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장. 테러리스트 (4)
나도 헌터로 활동 중이긴 하지만, 헌터란 존재는 몸이 참 튼튼한 거 같다는 깨달음을 자주 받는다.
눈앞에 있는 테러리스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등 뒤에서 그렇게 강한 폭발을 온몸으로 받아 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화상 정도에서 끝이 났다는 게 신기했다.
차라리 잘됐다.
그 자리에서 죽었더라면, 이번 일에 대해서 심문도 제대로 못 하고 끝났을 테니까 말이다.
헌터 전문 병원을 찾은 나는 입구 근처에서 대기 중인 기자들을 바라보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승훈이 형도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정보가 새어 나갔나 보구만.”
“어쩔 수 없지.”
기자들의 관심은 이젠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한편, 기자들은 나와 승훈이 형을 보자마자 카메라를 급격하게 돌렸다.
“태오 씨!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 주시죠!”
“입원한 사람은 누굽니까? 혹시 그 테러리스트입니까?”
“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정리한 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기자들의 추가 질문이 계속 들어왔지만, 나는 깔끔하게 그것을 무시하고 승훈이 형과 같이 병원으로 들어섰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가드들이 나와 승훈이 형을 바로 알아보고 길을 텄다.
“2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친절히 우리가 가야 할 위치까지 알려 줬다.
2층에 올라서자마자 데이브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연수하 대표가 우리를 맞이했다.
“오느라 고생했다.”
“협회장님은요?”
“정신없으시겠지. 대신 그쪽 직원들이 나와서 권주영한테 이야기 듣고 갔어.”
권주영.
테러리스트의 이름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갔다는 건, 저 테러리스트 녀석이 뭔가 말을 해 주긴 했다는 건가요?”
“글쎄. 그건 너도 한번 들어 보면 알 거야.”
뭔 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은 한번 가서 말을 들어 보기로 했다.
병실이 좁은 관계로 연 대표와 데이브는 복도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나와 승훈이 형만 안으로 들어갔다.
정신을 차린 테러리스트는 헌터들이 각성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마력을 억제하는 특수 수갑을 양손에 착용한 채로 결박되어 있었다.
권주영은 나를 보자마자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렸다.
“요즘 한창 바쁘신 분이 여기까진 뭐 하러 오셨나?”
“하고 있는 일들보다 더 바쁜 일이 생겨 버려서.”
참고로 그 ‘바쁜 일’은 권주영과 연관되어 있는 일을 가리켰다.
권주영도 대충 알아들은 모양인지 다시 한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웃는 거 보니까 살 만한가 봐?”
“…….”
내 농담에서 섬뜩함을 느꼈는지, 권주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눈치는 빠르다.
만약에 눈치마저 없었더라면, 내가 이 자리에서 권주영을 어떻게 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녀석이 저지른 죄는 어마어마했다.
“부상자 12명. 네놈 때문에 나온 인명 피해 결과지. 죽은 사람이 없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만약 그랬다면, 재판받을 것도 없이 바로 사형선고 떨어졌을 테니까.”
각성 능력자가 범죄를 저지를 경우, 일반인과 달리 특수 범죄로 취급된다.
그만큼 위험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게다가 이번에 권주영이 일으킨 테러는 각성 능력자가 저지른 범죄 중에서 상당히 규모가 큰 축에 속했다.
지금도 계속해서 뉴스에서 특보로 사건 내용이 다뤄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경찰과 검찰 측에서도 이번 사건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쪽으로 송치되면 이렇게 권주영을 마음대로 만나러 오는 일에 제한이 생길 테니까.
그래서 미리 녀석에게 묻고 싶은 걸 꺼내기로 했다.
“배후에 누가 있냐?”
이게 가장 궁금했다.
배후가 있다는 말에 승훈이 형이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녀석 뒤에 누가 있다고?”
“어, 분명히 있어.”
C랭크 헌터가 파이어 골렘을 소환수로 다룬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이다.
HTB, HTG의 노래 버프로 전투력을 끌어올린다 할지라도 그렇게 많은 소환수들을 권주영 혼자서 다룬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얼추 봤을 때에는 최소 S랭크 정도 되는 전투력은 보유하고 있어야 오늘과 같은 테러를 벌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권주영은 자신이 혼자 저지른 일이라는 것처럼 답했다.
“나 혼자 저지른 짓이다. 억측하지 마시지.”
“혼자서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저질렀지?”
“꼴 보기 싫어서. 이제 와서 평화의 시대라고 다 같이 웃으면서 지내자고 말하는 놈들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 주고 싶어서 그랬다.”
여기에 오기 전에 권주영의 신원이 파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협회 측에 이 녀석의 신상 정보를 공유해 줄 것을 요청했었다.
행사장 입구에서 시위를 벌였던 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몬스터와 싸우다가 큰 부상을 입고서 강제로 은퇴를 했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별다른 일을 구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전전하는 과정에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키워 갔고, 기어코 이 사달을 내 버리고 말았다.
각성한 사람들의 숫자는 적지 않은 편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인류 수호라는 사명감으로 몬스터와 싸우기만 한 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각성 능력을 세계 평화가 아닌 범죄에 이용하는 녀석들은 레이드 시대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몬스터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에 특수 범죄자들이 일으키는 문제는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몬스터의 등장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시기가 오니까 이제는 특수 범죄자들이 골칫거리로 거듭나게 되었다.
파이어 골렘까지 소환수로 다룰 정도의 실력자라면, 어쩌면 네크로맨서보다도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이래서 귀신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나 보군.’
