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15화 (115/250)

제29장. K-pop 합동 콘서트 (3)

솔로로 데뷔한 이후부터 최근에 이어 갔던 HTB 그룹 활동까지.

나름 많은 무대를 서 봤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까지 규모가 큰 콘서트장에 서 본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것도 실내 콘서트장인데.

이렇게 큰 곳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역시 미국은 다르네.”

승훈이 형도 당시 이곳에 처음 왔을 때의 감상을 다시 떠올리듯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나도 봐서 얼추 알고 있긴 했는데, 막상 현장에 와서 직접 보니까 느낌이 전혀 다르더라. 괜히 ‘꿈의 콘서트장’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야.”

“그런 별칭이 있었어?”

“여기 스태프들한테 들어 보니까, 미국에서 활동하는 가수들 한정으로 설문 조사를 해 본 적이 있었대. 만약에 단독 콘서트를 열면, 어느 곳에서 여는 게 좋냐고. 그랬더니 여기 소프 스타디움이 1위로 선정되었다고 그러더라.”

하긴, 이렇게 넓은 곳에서 공연 한번 하고 나면 다른 웬만한 장소로는 성이 안 찰 가능성도 있을 거 같다.

나야 아직 여기서 무대를 펼치지 않아서 확실하게 이런 말을 하기에는 애매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느낌상으로는 그렇다.

“온 김에 무대에도 한번 올라가 봐.”

“그래야지.”

무대 근처에서 작업하고 있는 스태프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위로 향하는 계단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객석에서 내려다보던 무대의 느낌과.

직접 무대 위에 올라서서 객석을 올려다보는 느낌은 그야말로 천지 차이였다.

전자의 경우에는 수만 명이 동시에 느낄 감정이지만.

후자는 오직 이 무대 위에 서 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유니크한 감성이라는 점에서 큰 차별점이 존재한다.

내가 한때 왜 가수를 꿈꿨는지.

오랜만에 그 동기가 명확하게 떠올랐다.

“사진 찍어도 되겠지?”

“뭐, 외부로 유출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는 괜찮지 않을까? 혹시 모르니까 현장매니저한테 물어볼게.”

승훈이 형이 유창한 영어 솜씨를 뽐내면서 현장 매니저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또 한 명의 가수 팀이 내가 서 있는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선배님!”

HTG 멤버인 나빈이하고 슬혜가 내가 있는 곳까지 단숨에 올라왔다.

“여긴 어쩐 일이야?”

나빈이가 슬혜 몫까지 자처해서 내 물음에 답했다.

“선배님처럼 무대 한번 살피러 왔죠. 이사벨라하고 사오리는 어제 도착해서 확인했다는데, 저희는 스케줄 문제 때문에 이제 막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건너왔거든요.”

“어? 그랬어? 나도 그런데. 비슷한 시간대에 올 줄 알았더라면 너희 둘도 데려올걸.”

“괜찮아요. 어차피 저희는 미리 끊어 둔 티켓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협회장님하고 같이 전용기 타고 오셨다면서요.”

“뭐, 그렇지.”

“그러면 제가 끼기엔 더욱 애매한 자리였겠네요.”

이야기가 또 그렇게 되나.

뭐, 본인이 별로 끼고 싶어 하지 않는데, 굳이 내가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싫어하는 걸 억지로 끌어들여 봤자 좋은 소리 들을 것도 없고 말이다.

한편, 우리가 서 있는 무대의 전경을 처음으로 확인한 슬혜가 한동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슬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마음에 들어?”

“네! 이렇게 커다란 공연장은 태어나서 처음 와 보는 거 같아요.”

“미국 내에서도 큰 축에 속한다고 그러더라.”

HTG도 얼마 뒤에 이곳에 서서 노래할 예정이었다.

합동 콘서트 일정은 이틀간 진행된다.

첫째 날에는 우리 회사 소속으로 참가한 해피모드와 HTG가.

그리고 두 번째 날에는 내가 참가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 많고 많은 무대 중에서 설마 내가 대미를 장식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콘서트는 5일 뒤에 진행될 예정이다.

그 전까지 무대 설치가 전부 완료되면, 나머지 시간은 콘서트 당일이 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리허설이 반복될 것이다.

워낙 많은 가수 팀이 참가하는 콘서트다 보니 리허설 일정을 잡는 것만 해도 일이다.

지나가면서 슬쩍 무대감독과 스태프가 나누는 대화를 들어 봤는데, 이번 합동 콘서트가 끝나면 자신들은 일주일 정도 집에 처박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만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 정도로 준비가 굉장히 빡세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열심히 준비했는데.

‘실수 하나 해서 무대를 망치는 일이 발생하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웬만한 공포 영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무서운 체험이 될 것 같다.

* * *

D-3.

오늘은 콘서트 첫 번째 날에 참가하는 가수 팀들의 리허설이 잡혀 있었다.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싶어서 나도 승훈이 형과 함께 다시 콘서트장을 찾았다.

실제로 무대가 펼쳐지고 있어서일까.

미국에 오자마자 봤었던 콘서트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가수의 목소리.

이 넓은 공간이 노래로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사운드가 빵빵했다.

다른 가수 팀들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리허설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내게 어느 한 인물이 조용히 접근했다.

“팔자 좋구만, 강태오.”

나와 같은 그룹으로 활동한 주제에 상당히 오랜만에 보게 된 데이브가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간만이야, 데이브. 미국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었어?”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하고. 그러면서 지냈다. 주로 그 테러리스트 쫓는 일에 시간을 가장 많이 허비했지만.”

그럼에도 얻은 수확은 크지 않았다.

