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05화 (105/250)

제27장. 세 번째 도전 (5)

비행 타입의 몬스터를 상대할 때에는 가장 먼저 날개부터 공략해야 한다.

일단은 지상으로 떨궈 놓으면 상대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어떻게 작전을 짜느냐에 따라 헌터들이 좀 더 효과적으로 몬스터들을 제압할 수 있는지, 이 여부가 갈린다.

그래서 나는 무술감독과 상의해서 날개라는 약점을 공략하는 액션 장면부터 먼저 보여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전을 수행하는 것도 내가 몸소 행동으로 보여 줬다.

“속도에 자신 있는 헌터 한 명이 먼저 몬스터의 관심을 끌어 줍니다. 게임으로 따지면…… 어그로를 끈다고 하죠? 미끼 역할을 맡은 헌터가 그렇게 몬스터의 시야를 좁게 만든 사이, 다른 두 헌터가 동시에 날개를 공략합니다. 이다음은 지상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하고 비슷한 전투 양상을 띠니까, 무술감독님께서 아시는 동작들로 꾸미면 될 겁니다.”

먼저 선행되어야 할 액션 신을 알려 주고, 이후부터는 무술감독의 재량에 맡기기로 했다.

어차피 스턴트 배우들이 활약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커싱되어 잡히진 않는다.

몬스터와 여러 헌터들이 싸우고 있다. 이런 느낌만 주면 된다.

반면, 내 액션 연기에는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영화의 액션 신 대부분이 내게 할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화 주인공이긴 하지만 일반인에 불과한 홍민수와 윤재영 캐릭터가 아이템을 들고 몬스터와 대차게 싸울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내 조언에 고개를 끄덕인 무술감독이 스턴트 배우들을 모으고 새롭게 액션 장면을 짜기 시작했다.

그사이, 스태프가 나를 불렀다.

“태오 씨! 와이어 한번 타 보실래요?”

“예,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무술감독과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뒤에 스태프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조금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한번 타 보기로 했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막상 해 보면 마음에 들지도.

……라고 생각을 했지만.

‘예상했던 그대로네.’

어떤 느낌이냐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팔하고 다리만 어색하게 휘두르는 그런 느낌이다.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에 이렇게 있으면 공격당하기 딱 좋다.

아래에서 대기 중인 스태프가 내게 큰 목소리로 물었다.

“어떠신가요?”

“혹시 이거, 움직일 수 있나요?”

“네, 물론이죠. 잠시만요.”

장비를 다루는 스태프의 컨트롤에 따라 내 몸이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움직였다.

아직 멀었다.

이것보다 더 역동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좀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까요?”

“네? 하지만 그러면 위험할 텐데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여기서 떨어져도 제가 다칠 일은 없으니까요.”

지금 당장 아이템이 없어도, 마나로 신체를 강화시키면 충분하다.

내 말을 믿고 스태프들이 더 빠른 속도로 와이어 장치를 움직였다.

예상은 했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의 속도는 나오지 않았다.

“네, 이제 됐습니다.”

내가 촬영장 위에서 여기저기 막 움직이고 있던 탓에 지상으로 내려오는 동안, 스태프들의 관심이 내게 쏠려 있었다.

최기호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인가 보군요.”

“네. 이게 역할이 역할이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자꾸 욕심이 나네요. 혹시 괜찮다면, 와이어 장비 없이 촬영해도 될까요?”

“네? 그게 가능합니까?”

“승훈이 형…… 아니, 제 매니저한테 말해서 비행 스킬이 깃들어 있는 아이템 몇 개 가져와 달라고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해결될 거예요.”

안전상의 문제도 와이어보다는 아이템을 이용해서 공중을 날아다니는 쪽이 훨씬 더 적다.

단, 나처럼 마력을 어느 정도 다룰 줄 아는 헌터만 이런 게 가능하다.

아까 만났던 스턴트 배우들의 경우에는 아이템이 아니라 와이어 장비를 착용해서 움직이는 편이 좋다.

스태프들의 시선이 나에게서 최 감독 쪽으로 옮겨 갔다.

결정권은 최 감독에게 있다.

나는 그저 이쪽이 더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올 거라고 조언만 할 뿐.

최 감독이 그냥 와이어 쪽으로 가자고 말을 해도 나는 그대로 따를 생각이다.

오랜 고민 끝에, 최 감독이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태오 씨 단독 장면에서는 와이어 말고 아이템을 사용하는 쪽으로 하죠.”

협상 완료.

최 감독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곧장 승훈이 형을 찾아야만 했다.

* * *

승훈이 형이 내 집에 보관되어 있는 아이템들을 가져오는 동안, 다른 스턴트 배우들이 촬영하는 장면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 연기의 프로들이라서 그런 걸까.

그 짧은 시간에 내가 들려준 조언들을 그대로 액션 연기에 녹여내서 능숙하게 표현해 냈다.

확실히 배우는 배우인가 보다.

연기도 연기지만,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이거였다.

‘아무것도 없는데, 오직 상상력만으로 몬스터가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하는 거겠지?’

이게 가장 신기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에는 스턴트 배우들이 혼자서 생쇼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스턴트 배우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피면, 오히려 몬스터의 움직임이 보일 정도였다.

저기서 몬스터가 어떻게 스턴트 배우들을 공격하는지.

긴 부리를 어떻게 휘두르는지.

발톱으로 전방에 있는 헌터의 어느 부위를 노리며 공격하는지.

오로지 스턴트 배우들의 움직임만 보고도 예상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내가 이번 영화 촬영을 하면서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게 바로 저런 거였다.

