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07화 (107/250)

제28장. 테러리스트 (2)

멀리까지 온 시위대에게 일일이 택시비를 쥐여 주면서 내가 직접 그들을 배웅했다.

어차피 행사 시작하려면 시간도 많이 남았고.

그리고 눈앞에서 이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직접 목격했는데, 도저히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몬스터와의 전투로 인해 오른쪽 다리를 잃은 모양인지 불편해 보이는 한쪽 다리로 몸을 겨우 지탱하며 서 있던 남자가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태오 씨만 믿고 있겠습니다. 같은 헌터로 활동했던 정을 생각해서라도 꼭 위에서 대책을 마련하게끔 재촉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여러분들의 편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무리하시지 마시고 치료부터 꾸준히 받으세요. 경제적으로 많이 어렵다 싶으시면, 제가 명함 하나 드릴 테니까 그쪽으로 연락해 주시고요.”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나야 벌어 둔 돈이 많고. 그리고 지금은 연예인으로서도 워낙 잘나가고 있는 덕분에 생활고에 시달릴 일은 없지만, 모든 헌터들이 다 그렇진 않으니까.

마지막 남은 시위대가 택시를 타고 얌전히 돌아가는 걸 보고 나서야 나는 다시 행사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협회장이 승훈이 형과 함께 나를 반겼다.

“형도 왔어? 일이 있다며?”

“어, 다행히 금방 끝났어. 그래서 여기로 바로 왔지. 근데 협회장님 도착하셨다는 연락받은 지 좀 됐는데, 행사장에 안 보이시길래 무슨 일 있나 싶어서 나와 봤지. 겸사겸사해서 아까 시위대하고 경찰 사이에 벌어졌던 일도 들었고.”

승훈이 형도 나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하여간 진짜…… 사람들이 너무하네. 태오나 데이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뭐, 뒤에서 손 놓고 편하게 몬스터들 구경이나 하고 있었던 줄 아나.”

승훈이 형은 나보다도 더 그들에게 공감이 갈 것이다.

왜냐하면 승훈이 형도 몬스터와 싸우다가 부상이 쌓여서 결국 현역에서 은퇴를 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다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정기적으로 헌터 전문 병원을 방문하고 있는 중이다.

시위대를 대신해서 화를 내 주는 승훈이 형.

협회장이 그런 승훈이 형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진정하라고 말했다.

“안 그래도 오늘 정계 쪽 사람들 오면, 은퇴한 헌터들에 관한 복지 정책에 대해서 몇 가지 논의하려고 했었어. 그거 때문에 요즘 그쪽 사람들 만나러 다니는 거야.”

나는 또.

협회장이 정계에 욕심이 있어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헌터들도 사람이니까. 고생 많이 했는데, 그만한 대우는 당연히 받아야지. 안 그러냐?”

“그렇죠.”

헌터라면 당연히 공감 갈 만한 이야기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헌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탈인간적인 힘을 지닌 존재들.

이로 인해서 전 세계적으로 차별 현상이 여럿 발생하고 있었다.

인식 개선과 관련 법안 통과.

이런 것들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행사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승훈이 형이 내게 물었다.

“시위하러 오신 분들, 네가 일일이 다 배웅해 줬다며?”

“어, 열 명이었어.”

“열 명? 열한 명이 아니라?”

왜 한 명이 더 추가되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승훈이 형이 행사장 근처에 위치한 야외 화장실을 가리켰다.

“아니, 아까 저기에 시위대 일행으로 보이는 각성자가 한 명 있길래. 꽤 젊은 남자였는데, 나는 네가 그 사람도 포함해서 배웅해 주고 온 줄 알았지.”

그럴 리가 없다.

혹시 몰라서 내가 시위대로 참가한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물어봤다.

오늘 온 사람이 여러분들이 다냐고.

그들은 분명 그렇다고 답했다.

협회장이 승훈이 형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꺼냈다.

“행사 보러 온 각성자일 수도 있지.”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자 자, 더 늦기 전에 들어가자고. 태오, 너는 조금 있다가 무대에 올라서 노래도 불러야 한다며? 가서 미리 현장 체크도 좀 해야지.”

나 혼자 당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축하 무대를 ‘강태오’가 아닌 ‘HTB’로 올리려고 했는데, 멤버들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앨범 작업 때문에 쉰다고 이미 발표가 끝났는데, 축하 공연을 하면 팬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냐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솔로로 올라가기로 했다.

‘HTG가 조금만 더 빨리 컴백했더라면.’

그러면 그쪽으로 짬처리시킬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아쉬워.

* * *

무대에 올라서 짧은 리허설을 가졌다.

그사이, 행사장에 사람들이 자리를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많이 오네.’

원래 행사장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왔었나?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꾸준히 행사에 참석했던 내 기억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늘이 뭐 특별한 날인가 싶었는데.

사람들이 들고 온 물건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것들이 몇 개 있었다.

우리 HTB 굿즈들이었다.

‘나하고 데이브 보려고 사람들이 몰린 거였구만.’

여기가 콘서트장은 아니다 보니까 방송 무대처럼 막 환호성을 지르고 그러진 못한다.

대신에 소리 없는 응원을 내게 보내 주기 위해서 저렇게 우리가 알아볼 수 있도록 굿즈들을 하나씩 들고 온 모양인가 보다.

나로서는 고맙긴 한데.

‘이러면 더 열심히 불러야겠네.’

물론 어떤 무대든 늘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짧게 리허설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나는 옆에 앉아서 무신경한 표정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데이브를 툭툭 건드렸다.

