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장. 컴백 준비 (2)
최 프로듀서가 강한 자신감을 보이길래 이번 노래가 좋게 나왔을 거란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예상을 아늑히 뛰어넘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드는 곡이 나올 줄은 몰랐다.
노래가 좋은 건 둘째 치고.
“이번에는 실용성과 편리성도 고려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노래를 고안하게 되었는지, 최 프로듀서가 구구절절 설명을 들려줬다.
실용성과 편리성.
이 단어들이 지금 내가 들은 이 노래를 정말 잘 표현한 말들이라고 생각한다.
최 프로듀서가 말한 실용성, 편리성은 이런 뜻이었다.
내가 전장의 아이돌이니만큼 전투 현장에서 편하게, 쉽게, 간단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라는 의미였다.
아까도 느꼈지만 고음 파트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가사도 외우고 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까지 좋다.
내가 딱 원하던 곡이었다.
“최 프로듀서님이 여태껏 저한테 주신 곡들 중에서 이게 넘버원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작곡하신 노래들 전체가 다 좋지만, 이번 노래는 특히나 더 좋네요.”
“이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후후 하고 낮은 톤으로 웃음을 흘리는 최 프로듀서.
여기서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근데 노래 제목이 어떻게 되나요?”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까 노래는 들었는데, 정작 중요한 제목을 못 들은 거 같다.
“제목은…… 글쎄요. 생각을 안 해 봤습니다.”
그만큼 곡 작업에 정신이 없었던 걸까.
뭐,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프로듀서님께서 혹시 생각해 둔 제목이 있을까요?”
“제가 따로 생각한 건 아니지만, 저희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세비올라’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부르는지 알 거 같았다.
후렴구에 계속 반복되는 마법의 주문 같은 단어가 ‘라 비타윤 세비올라’였기 때문이다.
이 글자가 계속해서 반복된다.
앞에 글자까지 다 포함해서 부르면 타이틀이 너무 긴 거 같고, 그래서 줄여서 ‘세비올라’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세비올라’라고 할까요?”
“그렇게 금방 지어도 됩니까?”
“네, 오히려 이렇게 지어야 이 노래에 잘 어울리는 거 같아서요. 프로듀서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나요?”
최 프로듀서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도 들어 봤으니까.
“이제 다른 멤버들한테도 들려주면 되겠네요.”
“다른 분들도 이사님처럼 반응이 괜찮으면 좋겠습니다.”
걱정을 드러내는 최 프로듀서를 향해 나는 승훈이 형한테 들었던 말을 인용하기로 했다.
“괜찮아요. 저희가 은근히 음악 취향이 비슷해서요. 멤버들도 분명 저하고 똑같이 말할 거예요.”
왠지 진짜로 그렇게 될 거 같다.
* * *
우리 HTB의 대망의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이 될 ‘세비올라’를 미국에 있는 멤버들에게 먼저 공유해 줬다.
그다음, 나와 같이 한국에서 머물고 있는 준서에게도 들려줬다.
준서한테는 다른 멤버들처럼 파일로 넘겨주기보다는 직접 회사로 와서 듣게끔 했다.
이게 더 현장감이 좋고, 또 노래를 들었을 때 느낀 소감을 우리들에게 바로바로 알려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헤드셋에 모든 신경을 모으는 준서.
노래가 끝나자마자 준서가 들려준 첫마디는 굉장히 짧고 강렬했다.
“대박……!”
역시나.
나와 승훈이 형의 예상이 그대로 적중했다.
준서가 잔뜩 흥분한 채로 말했다.
“뭐예요, 이 노래? 중독성 쩔어요! 라 비타윤 세비올라~ 무슨 마법의 주문 같은데요?”
“마법의 주문 맞대.”
“정말요? 그러면 이걸로 마법 쓸 수 있어요?”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로 쓰는 건 불가능해.”
애초에 우리 헌터들은 마법의 주문 대신 시동어를 사용하는 편이다.