내가 비록 협회장과 연 대표가 참가한 미국 지부와의 월간 회의에 참석하진 않았지만, 가장 영향력을 많이 행사하는 헌터다 보니까 회의 결과에 대한 보고는 실시간으로 정리해서 듣곤 한다.

그곳에서 나온 회의 주제는 대부분 테러리스트 제이커가 차지했다.

내가 나라를 구한 톱스타

라고 한다면, 녀석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테러리스트라고 불리고 있다.

차라리 게이트나 몬스터라면 그래도 언제 어디서 출몰할 것인지 대충이나마 예상이라도 해 볼 수 있을 텐데.

제이커는 아예 그 예상조차 되지 않는다.

데이브가 이곳 콘서트장으로 온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한가해서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며칠 뒤에 이 소프 스타디움에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테러리스트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 될 곳이라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그래서 데이브는 경비를 목적으로 니암, 딜런과 함께 콘서트가 끝나는 날까지 이곳을 지키기로 했다.

“니암하고 딜런은? 밖에 있어?”

“아니, 걔네들은 야간조다. 나 근무 끝나고 들어가면 이곳으로 투입될 거야.”

“그 둘이 설마 너처럼 경비대장은 아니지?”

“미국이 S랭크 이상 되는 헌터들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인데, 그 둘한테 경비대장을 왜 맡기겠냐.”

니암, 딜런은 버프 주는 헌터 가수로서 굉장히 유명하긴 하지만, 순수하게 헌터로서의 기량으로 따지면 그렇게까지 유명 인사는 아니었다.

애초에 니암이 B랭크고 딜런이 C랭크인데, 둘한테 현장 책임자를 맡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데이브는 콘서트 일정에 대해 불만이 좀 남아 있는 모양인지 볼멘소리를 들려줬다.

“이런 시기에 꼭 콘서트를 열어야 하나?”

“평화의 시대잖아. 이만큼 잘 어울리는 시기가 또 어디 있다고.”

“언제 바닥이 꺼질지 모르는 상황을 평화의 시대라고 불러도 괜찮을지 모르겠네.”

테러리스트들 때문이었다.

데이브의 우려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이번에는 아무 일 없이 넘어갈 거다.”

“테러리스트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너한테 연락이라도 했냐?”

“아니, 순전히 내 생각이긴 한데, 테러리스트들은 자기들 때문에 한창 경각심이 올라갔을 때 오히려 활동을 안 하거든. 잠잠해지고 사람들이 점점 방심하고 있을 때. 오히려 그 시기가 녀석들의 활동을 부추기게 될 거야.”

제이커가 모든 국가들을 대상으로 특별 지명수배자로 이름이 올라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온 세계가 녀석의 행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세상에 어느 바보가 이럴 때 움직이겠나.

만약에 내가 제이커라면,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시기에 합동 콘서트를 추진하겠다는 것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설령 내 예상이 빗나간다고 해도, 어차피 지금처럼 헌터들이 계속 돌아가면서 경비를 서고 있잖아. 이것만으로도 은퇴했던 헌터들에게 할 일이 생기는 거지.”

“미치광이 테러리스트 헌터로 인해서 직장을 잃은 헌터들에게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단 말이지……. 모순 그 자체군.”

“그러게 말이야.”

나도 공감한다.

그래도 이게 현실이다.

* * *

K-pop 합동 콘서트 1일 차의 날이 밝았다.

밖에는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선 채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야 이 콘서트의 참가자이기도 해서 대기 없이 바로 현장에 들어오는 것이 가능했지만.

만약에 나도 정상적으로 티켓을 끊고 이곳으로 오는 입장이었다면, 저 기다란 대기 줄을 보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맨 앞쪽 객석으로 향했을 때.

아는 얼굴들이 먼저 와서 나를 반겼다.

준서하고 아이리스, 그리고 협회장에 연 대표까지.

관계자들만 앉을 수 있는 특별 좌석이다 보니 아는 얼굴들이 많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리스가 나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승훈 오빠는요?”

“긴장된다고 잠깐 화장실 갔어.”

“승훈 오빠도 무대에 올라가기로 했어요?”

“아니. 그 형, 원래 남이 긴장하면 자기도 같이 긴장하는 타입이거든. 나 처음에 솔로로 데뷔할 때에도 그랬었어.”

나보다 승훈이 형이 더 긴장하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하여간 재미있는 형이다.

승훈이 형이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K-pop 합동 콘서트의 막이 성대하게 열렸다.

미국 현지에서 열리는 콘서트다 보니 확실히 우리나라 콘서트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열기가 느껴졌다.

환호하는 분위기만 다른 게 아니었다.

응원법도 미묘하게 차이가 났다.

한국 못지않게 이곳도 상당히 열정적이었다.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 팀을 응원하기 위해 챙겨 온 굿즈들을 들고서 영어인지 한국어인지 모를 소리를 외치면서 분위기를 후끈 끌어올렸다.

K-pop 합동 콘서트, 대망의 첫 무대를 담당하게 된 커스티 멤버들이 무대를 마치고 두 번째 곡을 준비하기 전에 팬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둘, 셋.”

“안녕하세요! 커스티입니다!”

멤버들의 소개가 시작되자 환호성은 더욱 커졌다.

커스티의 경우에는 다른 가수 팀들과는 다르게 미국에서 공연했던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서인지 콘서트 순번을 정할 때, 커스티가 먼저 자신들이 나서겠다고 주장했었다.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을 다른 가수 팀들에게 용기를 복돋아 주기 위해서.

그리고 콘서트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가장 경험이 많은 장수가 사기를 높여 주기 위해 선봉을 자처하고 나선 거였다.

‘먼저 길을 터 주는 선배의 모습이라. 멋있네.’

나도 훗날 후배 가수들에게 저런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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