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장. 복귀 (1)
타이틀곡이 본격적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미국으로 파견을 나가 있던 데이브와 니암, 딜런, 셋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다가 미국에 가서 잠깐 동안 지냈던 셋은 다시 한국 땅을 밟아서인지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은 이제 겨울인가 보네요.”
“저번에 우리가 한창 활동할 때하고는 온도 차이가 엄청 나는데요?”
니암에 이어 딜런이 자신의 반팔 차림을 후회하듯 말했다.
내가 직접 공항으로 우리 멤버들을 위해 마중 나왔다. 보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게 바로 이들의 여름 패션이었다.
가을이 지나고 초겨울에 들어서는 우리나라에 반팔, 반바지 차림의 외국 남성 셋이 공항으로 입국했다고 하면 얼마나 눈에 많이 띄겠나.
게다가 우리는 일반인도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헌터 겸 보이 그룹, HTB의 멤버다.
우리가 공항에 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자들이 부랴부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이야기가 승훈이 형을 통해 전달되었다.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담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정신없이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이보다 더한 팬 서비스 요청이 들어오기 전에.
“후딱 짐 찾고 내 차로 가자. 괜히 여기 있다가 기자들 들이닥치면, 그때는 조용히 빠져나가고 싶어도 못 빠져나가니까.”
내 말에 멤버들이 비장감마저 느껴지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입국하기 위해 일부러 소리 소문 없이 지금 이때 공항으로 들어온 건데, 괜히 기자들을 끌어 들이면 우리의 이런 의도는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멤버들을 데리고 공항 입구 근처에 잠시 주차해 둔 차로 향했다.
안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준서가 우리들을 반겼다.
“형들! 오랜만이에요!”
“어? 뭐야, 너도 와 있었어?”
“형들 왔는데 너 혼자만 왜 편하게 차에 앉아 있냐.”
준서가 나를 가리키면서 왜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알려 줬다.
“태오 형이 여기서 조용히 있으라고 해서요.”
“어, 맞아. 내가 그랬어. 준서 데리고 다니면 여기저기 시끄럽게 하고 다닐 게 뻔해서.”
이런 이유 때문에 일부러 준서만 차에 남겨 뒀다.
괜히 소란 일으키면 기자들이 멤버들의 입국 사실을 더 빨리 눈치챌 수 있다.
그래서 나하고 멤버들 모두가 편하고자 일부러 준서만 낙오 아닌 낙오를 시켜 뒀다.
니암이 충분히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준서 녀석, 많이 시끄럽죠. 숙소 생활 할 때에도 밤이며 낮이며 계속 혼자서 쫑알쫑알쫑알…… 잠도 제대로 못 자겠어요.”
“형! 오래만에 봤는데 저 섭섭하게 만들면 안 되죠! 제가 형들, 우리 형들 다치지 않게 해 달라고 소원 빌고 그랬는데!”
“그래, 알았다. 형이 미안하다, 미안해.”
말로는 틱틱거려도, 서로 숙소에서 지내는 동안 문제없이 잘 어울리면서 생활했었다.
이번에도 니암, 딜런, 그리고 막내 준서는 먼저 숙소로 들어가서 생활할 예정이다.
나하고 데이브는 두 번째 앨범 작업이 끝나고, 컴백 무대를 일주일 정도 앞뒀을 때부터 숙소 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우리 같은 경우는 집이 먼 준서나 한국에 특별히 거주지가 없는 니암, 딜런과 달리 각자의 집이 있으니까.
그리고 데이브는 헌터로서, 나는 솔로 활동을 계속 이어 가고 있는 가수 겸 배우로서 개인 스케줄이 있다 보니 첫 번째 앨범 활동 때처럼 숙소에는 뒤늦게 합류하기로 했다.
운전대를 잡은 나는 뒷좌석에 앉은 채 말을 아끼고 있는 데이브에게 물었다.
“협회장님이 너 바로 볼 수 있으면 보자고 그러시더라.”
