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03화 (103/250)

제27장. 세 번째 도전 (3)

첫 대본 리딩을 위해 모든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렇게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회식 자리나 시상식 현장 아니면 처음이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나 나 같은 경우에는 영화 촬영 경험 자체가 전무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자리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아는 모양인지, 최기호 감독과 작가들이 나서서 내 어색함을 풀어 주려고 먼저 열심히 말을 걸어왔다.

“저기, 용수현 씨하고 민진연 씨 있네요. 가시죠. 제가 인사시켜 드리겠습니다.”

최기호 감독을 따라 리딩 현장 가운데로 향했다.

민진연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용수현이 우리들의 접근을 먼저 알아차렸다.

“안녕하세요! 태오 씨.”

최기호 감독과는 미리 인사를 나눴던 모양인지, 따로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최기호 감독이 나를 두 사람에게 직접 소개시켜 줬다.

“두 사람 다 누군지 알고 있지?”

“어휴, 당연하죠. 강태오 씨 모르면 간첩 아닙니까.”

“맞아요. 저희보다도 더 유명하신 분인데, 모를 리가 없죠. 안녕하세요. 민진연이라고 해요.”

두 사람이 밝은 미소로 나를 반겼다.

“강태오입니다. 두 분 앞에서 대본 들고 서 있는 지금 이 상황이 많이 민망하네요.”

“민망하실 게 어디 있나요. 저번에 드라마에 나오시는 거 보니까 연기 잘하시던데요?”

“저도 봤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갑자기 태오 씨가 나오길래 순간 눈을 의심했어요. 근데 엄청 자연스럽더라고요. 연기는 따로 배우신 거예요? 초보자 느낌이 전혀 안 나던데요?”

쏟아지는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헌터로 각성하기 전에 깔짝 배웠던 것 빼고는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아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럼 재능이 있으신 거네요. 이번 촬영이 더 기대되는데요?”

내가 관종기가 있다 보니 사람들한테서 관심과 기대를 받는 걸 평소에 즐기긴 하는데.

연기의 프로들한테 이런 말을 들으니까 많이 부담스럽긴 하다.

틈날 때마다 따로 섭외한 연기 학원에서 연기를 배우고 있긴 하다.

괜히 나왔다가 관객들한테 ‘강태오, 노래는 잘 부르는데 연기는 좀 별로네.’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시간을 쪼개 가며 배우고 있는 중이다.

“나중에 궁금한 점 있으면 두 분한테 따로 여쭤봐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저희의 조언이 태오 씨한테 도움이 된다면, 무조건 협력해야죠. 다 같이 한배에 올라탔으니까요.”

이 배가 좌초되지 않고 무사히 ‘흥행’이라는 목표에 도착할 수 있도록.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움직여야 한다.

영화 촬영이란 그런 것이다.

* * *

마침내 시작된 첫 합동 리딩.

다 같이 모여서 대사를 맞춰 본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기에 벌써부터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선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은 크게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몬스터와 싸우는 액션 장면이 압도적으로 많은 터라 다른 배우들처럼 긴 대사를 읊어야 하거나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합동 리딩을 배우로서 교육의 현장이라고 생각하고 임하기로 했다.

이번에 같이 촬영하게 될 배우들은 리딩 때 어떤 식으로 대사를 암기하고 소화하려고 하는지.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면밀히 관찰했다.

사람들을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안 맞을지 모르지만, 헌터들은 대체적으로 관찰력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왜냐하면, 처음 보는 몬스터들과 마주쳤을 때에는 우선 약점을 찾아내도록 매뉴얼에 적혀 있기 때문이었다.

몬스터의 취약한 부분이 어디인지, 약점이 뭔지. 이런 걸 먼저 알아내야 보다 효과적으로 녀석들과 싸울 수 있다.

그래서 훈련소 시절 때부터 관찰력을 기르는 훈련이 필수 과목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관찰력이 뛰어난 편이긴 했다.

배우들의 모습을 하나부터 열까지 빼놓지 않고 눈으로, 머릿속으로 담아 뒀다.

중간에 잠시 주어진 쉬는 시간.

