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31화 (131/250)

제34장. HTB, 컴백 (2)

라디오 녹음을 마치고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승훈이 형과 구내식당을 찾았다.

원래는 구내식당 말고 차 안에서 이동하면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로 때우곤 하지만, 생각보다 라디오 녹음이 빨리 끝난 터라 오늘은 마음 편히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여기 구내식당이 맛집이더라.”

마침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승훈이 형이 대신 해 줬다.

승훈이 형이 음식이 가득 담긴 식판을 들고서 내 맞은편에 앉았다.

이곳 방송국의 구내식당은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곳이다.

여기서 밥 먹기 위해서 일부러 이 방송국 프로그램의 스케줄을 잡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 돌 정도다.

물론 정말로 밥 때문에 스케줄을 잡는 건지 어떤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이 괜찮다.

게다가 내 입맛에도 딱이니, 자꾸만 머릿속에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승훈이 형, 맛있게 먹어.”

“너도.”

서로에 대한 짧은 말을 끝낸 뒤에 바로 식사 삼매경에 빠졌다.

오늘의 점심은 돼지불고기와 쌈, 강된장 그리고 된장찌개와 김치, 영양밥.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조리를 참 잘한다.

“우리 회사도 이렇게 맛있진 않은데.”

승훈이 형이 내게 ‘쉬잇!’ 하면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누가 듣고 있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뭐, 어때. 내가 거기 회사 이사인데.”

실질적인 대표이기도 하고 말이다.

내 말을 듣고 승훈이 형이 피식 웃었다.

“실력 좋은 조리장이라도 스카우트하자고 말해 둘까?”

“괜찮아. 여기에 비해서 맛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뿐이지, 우리 회사도 아예 맛이 없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맛 괜찮다고 소문이 난 곳이다.

그래서일까, 미팅 때문에 우리 HT 엔터테인먼트를 찾아온 상대 업체 사람들은 밖에서 나갈 것 없이 구내식당으로 와서 식사를 하곤 한다.

우리가 여기 방송국 구내식당에 와서 밥을 먹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보면 된다.

그렇게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나를 보면서 알은척을 했다.

“태오 씨?”

“국장님 아니십니까. 안녕하세요!”

이 방송국의 예능국장과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국장이 나를 보자마자 반가운 기색을 선보이면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예능국장의 등장에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직원들도 동시에 그에게 인사했다.

국장은 괜찮다면서, 식사하던 거 마저 하라고 직원들에게 손짓을 했다.

“여기서 태오 씨를 보다니, 신기하네요. 태오 씨도 우리 방송국 구내식당이 맛집이라는 거 듣고 오신 겁니까?”

“저희는 들어서 왔다기보다는, 예전에 이곳에서 먹은 적이 있어서 그 맛을 알고 있으니까 온 거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네요.”

“아, 이미 여기서 한번 식사를 하셨군요. 밥 먹고 간 사람들이 이곳에서 먹었던 밥이 점심때만 되면 계속 생각이 난다고 해서 일부러 먹으러 온 적도 있다고 하던데, 혹시 태오 씨도……?”

승훈이 형이 나를 대신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런 말을 꺼냈다.

“태오가 오전에 라디오 녹음 일정이 잡혀 있어서, 그거 끝나고 식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태오 씨가 온다는 거 알았으면, 저도 찾아뵈었을 텐데,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그리고 애초에 라디오 녹음을 하는데 굳이 예능국장까지 찾아와서 나를 반겨 줄 이유도, 필요도 없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국장이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너무 오래 여기에 있으면 식사하는 데 방해가 되니까 가 봐야겠군요. 나중에라도 근처에 일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여기 와서 식사하고 가셔도 됩니다. 태오 씨한테 제가 그 정도는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필요하다면 그때 국장님께 따로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예능국장을 보내고 나서야 승훈이 형과 나는 다시 식사를 재개할 수 있게 되었다.

승훈이 형이 마지막 남은 밥 한 숟가락을 해치운 다음에 내게 물었다.

“저기 저 예능국장하고는 예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말하는 거 들어 보니까 너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지진 않던데.”

“있었지. 형, 그거 기억나?”

“뭐?”

“예전에 지방 방송국 위에 게이트 열렸던 거.”

“아, 춘천 말하는 거야?”

“맞아, 거기.”

게이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열릴 수도 있고, 대한민국 수도 한가운데에 등장할 수도 있다.

태풍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의 경우에는 그래도 기상청의 기술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데, 이 게이트란 놈은 예측이 아예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만큼 대처가 안 되고, 피해는 당연히 클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춘천의 작은 방송국 바로 위에 게이트가 소환된 적이 있었다.

“그때 지금의 저 예능국장님이 춘천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너를 보고 저렇게 반가워하는 거였구만!”

“그렇지.”

마침 나도 현장에 가까이 있었다.

일 때문에 그곳에 가 있던 건 아니었고.

그동안 몬스터들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계속 일만 하고 그래서 오랜만에 쉬러 간 거였는데, 결과적으로는 또 일을 한 셈이었다.

그나마 내가 근처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내가 없었더라면 그날 방송국에 있던 사람들은 싸그리 다 몬스터들의 먹잇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방송국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나를 생명의 은인으로 추앙하고 있었다.

오늘 라디오 녹음을 하는데 스태프들 중에서 그쪽 방송국 출신이 있다는 걸 들었다.

