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32화 (132/250)

제35장. 위대한 탈출 (1)

나는 딱히 몸 쓰는 예능 프로그램 같은 곳에 나가도 상관은 없다.

아니, 오히려 좋다.

그래서 가수로 데뷔하기 전에 잠깐 출연했던 ‘출발, 스타팀’도 나는 개인적으로 만족하면서 촬영에 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때 황조운이 나를 방송용으로 너무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티가 노골적으로 보여서 좀 언짢은 기분이 들긴 했었는데.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황조운을 역관광시켜 버렸고. 그 녹화의 주인공은 내가 되었으니까 개인적으로 다 만족스러운 촬영이 되었다.

또 ‘출발 스타팀’ 같은 몸 쓰는 예능 프로그램 있으면 거기에 내보내 달라고 승훈이 형한테 신신당부를 했건만.

돌아온 건 전혀 다른 형태의 프로그램 출연이었다.

촬영이 지연되는 동안, 나는 다시 한번 대본을 보면서 오늘 내가 출연할 프로그램에 대해 살폈다.

그러다가 도중에 대본을 잠시 내려놓고 승훈이 형 쪽을 찌릿 노려봤다.

“형, 나는 몸 쓰는 프로그램에 내보내 달라고 했던 거 같은데.”

“몸 쓰는 프로그램 맞잖아.”

“방탈출 예능도 몸 쓰는 쪽으로 해석해야 되나?”

그렇다.

승훈이 형이 잡아 준 오늘의 내 일정은 방탈출 예능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명칭은 ‘위대한 탈출’. 콘셉트는 방금 내가 언급한 대로 여러 장치들로 잠겨 있는 공간에서 탈출하면 된다.

의외로 시청자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들었다.

시즌 1, 2 둘 다 시청률이 잘 나온 덕분에 오늘 촬영할 시즌 3도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갔다고 건너건너 들은 기억이 난다.

게스트는 나와 아이리스, 이렇게 둘뿐이다.

나머지는 고정 출연진으로, 총 다섯 명이 있다.

이 중에 한 명은 공교롭게도 나와 이미 다른 프로그램에서 합을 맞춰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유세련. ‘강태공들 나가신다!’에서 나와 같이 게스트로 출연했던 그 여성 래퍼다.

아이템 수집가로도 상당히 유명해서, 나중에 내가 우정의 뜻으로 내 소유의 아이템을 하나 주기로 했었다.

직접 만나서 주고 싶었지만, 서로 워낙 바쁘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대행업체를 통해서 내 아이템을 보내 줬다.

그날, 유세련한테서 직접 연락이 왔다.

아이템 잘 받았다고, 평생 보물로 간직하겠다고 말하면서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를 들려줬다.

그 기억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PD가 내게 양해를 구했던 대로 정확히 15분 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출연자분들은 자리로 돌아와 주세요!”

조연출이 사방팔방 직접 돌아다니면서 오늘 녹화에 나설 출연자들을 직접 찾았다.

내가 막 대기실을 나서려고 할 때였다.

“잠시만요.”

스태프 중 한 명이 내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안대 쓰고 가셔야 합니다.”

“안대를요?”

“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녹화가 시작될 예정이라서요. 그리고 스튜디오에 지금 태오 씨하고 출연자분들이 탈출해야 할 공간이 다 세팅되어 있어서, 노출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일부러 대기실부터 안대를 착용하고 보내 달라고 PD님께서 그러셨어요.”

이거, 사전에 ‘위대한 탈출’ 모니터링을 할 때 본 기억이 난다.

그때도 출연자들이 안대로 눈을 가리고 방송 촬영을 시작했었다.

나는 처음엔 그저 연출일 줄 알았는데.

‘진짜로 가리고 하는구나.’

신기했다.

방송이 다 대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건 리얼이었다.

하긴, PD 입장에서도 최대한 출연자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이끌어 내고 싶어 할 테니까.

