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95화 (95/250)

제25장. 돌풍의 주역 (4)

방송국으로 향하기 전에 먼저 샵부터 들러야 했다.

내가 솔로로 활동할 때부터 줄곧 신세를 졌던 곳으로 향했다.

원장이 우리를 보더니 손뼉을 여러 차례 치면서 환대를 했다.

“데뷔 방송 너무 잘 봤어요! 보면서 얼마나 멋있던지, 내가 다 설레었다니까요?”

“감사합니다, 원장님. 평소에는 저 혼자 왔었는데, 오늘은 다섯이나 있으니까 많이 바쁘시겠는데요?”

“바쁘면 오히려 좋죠! 오늘 여러분들 온다고 미리 자리까지 다 마련해 뒀으니까 어서 앉아요. 얘들아! 중요한 손님들 오셨으니까 빨리 움직여!”

직원들이 원장의 말에 바쁘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운데에 앉고 양옆으로 준서와 딜런이 앉았다.

양쪽 끝에는 데이브와 니암이 앉아서 메이크업과 헤어를 받기로 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우리들을 지켜보던 승훈이 형이 스마트폰을 꺼내고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멤버별로 사진을 찍었다.

데이브가 살짝 신경이 쓰인다는 모습으로 승훈이 형에게 물었다.

“사진은 왜요?”

“우리 공식 SNS 계정에 올리려고. 어차피 너한테 이런 거 올리라고 해 봤자 안 할 거잖아. 그렇지?”

“…….”

데이브는 부정하지 않았다.

저럴 때 입을 다무는 데이브의 행동은 ‘니 말이 맞다.’라는 것을 뜻한다.

승훈이 형도 나처럼 오랫동안 데이브를 봐 왔기 때문이 내가 굳이 데이브어를 해석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잘 알아서 받아들였다.

공식 계정은 승훈이 형하고 회사 차원에서 관리를 하고 있고.

나는 주로 내 개인 SNS 계정을 이용한다.

아직 우리 공식 계정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팔로우 수는 내 개인 계정이 훨씬 더 많았다.

그래도 팔로우 늘어나는 속도를 보면 무시무시하다.

그만큼 우리들의 인기가 어마하다는 것을 나타냈다.

내 머리는 원장님이 직접 만져 주기로 했다.

내가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원장님은 알아서 헤어 스타일링에 착수했다.

“그러고 보니 태오 씨는 염색 안 해요?”

“염색이요?”

“요즘 아이돌들 보니까 막 빨간색, 노란색, 흰색, 이런 식으로 염색하고 그러던데.”

“저는 괜찮습니다. 이미 저 말고도 외국인 친구가 세 명이나 있잖아요?”

여기에 준서까지 애쉬브라운 색으로 염색을 했다.

이 때문에 오히려 흑발인 내가 더 주목을 받고 있었다.

원래부터 난 염색하는 걸 별로 안 좋아했기도 하고 말이다.

“나중에 염색하고 싶어지면, 언제든 저희 샵으로 와요. 그때 사인도 몇 장 더 해 주고.”

“더 필요하세요?”

“태오 씨가 우리 샵에 다닌다는 거 소문났나 봐. 나만 보면 태오 씨 사인 좀 받아 달라고 아주 그냥 아우성이라니까? 내가 그거 때문에 귀찮아 죽겠어.”

말은 귀찮다고 하지만, 표정으로는 내심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아무튼 데뷔 다시 한번 축하해요. 아침에 보니까 벌써 1위 올라갔던데?”

“네, 맞아요.”

우리 회사에서 발표한 소속 가수들 중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1위 등반 속도를 보여 줬다.

벌써부터 보이는 흥행의 조짐.

이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우리를 모셔 가기 위해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내가 솔로로 데뷔했을 때, 이미 유명 연예인의 영향력이 어떤지 체험해 봐서 잘 안다.

입고 있는 옷, 신발, 그리고 들고 있던 커피까지. 사진이나 영상으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순간, 모든 게 다 품절 대란이 펼쳐진다.

이 마케팅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무수한 협찬이 들어오고 있었다.

난생처음 누려 보는 인기에 데이브를 제외한 멤버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반면, 나와 데이브는 이런 게 익숙했기 때문에 호들갑을 떨거나 그러진 않았다.

