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장. 복귀 (2)
멤버들이 전부 한국으로 들어온 뒤부터 컴백 작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들 첫 데뷔 과정보다는 확실히 나은 모습을 보였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쉬우니까.
한번 해 본 과정들이라서 그런지 멤버들은 곧잘 해내는 모습을 보였다.
이 중에서 특히 우리 그룹의 랩을 담당하고 있는 니암의 실력 상승이 가장 눈에 띄었다.
미국인이라서 그런지 영어 문장이 많이 들어가는 랩 특성상 발음이 상당히 좋게 들렸다.
인위적으로 혀를 굴린다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자연스러움.
텅 트위스팅(tongue twisting)도 니암에게는 문제 될 게 없었다.
원래부터 니암은 발음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영어뿐만 아니라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약간 어눌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지금은 혼혈아로 쭉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굉장히 능숙한 한국어 솜씨를 가지게 되었다.
가끔은 나나 승훈이 형보다도 더 한국말을 잘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언어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한 능력을 지닌 니암.
그래서인지 레코딩을 진행하는 내내 최 프로듀서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잘하네, 니암. 저번보다 실력이 훨씬 더 올라간 거 같은데.”
“감사합니다, 프로듀서님.”
“이 정도면 ‘쇼 미 더 뮤직’에 나가도 되겠다. 1차까지는 무조건 올라갈 거 같은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 미 더 뮤직.
그러나 니암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아직 그 정도 단계까진 아니라고 겸손함을 보였다.
동방예의지국인 같은 태도까지 갖추고 있다니, 완전히 한국인 다 됐다.
쉽게 레코딩을 진행하는 니암과 달리,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인물이 있었다.
딜런, 그리고 준서였다.
“딜런은 일하느라 바빠서 제대로 연습 못 했다 치더라도 준서, 너는 우리들 중에서 가장 한가했으면서 왜 이렇게 보컬 실력이 떨어졌냐, 어?”
부스 안에 있던 준서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헤드셋을 잠시 내려놓았다.
-노는 것도 얼마나 피곤한데요, 형.
“…….”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나를 제외하고, 우리 멤버들은 원래부터 가수를 꿈꿔 왔던 사람들이 아니다.
게다가 다른 가수들에 비해 준비 기간도 훨씬 짧았다.
그래서 멤버들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었는데.
준서한테는 먹혀들지가 않았나 보다.
준서도 괜히 찔리는 모양인지 어색한 웃음만 흘렸다.
심지어 얼마 전에 나하고 미니 콘서트도 한 녀석이 이러면 안 되잖아.
“최준서.”
-네, 형!
“너는 오늘부터 고설중 교관하고 같이 보컬 훈련 코스를 밟는다. 알겠냐?”
-그, 그걸 다시 하라고요?
“그게 싫으면 진작 연습 좀 하지 그랬냐. 어?”
“…….”
“아무튼 거절은 거절할 테니까 얌전히 포기하고, 오늘 레코딩 끝나면 바로 헌터 훈련소로 가라. 나예한테는 내가 연락해서 너 픽업해 가라고 할 테니까.”
한숨을 푹 쉬면서 알겠다고 답하는 준서.
진작에 말 좀 잘 들었다면 이 사달이 날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이다음은 데이브의 차례다.
부스에 들어가기 전부터 손에서 가사지를 놓지 않았던 데이브.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을 들은 건 꽤 예전 일이지만, 이래저래 바쁜 일들 탓에 본격적으로 노래를 불러 본 것은 꽤 최근이라고 들었다.
우리들 중에서 나 다음으로 노래 연습할 시간이 가장 없던 멤버인 셈이다.
그럼에도 데이브에 대한 걱정은 크게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애초에 데이브는 보컬 실력이 괜찮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내 예상대로, 녹음 부스 안에 들어간 데이브는 이전에 멤버들이 보여 줬던 뭔가 2퍼센트가 부족한 모습보다는 확연하게 다른 면모를 보여 줬다.