정신집중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자체적으로 만든 마법의 주문을 주저리주저리 읊으면서 캐스팅을 하는 헌터들도 간혹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내가 아까 말했듯이 짧은 시동어를 사용했다.
바로 눈앞에서 몬스터가 이빨과 발톱을 세우고 내 목을 노리고 있는데, 거기서 긴 주문을 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안전이 완전히 확보되었을 때, 그리고 마력이 많이 소모되는 강력한 기술을 사용할 때나 긴 주문을 사용한다.
그래도 ‘라 비타윤 세비올라’ 정도 되는 길이의 문장이면, 시동어로 사용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준서도 나와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이런 말을 꺼냈다.
“나중에 우리 노래 듣고 일부러 이 말을 시동어로 사용하는 헌터들도 나오겠는데요?”
왠지 현실성이 있다는 게 더 무섭다.
“다른 형들은 어떻대요?”
멤버들의 반응이 궁금한 모양인가 보다.
준서에게 회사로 찾아오라고 연락을 돌리기 전에 멤버들한테 먼저 노래에 대한 감상을 받았었다.
결과는.
“다들 오케이래.”
“역시. 저희는 한마음 한뜻이네요.”
“그러게 말이야.”
HTB를 결성하기 전까지는 내가 데이브와 뭔가가 일치된 의견을 펼친다는 게 감히 상상이 안 됐었는데.
확실히 그룹 활동이라는 게 유대감을 두텁게 만드는 효과가 있나 보다.
몇몇 그룹은 오히려 자주 뭉쳐서 행동하다 보니까 의견 충돌 같은 게 심해져서 싸움도 발생하고 그러는 경우가 있다던데.
의외로 나와 데이브는 그런 게 없었다.
역으로 그룹 활동을 결성하고 나서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뭐, 나는 예전부터 데이브를 진심으로 싫어하진 않았으니까.
그냥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정도가 다였다.
아무튼 멤버들도 다 오케이를 했고.
이것으로 우리의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이 확정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는 남아 있었다.
최 프로듀서가 이 중 하나를 언급했다.
“그런데 이사님, 다른 멤버분들은 언제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시는 겁니까?”
“그건…… 협회장님하고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거 같네요.”
협회장하고 저녁 약속이라도 잡아 봐야겠다.
* * *
많이 바빠 보이길래 나는 협회장과의 식사 자리가 한참 뒤에 성사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의외로 바로 다음 날 저녁에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대신에 한 가지 감수해야 할 게 있었다.
식사 장소가 외부 식당이 아닌, 협회장의 집으로 정해지게 된 것이다.
이걸 ‘감수한다’라고 표현하는 게 과연 옳은 걸까?
뭐, 나야 상관은 없었다.
반대로 손님을 집으로 들이게 된 협회장 입장에선 청소도 해야 하고, 음식 준비도 해야 하고,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라서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협회장은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들어와.”
“형수님하고 따님분들은요?”
“저번 주에 유럽으로 휴가 갔어. 애들이 방학이거든.”
“협회장님은 같이 안 가셨나요?”
“바쁘니까. 그리고 언제 어디서 또 몬스터나 테러리스트 놈들이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24시간 항시 대기해야지. 컨트롤 타워가 부재중이면 대응이 안 되잖아.”
맞는 말이다.
그래도 쉬면서 일하는 게 좋긴 한데. 우리 협회장은 말 그대로 일에 미쳐 있는 남자였기 때문에 딱히 휴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가족들도 그만큼 이해를 해 주고 있다고 들었으니까.
뭐…… 이건 협회장이 알아서 잘 처리할 문제니까 더 이상 깊게 관여하지 않는 게 좋아 보인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저희 그룹 활동에 대해서요.”
“아, 그 전에 잠깐만. 고기 재워 둔 게 있거든. 이거 굽고,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앞치마를 두르는 협회장의 모습이라.
굉장히 참신하다.
협회장하고 나름 오랫동안 알고 지내다 보니까 서로 별의별 모습을 다 본다.
