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04화 (104/250)

제27장. 세 번째 도전 (4)

내가 너무 가감 없이 말을 했나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본인들이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달라고 했으니까. 원하는 대로 솔직하게 말을 해 줬다.

한편, 스태프들은 내 말을 듣고서 한 명도 빠짐없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팀장만 겨우 제정신을 차리고서 내게 다시 물었다.

“싹 다…… 수정해야 된다고요?”

“예. 이거, 브리번 디자인을 따온 거죠?”

“아, 네. 그렇습니다. 역시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제가 이 녀석들하고 2주일 넘게 싸웠거든요.”

아주 지독한 녀석들이다.

몸 주변에 화기를 둘둘 두르고 있어서 화염 내성 옵션을 지닌 방어구나 액세서리를 착용하지 않은 이상, 접근조차 할 수가 없는 그런 놈들이다.

이 녀석들 때문에 나도 애지중지했던 옷들을 얼마나 많이 태워 먹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심할 때에는 머리카락도 살짝 탄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가 제일 짜증이 났던 날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참다못한 내가 결국 놈들의 아지트까지 혼자 쳐들어가서 싹 다 없애 버렸지만 말이다.

이것 때문에 협회장하고 연수하 대표한테 명령 불복종이라면서 한 달 내내 잔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여러모로 내게 안 좋은 기억을 남겼던 몬스터였기에 그만큼 더 잘 알고 있다.

물론 영화상에서는 브리번이라는 몬스터 명칭과 생김새를 그대로 채용해서 CG로 표현하진 않을 것이다.

나를 ‘강재오’라고 표기와 설정만 살짝 바꿔서 작중에 등장시키는 것처럼, 몬스터들 역시 그런 식으로 영화에 등장시킬 예정이다.

하지만 누가 봐도 이 헌터는 그 사람이고, 저 몬스터는 그때 그 몬스터라고 자연스럽게 연상이 되게끔 상당히 비슷하게 표현될 것이기 때문에 고증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브리번의 경우에는 지상 생물체인데도 불구하고 목덜미 쪽에 아가미 같은 것이 달려 있습니다. 이 아가미를 통해서 화기를 뿜어내기도 하고, 입에서 화염 덩어리들을 내뱉기도 하죠.”

“아…… 그렇군요.”

“예. 그리고 꼬리가 저렇게 길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놈들의 꼬리는 굉장히 짧은 편입니다. 가까이 가야 보일 정도로 말이죠. 참고로 털은 없습니다. 악어처럼 피부가 두꺼운 가죽 형태로 되어 있죠.”

몬스터에 대한 설명을 빠르게 이어 갔다.

스태프들이 부랴부랴 내가 알려 주는 정보들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CG팀의 고증이 엉망인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아무리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다 할지라도, 아직 몬스터나 아이템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공개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빤히 보이는 오류들을 모른 척하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말은 해 주기로 했다.

“특히 브리번의 경우에는 한국에서도 여러 번 출몰했던 터라 몬스터 마니아라고 자칭하고 다니는 사람들한테는 나름의 데이터가 많이 쌓여 있을 겁니다. 그 사람들이 만약에 최기호 감독님 영화를 보러 왔는데 털 달리고 아가미 없고 꼬리 긴 브리번을 보면 바로 인터넷에 글 올리겠죠.”

연예계에 종사하다 보니 인터넷이 지닌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매번 깨닫는다.

정말 쓸데없는 말 한마디가 순식간에 덩치를 불릴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인터넷 세계다.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고증 오류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영화 성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면 큰일이다.

왜냐하면.

‘내가 출연하기로 한 첫 영화니까.’

이 영화의 오점은 곧 배우로서의 내 필모그래피의 오점과 같다.

“감독님께 잘 말씀드려서, 웬만하면 제가 드린 정보대로 수정하시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한번 잘 말해 보겠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태오 씨. 감독님이 고집은 세셔도, 다른 사람들이 옳은 말을 해 주는데 그것도 안 들으려고 하는 분은 아니시거든요. 일단 말을 들어 보고 그게 맞다 싶으면 그대로 하실 겁니다.”

역시 성공한 사람은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기왕이 내가 이곳에 왔으니, CG팀은 한창 준비 중이던 다른 몬스터들에 관한 것들도 내게 보여 주면서 물어보고 싶어 했다.

“여기 이 몬스터는 어떻습니까?”

“이것도 좀 봐주세요. 아카튜브에 올라온 거하고 인터넷 글들 싸그리 다 찾아내서 정보를 모으고 모아 디자인한 건데, 혹시 실제로 보셨던 것하고 많이 다른가요?”

“익룡 비슷한 몬스터 있지 않습니까. 정말로 날개가 네 장이나 달렸습니까?”

이런 유의 질문을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이 받아 보는 건 현역으로 활동할 때에도 없었다.

사람들은 몬스터 자체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고, 우리가 어떻게 놈들을 때려잡았는지, 완벽하게 퇴치는 했는지. 이런 거를 더 궁금해했었으니까.

어디 보자.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승훈이 형한테 오늘은 새벽에 집에 돌아가야 할 거 같다고 미리 말이나 해 두는 게 좋겠지?

그래야 덜 원망받을 테니까.

* * *

영화 촬영 첫날이 오기까지.

나는 CG팀, 특수분장팀, 그리고 소품팀과 의상팀을 왔다 갔다 하면서 최기호 감독과 제작진이 원하는 ‘고증’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인터넷을 뒤지거나 협회 측에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문의 글을 남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하지만 인터넷의 경우에는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고.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의 경우에는 답변을 받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그래서 자신들이 준비하고 있는 몬스터 디자인이나 아이템, 의상 등을 직접 보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제작진에겐 절실했다.