어차피 내가 여기서 녀석에게 이런저런 말을 해 봤자 원하는 대답은 듣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연 대표가 아까 내게 그렇게 말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조용히 퇴장할 생각은 없었다.
“니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은퇴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헌터들을 위한 일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라. 오히려 네놈 같은 녀석들 때문에 잘되던 이야기도 다 무산될 판이니까.”
“…….”
이렇게 말을 해 줘도 권주영은 반성의 태도를 일절 보이지 않았다.
끝까지 말을 아끼는 녀석의 멱살을 강하게 쥐었다.
내 갑작스러운 행동 때문일까, 권주영의 눈빛이 일순간 공포심으로 인해 크게 흔들렸다.
놈을 향해 다시 한번 강조했다.
“무엇이 그들을 위한 길인지, 그리고 너를 위한 일인지 감옥에서 잘 생각해 봐라.”
말을 마치고 병실을 나서자, 복도 벽에 등을 기댄 채 기다리고 있던 데이브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성질머리 많이 죽었구만, 강태오. 예전의 너였다면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갔을 텐데.”
옛날에는 그랬겠지.
하지만 이젠 아니다.
“나, 연예인이야. 사람 함부로 때리고 다니면, 기사 1면에 바로 실릴 거라고.”
열심히 공든 탑을 쌓아 올렸는데, 한순간의 욱함으로 인해서 이 모든 걸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
공든 탑에 나 혼자 거주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 * *
헌터협회로 향한 나는 대전 행사 때 봤었던 것보다 더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는 협회장과 짧은 만남을 가졌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협회장님.”
“장난 아니었지. 안 그래도 경제적으로 많이 힘든 헌터들 좀 지원해 주는 복지 정책안만이라도 어떻게 통과시켜 줄 수 없겠냐고 열심히 영업하고 다녔는데, 하필이면 이런 일이 벌어져 가지고. 그쪽에서도 당장 일을 추진하기에는 시기상으로 많이 힘들 거 같다고 하더라.”
“그에 대해서 협회장님은 뭐라고 하셨는데요?”
“내가 뭐 할 말이 있겠냐. 일단은 알겠다고 했지. 그래도 무산이 된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 이번 일이 좀 잠잠해지면, 바로 추진할 테니까.”
협회장이 냉장고에서 맥주 캔 하나를 꺼냈다.
“마실래?”
“차 가지고 와서 안 됩니다.”
“어쩔 수 없지.”
딸깍!
캔을 딴 협회장이 순식간에 그것을 전부 비워 버렸다.
“이철민 소장이 네가 가져다준 그 붉은 보석들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데, 저번에 화재 사건 일어났을 때 기록해 뒀던 마력의 흔적하고 비슷한 마나 파동이 발견되었다고 하더라.”
역시, 내 예상대로 동일범의 소행이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권주영은 주범이 아닙니다. 진짜 범인은 따로 있어요.”
“나도 알아. C랭크 헌터가 그런 짓을 벌였을 리 없지. 설령 너희 회사에서 발표한 노래로 전투력을 상승시켰다고 해도 힘들고. 애초에 권주영은 반사회적 성향뿐만 아니라 너나 HT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는 헌터들한테도 엄청난 반감을 가지고 있었어.”
“그러면 노래 버프를 받는 것도 안 되겠네요.”
“그렇지.”
이로써 더욱 확실해졌다.
권주영은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본체를 제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저희도 그 특수 범죄자들에 대비해서 나름의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지. 일단은 계속 권주영을 심문해서 최대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얻어 내도록 할 거고, 이번 소동에서 사용된 아이템을 어디서 얻었는지 획득 경로도 추적해 볼 생각이야. 이런 걸로 단번에 배후를 밝혀내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조금의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도록 해야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순 없으니까 말이다.
“저희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HT 엔터테인먼트는 항상 대기 중이니까요.”
“앨범 작업에, 컴백 준비에, 영화 촬영까지. 다들 바쁠 거 아니냐.”
“그래도 저희의 근본은 헌터니까요.”
지금의 이 성공을 만들어 준 것 역시 헌터라는 직함 덕분이다.
우리의 본업이 헌터라는 걸 늘 잊지 말아야 한다.
뿌리가 흔들리면, 전체가 흔들리는 법이니까.
* * *
나는 개인적으로 권주영처럼 특수 범죄자들로 인해 사회에 다시금 혼란이 찾아오는 걸 원치 않는다.
단순히 평화를 바란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각성 능력자가 민간인들을 상대로 힘을 악용하면, 헌터라는 존재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계속적으로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전에서 사건이 터진 이후, 헌터를 상대로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급진적 성향의 네티즌들이 내 SNS를 찾아와 여러 개의 악플을 남겼다.
너희 같은 각성자들은 게이트가 소멸된 이후로 필요가 없어졌다고.
인간 세계에 어울려 살려고 하지 말고, 너희들끼리 국가 하나를 따로 만들어서 격리된 채 지내라는 식의 모욕적인 말들이 달렸다.
물론 이런 악플을 단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악플러가 분탕을 치려고 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그로 끌지 말라면서 내 인터넷 변호사가 되기를 자처했다.
협회 측에서 뭔가 더 알아낸다면, 나한테도 연락을 해 줄 테니까.
그때까지 일단은 내일 있을 영화 촬영에 대비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협회장과의 만남을 끝내고 집으로 막 돌아왔을 때였다.
갑자기 최기호 감독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이 촬영인데, 왜 전화를?”
혹시 헌터를 싫어하는 악플러들이 최기호 감독 측에 나 하차시키라고 막 항의 메시지 날리고 그래서 전화한 건가?
느낌이 영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