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37화 (137/250)

제36장. 뜬금없는 열애설 (2)

이철민 소장과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5분도 채 안 지났을 때, 연 대표가 내게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예, 대표님.”

-어, 태오야, 지금 안 바쁘지?

꼼꼼한 연 대표의 성격상, 내게 전화를 걸기 전에 먼저 승훈이 형한테 연락해서 내 스케줄부터 살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숙소에서 편하기 쉬고 있는 것도 연 대표라면 다 파악하고 있을 게 뻔하다.

“네, 쉬고 있습니다.”

-잘됐네. 안 그래도 너한테 긴히 할 말이 있었는데. 멤버들 주변에 있어?

“잠시만요. 제가 방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내가 계속해서 전화를 받으러 왔다 갔다 하니, 멤버들이 한 차례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와서 설명하기에는 좀 그렇고.

아까처럼 문을 닫고 안의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네, 대표님. 이제 말씀하셔도 됩니다.”

-전화한 건 다름이 아니고. 미국에서 이번에 제이커가 소환수 매개체 아이템 제조할 때 사용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발견했거든. 미국 지부에서 거기 조사를 나갈 건데, 혹시 몰라서 너도 지원군으로 부르고 싶다고 그러더라.

저번에 데이브와 니암, 딜런이 한창 제이커의 흔적을 쫓았을 때.

제이커가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자택을 급습했지만, 오히려 폭발에 휘말리고 말았던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비슷한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를 부른 것이다.

-대충 근처는 다 조사를 끝냈고. 안쪽 깊숙이 들어가서 다 못 한 조사를 끝내야 하는데, 네가 있어야 안전할 거 같더라.

“알겠습니다. 그럼 가야죠. 언제 출발하면 됩니까?”

-지금 당장.

급하다, 급해.

-그냥 가서 조사만 하고 오는 거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은 아닐 거야. 전용기 준비해 둘 테니까 갔다 와라. 아참, 데이브도 같이 데리고 가고.

“네, 그러죠. 협회장님 전용기 타고 가면 안 되죠?”

-협회장님이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고 미리 본인 거 준비해 두셨다.

역시, 이 정도 눈치는 가지고 있어야 협회장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데이브 오는 대로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아니, 데이브 기다릴 것 없이 너는 바로 공항으로 가라. 데이브도 스케줄 끝나면 바로 그쪽으로 보낼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다시 거실로 나오자, 준서가 나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형, 오늘따라 왜 이렇게 바쁘세요?”

제이커의 공정 장소를 발견한 건 아직 비밀로 해 달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와 같은 그룹의 멤버들이라 할지라도 이 비밀은 유지되어야 한다.

적당히 둘러댈 말이 어디 없을까 고민하던 끝에.

“내가 원래 인기가 많잖아?”

늘 그렇듯 자화자찬으로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 * *

공항에서 전용기 한 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에 탑승하니, 먼저 와 있던 승훈이 형이 나를 반겼다.

“오느라 고생했다, 태오야.”

“형도 같이 가기로 했어?”

“어, 너 혼자 보내기에는 불안하다고, 연 대표님이 나도 같이 가라고 하셨어.”

내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보호자까지 붙여 줄 필요는 없는데, 거참.

그래도 뭐,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나야 좋긴 하지.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면서 잠시 시간을 때우는 사이, 저 멀리 또 한 명이 공항 차를 타고 전용기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승훈이 형이 창문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데이브 오나 보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금발과 날카로운 눈매.

승훈이 형 말대로 데이브였다.

마지막 멤버가 전용기에 오르자, 저절로 문이 닫혔다.

“오늘 일정 고생했다, 데이브.”

승훈이 형이 데이브가 앉을 자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데이브의 입에서 피곤함이 가득 묻어 나오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늘 무슨 녹화였길래 그렇게 피곤해하는 거야?”

맞은편에 앉은 내가 데이브에게 물었다.

스튜어디스에게 차가운 냉수를 부탁한 데이브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면서 답했다.

