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08화 (108/250)

제28장. 테러리스트 (3)

사방에서 들려오는 굉음.

행사 주최 측이 준비한 폭죽 소리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컸다.

그리고 행사장에서 누가 저렇게 커다란 불기둥이 생성될 정도로 폭발을 일으키겠나.

그랬다간 여러모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혼란으로 가득한 행사장.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굉음에 묻혔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불길 속에서 네발 달린 짐승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몬스터?

심지어 처음 보는 형태의 몬스터다.

‘내가 모르는 몬스터가 있다고?’

말도 안 된다.

정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아주 잠깐 해 봤지만, 정령 특유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생명체.

그러나 확실히 저놈들이 인간들에게 적의를 품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데이브가 혀를 차면서 움직이기 편하게 걸치고 있던 겉옷을 벗어 던졌다.

“저 새끼들은 또 뭐냐?”

“글쎄.”

그건 내가 묻고 싶다.

“승훈이 형! 사람들 좀 대피시켜 줘! 저놈들은 나하고 데이브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아, 알았! 근데 괜찮겠어? 가져온 아이템도 없잖아!”

아이템.

물론 몬스터를 상대할 때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아이템이 없다는 건, 군인이 전쟁에 나가는데 총을 안 들고 가는 것과 똑같으니까.

하지만 그건 SSS랭크, 그리고 SS랭크 헌터인 우리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맨손으로 충분해!”

네크로맨서 때에도 이미 증명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는 쪽이 더 강하다.

우선은 사람들이 무사히 도망칠 수 있도록 행사장 입구를 틀어막고 있는 불덩이 녀석들부터 없애기로 했다.

마나를 온몸에 두른 채 불타오르는 녀석의 안면에 내 주먹을 꽂아 넣었다.

둔탁한 타격음 대신 김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화르륵!

녀석의 머리 형태가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다가 다시 불길과 함께 재생되었다.

‘오호라, 그런 타입이라 이거지.’

나는 레이드 시대 당시, 현재 알려진 몬스터의 90퍼센트 이상을 상대해 봤다.

머릿속에 담긴 이론적 지식뿐만 아니라 실전 경험도 여타 다른 헌터들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축적되어 있었다.

덕분에 처음 보는 몬스터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녀석이 어떤 타입인지, 그리고 어떻게 상대하면 좋을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번에는 녀석의 머리가 아니라 몸통을 노렸다.

내 손이 놈의 몸통을 꿰뚫었다.

푸슉!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내 손에 들려 나왔다.

루비와 비슷하게 생긴 작은 보석 하나.

이것이 녀석의 몸체를 유지하게 만드는 에너지원이다.

보석을 뽑아내자, 놈의 형태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역시, 내 예상대로다.

“데이브! 이 녀석들, 몬스터가 아니라 소환수다!”

“소환수라고? 어디 사는 어떤 머저리가 이런 곳에서 이딴 위험한 소환수를 꺼낸다고!”

그 머저리의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는 알 것 같았다.

“아까 승훈이 형이 봤다던 그 각성자 녀석이 그랬겠지.”

너무 노골적으로 수상해 보였다.

마치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게 설마 이런 일일 줄은 몰랐다.

빠른 속도로 네발 달린 불 괴물들을 제압해 가는 나와 데이브.

한 마리 한 마리의 전투력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 자리에 내가 아니라 A급 헌터들 몇십 명 정도 있었어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부, 불이야!”

“최대한 몸을 숙인 다음에 움직이세요!”

“연기 들이마시면 안 됩니다! 손수건이나 옷가지를 물에 적신 다음에 코하고 입을 막으세요!”

녀석들이 뿌리고 다니는 불덩이들이 순식간에 행사장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행사장.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소방차들이 출동해 불길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인을 찾지 못하면, 이런 식으로 무의미한 체력 소모전만 이어질 게 뻔하다.

“데이브! 여기는 네가 좀 맡아 줘라!”

“귀찮은 건 맨날 나한테 짬처리시키냐!”

“더 귀찮은 일 맡으러 가는 거니까 투덜대지 마.”

낚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사용했던 탐지 스킬을 펼쳤다.

마나를 최대한 엷게 퍼트려서 수색 범위를 넓혔다.

그 안에서 마나의 인위적인 흐름을 포착했다.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각성자, 아니면 몬스터밖에 없다.

그러나 행사장을 급습한 존재는 몬스터가 아닌 매개체를 통해서 만들어 낸 인공 소환수다.

공을 들여 만들어 낸 상급 소환수라면 몰라도, 이런 하급 소환수는 마력을 다루는 법을 모른다.

그렇다는 말은.

내 탐지망에 걸려든 존재가 이 문제를 일으킨 원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행사장을 벗어나 인근에 위치한 작은 공원을 찾았다.

근처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마나의 흐름.

“여기에 있는 거 다 안다. 좋은 말로 할 때 나와라.”

녀석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서 일부러 도발을 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르더니.

갑자기 내 머리 위에 커다란 불덩이 하나가 형성되어 낙하했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왼손을 들어 불덩이를 그대로 맞받아쳤다.

투웅!

공중으로 솟아오른 불덩이는 펑! 소리와 함께 그대로 폭발해 소멸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 발밑에서 뜨거운 화기가 올라오더니, 아까보다 더 강렬한 불꽃 기둥들이 연달아 솟아올랐다.

뒤로 수십 미터 떨어지면서 놈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시간 벌기에 성공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수풀에 숨어 있던 녀석이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검은 후드티에 청바지. 그리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모습까지.

승훈이 형이 말했던 옷차림과 일치했다.

내가 본 사람도 바로 저 녀석이었다.