“테러리스트 녀석들 때문인가?”
“아무래도 그렇겠지?”
이미 여러 차례 미국 지부를 통해서 보고를 받았던 협회장이지만,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뛴 데이브의 의견도 많이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데이브가 한국으로 들어오자마자 바로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을 꺼낸 것이다.
“데이브부터 먼저 협회로 바래다주고, 그다음 숙소 들르자. 데이브, 너는 협회장님하고 이야기 끝나면 승훈이 형이나 아니면 나예, 강원이한테 연락해. 네 집까지 바래다줄 거야.”
데이브는 아직 차가 없다.
그래서 이동을 하려면 택시를 부르든가 아니면 아이템을 이용하면 되는데, 후자의 경우에는 눈에 너무 띄니까.
이런 이유에서 그냥 마음 편히 매니저를 불러서 집까지 가라는 말을 대신 전달해 줬다.
우린 이제 유명 연예인이니까.
너무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거리를 활보하면, 그것도 문제다.
어딜 가든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 테니까 말이다.
데이브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별다른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나와 같은 그룹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데이브는 은근히 내 말을 잘 듣게 되었다.
하기야, 데이브는 예전부터 자신이 싫어하는 말일지라도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투덜대더라도 따르는 편이긴 했다.
그런 태도가 아마 그룹 활동으로 인해 많이 누그러져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내 입장에선 좋다.
아직 정식으로 컴백 활동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서로 의견충돌을 일으킬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 * *
데이브를 먼저 협회에 바래다주고, 나는 나머지 멤버들과 함께 숙소를 찾았다.
거의 반년 만에 오는 건가.
숙소를 보자마자 멤버들의 표정에 복잡한 감정이 담겼다.
“와…… 여기를 다시 오니까 기분이 엄청 싱숭생숭하네요.”
준서의 말에 나는 농담조로 물었다.
“싫다는 뜻이냐?”
“그게 아니라요. 기쁘기도 하면서 그립기도 하고. 막 그런 기분 있잖아요.”
말로 형용하기 힘든 기분이라는 것만은 잘 알겠다.
살면서 이런 감정이 든 적이 꽤 있다.
나도 그렇고 말이다.
니암도 준서와 같은 기분을 드러내고 있었다.
반면, 딜런은 고향을 찾아온 것처럼 굉장히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는 미국에 있을 때보다 여기 한국에서 기숙사 생활하는 게 훨씬 좋더라고요. 미국에 가 있는 동안에도 하루빨리 컴백해서 다시 숙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의외네. 왜?”
태생이 미국인이니까, 나는 딜런이 당연히 미국에서 거주할 때가 더 편하다 느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딜런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른 생각과 행동을 보였다.
딜런이 어깨를 작게 으쓱이면서 말했다.
“글쎄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이라는 나라에 금세 적응해 버리고 말았나 봐요. 오자마자 부대찌개부터 생각나더라고요.”
“한국인 다 됐네.”
“이쪽으로 귀화할까 봐요.”
나중에 딜런은 거기 내보내면 좋을 거 같다.
외국인들이 나와서 한국 문화에 대해 직접 체험해 보고 하는 그런 예능 프로그램들 말이다.
한국에 푹 빠져 있는 딜런의 모습을 시청자들이 보게 된다면, 분명 호감도가 쌓일 것이다.
이건 승훈이 형한테 나중에 말해 둬야겠네.
한편, 숙소 곳곳을 돌아보던 니암이 혹시나 하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형, 숙소 청소 다 해 두신 거예요?”
“내가 직접 한 건 아니고, 승훈이 형이 너희 오기 이틀 전에 청소업체 불러서 한번 싹 정리했어. 어때, 깔끔하지?”
“네, 저 숙소 나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여기에 곰팡이 자국 있었는데, 이것도 다 지워져 있길래 설마 해서 물어봤어요.”
“그런 거 있으면 데뷔 활동할 때 말하지. 업체 불러서 청소하면 되잖아.”