그러기 위해선 정보를 최소한으로 줄인 상태에서 방탈출을 시작해야 한다.

이번에는 어떤 콘셉트로 무대를 준비해 뒀을까?

호기심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스태프가 말한 대로 안대를 착용했다.

사실 마나를 이용하면, 투시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제작진이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하는데, 투시 한번으로 그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이유를 추가하자면.

‘그러는 편이 더 재미있을 테니까.’

오늘은 녹화라고 생각하지 않고 정말로 아는 사람들이 모여서 방탈출 카페에 놀러 왔다는 기분으로 촬영에 임할 생각이었다.

나는 비록 머리 쓰는 거에 자신이 없는 편이지만.

‘아이리스가 있으니까.’

아이리스는 헌터 때부터 두뇌파로 명성이 자자했다.

실제로 머리가 굉장히 좋다. 똑똑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 이철민 소장도 아이리스를 인정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스태프가 안대를 낀 나를 인도해 줬다.

잠시 뒤.

-안대를 벗으시면 됩니다.

PD의 말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안대를 벗은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웬 철창?”

어느새 우리는 감옥에 들어와 있었다.

* * *

녹화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오늘 ‘위대한 탈출’에 출연하게 될 출연진과 가벼운 인사 정도는 나눴었다.

총 일곱 명이었는데.

한자리에 모인 인원은 고작해야 나를 포함해서 셋밖에 되지 않았다.

한 명은 아이리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유세련이었다.

“안녕하세요, 태오 씨.”

“네, 안녕하세요.”

우리는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대기실에서 이미 인사한 사이였지만, 시청자들에겐 처음 본 사람들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인 거다.

“그나저나 우리, 감옥에 갇혀 있네요.”

유세련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투시 능력을 써서라도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어떤 공간에서 시작을 할지 미리 봐 둘 걸 그랬다.

유세련의 말에 따르면, 모든 출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스타트를 하는 경우보다 이렇게 2조로 나뉘어 출발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그나마 방송에 꾸준히 출연했던 유세련이 있어서 이런 말도 들을 수 있고 다행이었다.

짧은 대화가 오고 가는 동안, 아이리스는 벌써부터 어떻게 하면 이 철창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를 펼치고 있었다.

“태오 오빠, 저기 옆에 있는 벽, 한번 두들겨 보실래요?”

“이거?”

“네.”

“부수라는 뜻이지?”

“아니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나는 방탈출이라는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굳이 머리를 써 가면서 방탈출을 하려고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부숴 버리면 그만이지 않은가.

원래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이라는 말이 있지만,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지고 있으면 몸도, 머리도 고생할 필요가 없다.

나는 이 말을 제일 좋아한다.

만약에 이게 방송만 아니었더라면.

그러면 아이리스가 말릴 새도 없이 바로 박살 내 버렸을 테지만, 내가 정말로 그런 짓을 해 버리면 제작진이 피눈물을 쏟을 게 뻔했기에 멈추기로 했다.

아이리스가 벽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가끔씩 벽에 장치 같은 게 숨겨져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아이리스가 하는 것처럼, 나도 벽을 한 번씩 꾹꾹 눌렀다.

이 와중에 아이리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게 작은 충고를 보냈다.

“너무 힘 주고 누르지 마시고요. 태오 오빠는 조금만 마력을 사용해도 이 정도 벽은 금방 무너뜨릴 수 있으시잖아요.”

“그렇지.”

내가 너무 강해서 이럴 때에는 문제였다.

유세련 씨도 가만히 있지 않고 우리들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꾹, 꾹 누르다 보니 손에 뭔가 걸리는 게 느껴졌다.

“이건가?”

꾸욱 누르는 순간.

갑자기 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옆으로 벽이 빠지더니, 새로운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이리스와 유세련이 환호를 하면서 나를 향해 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태오 오빠! 방탈출에 소질 있으신데요?”

“그래?”

그냥 얻어걸린 기분이긴 한데.