“우리 와이프가 너 온다고 특별히 준비해 두고 간 고기거든. 어때, 맛있어 보이지?”
“제가 양념갈비 좋아한다는 거, 형수님도 알고 계셨어요?”
“어. 초코맛 아이스크림 좋아한다는 것도 알더라. 우리 와이프가 기억력이 굉장히 좋은 여자거든. 너에 대해서 말해 준 게 몇 개 있었는데, 그걸 안 까먹고 기억하고 있더라고.”
“나중에 형수님한테 선물이라도 따로 보내 드려야겠네요.”
“그래 준다면 엄청 좋아할 거야.”
협회장한테 형수님이 뭐를 좋아하는지 조금 있다가 물어보든가 해야겠다.
기왕이면 받고 싶어 하는 물건을 받는 게 좋지 않겠나.
주는 사람 입장에선 뭘 사 줘야 좋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고.
아무튼 형수님 덕분에 맛있는 고기와 함께 맛 좋은 술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나보다 협회장이 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와이프하고 딸들 있으면 눈치가 보여서 집에서 마음껏 술을 마실 수가 없거든.”
“그래서 일부러 저를 집으로 초대한 거예요?”
“뭐, 그것도 있고. 그리고 중요한 이야기일수록 듣는 귀가 없는 곳에서 만나는 게 좋지 않겠냐.”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그룹 활동에 관한 이야기니까. 괜히 다른 곳에 새어 나가면 많이 곤란해진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 때문에 나를 따로 보자고 한 거냐?”
“미국에 있는 저희 멤버들, 언제쯤 수색 작전 끝날지 궁금해서요. 슬슬 레코딩도 해야 하고, 안무 따서 연습도 들어가야 되고, 준비할 게 산더미거든요.”
“안 그래도 미국 지부에서도 제이커에 대한 수색은 당분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더라. 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다는데, 단서가 안 보인대.”
“그 제이커라는 자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철민 소장한테 들은 바에 의하면 굉장히 치밀한 성격인 거 같더라고요. 아마 대전에서 사건 터지자마자 바로 잠적할 준비 다 끝냈을 거예요.”
빙빙 돌려서 좋게 말하긴 했지만.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한발 늦은 거다.
협회장도, 그리고 미국 지부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녀석은 분명 또 움직일 거다. 그때는 놓치지 말고 바로 행동에 나서야지.”
협회장이 잔을 들어 올렸다.
내 술잔과 협회장의 술잔이 짠! 소리를 내면서 짧은 충돌음을 들려줬다.
순식간에 잔을 비운 협회장이 무거운 한숨을 토해 냈다.
“몬스터 놈들이 없어져서 이제 좀 살 만하다 싶더니만. 이제는 테러리스트 녀석이 튀어나와서 골치 아프게 만드네.”
“협회장님은 그 제이커라는 남자에 대해서 잘 아시나요?”
“잘은 몰라. 그래도 몇 번 만나 본 적은 있었지. 아주 특이한 녀석이었어.”
“특이하다고요?”
“어. 뭐랄까, 사고방식이 남들과는 완전히 다르더라고. 예전에 헌터협회에서 제명되기 전에 나한테 이런 말도 했었어. 몬스터의 존재가 헌터들의 가치를 높여 주고 있는 거라고. 몬스터는 필요악 같은 존재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라.”
“…….”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잘 모르겠어.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걸 인정할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몬스터는 명확한 악이니까. 그런데 그걸 우리가 인정해 버리는 순간, 우리는 인류의 방패도 뭣도 아니게 되어 버리잖아. 안 그러냐?”
협회장의 고민도 충분히 이해한다.
실제로 내가 대전에 내려갔을 때,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다는 이유로 한물간 짐짝 취급을 받는 헌터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결국 제이커가 하고 싶었던 말은 뭘까?
나는 제이커가 아니니까, 정확하게는 모른다.
언젠가 녀석을 붙잡으면, 반드시 물어볼 것이다.
정확히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그리고 왜 테러리스트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