우리가 직접 할 수도 있지만, 스케줄이 너무 빡빡하다 보니까 집안일을 제때 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이럴 때 쓰라고 돈 버는 거니까.
그리고 우리 사비를 쓰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다 지원을 해 주는 거기 때문에 이런 걸 아낄 필요가 전혀 없었다.
멤버들이 나중에라도 그런 게 보이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짐들 다 들어왔는지 확인해 보고.”
“네, 형.”
멤버들이 숙소에 오기 전에 이들의 짐이 한발 먼저 숙소를 지키고 있었다.
숙소에 올 때 같이 끌고 들어오면 힘들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먼저 멤버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짐들은 미리 택배로 보내 두라고.
멤버들도 그게 편할 거 같다고 생각했는지, 내 말에 얌전히 따랐다.
혹시 가져오면서 분실된 짐들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게 좋아 보였다.
준서와 니암, 딜런이 각자 짐을 확인하는 동안, 나는 승훈이 형한테서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거실로 향했다.
“어, 형.”
-애들 도착했지?
“응, 지금 짐 풀고 있어. 데이브 거는…… 내가 대신 풀어 주면, 아마 뒤집어지겠지?”
-백 퍼센트지, 뭐. 설마 진짜로 몰라서 나한테 묻는 거 아니지?
사실 아주 잘 안다.
그래도 그냥 한번 말은 해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우리 그룹의 평화를 위해서, 데이브가 올 때까지 녀석의 짐은 방치해 두기로 했다.
-근데 데이브가 짐을 그쪽으로 보냈어? 자기 집으로 보낸 게 아니라?
“어차피 우리 컴백하면 다시 숙소로 들어와야 하니까. 그래서 미리 보내 두기로 했대.”
-뭐, 그렇긴 하지.
“협회장님하고 데이브는 잘 만나고 있대?”
-글쎄. 내가 협회에 있는 건 아니니까, 확인할 방법이 없네. 뭐, 문제 있으면 협회에서 바로 연락이 왔겠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아직 협회에서 이렇다 할 연락이 안 온 거 보면, 예정했던대로 잘 만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내가 직접 협회까지 바래다줬으니까.
별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형, 청소 신경 써 준 거 고마워. 깔끔하게 잘되어 있더라.”
-그래? 다행이네. 너희들 다시 숙소 들어가서 생활한다고 해서 내가 매니저들하고 같이 계속 체크했거든. 애들도 다 만족한대?
“어,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다고 말하더라고. 내일부터 안무 연습하고 레코딩 들어갈 거니까 시간에 맞춰서 와 줘.”
-너는?
“나하고 데이브는 방송 스케줄 아니면 자차로 왔다 갔다 할게. 그게 더 편하거든.”
우리를 담당하고 있는 매니저가 셋이나 되니까, 나중에 운전하기 힘들면 그때 연락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승훈이 형과 전화를 끊고 난 뒤, 짐 확인을 마친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짐 확인 다음으로 중요한 게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방은 어떻게 할래, 저번에 썼던 거 그대로?”
세 사람 다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의 방 배정이 나름 마음에 들었나 보다.
새로 뽑기도 귀찮고, 멤버들이 좋다면 나도 오케이다.
“근데 형.”
준서가 거실 한쪽 벽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화이트보드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저건 뭐예요?”
“저거? 앞으로 우리 스케줄표 저기다가 정리해 두려고. 저렇게 해 두면 너희도 보기 편할 거 아니야. 그렇지?”
멤버들은 내 말에 동의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니암이 추가로 물었다.
“그런데 저렇게까지 큰 게 필요할까요?”
“커야지.”
일부러 저렇게 큰 사이즈로 걸어 놓은 이유가 있었다.
“우리 첫 번째 앨범 활동했을 때보다 두 번째 앨범 활동이 배로 바빠질 테니까.”
“…….”
순간적으로 침묵이 이어졌다.
멤버들을 겁주려고 농담식으로 말한 건 아니다.
사실이다.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