
이건 이철민 소장이 바라는 대답이 아닌 것 같고.
좀 더 면밀하게 보석들을 살피기로 했다.
집중력을 되살리면서 뚫어져라 보석들을 본 결과.
“속이…… 비어 있네요?”
미국에서 가져온 거는 뭔가 알맹이가 차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드는데.
대구에서 가져온 거는 속이 빈 껍데기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졌다.
실제로 대구에서 확보한 붉은 보석의 표면에 작은 균열이 세 개 보였다.
“역시 태오 씨는 바로 알아차리시는군요.”
“바로 알아차린 거 맞나요? 저는 시간이 좀 걸린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이 차이점을 알아내기까지 꼬박 3일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뭐.
나야 이 두 개를 이렇게 놓고 비교를 해서 금방 찾을 수 있었던 거지만, 이철민 소장의 경우에는 속이 빈 껍데기만을 보면서 속이 차 있는 보석도 있을 거라는 결론까지 유추한 거니까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철민 소장이 더 대단했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미국 쪽에서 확보해 온 이 붉은 보석은 이철민 소장의 가설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임과 동시에.
“이것만 있으면 파이어 골렘 같은 놈도 다시 소환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입니까?”
“그거야…….”
갑자기 이철민 소장이 내가 가져온 붉은 보석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제부터 확인해 보면 알겠죠.”
그렇게 말하면서 그것을 바닥으로 냅다 집어 던졌다.
뭐 하는 거냐고 미처 말릴 새도 없었다.
쨍! 하면서 뭔가가 갈라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이와 동시에 보석에서 강렬한 불길들이 새어 나왔다.
불길들은 순식간에 이철민 소장의 개인 연구실을 가득 채우더니, 사람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내가 대구에서 상대했던 그 파이어 골렘이다.
덩치는 그때에 비해서 작긴 하지만, 틀림없었다.
“이것으로 증명되었네요.”
“증명이고 나발이고! 위험합니다, 소장님!”
파이어 골렘이 이철민 소장을 향해 팔을 크게 휘둘렀다.
이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골렘이라는 소환수는 자신의 몸 자체가 무기다.
게다가 방어력도 높은 편이다.
물리, 마법 공격력을 반감시키는 골렘의 방어력 때문에 헌터들도 상대하기 꺼려 하곤 했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아무런 조치도 없이 연구소 한가운데에 떡하니 튀어나왔으니.
난리가 날 법도 했다.
이철민 소장이 공격을 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행동에 나섰다.
발로 뻥! 하고 놈의 팔을 차 버렸다.
충격으로 인해 놈의 팔이 몸통과 분리되어 나가떨어졌다.
덕분에 불길이 옮겨붙으려고 했다.
이철민 소장은 걱정하지 말라면서 또 하나의 아이템을 꺼냈다.
물풍선같이 생긴 아이템을 바닥에 던지자, 펑! 하고 터지면서 순식간에 물줄기들이 몰아쳤다.
물줄기는 파이어 골렘의 온몸에 붙은 불을 집어삼켰다.
녀석의 가장 큰 무기가 없어졌으니, 공격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크게 주먹을 내지르면서 파이어 골렘의 핵을 찾아 파괴해 버렸다.
녀석의 형체가 모래처럼 무너져 내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상당히 위험했다.
그러나 이철민 소장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말했다.
“실험만큼 이론을 증명하는 확실한 수단도 없거든요.”
“…….”
역시 이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다.
* * *
잠깐의 소동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철민 소장의 이론이 모두 사실이라는 게 증명되었다.
미국에서 가져온 남은 붉은 보석들을 쥐고서 바라보는 이철민 소장의 모습이 괜히 불안해졌다.
“설마 또 그것들 깨뜨려서 파이어 골렘을 소환하려고 그러시는 건 아니죠?”
이 좁은 공간에 한 마리도 아닌 여러 마리가 나타난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바로 도망칠 거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렇게 협소한 공간에서 몬스터와 싸우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괜히 내 옷이 다 타 버릴 수도 있고 말이다.
