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11화 (111/250)

제28장. 테러리스트 (6)

범인을 찾았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에서 이철민 소장과의 대화가 영화 촬영보다 높은 우선순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이철민 소장에게 여기서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감독님!”

냅다 최기호 감독을 찾았다.

한창 스태프들과 함께 다음 촬영 준비를 서두르고 있던 최 감독이 내 부름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 태오 씨. 왜 그러시나요?”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 해서요.”

“곧 끝날 겁니다.”

“이 장면만 촬영하면 오늘 일정은 다 끝나는 거죠?”

“예, 그렇죠. 갑자기 일이라도 생겼나요?”

“급한 건 아니긴 한데…… 그럼 빨리 끝내죠. 오늘 스태프 여러분들, 제가 일찍 퇴근시켜 드리겠습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내 말에 스태프들은 큰 소리로 환호했다.

한 장면 남았으니까, 후딱 끝내고 갈 생각이었다.

이다음 신은 내가 자신 있어 하는 몬스터와의 전투 신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끝낼 자신이 있었다.

크로마키 배경을 뒤에 두고 혼자서 ‘합! 흐업! 얍!’ 기합을 내지르면서 액션 동작을 취하면 되니까 말이다.

나까지 직접 스태프들을 도우면서 빠른 속도로 준비를 마쳤다.

“와이어는 됐습니다. 저번처럼 그냥 제가 몸으로 뛸게요.”

이전에 내가 스태프들 앞에서 여러 차례 공중 액션을 증명한 바가 있었기에 이번에는 이견 없이 내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다.

아이템이 없어도 마력을 활용하면 어느 정도 공중을 활보할 수 있었다.

“레디, 액션!”

카메라가 돌아가자마자 나는 열정적으로 몸을 날리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보였다.

착지한 뒤에 카메라 앵글을 바라보면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만만치 않은 녀석을 만났다는 것을 표정 연기만으로 표현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굵은 땀 몇 방울은 서비스다.

“컷! 네, 좋습니다. 오늘 촬영,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최기호 감독의 오케이 사인과 동시에 스태프들이 일제히 내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감사합니다, 태오 씨!”

“태오 씨 덕분에 오늘 오랜만에 술자리 일찍 참가할 수 있겠네요!”

“다음 촬영도 오늘처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도 저들처럼 평범하게 퇴근해서 쉬고 싶긴 한데.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럴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승훈이 형, 소장님은?”

“차에 먼저 타 계신다. 협회로 갈 거지?”

“어, 범인 누군지 알아냈다고 하니까 들어나 봐야지.”

대전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서 나도 직접적인 피해자 입장이 되어 버렸다.

도대체 어떤 간 큰 녀석이 감히 나한테 시비를 걸어왔는지.

이름이나 한번 들어 보고 싶다.

* * *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이철민 소장의 개인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 안에는 나와 데이브가 확보한 붉은 보석 조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승훈이 형이 보석들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저거, 중요한 증거품인데, 저렇게 함부로 놔둬도 되는 겁니까?”

“어차피 조각들은 차고 넘칩니다. 그리고 값비싼 아이템들도 아니라서요.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서도 구할 수 있습니다. ‘레이드 시대의 유물’이라는 거창한 이름만 잘 가져다가 붙이면, 몇십만 원에 거래되곤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승훈이 형과 이철민 소장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보석 조각 하나를 직접 손으로 집어 들었다.

소환수의 매개체가 되는 물건은 그 소환수가 소멸되는 순간, 함께 운명을 달리한다.

이 보석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마력이 가득 담겨 있었을 아이템이지만, 소환수의 소멸로 인해 지금은 인테리어용으로도 별 가치가 없는 애매한 물건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소장님, 범인이 누굽니까?”

질질 끌 필요 없이 바로 권주영의 배후에 있는 자의 정체를 물었다.

이철민 소장이 노트북을 펼치면서 말했다.

“미국에서 활동했던 헌터 중에 제이커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자가 진범입니다.”

“제이커?”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다.

다수의 소환수와 파이어 골렘까지 소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면, 헌터들 사이에서 나름 네임드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게다가 소환사라는 직업 자체가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다.

버퍼보다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누군지 금방 특정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이커라는 이름의 소환사 헌터는 처음 들어 본다.

그러나 승훈이 형은 이름을 듣자마자 누군지 알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협회에서 제명되었던 그 헌터 말입니까?”

“역시 승훈 씨는 아시는군요.”

“알죠. 제가 한창 활동했을 때 있었던 사람이니까요. 유명했죠. 안 좋은 의미로요.”

내가 승훈이 형보다 늦게 각성했기에 헌터 데뷔 역시 느렸다.

그래서 승훈이 형이 말하는 게 뭔지 바로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안 좋은 의미로 유명했다고? 어떻게?”

“그 사람, 사람들이 다치든 말든 몬스터하고 싸우는 일에만 신경 쓰고 그랬거든. 그거 때문에 실제로 인명, 재산 피해도 빈번히 났었고.”

이철민 소장이 추가로 설명을 보탰다.

“오죽하면 현지 사람들이 몬스터보다도 제이커가 출동했을 때를 더 두려워했겠습니까.”

“그 정도였나요?”

“심각했습니다.”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했을 때 헌터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일단 안심하고 볼 텐데.

근데 제이커는 아주 많이 예외였던 모양인가 보다.

“문제는 이런 민원이 빗발치는데도 정작 본인은 태연했다는 거지.”

승훈이 형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아무튼 독한 녀석이야.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서 이상한 논리도 펼치고.”

물론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이커는 경우가 달랐다.

굳이 소를 희생할 필요가 없는 상황인데도 일부러 그런다는 게 문제였다.