최기호 감독이 내게 촬영 일정에 관한 걸 물었다.

“크랭크인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혹시 태오 씨도 촬영 첫날에 현장으로 와 주실 수 있나요?”

왜 하필이면 첫날을 강조하는지, 여기에는 최기호 감독 나름의 의도가 있었다.

“그날 촬영장 분위기 한번 느껴 보시면 좋을 거 같아서요. 그리고 그때 웬만한 배우들은 다 오기로 했거든요. 오셔서 배우들하고 한번 인사 쭉 하시고, 스태프들 얼굴도 겸사겸사 익혀 두시면 될 거 같습니다.”

내가 가요계 쪽은 이제 얼추 알고 있는데, 영화나 드라마 쪽은 아직 인맥이 허술한 편이다.

배우들뿐만 아니라 촬영감독, 조명감독, 의상팀, 음악팀 등등 영화 촬영에는 많은 사람들이 투입된다.

이들과도 한 번 정도는 인사를 나눠 둬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나도 편해질 테고.’

최기호 감독의 제안에 나는 곧장 알겠다고 답했다.

“네, 어차피 이틀 전이 저희 HTB 데뷔 앨범 활동 마무리 짓는 날이거든요.”

“타이밍이 좋네요. 근데 멤버분들하고 같이 조금은 쉬시는 것도 좋을 텐데. 그렇게 쉴 틈 없이 바로 촬영에 들어서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체력에는 자신 있으니까요.”

최기호 감독이 잠깐 내가 각성자임을 망각했던 모양인가 보다.

내 말을 듣고 뒤늦게 내가 각성 능력을 지닌 헌터임을 깨달았는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날 뵙도록 하겠습니다. 아, 태오 씨는 아니고, 같이 헌터로 출연하기로 한 다른 배우들이 그날 액션 신을 펼치기로 했거든요. 오셔서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도 미리 한번 봐 두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충 설명을 듣긴 했는데, 그래도 말로 접하는 것보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더 정확할 테니까.

새로운 도전이라는 점 때문일까.

벌써부터 촬영 첫날이 기다려진다.

* * *

최기호 감독에게 말한 대로.

크랭크인을 이틀 앞둔 오늘, 우리 HTB의 첫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촬영은 나와 데이브에게도 익숙한 토크 예능 프로그램, ‘도정수의 미팅 타임’으로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녹화가 끝나자마자 도정수와 스태프들이 우리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이게 뭔가요?”

“오늘 태오 씨하고 HTB 멤버분들, 이번 앨범 마지막 활동이라고 하셔서요. 그래서 저하고 제작진분들하고 같이 준비한 선물입니다.”

뒤에서 스태프들이 ‘고생하셨습니다!’라고 크게 외쳐 줬다.

설마 이런 서프라이즈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다른 멤버들은 스태프들과 같이 하하 웃으면서 밝은 표정으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데.

딱 한 명만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바로 우리 그룹의 막내, 준서였다.

데이브가 준서를 보면서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왜 우냐? 슬픈 일 생긴 것도 아닌데.”

“이게 슬픈 일이잖아요, 형. 저는 형들하고 같이 방송 출연하면서 일정 소화하고…… 이러는 게 재미있었는데. 형들은 안 그랬어요?”

“그거야 뭐…….”

데이브가 말끝을 흐렸다.

할 말이 없거나, 아니면 정곡을 찔렸거나. 이럴 때 나오는 대표적인 반응이었다.

데이브도 HTB 앨범 활동이 나름 나쁘지 않았나 보다.

하긴, 불만이 있었다면 데이브의 성격상 도중에 그냥 때려치웠겠지.

니암과 딜런도 준서의 말에 깊은 공감을 드러냈다.

“즐거웠지. 내 생에 이렇게 활기찼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래도 이번 활동이 마지막은 아니니까. 어차피 앨범은 또 낼 거잖아. 그렇죠, 태오 형?”

두말하면 입 아프다.

이미 최용하 프로듀서가 우리의 두 번째 앨범 작업에 돌입했다.