깔끔하고 정갈한 보컬 톤.
음정 역시 조금의 흔들림 없는 안정감을 선보였다.
최 프로듀서가 니암에 이어서 두 번째 감탄사를 흘렸다.
“잘하는데요? 데뷔 앨범 활동할 때보다도 훨씬 더 실력이 는 거 같아요.”
“데이브는 원래부터 노래 잘했으니까요.”
이철민 소장이 데이브의 MML 수치를 알아내기 위해서 몰래 음성 녹음을 시도했을 당시, 우리들 앞에서 직접 노래를 불렀던 적이 있었다.
그때 들었던 데이브의 보컬 실력은 아직도 내 뇌리 속에 인상적으로 남아 있었다.
그냥 대충 불렀는데도 불구하고 그 정도 실력이면, 확실히 보컬 쪽으로 재능이 있다는 소리였다.
물론 데이브 본인은 절대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데이브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책임감이 굉장히 깊은 편이다.
처음에는 반강제로 시작한 가수 활동이라 할지라도, 기왕 하게 된 거 제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틈이 날 때마다 노래 연습을 반복했을 게 틀림없다.
내가 아는 데이브의 성격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그래서 저렇게 오랜만에 녹음 부스에 들어가서 노래를 불러도 곧잘 하는 거다.
반주가 멈추자, 최 프로듀서가 데이브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방금 정말 잘 부르셨습니다. 음정도 깔끔하고요. 다음 파트로 넘어갈까 하는데, 괜찮겠죠?”
-혹시 한 번 더 부를 수 있습니까?
“한 번 더요?”
-예,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좀 있어서요. 시간은 많이 안 빼앗겠습니다.
“그러죠, 그럼.”
최 프로듀서가 다시 아까 틀었던 반주를 반복했다.
내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최 프로듀서에게 말했다.
“제 말이 맞죠?”
최 프로듀서가 마주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줬다.
* * *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나 같은 경우에는 뭐, 멤버들이 다른 일에 매진하는 동안 계속해서 꾸준히 솔로 활동을 이어 가면서 노래를 불렀으니까.
얼마 전에는 K-Pop 합동 콘서트에 미니 콘서트까지, 마이크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덕분에 노래를 부르는 걸 어색해하는 멤버들과 달리 나는 능숙하게 내 파트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오늘의 모든 레코딩이 끝났다.
그렇다고 녹음 과정 자체가 전부 마무리된 건 아니었다.
이제 겨우 타이틀곡 작업이 끝났을 뿐.
앨범에 들어갈 다른 수록곡들의 녹음이 남아 있다.
일단은 우리가 녹음한 걸 가지고 믹싱이 끝나면, 이걸 가지고 본격적인 안무 연습도 할 예정이다.
오늘 할 일을 무사히 끝낸 기념으로 고생한 최 프로듀서와 스태프들, 그리고 나와 우리 멤버들이 다 같이 저녁 식사 자리를 가지기로 했다.
메뉴는 딜런이 그토록 먹고 싶어 하던 부대찌개로 고르기로 했다.
찌개류에는 역시 소주가 빠질 수 없는 법.
“자, 모두 잔 채우고!”
내 말에 따라 오늘 저녁 식사를 빙자한 회식 자리에 참가한 사람들이 각자 잔을 들어 올렸다.
준서의 경우에는 술을 못 마시는 편이어서 소주잔에 사이다를 따라 대체했다.
자신도 조금이라도 외형을 비슷하게 만들어서 소주를 마시는 느낌을 살리고 싶다나 뭐라나.
아무튼 혼자만 탄산음료 마시고 있으면 좀 그래서 저렇게 공을 들여 준비하게 되었다.
“HTB의 성공적인 컴백을 위하여!”
“위하여!”
서로 잔을 부딪치고서 술잔을 기울였다.
요즘 회식 자리가 많았던 터라 술을 마시는 게 많이 익숙해졌다.
