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16화 (116/250)

제29장. K-pop 합동 콘서트 (4)

커스티의 두 번째 노래가 이곳 소프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는 동안, 옆에 앉은 아이리스가 콘서트 주최 측에서 판매한 공식 응원봉을 들고서 똑같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냥 하이라이트 부분만 알고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1절부터 2절 마지막 소절까지.

전부 다 완창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내 생각이 완전히 깨져 버렸다.

“아이리스, 그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있어?”

“네, 유명하잖아요?”

“그렇긴 한데…….”

아이리스가 굉장히 어렸을 때 나온 노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다 안다는 게 신기했다.

게다가 아이리스는 한국 태생이 아니다.

데이브와 같이 미국에서 자랐기에 아무리 유명한 커스티의 곡이라 할지라도 잘 모를 줄 알았다.

‘K팝 좋아한다는 말, 진심이었구나.’

아이리스를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리스처럼 커스티의 곡을 전부 따라 부르는 팬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렇다 보니 한국 콘서트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떼창 문화가 여기서도 자연스럽게 펼쳐지게 되었다.

외국 팬들이 따라 부르는 커스티의 곡.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멤버들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마이크를 들고 외쳤다.

“땡큐! 정말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진짜 감동이에요!”

가수 입장에서 팬들이 자신의 노래를 따라 불러 주는데, 싫을 리가 없지 않겠나.

물론 노래를 부르는 거에 방해가 될 정도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지금의 떼창은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커스티의 무대가 끝나고, 다른 가수 팀들의 공연이 계속 이어졌다.

아이리스는 커스티뿐만 아니라 이후에 계속 무대에 오르는 가수들의 노래까지 전부 따라 불렀다.

계속 듣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노래 잘 부르는데?’

잠시 노래가 멈췄을 때, 아이리스에게 떠보듯 물었다.

“너도 가수로 데뷔해 볼래?”

“저요? 전 MML 수치가 제로인데요.”

아이리스도 당연히 MML 테스트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이리스는 버프를 줄 수 없는 체질로 나왔다.

“MML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반드시 가수로 데뷔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하고 싶으면 하면 되는 거지, 뭐.”

나도 레이드 시대가 끝나고 다시 가수로 데뷔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MML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데뷔해야지!’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데뷔를 결정짓고, 그 이후에 내 노래가 헌터들에게 버프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까.

자신이 원하면 하는 거다.

우리 소속사는 마침 해당 연예인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방침을 취하고 있으니까. 아이리스에게는 최적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내 제안을 거절했다.

“괜찮아요, 오빠. 저는 가수보단 모델 일을 더 하고 싶어서요. 방송하고 모델, 이 두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거 같아요.”

여기에 추가로 몬스터들이 나타나면 헌터 일도 해야 하니까.

한 몸으로 세 가지 직업을 겸직하고 있는데, 여기에 가수 활동까지 끼워 넣을 틈은 없을 것이다.

무엇을 하나 포기하고 해야 하는데, 아이리스는 지금 하고 있는 일 모두 다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알았어. 그래도 생각이 바뀌거든, 나나 승훈이 형한테 언제든지 말해 줘도 돼.”

“네. 고마워요, 오빠. 기억하고 있을게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콘서트 첫째 날의 대미를 장식할 화제의 가수 팀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전광판에 새겨진 세 개의 알파벳.

[HTG]

나빈이와 슬혜, 이사벨라, 사오리. 네 여성 멤버가 등장하자, 콘서트장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HTG에게 정식으로 할당되어 있는 곡은 세 곡. 여기에 추가로 앙코르곡 한 곡을 더해서 총 네 번의 공연을 HTG가 꾸미기로 되어 있었다.

HTG의 데뷔곡이기도 한 ‘In the world’가 장내를 빠르게 채워 가기 시작했다.

노래를 들으면서 아이리스도 같이 흥얼거렸다.

이런 아이리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물었다.

“의외네?”

“네? 뭐가요?”

“HTG 노래도 알고 있을 줄은 몰랐거든. 나빈이하고 사이 안 좋아 보이길래, HTG는 안 좋아할 줄 알았어.”

대놓고 싸운 적은 없지만, 나를 두고 계속 신경전을 벌이곤 했었으니까.

물론 나빈이는 나를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냥 친한 선후배 사이라고 할까.

하지만 아이리스는 이런 나빈이조차도 연적으로 두고 있었다.

그래서 둘이 만나면 가끔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아이리스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그래도…… 노래는 좋으니까요.”

오빠를 닮아서 아이리스도 츤데레 기질을 보였다.

노래는 국가도, 인종도, 그리고 연적의 벽도 허무는 건가?

평화의 시대에 아주 걸맞은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합동 콘서트 첫째 날이 무사히 끝났다.

오늘 무대에 올랐던 우리 소속 연예인들이 있는 대기실에 한 번씩 들러서 고생했다는 말을 들려줬다.

이럴 때마다 고정적으로 듣는 말이 있었다.

“이사님도 내일 있을 무대, 힘내세요.”

“저희도 응원하고 있을게요.”

“파이팅!”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이럴 때 떠오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계속 대기실에서 어물쩍거리면 멤버들도 편히 쉬질 못할 테고.

그리고 아까 말한 것처럼 내일은 내 차례이기도 했기에 일찌감치 나와서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서둘렀다.

승훈이 형과 함께 차를 타고 콘서트장을 나오려고 했는데.

“빠져나오는 것도 일이네, 일이야.”

승훈이 형이 한 말대로였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몰렸는지, 주차장에서 빠져나오는 데만 하더라도 거의 15분 가까이 소요되었다.

