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17화 (117/250)

제29장. k-pop 합동 콘서트 (5)

게이트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레이드 시대의 서막을 열었던 당시.

나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던, 단순한 지망생에 불과했었다.

그랬던 내게 어느 순간부터 각성의 힘이 눈을 뜨게 되었고.

그날 이후, 나는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인해 가수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나는 특별히 미련 같은 걸 가지지 않았다.

가수로서의 재능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고.

소속사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는 입장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각성자가 되었을 때,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다행이라고.

내심 그렇게 안도하고 있었을 내 모습을 가끔. 정말로 아주 가끔 상상하곤 했었다.

언제 이룰지 모를 꿈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도 안 된다.

시간 낭비에 불과할 뿐이다.

설령 가수가 되었다고 한들.

과연 내가 이렇게 큰 무대에 서는 날이 올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컸었다.

재능이 없으니까.

하지만 각성자가 되고.

헌터가 된 이후부터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가수가 되기에 재능이 부족하다면, 내가 가진 각성 능력을 이용해서 그 부족한 점을 메우면 그만이다.

각성 능력으로 목 근육을 단련시켜 보컬 능력치를 키우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안무 능력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몸 쓰는 게 우리 헌터들의 일이지 않은가.

지치지 않는 체력을 앞세우면서 남들보다 2배, 3배 가까운 시간을 연습에 때려 박으면, 진짜 미친 듯이 재능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웬만하면 기준치 이상의 춤 실력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나는 그렇게 각성 능력과 함께 헌터로서의 인지도를 이용해서 가수가 되었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K-pop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미국 합동 콘서트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주인공이 되었다.

이 감회가 팬들의 함성 소리와 함께 밀물처럼 나를 덮쳤다.

바람이 거칠게 불던 날.

모든 것이 너의 기억과 함께 사라져 버렸어.

No way.

오랜만에 불러 보는 나의 데뷔곡, ‘나의 길’이 미국 현지 한가운데에서 당당히 울려 퍼졌다.

이전 무대에서도 그랬듯, 미국 팬들은 내 노래도 같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객석 사이를 가득 채우는 회색 물결.

나 역시 손을 들어 올리고서 팬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들었다.

첫 곡이 끝나고.

쉴 틈 없이 바로 다음 곡을 이어 나갔다.

“두 번째 곡, ‘결의’ 시작하겠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나아가.

돌아보지 마.

네 자신을 믿어.

Trust me.

한때 가수의 꿈을 포기하려고 했던 과거의 나에게 들려주는 듯한 가사가 내 입을 통해, 그리고 팬들의 입을 통해 이곳 소프 스타디움에 울려 퍼졌다.

무대에서 격렬하게 춤을 추면서 노래를 펼쳐도 난 그 어떤 가수들보다도 안정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소화할 수 있었다.

이게 다 각성 능력 덕분이었다.

몬스터들과 무기를 들고 하루 온종일 싸우는 게 일상이었는데, 노래 부르면서 춤추는 일은 이보다 훨씬 수월했다.

게다가.

‘목숨을 던질 일도 없고.’

이것이 내게 심리적 안정감도 선사했다.

첫 번째 곡과 두 번째 곡을 연달아 소화한 나는 바쁘게 달려왔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마이크를 들고서 무대 정중앙으로 향했다.

소프 스타디움의 경우에는 무대와 객석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객석 한가운데에 원형으로 구성되어 있는 별도의 스테이지가 있다.

본무대에서 원형 스테이지까지 길게 이어져 있는 길을 따라 걸으면 금세 도착할 수 있다.

일부러 원형 스테이지에 선 나는 360도로 감싸고 있는 객석을 쭉 둘러봤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태오입니다!”

짧은 인사임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환호성은 미칠 듯이 컸다.

서라운드로 울리는 함성에 나는 마치 전기라도 통한 것처럼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말 그대로 전율이 나를 감쌌다.

손등으로 땀을 살짝 닦아 낸 나는 다음 무대 준비가 끝나기 전까지 팬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오늘 즐거우셨습니까!”

사방에서 ‘네!’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였다.

나를 배려해서인지, 아니면 여기가 K-pop 합동 콘서트라는 자리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모인 팬들은 미국 국적임에도 불구하고 가급적이면 한국어로 답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헌터 때에는 오롯이 몬스터들만 족치느라 느끼기 힘들었던 국위선양을 여기서 느끼게 될 줄 몰랐다.

“저도 여러분들 덕분에 무대를 마음껏 즐기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오늘 이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걱정을 많이 했었거든요. 한국에서 열리는 콘서트도 아니고. 미국이다 보니까 얼마나 많은 팬 여러분들이 와 주실까. 혹여나 여기 콘서트장의 반의반의 반도 못 채우는 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티켓 예매 당시에는 이 걱정을 왜 했냐고 말하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졌다.

사전 예매 페이지가 열리자마자 1분도 안 돼서 전 좌석이 매진되었기 때문이다.

티켓을 못 구한 사람들은 암표라도 구한다는 글들을 다수 올림으로 인해 K-pop 합동 콘서트가 얼마나 미국 현지에 큰 인기몰이를 했는지 나타냈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힘들게 온 만큼 제가…… 아니, 여기에 참석한 모든 가수들이 확실하게 보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다시 한번 즐길 준비 되셨습니까!”

“예에!!”

“그럼 바로 세 번째 곡 시작하겠습니다!”

아직 콘서트의 밤은 끝나지 않았다.

노래가 남아 있는 한.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아직이다.

* * *

앵콜 곡까지 모두 끝나고. 두 번째 앵콜 곡을 위해 K-pop 합동 콘서트에 참가했던 가수들 전체가 무대로 올라왔다.