얼마 전에는 협회장님의 집에 가서 둘이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고 말이다.
최 프로듀서도 오늘은 술이 잘 받는 모양인지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로 외쳤다.
“오늘 술이 술술 잘 들어가네요, 하하하!”
나와 같은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던 준서가 ‘부장님 개그는 다른 곳에서 해 주세요, 프로듀서님.’이라고 태클을 걸었다.
마침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준서가 속 시원하게 해 줘서 다행이었다.
요즘 최 프로듀서가 자주 부장님 개그에 중독된 것처럼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은근히 신경이 쓰였는데, ‘팩트 폭행’도 서슴지 않는 준서의 성격이 이럴 때 참 도움이 된다.
그러나 최 프로듀서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면서 소심한 변론을 펼쳤다.
“막상 하면 우리 애들은 재미있다고 웃어 주던데…….”
“그거야 프로듀서님 밑에서 일하는 분들은 부하 직원 입장이니까 당연히 웃어 줄 수밖에 없죠.”
준서의 솔직한 말에 직원들은 최 프로듀서가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빠른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부장님 개그는 당분간 봉인하게 생겼다.
술잔을 내려놓은 최 프로듀서가 헛기침을 하면서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했다.
“그, 그나저나 이번에 앨범 발표하면, 활동 기간은 언제까지 잡으실 겁니까?”
내게 들어온 질문이었다.
나 역시 술잔을 기울이려던 것을 잠시 멈추고 답변에 집중했다.
“글쎄요. HTG 앨범 작업 끝나고 컴백할 때쯤에 맞춰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우리 회사가 나름 세운 전략이 있다.
HTB와 HTG는 최대한 겹치지 않는 선에서 활동을 이어 나가도록 하는 거 말이다.
만약에 컴백 시기가 비슷하면, 차트 순위가 서로 집안싸움으로 번지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런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시기를 나눠서 활동하고 있다.
“지금 HTG가 한창 활동 중이니까. 그쪽 가닥이 정해지면 저희 컴백 일자도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죠.”
“네, 알겠습니다.”
HTG는 컴백하자마자 음원 차트 순위 1위를 차지하면서 여전히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 기세를 우리가 그대로 이어받아야 한다.
세상을 지키기 위한 노래를 발표하는 그룹들이니까.
그만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 * *
보컬 녹음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반면, 안무 쪽은 난항을 겪고 있었다.
후크송에 맞춰서 안무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중독성이 느껴지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안무를 만드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덕분에 우리 안무 담당인 마진수 트레이너는 하루가 다르게 피곤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옅게 보이던 다크서클이 어느새 짙어진 것만 봐도 마 트레이너의 고민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창작이라는 게 늘 이렇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마진수 트레이너에게 이런 제안을 하기로 했다.
“생각이 잘 안 나시면, 다른 안무팀한테 시안을 받아 볼까요? 마침 트레이너님이 잘 아는 안무팀이 몇몇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쪽이랑 한번 적극적으로 이야기해 본 다음에 시안을 받아 보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서 저희 입맛에 맞게 수정하는 쪽으로 하죠.”
이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반드시 회사 내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필요는 없으니까.
마진수 트레이너도 도통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는 모양인지 내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말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이사님.”
“네? 왜요?”
“제가 괜찮은 안무를 만들어 냈다면, 이사님이 굳이 이런 말을 먼저 꺼내실 필요도 없었을 텐데…….”
나는 또.
뭐 중요한 실수라도 한 줄 알았네.
“이런 걸로 굳이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저도 헌터로 활동할 때 컨디션 문제로 도저히 수행 못 할 거 같은 작전 내용이 보이면, 다른 헌터들한테 대신 해 달라고 부탁하곤 했으니까요.”
사람은 만능이 아니다.
만능에 가까워지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만 있을 뿐.
마진수 트레이너도.
그리고 나도.
둘 다 마찬가지다.
대신에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고의 안무를 뽑아내기만 하면 된다.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