차가 워낙 많아서였다.

이것도 이거지만.

도로변에서도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저 텐트들은 다 뭐야?”

콘서트장 주변을 따라 일렬로 길게 늘어서 있는 텐트들.

승훈이 형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콘서트 보러 온 사람들. 어제부터 쭉 대기하고 있었을걸.”

“진짜로?”

“어, 내일도 있으니까 오늘도 여기서 자려고 그러는 거겠지. 미리 자리 맡아 둬야 내일 일찍 현장에 들어올 수 있으니까.”

어마어마하네.

이 정도로 미국 현지 팬들의 열정이 대단할 줄은 몰랐다.

“아까 뉴스에도 나오더라. 기자들도 막 취재하고 그랬어. 기자들이 엄청 놀라더라. K팝 시장이 이렇게 커지게 될 줄은 몰랐다고.”

“커질 수밖에. 이걸로 세상을 구하고 있는데.”

물론 우리 회사에서 내는 노래가 없어도 세상은 구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있고 없고의 차이가 워낙 크다 보니 영향력도 점점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팬들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다짐이 들었다.

저렇게 고생하면서 겨우 콘서트장에 왔는데.

무성의한 무대를 보여 줄 수 없겠다고 말이다.

“형.”

“왜?”

“호텔 말고 다른 곳에 들렀다가 가도 될까?”

“야식이라도 먹으려고?”

“그게 아니고.”

내가 말한 목적지는 먹는 것에 한정된 장소가 아니었다.

“연습실 말이야. 가서 연습 조금만 더 하다가 자게.”

* * *

합동 콘서트 마지막 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 현장에 도착한 나는 미리 무대 의상을 입어 보고, 그 상태 그대로 가장 먼저 리허설에 돌입했다.

나 혼자서 어제 HTG가 보여 준 것처럼 세 곡 플러스 앙코르 한 곡, 총 네 곡을 소화해야 했기에 무대를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볼륨은 이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다음, 조명 한 번만 켜 주실래요?”

스태프들이 내 부탁에 따라 차근차근 움직였다.

무대감독도 나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체크했다.

무대란 녀석은 살아 있는 존재와도 같다.

언제, 어느 때에 예측 못 한 사건 사고를 일으킬지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준비 단계에서부터 열과 성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나 먼저 준비를 끝내고 난 다음에 다른 가수들의 리허설도 슬쩍 염탐했다.

딱히 타 가수 팀의 리허설을 보면 안 된다는 법은 없었기 때문에 염탐이라는 말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지만 말이다.

유명 K팝 그룹들만 참가했기에 다들 내가 아는 얼굴들뿐이었다.

이 중에는 내가 한창 솔로 데뷔로 두각을 드러냈을 때, 1위 자리를 두고 계속 경쟁을 벌였던 가수 팀도 있었다.

5인조 보이 그룹, 비즈와일드.

레이드 시대 때 데뷔했던 보이 그룹으로, 데뷔 초부터 파워풀한 군무를 통해서 빠른 속도로 팬들을 늘려 갔던 그룹이기도 하다.

컴백했다 하면 일단 1위는 찍고 보는 인기 그룹이었지만, 나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면서 의도치 않게 2위 자리로 밀려나기도 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온 비즈와일드는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태오 씨!”

“안녕하세요. 리허설 잘 봤습니다. 무대 좋던데요.”

기존의 곡들을 리믹스해서 하나로 이어붙였다.

장르도, 앨범 발표 시기도 완전히 다른 곡들이었지만 처음부터 한 곡이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흐름이 이어졌다.

안무도 그렇고 말이다.

비즈와일드 멤버들이 머쓱한 얼굴로 내 칭찬을 받아들었다.

“더 열심히 준비하고 싶었는데, 워낙 시간에 쫓기면서 준비한 터라 아쉬움이 더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이런 비즈와일드 멤버들을 위해서 내가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세상에 100퍼센트 완벽한 무대는 없으니까요. 대신에 저희는 100퍼센트에 가깝게 항상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자신감 있게 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해 줬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후배인데, 괜한 참견을 부린 것일지도…….”

“아닙니다! 후배라니요. 그런 말씀 마세요.”

비즈와일드도 다른 가수 팀들처럼 내가 먼저 ‘후배’라는 점을 강조하고 나서면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먼저 싱긋 웃으면서 멤버들에게 순차적으로 악수를 권했다.

“오늘 다 같이 최선을 다해 보자고요.”

“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순위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라이벌 팀이지만.

오늘 합동 콘서트에서만큼은 하나의 목표를 두고 움직이는 동료다.

* * *

마침내 관객들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린 거 같은데.

내 착각이 아니었다.

콘서트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머무는 사람들의 모습만 봐도 많은 인파가 몰렸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가급적이면 저들도 콘서트장에 다 들여보내 주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속으로만 아쉬움을 삭히기로 했다.

드디어 첫 번째 무대가 시작되었다.

나는 어제와 달리, 대기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무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앉아 있던 객석 자리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이리스, 준서, 승훈이 형, 그리고 협회장과 연 대표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HTG와 해피모드 멤버들의 모습도 보였다.

‘아까 대기실에서 나한테 힘내라고 응원해 주고 갔었지.’

확실히 응원을 받으니까 뭐랄까, 힘이 더 나는 거 같았다.

그렇게 무대 위의 상황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스태프가 나를 찾아왔다.

“태오 씨, 슬슬 준비해 주세요.”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마지막으로 무대 의상을 점검했다.

‘좋아, 한번 해 보자고!’

스스로 기합을 불어넣으며 힘찬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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