그 사람이 내가 되었다.

이로 인해 나는 한동안 내가 이 영화의 배우로 캐스팅되었는지, 아니면 스태프로 고용되었는지 헷갈렸다.

오늘 촬영이 시작되고, 배우들과 같이 앉아서 대본을 서로 맞춰 보고 나서야 ‘아, 내가 배우로 온 거였지.’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최기호 감독이 잠시 나를 찾았다.

“태오 씨, 잠깐 괜찮으십니까?”

“예, 물론이죠.”

나한테만 따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보다.

배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최기호 감독과 자리를 이동했다.

최기호 감독이 나만 부른 이유가 있었다.

“저희 스태프들이 그동안 태오 씨를 너무 고생시켜 드린 거 같아서요. 그래서 죄송하다는 말하고 아낌없이 조언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같이 드리고 싶어서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는지 물어봤던 겁니다.”

“그거 때문이라면 너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저도 옛날에 토벌했던 몬스터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간만에 옛날 기억도 나고 나름 재미있는 시간이었으니까요.”

나는 이런 걸로 딱히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다.

오히려 원 없이 ‘나 때는 말이죠~’를 사람들 앞에서 시전할 수 있어서 속이 다 시원했다.

최기호 감독의 말을 들어 보니, 내 조언이 스태프들에게 꽤나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크랭크인 며칠 전에 갑작스럽게 대대적인 수정을 하게 되어서 여기에 약간 멘붕이 온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CG 다 입혀 놓고 난 다음에 이제 와서 수정하라고 하는 소리를 듣는 거보단 차라리 미리 수정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많았다고 한다.

“내일은 태오 씨 촬영 있는 거 아시죠?”

“예, 실내 촬영이라고 들었습니다.”

S#3부터 5까지의 장면으로, 부산으로 출장을 간 주인공 홍민수가 우연히 게이트 트러블에 휘말리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실제로 부산에 내려가서 촬영하는 건 다음 주부터 예정되어 있다.

이번 주는 스튜디오 촬영만 진행될 예정이다.

“내일 위험한 촬영이 많을 거 같으니까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몬스터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게 일상이었는데.

촬영 정도야 뭐, 위험한 수준도 아니지.

크게 어려울 건 없어 보였다.

* * *

촬영 둘째 날.

분명 어제 봤을 때에는 사무실의 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던 스튜디오가 오늘은 옥상 윗부분을 표현한 것처럼 아예 달라져 있었다.

‘대단하네. 이런 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가 한번 촬영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건가?’

하긴, 가요 프로그램도 가수별로 다르게 무대를 바꾸곤 했으니까.

그만큼 촬영이라는 게 참 힘든 거다.

옥상 배경뿐만 아니라 다른 장비들도 몇 개 눈에 띄었다.

“조연출님, 저거 와이어 장치 맞죠?”

“네, 맞아요. 오늘 태오 씨 공중 액션 신 있다고 해서 준비해 뒀습니다.”

“아…… 그래요?”

굳이 저런 게 필요할까?

아니, 필요하니까 준비해 둔 거겠지.

보통 사람들은 와이어 장비 없이는 공중 액션을 못 하니까.

그게 당연하다.

하지만.

‘난 헌턴데.’

내게 필요한 건 와이어 장비가 아니라 아이템이다.

조연출이 내 눈치를 살피면서 물었다.

“혹시 마음에 안 드시는 거라도 있나요?”

“아니요, 아닙니다.”

그래도 뭐, 일단은 한번 해 보기로 했다.

* * *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나와 같이 작중에서 헌터 역할을 맡을 스턴트 배우들과 함께 합을 맞춰 보기로 했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배우들은 실제로 헌터 생활을 해 본 적이 없는, 순수하게 배우 이력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전투 액션은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액션스쿨에서 배웠습니다.”

“저희 무술 감독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만…….”

그렇구만.

그래서 동작들이 하나같이 다 어설펐던 거였다.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도저히 눈 뜨고 못 봐 줄 정도로 심해서 무술 감독하고 따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다.

“감독님, 외람된 말이지만, 액션 연기를 좀 수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상대가 영화계에서 나름 오랫동안 커리어를 쌓아 온 사람이라는 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몬스터와 실제로 싸우는 데 너무 불필요한 동작들이 많이 보인다.

무술감독 입장에선 젊은 내가 태클을 거는 것 자체가 불쾌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술감독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어떤 점들을 수정해야 할까요?”

의외로 굉장히 순응적이었다.

“감독님께서 많이 불편해하실 줄 알았는데.”

“제가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저보다 더 전문가신데, 당연히 귀담아들어야죠. 이번 기회에 태오 씨한테 잘 배워 둬야, 나중에 이런 식으로 헌터를 소재로 하는 영화의 무술감독으로 참여할 때 그대로 응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아낌없는 조언 부탁하겠습니다.”

최기호 감독이 스태프들을 참 잘 모았다.

원래는 내가 무술 쪽까지도 관여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스턴트 배우들이 각자 맡은 액션 연기를 한 번씩 다시 돌아보면서 대대적인 수정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한번 쭉 둘러본 결과.

어느 부분을 지적하면 될지 보이기 시작했다.

욕심 같으면 토벌해야 하는 몬스터에 관한 정보와 약점, 특징, 그리고 공략 방법과 어떤 부류의 아이템들을 사용하면 효과적일지.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말해 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일단은 빠르게 설명해 주기로 했다.

나도 참, 이런 걸 보면 은근히 설명충 기질이 있나 보다.

말 좀 줄여야 하는데, 큰일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