헤어까지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갈 때쯤.

원장님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서 내게 부탁 하나를 했다.

“태오 씨, 같이 사진 한번 찍어도 되나요?”

“물론이죠.”

스마트폰만 들이대면, 이제는 조건반사처럼 알아서 포즈가 취해진다.

찰칵! 소리와 함께 원장님이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 줬다.

“고마워요, 태오 씨. 오늘 녹화 힘내시고요. 내일 또 오실 거죠?”

“그래야죠.”

내일은 나 혼자 일정이 잡혀 있다.

이것 때문에 나는 오늘에 이어서 내일도 이곳을 방문해야 한다.

승훈이 형이 샵 앞에 차를 세웠다.

덕분에 우리들은 가게 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차를 타고 방송국으로 향하는 동안, 오늘 녹화할 프로그램 대본을 다시 한번 살폈다.

아이돌이라면 필수로 거쳐야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잘 알려진 ‘아이돌 이력서’, 줄여서 ‘아이력’에 출연할 예정이다.

진행자로는 화스페라는 남자 래퍼와 보이 그룹 멤버 출신의 유용. 이렇게 두 사람이 ‘아이력’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둘 다 나와 크게 친분이 없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나머지 멤버들도 초면일 것이다.

미리 가서 인사를 하고, 대기하다가 바로 촬영에 들어가면 될 것 같다.

‘MC들이 가끔씩 대본에 없는 거를 시킨다고 하는데.’

심한 거만 아니면 상관없긴 한데.

우리한테는 과연 어떤 걸 시킬지 궁금했다.

* * *

아이돌들이 데뷔할 때마다 매번 거쳐 가는 프로그램이라서 그런지, 스튜디오 자체가 굉장히 샤방샤방했다.

데이브 취향은 아닌 모양인지, 스튜디오를 보자마자 포커페이스 유지에 바로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그나마 다행인 건, PD와 스태프들한테는 저 표정 변화가 안 들켰다는 거였다.

반대로 다른 멤버들은 나름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표정이 밝아 보였다.

나는 뭐……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고, 안 드는 부분도 있고. 딱 중간이다.

PD가 우리를 보자마자 먼저 손을 내밀며 악수를 권했다.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어휴, 이렇게 다섯 분이 나란히 서 있으니까 후광이 절로 비치네요! 저는 우리 조명 감독이 벌써 조명 틀어 놓은 줄 알았습니다, 하하!”

PD의 사탕발림에 우리도 마주 웃어 줬다.

“유용 선배님하고 화스페 선배님은 어디 계신가요? 방송 시작하기 전에 미리 인사드리려고요.”

“대기실에 있을 겁니다.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이럴 필요까진 없는데.

PD가 직접 안내를 자처하며 앞장섰다.

우리는 그 뒤를 얌전히 따랐다.

옆에는 ‘나구아’ 촬영팀이 카메라를 들고 계속해서 우리를 비췄다.

두 MC가 있는 대기실 문을 노크하는 PD.

“출연자분들 오셨습니다.”

“네!”

문이 열리자, 유용과 화스페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실물로 보니까 다들 외모가 장난 아니네요. TV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잘생기셨어요.”

“진짜 아이돌 그룹 같은데요?”

유용의 말에 화스페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면서 그를 툭 쳤다.

“‘같은데요?’가 아니라, 아이돌 그룹 맞아.”

“아, 그랬지. 죄송합니다. 뉴스에서만 보던 분들이라서 제가 착각을 했네요.”

우리를 처음 본 사람들은 다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헌터들로만 이루어진 아이돌 그룹이니까. 그래서 우리가 데뷔했다는 사실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 헌터 팀으로 생각할 것이다.

“오늘 저희가 여러분들 홍보 제대로 해 드릴 테니까, 믿고 맡겨 주세요.”

“대신에 저희 프로그램이 신고식 빡세게 하는 건 알고 계시죠?”

두 MC가 먼저 우리에게 마음의 준비를 해 두라는 뜻으로 미리 떡밥을 깔아 뒀다.

나는 뭐든 다 시켜 보라는 여유를 보이듯 웃으면서 말했다.

