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장. 돌풍의 주역 (2)
마침 청소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서 인터폰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나구아 팀입니다!
“네, 잠시만요.”
승훈이 형이 공동 현관문을 열어 줬다.
잠시 뒤.
카메라를 설치하기 위해 ‘나구아’ 연출을 맡은 윤이오 PD가 소수의 스태프들과 함께 먼저 우리 숙소를 방문했다.
“어머, 숙소가 엄청 깔끔하네요?”
윤 PD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을 흘렸다.
깨끗할 수밖에.
우리가 몇 시간 동안 여기를 쓸고, 닦고 했는데.
먼지 한 톨까지 놓칠 수 없다는 기세로 열심히 청소를 한 보람이 있었다.
“카메라는 어디 어디에 설치할 예정이신가요?”
“일단 한번 보고요. 아, 화장실은 딱 상반신만 나오도록 저희가 적절히 위치를 잡아서 설치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볼일 보실 때에는 다른 화장실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쪽은 아예 카메라를 설치 안 할 예정이거든요.”
이게 옳다.
한 달 동안 내 모습을 모두 찍을 카메라가 화장실에 있으면, 큰 거든 작은 거든 마음 편히 어떻게 보란 말인가.
샤워도 불편하고 말이다.
숙소가 넓은 덕분에 화장실은 총 세 개가 있다.
이 중에 딱 한 군데의 화장실에만 카메라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하니까 속으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해피모드 촬영할 때에도 그랬던 거 같은데.’
해피모드 숙소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 절로 떠올랐다.
멤버들이 주로 사용하는 화장실이 있고, 손님용으로 따로 놔둔 화장실이 있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손님용을 사용했다.
그때 관찰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 중이었는데, 내가 사용했던 화장실은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거실, 부엌, 그리고 멤버들의 각자 방에도 카메라를 설치했다.
“촬영 기간 동안에만 설치했다가 평소에는 떼고 그럴 테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는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도, 그리고 멤버들도 이런 관찰 예능 느낌의 촬영은 아예 처음이다.
혹시 몰랐기에 카메라들의 위치를 눈으로 빠르게 익혀 뒀다.
데이브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스태프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카메라 설치가 진행되는 동안 윤 PD가 우리들에게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촬영할 내용에 대해 다시 한번 브리핑을 해 줬다.
“오늘 촬영은 일단 멤버분들 숙소에서부터 시작하고요. 지금은 저희가 오전에 와서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내일은 아침에 일어나셔서 스케줄 가는 것까지 다 촬영할 거예요. 밖에 나가서부터는 촬영팀이 따로 붙어서 같이 이동할 예정이니까,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스케줄 없다고 하셨죠?”
내가 손으로 숙소에 설치된 카메라 하나를 가리키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스케줄 지금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윤 PD가 손으로 입가를 가리면서 호호 웃었다.
“관찰 예능식으로 촬영될 거니까요. 집에서 자유롭게 게임하시고, 쉬시고. 이러셔도 되긴 하는데, 외출해서 뭔가 하셔도 좋은 그림이 나올 테니까 저희 눈치 안 보셔도 돼요.”
일단은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밖에 나가서 밥을 먹고.
“한강공원 가서 가볍게 농구라도 할래? 2 대 2로.”
“한 명이 비지 않아요?”
준서가 남은 한 명은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심판 봐야지. 농구에 자신 없는 사람?”
그러자 니암이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의외였다.
“키 커서 농구 잘할 줄 알았는데.”
“저는 손재주가 많이 없어서, 손으로 하는 건 잘 못하더라고요. 축구는 괜찮은데, 농구는 예전부터 친구들하고 학교 끝나고 할 때에도 제가 항상 못했습니다.”
“그러면 니암이 심판 보면 되겠네.”
원래 이런 계획은 미리 세워 뒀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데뷔가 갑작스럽게 결정된 탓에 이런 상세한 것까지 제작진과 협의를 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렇게 즉석으로 오늘 할 걸 정해야 했다.
내일은 어차피 방송 스케줄이 따로 있어서 그대로 움직이면 되니까.
윤 PD가 한 차례 손뼉을 마주치면서 정리에 나섰다.
“그러면 오늘은 고생한 여러분들을 위한 힐링 데이인 것으로 하죠. 어제 데뷔 쇼케이스 무대 촬영하는 거 보여 주고, 그 뒤에 이어서 오늘 힐링 타임 가지는 걸로 딱 이어붙이면 괜찮을 거 같아요. 이것만으로도 한 편 뚝딱 나오겠네요.”
역시 PD는 다르다.
우리는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중구난방으로 이야기했을 뿐인데, 알아서 교통정리를 잘해 주니까 우리들도 편했다.
“그럼 저희는 나가 있을게요. 숙소 내에서 이루어지는 촬영은 전부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들로 진행될 거니까, 혹시 궁금한 거나 아니면 무슨 문제 생기면 언제든 저희한테 연락 주세요. 근처에 스태프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요. 아, 다시 한번 데뷔하신 거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성격이 좋은 PD라서 우리들도 일하기 편할 것 같다.
윤 PD와 스태프들이 자리를 비켜 주자마자 데이브가 기지개를 켜면서 자기 방으로 향했다.