아끼는 옷이라서 특히 더 걱정이다.
이철민 소장은 어깨를 한 차례 으쓱하면서 나를 안심시켜 줬다.
“그럴 일은 없을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왠지 이철민 소장의 말은 믿음이 잘 안 간다.
그래도 뭐, 본인이 안 하겠다고 했으니까.
일단은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태오 씨가 미국에서 구해 온 보석들을 연구하다 보면, 제이커가 어떤 식으로 이런 걸 제조할 수 있게 되었는지 알아내는 게 가능할 겁니다.”
“그걸 알아내면 뭔가 도움이 되나요?”
“네, 아주 큰 도움이 되죠. 이 보석을 만드는 데에 들어가는 원료를 알아낼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원료를 어떤 방식으로 구했는지 추적하다 보면 녀석의 꼬리를 밟을 수 있을 겁니다.”
이철민 소장이 확실히 머리가 좋다.
뭐, 이 소장의 위치가 머리 쓰라고 있는 곳이긴 하니까 말이다.
“나중에 뭐 알아내는 거 있으면 저한테도 같이 공유해 주세요. 요즘 협회장님이 입이 많이 무거워지셔서, 웬만한 건 저한테도 숨기려고 하는 낌새가 보이더라고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하고 태오 씨는 동맹 관계니까요.”
동맹 관계라.
이렇게 불안한 동맹은 처음이다.
* * *
숙소로 돌아온 나는 연구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침대에 몸을 눕혔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미국에서 출발해 다시 한국 땅을 밟았을 때에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피곤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철민 소장을 만나고 오니까 갑자기 피로감이 배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바로 누운 거였다.
이철민 소장과 함께 일해 온 협회장이 갑자기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 같으면 같이 오랫동안 일 못 할 거 같은데.
뭐, 그래도 능력 하나만큼은 확실한 사람이니까. 협회장도 그걸 아니까 이 소장을 계속 곁에 두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침대 위에 누워서 잠을 청하려고 했을 때, 누군가가 내 방문을 똑똑 노크했다.
“형, 주무십니까?”
니암이 내 방을 찾아온 거였다.
“아니, 왜?”
“준서가 형들 마시라고 과일 주스 만들었다고 해서요. 아까 보니까 형 많이 피곤해하시던데, 주스 마시고 주무시는 건 어떻습니까? 건강식이라서 피로 푸는 데에도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음, 그럴까.
우리 막내가 형들 생각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마시기 싫다고 딱 잘라 거절하기에도 미안했다.
거실로 나오자, 준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곧바로 내게 잔을 내밀었다.
“형은 특별히 오렌지 주스로 줄게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
“이게 만들기 가장 힘들었거든요.”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꿀꺽, 꿀꺽.
막내의 정성이 가득 담긴 과일 주스를 원샷했다.
솔직히 기대는 많이 안 했었다.
그런데 의외의 반전이 벌어졌다.
“맛 괜찮은데?”
“그렇죠?”
“어디서 배워 오기라도 했어?”
“지난주에 예능 프로그램 출연했는데, 과일 주스 달인분이 게스트로 오셔서 레시피 알려 주셨거든요. 그거 따라서 그대로 해 본 거예요.”
예능이 알고 보면 배움의 장이다.
어디 가서 이런 거 쉽게 못 배울 텐데.
“이번 주에 형들하고 같이 그분이 운영하는 카페에 한번 가 보려고요. 형도 갈래요?”
“언제?”
“주말에요. 토요일 오후?”
달력 어플을 실행해서 그날의 일정을 확인했다.
“아, 이날 난 안 되겠다.”
“왜요?”
“선약이 있어.”
“무슨 약속인데 그래요?”
“그건…….”
일정을 바라보던 나는 고민 끝에 대답해 주기를 거절했다.
“몰라도 돼, 인마.”
토요일 오후의 일정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방탈출, 아이리스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