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장. 영화 개봉 (3)
마침내 영화 ‘그날, 우리’의 개봉일이 밝았다.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나는 승훈이 형과 함께 집 근처에 있는 영화관을 찾았다.
평일 오전이라서 사람들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만석이네.’
일부러 사람들을 피해 아침 일찍 온 보람이 전혀 없었다.
한편,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자마자 환호성을 보냈다.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던 나는 그냥 영화만 보고 가기에는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스크린 화면 앞으로 나왔다.
어차피 아직 영화가 시작되려면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그래서 관객들한테 하나만 물어보기로 했다.
“아아.”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공간이 워낙 넓다 보니, 마이크가 없이는 맨 뒤에 앉은 사람들에겐 내 목소리가 닿지 않을 것이다.
그걸 직원도 고려한 모양인지 내게 다가와 물었다.
“마이크 가져다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마력을 이용해서 목을 강화하면 된다.
내가 발성 연습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스킬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앞에 선 내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중요한 이유가 있어서 여기에 선 건 아니고요. 저희 영화 보러 와 주셨는데, 제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그것도 매너가 아닌 거 같아서요. 그래서 여기 계신 분들 모두에게 탄산음료하고 팝콘을 돌릴까 하는데, 괜찮으시죠?”
사람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세상에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도 그렇고 말이다.
객석이 꽉 차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소비는 내게 있어서 큰 타격은 아니다.
돈 부족해서 문제 생길 일은 내가 죽기 전까지는 아마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나야 그러려니 하지만, 직원들에게 좀 미안하긴 했다.
갑자기 일거리가 확 늘어났으니까.
음료하고 팝콘 많이 팔았다고 직원들의 월급이 늘어나는 것도 아닐 테고.
‘나중에 직원들한테도 수고했다고 뭐 좀 챙겨 줘야겠네.’
이런 거 하나 놓치면 나중에 인터넷에서 안 좋은 소리 듣기 십상이다.
게다가 나는 연예인이니까.
남들보다 더 조심해야 한다.
* * *
내가 출연한 영화라서 그런 걸까.
‘봐도 봐도 또 재미있네.’
이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에 한해서 N회 차 상영 도전을 하나 보다.
분명 아는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영화를 다시 보고 나면 내가 몰랐던 부분들이 보이곤 한다.
최기호 감독의 경우에는 특히나 세심하고 디테일해 작은 부분에도 많은 신경을 쓰는 스타일이다 보니, 이전에 놓쳤던 것들이 하나하나씩 보였다.
물론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관객들은 나처럼 이런 게 잘 안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이 영화를 처음 보는 거니까.
스태프 롤이 올라가자마자 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나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냈다.
졸지에 승훈이 형까지 관객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면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게 되었다.
내가 이곳에 계속 남아 있으면 현장이 많이 어수선해질 게 뻔하니까, 직원들을 위해서 최대한 빨리 상영관을 벗어나 주기로 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승훈이 형이 시동을 걸면서 말했다.
“관객들 반응 보니까 느낌 좋더라.”
“그래?”
“어. 네가 7백만 넘으면 공약 이행하기로 했었지? 그거,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승훈이 형은 나름 촉이 좋은 편이다.
그런 형이 말을 하니까 왠지 모르게 나도 그렇게 믿게 된다.
“오늘 회사 들어가서 네가 건 공약 준비하게끔 해 둬야겠다. 달성하고 그때부터 부랴부랴 준비하면 정신없을 테니까.”
“나는 다른 멤버들을 한번 꼬셔 볼까? 나 혼자 무대 서는 것보다 HTB 멤버들이 같이 서는 게 더 좋잖아.”
“그렇긴 하지. 근데 미국에 넘어가 있는 멤버들은 아마 힘들 거 같은데.”
“안 되면 준서라도 부르지, 뭐.”
준서는 내가 연락하면 바쁜 일도 제쳐 두고 바로바로 달려오는 착한 동생이다.
데이브, 니암, 딜런은 미국 현지에서 제이커가 남긴 흔적을 찾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반면, 준서는 아직까지 백수로 지내고 있는 중이다.
앨범 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지금은 숙소가 아니라 본가에 가서 지내고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집에서 놀고먹고 있으면 부모님 눈치 보인다고, 나한테 일거리 있으면 좀 불러 달라고 연락을 해 오곤 했다.
한창 활동할 때에는 놀러 가고 싶다는 둥, 늦잠 자고 싶다는 둥 온갖 불만을 쏟아 내던 녀석이, 정작 한창 쉬고 있으니까 오히려 일을 하고 싶다고 그러고 있다.
‘무슨 청개구리도 아니고.’
하여간 재미있는 녀석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가장 먼저 인터넷에 접속해서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의 반응부터 살폈다.
[0eeowiw : 영화 본 사람? 나 오늘 아침에 첫 빠로 보고 왔는데, 미쳤던데! 개 재미있었어.]
[최고의행운 : 아직 영화 안 본 사람 있으면 꼭 보고 와라. 푯값이 안 아깝다. ㄹㅇ]
[인생찬가 : 나 오늘 영화관에서 강태오 만나고 왔다 ㅋㅋㅋㅋㅋ 실물로 봐야 돼. 남자가 봐도 잘생겼더라. 공짜로 음료하고 팝콘도 사 줬어]
나와 같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던 사람의 댓글도 보였다.
본의 아니게 우리 영화에 대해 잘 써 달라는 뜻으로 팝콘, 음료를 쏜 것처럼 되었다.
그래도 뭐, 욕먹는 것보단 이렇게 칭찬을 듣는 게 훨씬 나으니까.