안 그래도 이런 촬영 자체가 낯선데, 눈앞에 몬스터가 있다고 상상하면서 혼자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게 꽤나 부담스럽긴 하다.

그래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축되어 있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은 있었다.

여기서 몬스터와 싸워 본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기만 하면 될 것 같다.

최기호 감독이 확성기를 들어 올렸다.

“네, 좋습니다. 배우분들 고생하셨고요. 20분 정도 쉬었다가 태오 씨 단독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태오 씨, 혹시 아이템 준비되셨나요?”

“잠시만요. 연락해 보겠습니다.”

슬슬 승훈이 형이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스마트폰으로 연락을 취하려는 순간, 저 멀리서 승훈이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오야! 나 왔다!”

“고생했어, 형. 내가 말한 것들 다 챙겨 왔지?”

“어, 한번 확인해 봐.”

부유 스킬이 깃들어 있는 에워드 아머와 속도를 높여 주는 버프가 깃든 벨트까지. 2종의 아이템이 승훈이 형이 들고 온 커다란 스포츠백 형태의 가방 안에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냥 가방에 담아 가지고 와서 그렇지, 사실 방어구 아이템들 중에서 1티어급에 속하는 고가의 아이템들이다.

값어치만 해도 수십억은 될 터.

아이템을 착용하고, 겉옷을 걸쳐서 에워드 아머와 벨트가 보이지 않도록 가렸다.

그 뒤, 마력을 불어 넣으며 아이템의 힘을 개방했다.

혹시 몰라서 스태프들에게 미리 경고했다.

“위험하니까 잠깐 떨어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던 스태프들이 알아서 거리를 벌렸다.

잠시 뒤.

후우웅―!

뜨거운 열풍이 나를 중심으로 한 차례 강하게 퍼져 나갔다.

야외도 아니고 실내 스튜디오라는 것을 감안하면서 천천히 공중으로 향했다.

와이어의 도움 없이 하늘을 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시험 삼아 현장 한 바퀴를 슥 돌았다.

지상에 있을 때에는 제법 크게 보이던 실내 스튜디오 전경이 이렇게 공중에서 내려다보니까 그렇게까지 넓어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 있으면 이렇게 시야가 넓어진다.

그래서 나는 가끔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에워드 아머 같은 아이템을 이용해서 비행을 하고 돌아오곤 했었다.

그때의 기억이 오랜만에 새록새록 떠올랐다.

촬영 때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처럼 검 형태로 제작된 소품을 크게 휘둘렀다.

몸을 360도 회전시키면서 회피 동작도 해 보고.

아까 스턴트 배우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가상의 몬스터들이 나를 공격해 오는 상상을 하면서 몸을 옆으로 날렸다.

빈틈이 보였다.

검날을 세워서 정확히 몬스터의 날갯죽지를 베어 버렸다.

물론 진짜로 그랬다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모의 동작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부터 카메라감독이 카메라를 들고서 이런 내 모습을 앵글에 담아내고 있었다.

‘최기호 감독이 시킨 건가?’

바로 옆에 최 감독이 서 있는 걸로 봐선, 지금의 내 모습을 한번 찍어 보라고 말한 듯했다.

그렇다면.

‘이것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방금 전에 봤던 스턴트 배우들의 움직임은 내게 있어서 너무나도 밋밋했다.

너무 정적이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우리 헌터들은 그렇게 느긋하게 움직이면서 싸우지 않는다.

‘날아다니는 몬스터를 상대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가만히 있던 내 몸이 앞으로 빠르게 튀어 나갔다.

마치 총알이 발사되는 것처럼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덕분에 카메라감독은 놓친 나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카메라를 돌려야만 했다.

뒤늦게 내가 있는 곳을 확인한 카메라감독.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가볍게 카메라의 시선을 회피했다.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고.

보는 입장에선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쯤 하면 됐겠지?’

지상으로 내려오자, 최기호 감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이제 곧 촬영 들어가셔야 할 텐데,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요.”

“무리라니요.”

그런 말을 하면 섭하다.

왜냐하면.

“이 정도는 몸풀기 수준밖에 안 되는데요?”

최기호 감독과 스태프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 *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나름 몸 좀 풀어서일까.

와이어 액션으로 어떻게 공중 전투 신을 연출하면 좋을까 복잡했던 머릿속이 순식간에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나는 아이템을 이용해서 싸우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

아까처럼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몬스터의 공격 패턴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마치 공중에서 싱크로나이즈를 하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였다.

촬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 터라 의도적으로 동작을 크게 크게 보였다.

아래쪽에서 최기호 감독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들렸다.

“네, 좋습니다! 다음, 옥상 전투 신으로 넘어갈게요!”

“예, 알겠습니다.”

아이템에 주입해 뒀던 마력을 서서히 거두자 내 몸이 느린 속도로 하강했다.

겉옷을 벗고 아이템을 해제한 다음에 승훈이 형한테 이것들을 넘겼다.

아이템은 함부로 취급하면 안 된다.

혹여나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

승훈이 형이 아이템을 가지고 올 때 사용했던 가방을 다시 꺼내 안에 고이 보관해 뒀다.

그사이, 옥상 전투 신 촬영 준비가 모두 끝났다.

“이번에도 와이어 없이 하실 거죠?”

“예. 그게 훨씬 자연스럽고 편합니다.”

와이어는 아무래도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까처럼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옥상 난간을 표현한 스튜디오 위에서 액션 신을 펼치는 거니까 어려울 건 없었다.

어디 보자.

‘벌써 5시간이나 지났어?’

촬영이 시작된 이후로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생생했다.

‘영화 촬영이라는 거, 재미있네.’

세 번째 도전도 나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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