그래도 뭐,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내 분량 달달하게 챙겨 간 기분이다.

* * *

다른 예능 방송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분량을 챙기려면 기가막힌 타이밍에 멘트를 친다든지.

아니면 재미있는 에피소드 같은 것을 잘 풀어내야 그나마 카메라에 자주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위대한 탈출’ 같은 경우에는 일반 예능 프로그램과는 전혀 다른 식으로 비중을 늘려 가야 한다.

바로 방탈출에 얼마만큼 기여를 하는지, 여기에 따라 분량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많이 나오고 싶으면 그만큼 많이 활약하면 된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문제가 있다면.

‘난 별로 자신 없다는 거겠지만.’

방탈출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기에 기여도를 높이겠다는 목표조차 두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놀러 왔다는 기분으로.

그렇게 가볍게 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공간을 탈출한 것을 기점으로 이상하게 나한테 운이 몰려드는 기분이었다.

그 증거로.

“이거, 열쇠 아니야?”

두 번째 철창을 탈출할 수 있는 열쇠를 서랍 안에서 발견하고 말았다.

과연 이 열쇠가 맞을까?

이 의문은 금세 해결되었다.

유세련이 열쇠를 들고서 열리는지 안 열리는지 직접 실험에 임했다.

잠시 뒤.

딸깍!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해제되었다.

“태오 오빠, 잘하셨어요!”

“대단한데요, 태오 씨? 말해 보세요. 방탈출 경험자 맞죠?”

“아니요, 초보입니다, 초보.”

내 덕분에 우리는 말 그대로 순항을 이어 가고 있었다.

이쯤 되면 제작진도 당황해하지 않을까 싶다.

잘못하면 내가 각성 능력을 쓴 게 아니냐 하는 오해도 받을 것 같다.

그러나 벽에 있는 버튼을 정확히 찾아서 누른 것도, 선반에 있는 열쇠를 찾아낸 것도, 전부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 낸 업적들이다.

그렇게 우리는 빠른 속도로 철창들을 하나하나씩 격파…… 아니, 탈출해 나아갔다.

한 30분 정도 흘렀을까.

맞은편 벽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들이 들렸다.

귀를 기울인 유세련이 건너편에 누가 있는지 바로 알아차리는 모습을 보였다.

“오빠들! 거기 있어요?”

우리와 같이 오늘 ‘위대한 탈출’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는 고정 출연진이었다.

겁들이 다들 많아서일까, 유세련 씨의 외침에 깜짝 놀라는 목소리로 외쳤다.

“누, 누구세요!”

“저예요, 저. 유세련!”

“아…… 세련이야? 나는 또. 간수들인 줄 알았잖아.”

간수들?

여기에 간수들이 돌아다녔나?

처음 듣는 정보였다.

일단은 벽 너머의 출연자들과 합류하는 게 최우선이다.

어떻게 하면 저들과 만날 수 있을까?

방탈출 다수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는 아이리스의 촉이 발동했다.

“아까처럼 벽에 누르는 버튼이 있지 않을까요?”

“일단 찾아보죠.”

마나를 이용하면 금방 찾아낼 수 있긴 한데.

그러면 너무 사기라서 지금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여태껏 철창들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나는 머리를 써서 갇혀 있던 공간을 벗어나는 일에 대한 쾌감? 재미? 같은 것들을 잠시나마 느꼈다.

‘이래서 사람들이 방탈출 카페 같은 곳을 가나 보네.’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갔는데.

내가 직접 하고 나니까 왜 그런 거에서 재미를 느끼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제작진은 똑같은 수법을 재활용할 생각은 안 했던 모양인지, 아무리 벽을 눌러 봐도 꿈쩍하지 않았다.

뭔가 다른 장치가 숨겨져 있는 거 같은데…….

시야를 넓게 보기 위해 잠시 떨어져서 주변을 살폈다.

그 순간.

“혹시 저거 아닐까?”

내 눈에 힌트가 포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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