“연애 상담해 주는 프로그램.”

“너하고 하나도 안 어울리는 곳이네.”

“내 말이. 왜 이런 걸로 잡아 줬는지 모르겠네요.”

데이브가 일부러 승훈이 형 들으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듯했다.

아니, 분명 그럴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승훈이 형도 나름 할 말이 있는 모양인지, 이유에 대해 말해 줬다.

“저번에 물어봤을 때에는 토크 예능 아무거나 나가도 괜찮다고 했었잖아.”

“그래도 보통은 그런 유의 프로그램하고 저하고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만…… 나는 또 네가 이미지 체인지라도 하려는 줄 알았지. 그래서 나한테 그렇게 말했구나 하고 받아들였던 건데.”

“아닙니다.”

데이브가 딱 잘라 답했다.

이건 승훈이 형이 잘못했네.

데이브의 성향을 승훈이 형이 모르는 것도 아니고. 눈치껏 ‘아, 얘가 이런 프로그램은 싫어하겠구나.’ 하고 알아서 쳐 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뭐, 어쩔 수 없다.

“그런 것치고는 문제 안 일으키고 녹화 잘하고 왔나 보네?”

“내게 주어진 일이니까. 최선을 다해서 하긴 해야지.”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데이브다운 대답이었다.

그렇게 수다를 떠는 사이, 비행기가 이륙하기 시작했다.

전용기가 있어서 티켓 끊고, 대기하고, 뭐 하고 이렇게 시간 낭비를 할 필요가 없어서 좋긴 하다.

그러나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단점도 존재한다.

지금처럼 호출이 떨어지면, 오래 걸린다는 핑계를 댈 수가 없으니까 얌전히 갔다 와야 한다.

이게 작은 불만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아니면 못 하는 일이니까 가긴 갈 생각이었는데.

적당히 농땡이를 부릴 수 없다는 점은 분명 아쉽긴 하다.

서울에서 부산 가는 만큼의 거리도 아니고, 비행기를 타고도 장시간 걸리는 거리를 가야 하니까 말이다.

차가운 냉수로 목을 축이자마자 데이브는 곧장 시트를 뒤로 젖힌 다음에 이불을 덮었다.

“난 잔다.”

“일찍 자네?”

“오늘 아침부터 스케줄 소화하느라 잠을 거의 못 잤어.”

잘나가는 스타의 고충이다.

어차피 우리도 조만간 잘 생각이었다.

가는 동안 할 것도 없고.

자는 게 시간 보내기 가장 좋은 방법이다.

* * *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지난번에 봤던 익숙한 얼굴의 미국 헌터들이 우리를 반겼다.

여기에는 지부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부장이 우리들에게 직접 상황을 설명했다.

“제조 공장이 꽤 크더군. 겉은 우리가 한 번씩 살펴봤는데, 좀 더 내부를 수색하려면 자네들의 도움이 필요해.”

“맡겨 주세요.”

곧바로 협회 측이 준비한 아이템들을 몸에 걸치기 시작했다.

어디서,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모르니까 방어구 아이템은 기본으로 착용해야 했다.

마이크 아이템……은 뭐, 지금은 필요 없으니까 제외하도록 하고.

대신에 혹시 모를 전투를 대비해서 롱소드 길이의 무기 아이템을 골라 허리에 걸쳤다.

데이브도 평소에 자기가 잘 사용하는 창 계열의 무기를 들고서 내 곁에 나란히 섰다.

“우리가 먼저 들어가서 안전한지 아닌지 확인해 보면 된다고 그랬지?”

“어.”

“조심해라. 저번에 폭발에 제대로 휘말렸으면, 나도 포함해서 부상자 많이 나왔을 거다.”

“걱정 마셔. 우리가 이런 거 한두 번 해 보는 것도 아니고.”

선발대 역할은 이제 많이 익숙해졌다.

과감하게 발로 문을 걷어차 버렸다.