“쓸데없이 힘 낭비하지 말고 그냥 얌전히 잡혀라.”

하여간 귀찮게 하는 녀석이다.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네크로맨서와 싸울 때와 비슷한 추진력으로 놈의 뒤를 잡았다.

내 기척을 느낀 녀석이 뒤를 돌아본 순간.

“잡았다.”

놈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바닥으로 찍어 눌러 녀석을 제압하려고 한 순간, 남자가 메고 있던 가방이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기껏 따라잡았지만, 나는 미련 없이 다시 거리를 벌렸다.

퍼어엉-!

가방을 중심으로 강한 폭발이 발생했다.

일렁이는 불꽃은 흩어지기는커녕 오히려 한군데로 똘똘 뭉치면서 거대한 거인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파이어 골렘인가.”

화염 계열 소환수 중에서 상급 티어에 속하는 녀석이다.

가방을 메고 있던 남자는 폭발로 인해 정신을 잃은 모양인지 화상을 입은 채로 근처에 널브러져 있었다.

가방이 폭발하기 직전에 필사적으로 마나를 끌어모아서 자신을 보호한 덕분에 죽진 않은 것 같다.

‘자기도 가방 안에서 파이어 골렘이 소환될 줄은 몰랐나?’

남자는 딱 봐도 C랭크?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각성 능력을 지닌 것으로 추측된다.

C랭크의 헌터가 파이어 골렘을 소환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뒤에서 이 사태를 꾸민 녀석이 따로 있나 보군.’

배후가 있다.

일단은 저 불덩이 녀석부터 없애고, 범인을 데려가서 심문해 봐야 좀 더 자세한 걸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파이어 골렘이 육중한 몸을 활짝 펼쳤다.

뜨거운 열기가 사방에 퍼졌다.

나를 적으로 인식한 모양인지, 녀석은 쿵, 쿵, 쿵! 소리를 내면서 나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골렘은 온몸이 무기다.

높은 물리, 마법 방어력을 가졌기에 웬만한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몸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저 불길도 무시할 수 없다.

접근하기조차 용이하지 않은, 굉장히 까다로운 적이라 할 수 있다.

파이어 골렘이 내가 있는 자리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나를 그대로 찍어 누르려고 시도했지만.

‘곱게는 안 당해 주지!’

몸을 슬쩍 옆으로 빼면서 파이어 골렘의 일격을 간단하게 회피했다.

아까 그 네발 달린 불덩이 괴물 녀석들을 상대할 때를 떠올렸다.

이 파이어 골렘도 실체를 유지하게끔 만들어 주는 보석 같은 게 몸 어딘가에 박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에는 가슴팍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오른손에 마나를 두르고 골렘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곳에 있나?’

한편, 구멍이 뻥 뚫린 파이어 골렘의 가슴팍이 불길로 채워졌다.

재생 능력을 가진 골렘이라.

‘가장 상대하기 껄끄러운 녀석이네.’

내가 이래서 골렘 녀석들을 싫어한다.

두 번째로 머리를 노렸다.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신체에 비해 유독 작은 파이어 골렘의 머리가 박살 났다.

당첨일까?

아니, 꽝이다.

가슴팍에도, 머리에도 없다.

팔이나 다리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공격을 당할 때 가장 먼저 파괴되기 쉬운 부위니까.

내가 만약 파이어 골렘의 소환사라면.

매개체를 어디다가 숨길까?

‘최대한 눈에 안 띄고 안전한 장소에 숨겨 두려 하겠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반드시 파이어 골렘의 몸 안에 매개체가 박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자.

순간 나는 쓰러져 있는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쪽 주머니에서 은은한 붉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

눈앞에 파이어 골렘이 버젓이 서 있으면, 사람의 신경은 당연히 녀석에게만 집중될 것이다.

설마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남자의 품 안에 매개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할 것이다.

그런데 어쩌나.

하필이면 헌터들 중에서도 잔머리 톱으로 알려진 내가 상대라서 녀석의 의도는 완전히 망했다.

주먹으로 바닥을 내려쳤다.

아스팔트 잔해들을 꺼내 파이어 골렘에게 냅다 던졌다.

투웅! 쿵!

팔로 내가 던진 아스팔트 조각들 쳐 내는 파이어 골렘.

그사이, 나는 남자가 쓰러진 곳으로 향했다.

주머니 안쪽에 손을 넣자, 행사장에서 상대했던 소환수들의 매개체보다도 두 배가량 더 큰 보석이 나왔다.

손에 살짝 힘을 가하자.

콰직!

보석에 커다란 균열이 생성되면서 파이어 골렘의 몸체가 크게 흔들렸다.

완전히 박살을 내고 나서야 파이어 골렘은 그대로 자신의 몸을 불태우면서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지독한 놈들.”

불을 다루는 능력을 보니, 문득 아직도 원인 불명으로 남은 화재 사건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 사건과 이 사건이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행사장에서 벌어진 소환수들의 습격 사건은 당연하게도 기자들이 작성한 기사를 통해 전국적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몬스터들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사람들을 습격한 게 아니라, 각성 능력자 중에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해하기 위해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이로 인해 각성 능력자에 대한 경각심은 더욱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많은 기자들이 나에게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범인은 어떻게 잡았는지 등을 묻기 위해 취재 요청을 해 왔지만, 나는 헌터협회 측에서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말을 아끼겠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기자들과의 인터뷰보다 더 중요한 일이 아직 남아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회사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던 나는 승훈이 형이 가져온 소식을 듣고 마침내 일어섰다.

“네가 잡은 그 남자, 정신 차렸다고 하더라.”

“알았어.”

녀석에게 묻고 싶은 게 굉장히 많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