영화에 대한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이대로만 가면 정말로 승훈이 형이 이야기했던 그대로 순식간에 7백만 명의 관객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슨 노래 부를지, 세트리스트를 미리 생각해 둬야 하나?’
생각지도 못했던 방학 숙제가 밀려온 느낌이다.
* * *
개봉 2주 차.
첫날부터 오늘까지 ‘그날, 우리’는 예매율 1위를 달성하면서 상영관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할 정도로 압도적인 영향력을 뽐내고 있었다.
덩달아 나와 수현 씨, 진연 씨도 많이 바빠졌다.
예능 울렁증이 있다는 진연 씨를 배려해서 우리 셋은 영화 홍보를 위해 토크 프로그램 위주로 방송 출연을 이어 나갔다.
오늘도 토크 관련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셋이 한자리에 뭉쳤다.
최근까지 스케줄을 같이하는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이렇게 셋이 나란히 앉아 있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지가 않을 정도였다.
슛 들어가고 진행자가 힘찬 멘트를 들려줬다.
“오늘 아주 귀한 분들을 게스트로 모셨습니다! 장안의 화제라고 할 수 있죠! 용수현 씨, 민진연 씨, 그리고 강태오 씨입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우리가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고정 패널들이 뜨거운 박수로 우리들을 맞이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녹화 시작하기 전에 미리 어디에 앉을지 안내를 받았던 자리를 찾아서 착석했다.
MC가 우리들을 향해 물었다.
“요즘 정신없으시죠?”
우리들 중에서 수현 씨가 대표로 답했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아직 개봉한 지 2주 차밖에 안 되었는데, ‘그날, 우리’는 벌써부터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었다.
최기호 감독을 포함해서 여러 영화 관계자들은 영화가 잘될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유명세를 타게 될 줄은 몰랐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영화가 엄청난 화제 몰이를 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최기호 감독의 연출력과 첨단 기술이 접목된 CG 효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레이드 시대 때 맹활약을 펼쳤던 내가 실제로 몬스터와 싸우는 것처럼 연기를 펼쳤으니까.
화제가 될 만한 요소가 한두 개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개봉 전부터 성적에 대해 왠지 좋은 느낌을 받았다.
그게 현실로 이루어진 덕분에 일단 한시름 놓게 되었다.
“곧 있으면 글로벌 개봉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예,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쪽에도 순차적으로 개봉될 예정입니다. 이미 번역 작업도 다 끝났다고 들었어요.”
수현 씨의 말에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데, 과연 이 영화가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까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레이드 시대가 끝난 지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때 당시에 자신들이 몰랐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예비역들이 술자리에서 계속 군대 이야기를 꺼내는 것하고 비슷한 이치라고 보면 된다.
그 시기를 거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면 모를 것이다.
인류가 몬스터라는 존재에게 잡아먹힐 뻔했던 위기의 순간들을.
그것을 영화로 제작했으니,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몬스터, 아이템, 게이트, 그리고 헌터는 아직도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미지의 영역 취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행자가 해외 개봉에 대해 추가 질문을 건넸다.
“그렇게 되면 외국에도 자주 나가시게 되겠네요?”
“네, 그렇죠.”
“영어는 좀 하시는 편인가요?”
수현 씨와 진연 씨가 서로를 바라봤다.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영어 공부에 취미가 없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통역가만 믿고 가려고 합니다.”
“수현 씨가 나를 힐긋 바라보면서 말했다.”
“여기, 저희들 전담 통역가님이십니다.”
수현 씨의 말에 나는 하하 웃고 말았다.
진행자와 패널들 역시 웃으면서 한편으로는 수현 씨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긴, 태오 씨는 외국에서 오랫동안 거주하셨으니까요.”
“웬만한 언어는 다 섭렵하지 않으셨나요?”
화두가 자연스럽게 내게로 넘어왔다.
이런 거 하나하나가 내 출연 비중을 높여 주는 기회가 된다.
“네, 영어는 기본이고, 독일어에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습니다.”
나처럼 전투력이 높은 헌터들은 자주 지원 요청을 받곤 한다.
한번 출장을 가면 기본적으로 1~2주 정도는 머무르니까.
그렇다 보니 언어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 같은 것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게 되었다.
실제로 나처럼 외국에 자주 나갔던 어느 헌터는 레이드 시대가 끝나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들은 것들을 정리해서 책으로 출판한 적도 있었다.
그 책이 한동안 베스트셀러로 올라가 있었던 게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다양한 체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보니 독자들에게 보다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할 수 있었다.
헌터라는 직업의 또 다른 이점을 잘 활용한 셈이었다.
아직까지 외국 일정은 잡혀 있지 않지만, 만약에 정말로 글로벌 개봉에 맞춰서 행사 일정이 짜인다면, 나는 따로 통역가를 데리고 다닐 생각이 없었다.
나 혼자 알아서 잘하니까 말이다.
수현 씨와 진연 씨도 이걸 잘 아는 모양인지 내 쪽을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강한 믿음을 드러냈다.
“그때는 잘 부탁드릴게요, 태오 씨.”
“저도요.”
두 사람을 향해 나는 장난기가 감도는 미소를 지어 보냈다.
“통역비는 비싸게 받아도 되는 거죠?”
“엇, 공짜가 아니었나요?”
“물론이죠.”
현장은 내 능청스러운 말에 다시 한번 웃음바다가 되었다.
진담은 아니고, 이렇게 한번 웃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해 본 농담이다.
카메라 앞에서 이런 받아치는 멘트도 자연스럽게 할 줄 알게 되다니.
나도 이제 어디 가서 방송 짬밥 좀 된다고 자랑하고 다닐 만한 단계에 이르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