그사이, 멤버들은 첫 번째 앨범 작업 과정에서 느꼈던 노래, 안무 실력에 대한 아쉬움들을 보완할 생각이었다.

특히 니암의 랩 욕심이 상당했다.

이번에 여러 번 라이브 무대를 소화하면서 자신이 랩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깨달았다고, 두 번째 앨범을 준비하면서 실력을 키우기 위해 열심히 연습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준서하고 딜런도 그렇고 말이다.

데이브는…… 모르겠다. 지가 알아서 잘하겠지, 뭐.

그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축하를 받으면서 멤버들은 차에 올라탔다.

나만 빼고 말이다.

“넌 안 타냐?”

데이브가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보면서 물었다.

“난 이후에 일정 있어서 따로 가 봐야 해. 그쪽 운전은 강원이가 할 테니까 오늘은 들어가서 푹 쉬어라.”

따로 스케줄이 있다는 내 말을 듣고서 준서가 본인의 예상을 들려줬다.

“영화 촬영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어. 나한테 몬스터 디자인 검수 좀 맡아 달라고 해서. 그래서 가는 길에 잠깐 들러서 보고 가려고.”

CG팀에 들러서 모델링 확인하고, 겸사겸사해서 특수분장팀 쪽도 방문할 생각이다.

영화 장르가 헌터물인 만큼, 몬스터에 대한 고증도 웬만하면 잘 지켜지는 편이 좋다.

특히나 최기호 감독의 경우에는 매 작품마다 디테일한 설정을 집어넣는 특징이 있어서 고증 부문은 확실하게 체크하고 넘겨야 한다.

만약 놓치는 게 있다면, 관객들이 먼저 이건 아니라고 태클을 걸어올 테니까.

멤버들에게 마지막 촬영 고생했다는 말을 남기고서 나는 승훈이 형이 따로 끌고 온 차로 향했다.

회사 차를 가지고 올 줄 알았는데.

“이거, 형 개인 차 아니야?”

“지금 회사 차 남는 게 없어서. 그래서 부랴부랴 내 차 끌고 온 거야. 그러니까 일단 타.”

맨날 회사에서 마련해 준 차만 타다가 형의 차에 타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평소에 타고 움직이던 차 내부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형은 여전히 깔끔한 거 좋아하네.”

“애들은 차에 뭐 액세서리 같은 게 하나도 안 보여서 삭막하다고 그러던데.”

“난 오히려 이렇게 깔끔한 편이 좋아. 누나가 그랬거든.”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 누나는 아무리 집안이 가난해도 항상 깔끔하게 하고 다녀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게 들려주곤 했었다.

가난이 죄는 아니니까.

어딜 가든 말끔하게, 어깨 펴고 당당하게 다니라고 해 준 덕분에 지금의 자신감 넘치는 내가 완성된 거였다.

누나 이야기가 나오자, 승훈이 형의 표정이 달라졌다.

“아송 씨도 이런 스타일 좋아하시나 보구나.”

“형이랑 잘 어울리겠어.”

순간 형이 헛기침을 몇 차례 흘렸다.

“야, 나 운전 중인 거 안 보이냐? 이상한 말로 머리 복잡하게 만들지 마라. 그러다가 사고 나면 어떻게 하려고.”

“괜찮아. 헌터가 교통사고로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심해야지.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니까.”

누나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당황할 만한 이야깃거리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렇게 이름만 나와도 예민해지는 건가?

한창 몬스터 피 뒤집어써 가면서 싸우고 또 싸우는 일상만 반복하다 보니까 스스로가 이런 달달한 감정에 무뎌진 기분이다.

승훈이 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

CG팀 스태프들이 나를 반기면서 곧장 모니터 앞으로 안내했다.

“저희가 만든 몬스터 모델링인데, 어떠신가요?”

3D 모델을 이리저리 훑던 나는 잠깐 고민에 휩싸였다.

대답을 해 주기 전에 먼저 스태프들에게 물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되나요? 아니면 충격에 대비해서 50퍼센트 정도 약하게?”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야.

이렇게 말해 주는 수밖에 없다.

“이거, 싹 다 수정해야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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