오늘은 편하게 객석에서 콘서트를 지켜보려고 왔었던 첫날 참가팀들 역시 내 부름에 따라 모두가 무대로 등판하게 되었다.

무리한 부탁이라는 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올라오기 싫은 사람들은 안 올라와도 된다고 그랬는데. 서로 미리 짜기라도 했는지 그런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합동 콘서트의 시작을 성공적으로 알렸던 커스티를 포함해서 HTG, 해피모드, 그리고 다른 가수 팀들까지.

전부 다 무대에서 한마음 한뜻으로 마지막을 불태웠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막을 내리게 된 K-pop 합동 콘서트.

대한민국 가요계 역사상 미국에서 열렸던 콘서트 중 가장 큰 규모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앞으로도 계속 규모를 늘려 가야지.’

내가 헌터로 활동할 때 가장 견제하는 말이 있었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라는 말이다.

얼핏 보면 좋은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은 함정이 숨어 있다.

자기 자신에게 자체적으로 천장을 만드는 말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이 천장을 깨부수면서 나아가야 한다.

성장하고, 성장하고 또 성장해야 어제의 나보다 강해질 수 있다.

이것이 내가 헌터 랭킹 1위에 오르게 된 비결이기도 하다.

무대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왔을 때, 나보다 먼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있었다.

협회장과 연 대표, 그리고 승훈이 형이었다.

협회장이 대표로 내게 꽃다발을 전했다.

“콘서트 마무리 짓느라 고생 많았다, 태오야.”

“저, 협회장님한테 꽃다발 선물 받는 거 처음인데요.”

“뭐 어때. 나도 누군가한테 꽃다발 주는 거 처음이라고. 살다 보면 이런 경우도 있는 거야.”

내 말을 들은 협회장은 뒤늦게 쑥스러움이 밀려온 모양인지 머리를 긁적이면서 무안함을 내비쳤다.

“아무튼 무사히 콘서트 마친 거 축하하고.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뭐…… 당분간은 좀 쉬어야겠죠? 영화 촬영에 테러리스트 사건에, 합동 콘서트 준비까지 하느라 요즘 푹 쉰 적이 없는 거 같아서요.”

마땅히 바쁜 일정을 보낸 건 아니었는데. 굵직한 일들이 계속해서 펼쳐진 터라 그런지 마음 편히 쉰 날은 없었던 거 같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좀 쉬어 둘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차피 쉬다 보면, ‘그날, 우리’ 개봉일에 맞춰서 다시 스케줄도 소화하고. 그렇게 될 테니까 말이다.

영화 끝나면, 우리 HTB 2집 활동도 준비해야 하고.

당분간 또다시 바쁜 생활을 이어 가게 될 거 같다.

내 말을 들은 협회장이 갑자기 ‘어흠!’ 하면서 어색한 헛기침을 남발했다.

이 모습을 보는 건 내게 있어서 낯설지 않았다.

“저한테 뭐 시키실 거 있죠?”

내가 정확하게 지적을 한 모양인지, 협회장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번졌다.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일 하나만 해 줄 수 있나 싶어서.”

협회장의 입에서 ‘일’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대게 그거다.

“몬스터 토벌요?”

“어. 맞아.”

“미국에 몬스터가 나타났어요? 월간 회의 때에는 그런 이야기 없었잖아요.”

“어제 새벽에 발견되었대. 그런데 좀 껄끄러운 녀석이다.”

협회장이 연 대표에게 슬쩍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연 대표가 기다렸다는 듯이 태블릿 PC를 꺼내서 뭔가를 화면에 띄운 뒤, 그것을 내게 보여 줬다.

“요 녀석들, 어떤 놈들인지 너도 기억하고 있을 거다.”

털이 숭숭 난 꼬리 달린 거미 몬스터.

‘스웹’이라 불리는 놈들로, 집단을 이루면서 다니는 몬스터들이다.

어둡고 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는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내가 초창기에 세이렌, 머들린 사건 이후 협회 관계자들 앞에서 인간들의 눈을 피해 몰래 숨어 있을 확률이 높은 몬스터들 예시로 이 녀석을 들기도 했었다.

연 대표가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놈들의 둥지가 최근에 지하에서 발견됐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놈들을 토벌하려고 미국에서 대대적으로 준비 중이라고 그러더라.”

데이브가 말했듯이 미국은 강한 헌터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헌터 강국이다.

이런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토벌 준비에 나선다고 한다면, 웬만한 몬스터 무리들은 싹 쓸려 나갈 것이다.

평소의 나라면 ‘미국이 알아서 잘하겠네요.’라고 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는 스웹이다.

스웹은 무서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 마리 한 마리씩 놓고 본다면 전투력이 강한 편이 절대로 아니다.

잡몹 취급받기 딱 좋은 약한 몬스터지만, 녀석들의 꼬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이라고 표현하는 게 어울릴 것이다.

마치 방울뱀처럼 꼬리를 이용해서 뭉툭한 소리들을 낸다. 이 소리를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내기 시작한다.

다수의 스웹들이 공명을 일으키면서 이 소리를 통해 스스로에게 능력치를 상승시키는 버프를 건다.

동시에 적에게는 이동속도를 감소시키거나 상태 이상을 거는 등의 효과를 부여한다.

한마디로 세이렌, 머들린 같은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대신에 소리에 관한 역할을 세이렌 한 마리가 전부 담당했다면, 스웹은 이놈들 전체가 다 세이렌이자 머들린인 셈이었다.

그래서 더 골치가 아프다.

결국 협회장이 내게 바라는 건 이거였다.

“무대 준비해 둘 테니까 원 없이 노래 불러 봐라.”

그 무대가 전장이라는 게 문제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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