내 발길질에 의해 문짝이 뒤로 멀리 나가떨어졌다.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 걸 보면.

“부비트랩 같은 건 없나 본데?”

“천장도 한번 봐라. 저번에 천장에 마나 폭탄이 붙어 있더라.”

“그래?”

위를 올려다봤다.

그러나 이번에는 천장이 아닌 다른 곳에 설치하기라도 한 모양인지, 수상해 보이는 물건은 일절 없었다.

넓은 공간을 거쳐 또다시 문이 굳게 잠겨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열쇠를 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아까처럼 그냥 발 차기 한 방이면 충분하다.

“흡!”

짧은 기합을 내지르면서 발로 문을 크게 걷어차 버렸다.

그 순간.

퍼어어엉-!

날아든 문짝이 뭔가를 건드린 모양인지, 안쪽에서 강한 폭발음이 들렸다.

“이번 폭탄 설치는 저기 안쪽에다 했나 보네.”

데이브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지난번에는 집 한 채가 폭삭 내려앉을 정도로 강한 폭발이었다고 들었는데.

방금 폭발은 그렇게까지 규모가 큰 편이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폭발의 후유증으로 인한 그을림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폭발의 여파 때문인지, 책상 위에 있던 물건들이 우르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중에 몇몇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다.

제이커가 테러리스트들에게 몰래 뿌렸던 바로 그 붉은 보석 아이템이다.

“…….”

슬며시 데이브의 눈치를 살폈다.

데이브는 내 쪽은 돌아볼 생각도 없는 모양인지, 주변만 묵묵히 수색하고 있었다.

“뭔가 더 눈에 띄는 건 안 보이는데.”

“그, 그래? 어흠!”

일부러 헛기침을 하면서 데이브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곤 붉은 보석 몇 개를 챙겨 품 안에 넣어 뒀다.

일단은 수거 완료.

이제 이걸 미국 지부 쪽에 들키지 않은 상태로 한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혹시 몸수색 같은 건 안 하겠지?’

아니면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는 마나를 탐지하는 장치 같은 게 있다든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순간적인 귀찮음으로 인해서 그냥 이철민 소장의 부탁을 거절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살짝 들긴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절하려 했다면 처음에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일찍이 했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생각을 달리 먹겠다고 하는 것은 이철민 소장에게 민폐가 되는 행동이다.

그리고 이미 챙기지 않았는가.

‘안 들키면 그만이지.’

괜히 찔리긴 하지만, 그래도 티만 내지 않으면 된다.

내가 이래 봬도 배우 일도 같이하고 있는 사람인데.

이런 것 정도 못 할까.

적당히 수색을 한 뒤, 우리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뭔가 대단한 게 숨겨져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군.”

“그러게 말이야.”

나도 데이브의 말에 동의했다.

뭐, 대충 예상은 했었다.

그 용의주도한 제이커가 이곳 제조 공장에 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함부로 두고 도망쳤을 리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미국 지부 지부장에게도 데이브와 나눴던 말을 그대로 들려줬다.

“안쪽까지 샅샅이 살펴봤는데,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마나 폭탄도 설치 안 되어 있고. 들어가셔서 원없이 조사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내 말에 지부장이 특유의 호쾌한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내 등을 토닥여 줬다.

“수고했네.”

순간 지부장의 손이 내 자켓 안쪽 주머니에 불룩하게 솟아오른 부분과 맞닿는 게 아닌가 하고 긴장했다.

만약에 그랬다면, 그리고 지부장이 여기에 뭐가 들었는지 묻는다면, 빠져나갈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살긴 살았네.’

간발의 차이였다.

이번에는 이철민 소장의 개인적인 부탁 때문에 한번 도와주기로 했지만.

‘다음에는 이런 거 있으면 그냥 거절하든가 해야겠어.’

못 할 거 같아서 그런 건 아니고.

충분히 할 수 있긴 한데.

이런 건 괜히 심장에 안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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