그래서 녹음이 시작되기 전에 그 스태프한테서 연신 고맙다는 말을 10분 가까이 들어야 했다.

아마 녹음이 아니었다면, 최소 1시간 이상은 들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워낙 많았기에 이런 일을 생각보다 자주 겪게 된다.

승훈이 형이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말을 이었다.

“인류의 영웅이라고 불릴 만하네.”

인류의 영웅.

이 별명도 오랜만에 듣는 기분이다.

* * *

오늘 잡혀 있던 오후 일정은 약속 시간이 정확히 3시였다.

그러나 3시에 딱 맞춰서 가면 너무 정 없는 거 같고, 오전 일정도 일찍 끝나서 그동안 할 것도 없었기에 15분 정도 일찌감치 현장에 도착했다.

PD가 나를 보자마자 왜 이렇게 일찍 오셨냐고 말하며 부담감을 드러냈다.

이렇게 반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저희가 방송 준비에 차질이 생겨서 좀 늦어질 거 같은데…… 죄송합니다, 태오 씨. 한창 바쁘신 분 놔두고…….”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면 녹화는 언제쯤 시작될까요?”

“15분 정도 딜레이될 거 같습니다.”

15분이라.

그 정도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

그리고 어차피 이거 끝나면, 나는 따로 일정이 없으니까.

숙소에 일찍 들어가 봤자 할 것도 딱히 없고. 느지막하게 들어가는 것도 오늘에 한해서 나쁘지 않아 보였다.

대기하는 동안,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우리 앨범에 대한 반응을 살폈다.

음원이 공개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더니, 기어코 1위를 달성하게 되었다.

나나 우리 HT 엔터테인먼트 식구들 모두 이번 곡이 반응이 좋을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거의 동시에 주요 음원 차트들 1위를 차지할 만큼 눈에 띄는 성적을 보여 줄 거라고는 섣불리 예상하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의 인기가 뜨거웠던 건 맞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헌터 아이돌’이라는 특이점 때문에 어그로가 제대로 끌려서 그랬던 게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해서 반짝 효과 같은 거다.

하지만 우리는 두 번째 타이틀곡도 좋은 성적을 보여 줌으로써 반짝하고 사라질 그런 그룹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대중에게 증명하게 되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도 이러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었다.

일회성 프로젝트 그룹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앨범 구성이 굉장히 탄탄하다느니, 또 안무도 굉장히 마음에 든다느니 하는 이런 칭찬들이 주를 이뤘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상에 칭찬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나도 쓴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칭찬을 듣는 걸 더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대중의 반응이 좋으니까 내 기분도 좋아졌다.

그렇게 스마트폰을 보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을 무렵이었다.

“뭘 그렇게 히죽 웃으면서 보고 있어요, 오빠?”

아이리스가 어깨 너머로 내 스마트폰 화면을 훔쳐보면서 물었다.

아이리스도 오늘 나와 같이 여기 프로그램에 출연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와 있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제 우리, 컴백한 거 있잖아. 그거 반응이 어떤지 확인해 보고 있었어.”

“반응 좋던데요? 제 주변 사람들도 이번 곡 대박이라고 그랬어요. 벌써부터 길가 조금만 돌아다녀도 ‘세비올라’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더라고요. 그거 듣고서 오빠 노래, 이번에도 대박 났구나 싶었죠.”

아예 틀린 추측은 아니었다.

지금도 음원 차트에 당당히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니까 말이다.

“저희 오빠도 노래 처음 나왔을 때 엄청 좋아했어요.”

“좋아했다고? 누가?”

“저희 오빠가요.”

아이리스가 말하는 오빠란 사람은 몇 명 없다.

“설마 데이브 말하는 거야?”

“네.”

데이브가 노래를 처음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봤다.

……아니, 실패다.

상상이 전혀 안 된다.

데이브가 기뻐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 상상을 머릿속으로 재연할 수 있겠나.

“노래 엄청 좋다고 하더라고요. 빨리 컴백했으면 좋겠다고 저한테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어요.”

승훈이 형도 아이리스의 말을 들으면서 입이 근질근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형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느냐 하면.

당시 데이브는 아이리스가 말한 것처럼 격한 반응을 전혀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딱 한마디.

좋네.

이게 다였기 때문이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스태프 중 한 명이 아이리스를 찾았다.

“메이크업 들어가셔야 하니까 이쪽으로 와 주세요.”

“네, 그럼 조금 있다가 봐요, 오빠.”

“그래, 알았어.”

아이리스가 대기실을 나서자마자 승훈이 형이 참았던 입의 지퍼를 열었다.

“하여간 데이브 이 츤데레 녀석. 여동생 앞에서 하는 것만큼 우리들 앞에서도 좀 확실하게 의사 표현을 해 주면 어디가 덧나나.”

“데이브잖아. 그래도 가족들 앞에서나마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는 거 같아서 다행이네.”

나는 데이브니까 상대가 가족들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속내나 감정 같은 걸 철저히 숨기면서 다닐 줄 알았다.

사람이 그러면 굉장히 피곤한 법이다.

고민이 있으면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기쁜 일이 있으면 서로 공유하고. 이러면서 지내야 마음속 응어리지는 일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게다가 연예계에 종사하면 스트레스받을 일이 배로 늘 텐데.

그래서 한편으로는 데이브가 내심 걱정이었는데, 아이리스하고 가족들이 내 직장 동료를 잘 케어해 주는 거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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