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장. 테러리스트 (1)
HTB 두 번째 앨범 작업이 진행될 동안, 나는 배우로서 최기호 감독의 작품 촬영에 집중하기로 했다.
가끔씩 가수로 무대 위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우리 최 프로듀서가 워낙 바쁘니까 솔로곡 하나 달라는 말을 하기가 미안했다.
게다가 HTB가 쉬는 동안, 걸 그룹인 HTG가 바통을 이어받아 두 번째 앨범으로 컴백할 예정이다.
우리와 활동이 겹치면 서로 집안싸움밖에 안 되니까.
그래서 일부러 활동 기간을 피하려고 시기를 이렇게 잡게 되었다.
최 프로듀서나 회사 입장에서도 그게 나았다.
동시에 두 팀을 다 신경 쓰려고 하면, 그만큼 에너지가 분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한 팀만 온전하게 집중해서 케어해 주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고생하고 있을 최 프로듀서를 위해서 커피 몇 잔을 들고 녹음실로 향했다.
똑똑.
가볍게 노크를 하자, 안에서 피곤함에 전 듯한 최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어? 이사님!”
“안녕하세요, 프로듀서님. 많이 바쁘시죠?”
“어휴, 요즘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집에 들어가서 잔 적이 언제였나 기억이 안 날 정도예요.”
최 프로듀서는 평소에 약한 말을 잘 안 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최 프로듀서가 내게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정말로 힘들다는 것을 뜻했다.
“프로듀서님 좋아하시는 커피 사 왔습니다. 팀원분들 것도 사 왔으니까 잠깐 쉬었다가 하세요.”
내 말에 팀원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쉬엄쉬엄해야지, 너무 일에만 몰두하면 의미가 없다.
커피 한 모금으로 잠깐의 휴식 타임을 가지는 팀원들.
“이사님이 사 주신 거라서 더 맛있네요.”
“잘 마시겠습니다, 이사님!”
팀원들이 잠깐 못 본 사이에 사회생활 능력이 부쩍 늘었다.
나는 최 프로듀서와 따로 녹음실 옆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요즘 많이 힘드시죠?”
서두를 듣자마자 최 프로듀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러십니까, 이사님? 안 어울리세요. 그냥 필요하신 거 있으면 곧바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상사가 되어 볼까 했는데.
아무래도 내 말이 최 프로듀서를 닭살 돋게 만들었나 보다.
“엄청 대단한 말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요. 아까 최 프로듀서님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사람을 더 뽑아 줘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뽑아 주신다면야 저는 무조건 좋죠.”
회사 규모도 날이 갈수록 커져 가고.
최 프로듀서 혼자서 우리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모든 가수들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지금도 여력이 안 돼서 외부 인력의 힘을 빌리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몬스터 토벌과 내 개인적인 연예계 활동 때문에 제대로 회사에 신경을 못 쓰고 있었으니까.
이번 기회에 내실을 더 탄탄하게 다져 둘 생각이다.
“데리고 올 만한 사람들이 있나요?”
“최근에 YPC에서 퇴사한 제 후배 프로듀서가 한 명 있습니다. 능력은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바로 연봉 협상부터 시작하면 되겠네요.”
최 프로듀서가 본인이 말하고도 본인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제 말만 듣고 바로 그렇게 결정하셔도 되는 건가요?”
“네. 최 프로듀서님이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찾는 거니까요. 굳이 뭐 추가로 검증하고, 이런 게 필요할까요?”
최 프로듀서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역시 이사님이시네요. 화끈하셔서 정말 좋습니다.”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인사팀 내에서도 사람이 너무 부족하다고 해서 이번에 원하는 만큼 채용하기로 했거든요.”
확장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지금은 투자 실패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는 걸 더 견제해야 한다.
몬스터 토벌 작전 때에도 나는 여러 작전들 중에서 유독 공격적인 수를 더 선호했다.
공격이 곧 최선의 방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 프로듀서가 오늘 바로 자신의 후배한테 연락해 보겠다는 말을 들려줬다.
“괜찮으시다면, 나중에 그 후배하고 같이 식사라도 하시죠.”
“일정 한번 확인하고, 비는 날짜 있으면 그때로 맞춰 볼게요.”
“그러고 보니 이사님, 지금도 많이 바쁘시겠네요.”
“정신없습니다.”
나도 최 프로듀서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했다.
그룹 활동은 쉬고 있지만, 영화 촬영에다가 최근에는 협회 측에서 무슨 무슨 행사가 있으니까 꼭 참여해 달라는 요청까지 들어와서 골치가 아프다.
나 대신 데이브를 보내고 싶어도, 협회장이 한국 헌터들을 대표로 해서 나올 사람이 필요한데 데이브로 되겠냐면서 오히려 내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래서 다음 주에 대전에서 있을 행사도 억지로 참가하게 되었다.
최 프로듀서가 한숨을 쉬는 나를 향해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도 이사님은 대한민국 수호의 상징 아니겠습니까. 나라를 구하셨는데, 사람들이 이사님을 당연히 자주 보고 싶어 하시겠죠.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파이팅!”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응원에 내 한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 * *
영화 촬영이 없는 날에는 집에서 쉬면서 체력을 보충하고. 이런 식으로 일정을 분배하면 참 좋을 텐데.
“어째 그룹 활동할 때보다도 요즘이 더 바쁜 거 같은데.”