이철민 소장이 승훈이 형의 바통을 이어받아 결론을 이야기해 줬다.

“이런 일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결국 헌터협회 측에서 제이커의 헌터 자격을 박탈하고, 그를 협회에서 영구 제명하기로 했습니다.”

“영구 제명이라면, 앞으로도 헌터 자격을 재취득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이겠군요.”

“예. 본인도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딱히 이의 신청 같은 걸 하지 않더군요. 그냥 얌전히 협회의 처분을 받고 그대로 잠적했습니다.”

그 이후, 제이커의 흔적은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한국에서 그가 소환한 것들로 추정되는 소환수들이 대량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철민 소장이 노트북을 돌리면서 우리 쪽으로 화면이 잘 보이게끔 각도를 조절했다.

모니터에는 제이커가 헌터로 활동했을 당시의 정보들이 상세하게 떠 있었다.

“당시 랭크는 S였습니다. 불 속성을 가진 소환수들을 다루는 게 특기였고요. 생김새는…….”

“금태양이네요.”

“금태양?”

낯선 단어에 이철민 소장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금발 태닝 양아치라는 뜻이에요. 인터넷 밈 같은 건데, 주로 어디에 등장하는 캐릭터냐면……. 아닙니다. 그냥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왜죠?”

“소장님의 순수한 마음을 지켜 주고 싶어서요.”

이철민 소장의 호기심이 마구마구 샘솟으려고 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차마 말해 줄 수가 없었다.

화두를 돌리기 위해 다시 제이커에 대해 물었다.

“그러면 지금 당장 녀석이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서 붙잡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안 그래도 협회 측에서 파견한 헌터들이 지금 제이커의 자택을 급습했다고 합니다. 데이브 씨도 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그 녀석, 쉬는 동안 잠깐 미국에 가 있겠다고 했었죠.”

하긴, S랭크 특수 범죄자를 붙잡으려면 그보다 더 높은 전투력을 보유한 데이브가 가는 게 확실히 안정적일 것이다.

“데이브한테 전화나 해 봐야겠네요.”

작전 실행 명령이 떨어지고 한참 시간이 지났으니까, 지금쯤이면 대충 상황이 마무리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승훈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데이브가 네 전화를 받을까?”

“안 받을 가능성이 크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는가.

도전해 보는 건 공짜니까, 한번 해 보는 거다.

안 받을 거 같다는 우리들의 예상과는 달리.

-왜, 뭐냐?

의외로 빨리 내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에 듣는 데이브의 짜증 가득한 목소리.

“제이커라는 녀석, 잡았어?”

데이브가 갑자기 대답 대신 한숨을 쉬었다.

-아니. 그 녀석, 이미 도망친 지 오래야. 대신에 선물 하나 남기고 갔더라.

“선물?”

-어, 아주 짜증 나는 선물이었지.

데이브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 * *

제이커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어느 민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협회 측은 근처에 거주 중인 민간인들을 죄다 대피시켜 뒀다.

오랜만에 아이템 장비를 두르면서 전투태세를 갖춘 데이브는 짧은 금발을 쓸어내리면서 각오를 다졌다.

데이브와 함께 파견된 미국 현지 헌터가 그에게 물었다.

“현장에는 오랜만에 나오시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이크 들고 무대에 올라가는 게 내 일이었으니까.”

“저, 선배님께서 부르신 노래 잘 듣고 있습니다. 콘서트 열면, 비행기 타고 가서라도 꼭 참석하겠습니다.”

“시끄러워.”

이제 어엿한 가수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아직 데이브는 자신의 지인들에게 본인의 무대를 선보이는 것이 한없이 낯설었다.

그래서 데뷔 쇼케이스를 가질 때에도 일부러 가족들한테 날짜와 시간대를 알려 주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전 세계에 소문이란 소문은 다 퍼져 있어서 숨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상의에 착용한 조끼 형태의 아이템을 가동시켰다.

마력을 불어 넣자, 뜨거운 열풍이 한 차례 새어 나오면서 기능이 제대로 가동하고 있음을 알렸다.

데이브가 자신이 주로 쓰는 창 부류의 아이템을 집어 들면서 헌터들에게 경고했다.

“상대는 S랭크 특수 범죄자다. 잡몹들 토벌할 때처럼 쉽게 생각하진 마라. 괴물보다 인간이 더 무서운 법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발소리를 없애 주는 아이템 효과를 받으면서 침묵과 함께 제이커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자택으로 접근했다.

투입된 헌터들만 총 열 명.

죄다 A랭크 이상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웬만한 몬스터 무리는 단숨에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다.

창문 쪽으로 접근한 데이브가 곧장 투창 자세를 잡았다.

셋, 둘, 하나.

신호가 떨어지자, 데이브가 있는 힘껏 집 내부로 창을 던졌다.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창이 그대로 거실 벽 한가운데에 박혔다.

잠시 뒤, 창 손잡이 부분이 벌어지더니 그 틈에서 자욱한 연기가 새어 나왔다.

마법으로도 날려 버릴 수 없는 효과를 가진 연기가 집 내부를 가득 채웠다.

안으로 바로 몸을 날린 데이브와 팀원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제이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올 줄 미리 알고 도망친 거 아닙니까?”

“그럴지도.”

순간 데이브는 근처에서 빠른 속도로 마나가 팽창하는 걸 느꼈다.

고개를 들어 올려 천장 쪽을 바라보자,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마나 폭탄 수십 개가 부착되어 있었다.

데이브가 짧게 혀를 차며 말했다.

“……Fuck.”

짧은 욕설이 끝나자마자 폭발이 집 전체를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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