“왜?”

짜증 섞인 대답을 들려주는 데이브에게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너도 나랑 같이 무대 서서 노래할래?”

“이제 와서 갑자기? 미쳤냐?”

“우리 보려고 팬들도 먼 곳에서 와 줬는데, 서비스를 해 줘야지. 안 그래?”

“됐다. 예정대로 너 혼자 불러. 괜히 주최 측 당황하게 만들지 말고.”

예상은 했지만, 데이브한테는 씨알도 안 먹혔다.

오전 11시.

정각이 되자마자 식순에 맞춰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대통령에 이어서 우리 협회장도 무대에 올라 지난날을 회상하고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런 뒤,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말을 시작으로, 헌터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저 말을 들으니 행사가 시작하기 전에 만났던 시위대가 떠올랐다.

아마 협회장도 그걸 의식하고 일부러 저런 대사를 넣은 것 같다.

협회장의 발언이 끝나고 난 뒤.

“다음으로 강태오 씨의 무대가 이어지겠습니다.”

사회자가 나를 무대로 초대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나는 천천히 계단을 오르며 무대 한가운데로 향했다.

이제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제법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자리에 오를 때마다 그 생각은 항상 머릿속에서 지워진다.

무대는 늘 내게 새로운 기분을 안긴다.

이것이 무대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싶다.

“안녕하세요. 가수 태오입니다.”

반주에 맞춰서 행사장에 모인 이들에게 짧게 내 소개를 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내가 누군지 알고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인사와 소개를 생략하는 건 매너가 아니니까.

마이크를 들고 입을 열었다.

오늘 이곳에서 부를 노래는 ‘나의 길’과 ‘결의’. 이렇게 두 곡이 예정되어 있었다.

노래 순서는 ‘결의’부터 먼저였다.

내 노래가 몬스터와 싸우는 헌터들의 투쟁심을 나타내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 행사에도 나름 잘 어울렸다.

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객석을 훑었다.

아까 우리 HTB 굿즈를 가져온 팬들이 소리 없는 응원을 보내는 모습이 보였다.

보답의 의미로 싱긋 미소를 지어 보냈다.

무대에 올라와 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일일이 다 눈에 들어온다.

내가 특별히 시력을 강화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무대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마 다른 가수들도 나처럼 이렇게 무대에 올라오면 팬들의 모습을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내 콘서트가 아니었기에 객석에는 팬들이 아닌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도 많이 계시고.

중간에 승훈이 형이 봤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젊은 각성자의 모습도 보였다.

표식에 은은한 빛이 감돌고 있어서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사람이 시위대인가?’

그러나 시위를 하러 이곳에 온 것치고는 좀 이상했다.

왜 다른 시위대와 같이 움직이지 않았던 걸까?

그리고 왜 저렇게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있나.

마치.

‘뭐 나쁜 일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느낌이 영 좋지 않다.

두 번째 곡, ‘나의 길’까지 끝내고 난 후에 무대 아래로 내려온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승훈이 형이 이런 나를 향해 다급하게 손짓했다.

“야, 강태오! 어디 가!”

“잠깐만.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래. 곧 돌아올게.”

행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벌어진 내 돌발 행동으로 인해서 승훈이 형은 크게 당황했다.

승훈이 형한테는 미안하지만, 어떻게서든 그 남자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부랴부랴 남자가 있는 자리로 향했지만.

‘그새 도망쳤나?’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행사를 보러 온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그렇다면 아직 행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자리를 뜰 이유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시위를 하러 온 것도 아니고, 행사를 끝까지 볼 것도 아니다.

‘그럼 대체 뭐 하러 온 거지?’

의문만 커졌다.

* * *

다시 자리로 돌아오자, 승훈이 형이 잔소리를 퍼부었다.

“어딜 갔다가 온 거야! 아까 카메라감독님이 우리 쪽 비추려고 하다가 네 자리가 비어 있는 거 보고 황급하게 다른 카메라로 화면 전환하고 그랬다고.”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는 터라 편집도 할 수가 없었다.

주최 측에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래도 꼭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

“형, 아까 화장실 근처에서 봤다던 남자, 옷차림이 어땠어?”

“그건 왜?”

“신경 쓰여서 그래. 기억나는 거 있으면 대충이라도 좋으니까 말해 줘.”

“어떻게 됐더라…… 검정 후드티에 청바지, 그리고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어. 아, 가방도 하나 메고 있었다. 근데 가방이 유독 커서 인상에 남았지.”

“그 사람이 각성자라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손등에 있는 표식을 보고.”

각성자의 몸에 새겨져 있는 표식은 능력이 발동되었을 때만 나타난다.

그 말은 즉, 남자는 그곳에서 자신의 각성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러고 보니 아까도 표식이 은은하게 빛났는데.

대체 왜?

몬스터가 나타난 것도 아닌데, 굳이 각성 능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니면 경찰들과의 대치 때문에? 그렇다고 보기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경찰들은 아까 내가 직접 배웅을 했던 열 명의 시위대 쪽으로 거의 다 몰려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승훈이 형의 말을 들어 보니, 당시 남자는 혼자서 서성이고 있었다고 했다.

“근데 그 사람이 왜? 뭐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데?”

“그건…….”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냥 감이 나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위험하다고.

내 단순한 착각으로 끝났으면 참 좋았을 뻔했는데.

안 좋은 예감은 이번에도 제대로 들어맞고 말았다.

진행자가 마무리 멘트를 하면서 행사가 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였다.

퍼어어엉-!

콰과과광!!

연달아 들려오는 폭발 소리에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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