내 볼멘소리를 들은 건지, 협회장이 쓴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너 회사 운영하는 동안 네가 필요한 것들 우리가 웬만하면 다 들어줬잖아. 받은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지. 안 그래?”
협회장은 이번 행사에 내가 참가하는 일 자체가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가 보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오늘은 대전에서 벌어졌던 S급 게이트 사건에 대한 애도를 표하기 위한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게이트도 우리 헌터들처럼 등급이 다 매겨져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이 바로 S등급.
지구 멸망 수준의 위력을 가진 게이트인 만큼, 상당히 많은 피해를 안겼다.
무수히 많은 헌터들이 희생되었고, 그보다 더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당했다.
레이드 시대에서도 S등급 게이트가 목격된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 손에 꼽는 희귀 사례가, 하필이면 대한민국 대전 한가운데에서 벌어지게 된 것이다.
거의 5년 가까이 지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때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창밖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협회장은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때 너 없었더라면, 아마 인류는 진즉에 멸망했을 거다.”
“왜 그러세요, 협회장님. 갑자기 그런 진지한 모습으로 말하고. 아까처럼 그냥 장난 받아 주는 식으로 말씀하셔도 되는데.”
“그때 당시를 회상하면, 도저히 농담식으로 말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리거든. 버릇처럼 말이야.”
하긴, 협회장의 심정이 어느 정도 공감된다.
그때는 나도 정말로 인류가 멸망하는 거 아닌가 하고 식겁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각성하고 처음 겪었던 절망과 공포.
그러나 어찌어찌 위기를 극복하고, 나와 헌터들은 한 차례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때 내가 처음으로 SS랭크를 넘어 SSS랭크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만큼 대전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우리보다 먼저 출발했던 데이브와 연수하 대표의 차가 보였다.
승훈이 형은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이번에 불참하게 되었다.
나야 어차피 협회장하고 같이 이동하기로 했었으니까, 승훈이 형이 와서 차를 운전해 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협회장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날씨는 참 좋군.”
협회장의 말대로 날씨는 좋다.
그러나 행사장의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국가로부터 아직도 제대로 된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한 유가족들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전단지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협회장도 전단지에 적힌 문구를 확인하고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런 건 좀 빨리빨리 보상해 주지. 왜 자꾸 미루는지 모르겠군.”
“협회장님이 이런 쪽으로 많이 어필해 주세요. 요즘 정계 인사들하고 자주 만나고 다닌다면서요.”
“뭐…… 다른 이유 때문에 그렇긴 한데, 아무튼 그렇게 하마.”
다른 이유라는 말이 유독 신경이 쓰였다.
그때였다.
“우리가 니들 도구냐! 필요할 때는 그렇게 찾더니만, 레이드 시대가 끝나니까 뭐? 알아서 하라고?”
“너희가 평화롭게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우리는 밤낮을 새워 가면서 목숨을 걸고 괴물 녀석들이랑 싸웠다고!”
열 명 남짓 되는 인원들이 팻말을 들고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딱 봐도 저들이 각성자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경찰들은 시위대를 보면서 짜증 난다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책임자로 보이는 한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나눴다.
“예, 알겠습니다. 의원님들 도착하시기 전에 쫓아내도록 하겠습니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경찰들을 향해 손짓했다.
무장을 한 이들이 시위대에게 점점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시위대는 끝까지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들의 목소리도 들어 달라!”
“큰 요구 하는 거 아니잖아요! 저희도 사람이라고요!”
그럼에도 경찰들은 시위대를 쫓아내기 위해 점점 거리를 좁혔다.
협회장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전에 내 몸이 먼저 움직였다.
공중으로 크게 도약해 경찰들과 시위대 한가운데에 착지한 나.
시끄러웠던 현장이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으로 인해 일순간 조용해졌다.
뒤늦게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강태오 씨……?”
뒤에서 협회장이 자신의 이마를 탁 치는 모습이 보였다.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나도 헌터니까.
“이분들 말대로입니다. 그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는 요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왔을 뿐인데, 단지 행사에 방해된다는 이유만으로 쫓아내려고 한다면 너무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분들도 저와 똑같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과 사의 갈림길 속에서 인류를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헌터분들은 마음만 먹으면 여러분들을 역으로 때려눕히고도 남았을 겁니다. 그런데도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이 대화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오히려 공권력이 폭력을 행사하면 되겠습니까?”
“…….”
경찰들은 침묵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갈등하는 그들의 앞에 협회장이 나섰다.
“시위대분들은 저희가 잘 이야기해서 해산시킬 테니까, 여러분들도 평화적으로 나서 줬으면 좋겠군요.”
협회장의 말이 어느 정도 통한 모양인지, 경찰들은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사이에 나는 시위대에게 집중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언급된 사실이지만, 헌터라고 모두가 다 잘사는 건 아니다.
시위에 참가한 헌터들처럼 생활고에 시달리는 자들도 분명 존재한다.
문제는 전단지를 뿌리고 간 유가족들처럼 헌터들 역시 보상을 못 받고 있다는 거였다.
“저하고 협회장님이 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오늘은 자택에 돌아가셔서 쉬세요.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헌터의 마음은 같은 헌터가 잘 안다.
내 말에 시위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랄까.
씁쓸한 사회의 단면을 봐서 그런 걸까.
화창한 날씨와 다르게 내 기분이 흐림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