“네, 알죠.”

뭐가 되었든 우리는 전부 다 받아 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래 봬도 헌터들이 뭉친 최고의 아이돌 그룹 아닌가.

우리 사전에 뒤로 내뺀다는 말은 없다.

* * *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MC들이 우리들을 바로 등장시켰다.

“둘, 셋.”

“안녕하세요! 저희는 HTB입니다!”

유용이 우리의 자기소개에 곧장 첫 번째 공식 질문을 던졌다.

“HTB가 뭔가요?”

“저희가 원래 ‘헌터보이즈’라는 팀명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할 예정이라서 좀 더 직관적으로 그룹명을 알아볼 수 있도록 알파벳을 따로 따서 부르기로 했습니다. 물론 헌터보이즈라는 명칭을 버린 건 아니고요. 둘 다 혼용해서 쓸 예정이긴 한데, 음원 사이트나 외국 활동에서는 HTB를 사용할 겁니다.”

“그럼 남매 그룹? 이게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는데, 헌터걸스는 어떻게 되나요?”

“HTG하고 헌터걸스, 이렇게 혼용해서 씁니다.”

“아, 그렇군요. 확실히 알파벳만 따로 축약해서 소개하는 게 요즘 트렌드하고 잘 맞고, 세련된 느낌이네요.”

그래서 처음에는 팀명을 혼용하면서 쓰다가 나중에 점점 알파벳 형식의 팀명 쪽으로 갈아타는 방식을 취할 예정이다.

“HTB 여러분, 멤버별로 자기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리더이자 메인 보컬을 맡고 있는 태오입니다.”

“데이브입니다.”

“서브 보컬을 맡은 준서입니다! 반가워요!”

“랩을 담당하고 있는 니암이라고 합니다.”

“메인 댄서인 딜런입니다, 반갑습니다!”

멤버별로 성격이 묻어 나오는 짧은 자기소개를 마친 뒤.

MC들이 우리를 향해 축하의 말을 건넸다.

“음원 차트 올킬! 축하드립니다!”

“아까 보니까 대한민국 모든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전부 1위에 오르셨더라고요.”

“엄청 빠른 속도 아닙니까? 보고서 눈을 의심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빨리 올킬을 달성한 신인 보이 그룹이 있었나 하고 말이죠.”

“없죠, 없어요.”

MC들의 말대로, 우리는 이제 막 데뷔했을 뿐인 보이 그룹이다.

그러나 인지도로 따지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신인 보이 그룹이었다.

이 덕분에 앨범을 발표하자마자 단숨에 톱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지금이야 나와 데이브, 둘의 인지도가 워낙 커서 그렇지만, 다른 멤버들도 차근차근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 가야 한다.

우리가 하는 건 어디까지나 ‘그룹’ 활동이니까.

우선은 토크 타임부터 먼저.

MC들이 우리들에게 데뷔를 하게 된 계기나 혈액형, 요즘 유행하는 MBTI까지.

아이돌이라면 꼭 거쳐 가야 할 것들은 죄다 한 번씩 해 보는 그런 느낌이다.

“이다음, 여러분들의 안무 능력을 테스트해 볼 건데요. 음악이 2배속으로 재생될 겁니다. 하실 수 있으신가요?”

“네, 물론이죠.”

대본에 나와 있는 거였기에 우리는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면서 대열을 갖췄다.

전주가 흘러나오자마자 우리는 능숙하게 안무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정도야 뭐, 누워서 떡 먹기보다도 쉽다.

진행자들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노래가 끝나자마자 바로 다른 제안을 했다.

“4배속 가 보겠습니다!”

4배속이라.

이것도 그럭저럭 할 만하다.

그런데 확실히 노래가 빠르긴 빠르다.

멤버들 몇몇이 중간에 스텝이 꼬이긴 했지만, 그래도 헌터답게 여태껏 출연했던 모든 아이돌들을 통틀어서 가장 완벽한 4배속 안무를 선보였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8배속 가 보겠습니다!”

오호라.

오늘 여기서 끝을 한번 보자는 소리구만.

들어가기 전에 나는 멤버들을 향해 한 차례씩 시선을 교환했다.

멤버들은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 아이돌의 능력을 보여 줄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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