“난 잔다.”
준서가 데이브의 취침 선언에 걱정을 드러냈다.
“그래도 돼요? 잠 많이 자면 형 분량 많이 안 나올 수도 있잖아요.”
“분량 욕심 안 낼 거야.”
나와 경쟁할 때를 제외하고 데이브는 요즘 승부욕을 불태우는 경우가 잘 없다.
이것도 평화의 시대가 열린 덕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준서가 이번에는 내 쪽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형은 뭐 하실 거예요?”
“아까 게임해도 상관없다고 했었지?”
“네.”
“그러면 축구 게임 한판 할래? 너, 할 줄 알아?”
“물론이죠! 저희, 그러면 내기해요.”
“짜식. 나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네.”
내가 이래 봬도 내 주변 지인들 중에서 가장 게임을 잘하는 편이다.
준서가 아무리 요즘 세대라 할지라도, 게임은 내가 안 질 자신이 있다.
우리가 게임을 하는 동안, 니암과 딜런은 각자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으로 아카튜브를 시청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어차피 조금 있다가 나가서 가볍게 농구 한판 하고, 그리고 저녁 먹고 그러기로 했으니까.
숙소에 있을 때에는 뒹굴거려도 상관없을 것이다.
오늘은 윤 PD가 말한 것처럼 힐링 데이로 삼기로 했다.
* * *
나는 남들한테 절대로 안 지는 게 적어도 두 가지는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헌터로서의 전투 능력.
이거는 지금도 내가 헌터 랭킹 1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기에 어디 가서 당당하게 나보다 센 헌터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축구 게임이다.
프로게이머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마추어들끼리 맞붙으면 내가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자신감은 우리 막내 멤버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아싸, 추가 골!”
준서 쪽 공격수가 하프라인부터 공을 쭉 끌고 오더니 수비수까지 제치면서 그대로 슈팅을 때려 넣었다.
“아니, 우리 골키퍼 뭐 해!”
“형, 캐릭터 잘못이 아니에요.”
“그러면 뭐가 문젠데?”
준서가 갑자기 자신의 손을 가리켰다.
“파일럿의 컨트롤 문제라고 할까요?”
순간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아 냈다.
만약에 TV 뒤쪽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걸 미처 못 봤다면, 험한 말이 튀어나왔을지도 모른다.
“이 녀석이. 고작 한 번 이겼다고 우쭐대지 마라.”
“제가 계속 이길 거 같은데요?”
“한 게임은 질 수 있지. 다음부터는 안 봐줄 테니까 각오해라.”
“알았어요. 대신에 형, 저희 내기했던 거 기억하시죠? 지는 사람이 오늘 저희 멤버들 저녁값 다 계산하기로 한 거요.”
“알아, 인마.”
내가 안 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게이머로서 내 자존심이 허락 못 해서 그러는 거다.
차라리 니암이나 딜런한테 졌으면 모른다.
근데 하필이면 우리 그룹 최고의 까불이한테 지니까, 옆에서 계속 나를 도발하는 것이 꿀밤이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다.
그랬다간 멤버 간의 불화설이니 뭐니 하면서 또 기자들이 이상한 기사 올리고 난리를 치겠지.
그게 무서워서 참고 있는 거다.
그리고 어차피 상관없다.
‘이번에는 내가 무조건 이길 테니까!’
내가 주로 사용하는 구단을 골랐다.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구단이기에 자신 있다.
하지만.
결과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3 대 0! 형, 이번에도 제가 이긴 거 맞죠?”
“어째서 내가 지는 거냐고!”
말도 안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납득할 수가 없다.
머릿속으로 패배의 원인을 필사적으로 떠올리는 나와 다르게 준서는 굉장히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형들! 오늘 저녁은 태오 형이 쏜대요.”
“진짜로?”
“역시 리더네요.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졸지에 멤버들에게 리더로서의 배포라고 보기 좋게 강제 포장을 당해 버렸다.
이러면 어디 가서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힘들어지잖아.
오늘 밤에 잠자기는 다 틀린 거 같다.
* * *
저녁을 먹기 전에 가볍게 농구 한판 하기 위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한강공원까지 멀리 떨어진 편이 아니었기에 오는 데에도 큰 부담이 없었다.
우리가 쉬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스태프들이 빠르게 카메라와 조명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촬영 있나? 싶어서 모여들었다.
이들 중에서 우리를 알아보고 환호성을 지르는 팬들도 있었다.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동안, 니암이 우리들에게 물었다.
“편은 어떻게 나누실 겁니까?”
“나하고 데이브는 무조건 갈라져야지. 맞지?”
준서하고 딜런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들끼리 팀 하면, 우리보고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예요.”
“맞습니다.”
SSS랭크와 SS랭크를 상대로 몸 쓰는 운동에서 이길 생각을 하긴 힘들다.
무조건 우리의 승리다.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데이브하고 나는 다른 편이 되어야 한다는 걸 먼저 강조했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게임인 가위바위보를 통해 팀을 가른 결과.
“내가 준서하고 한 팀인가.”
데이브의 말에 준서가 기운차게 ‘네!’라고 답했다.
나는 딜런과 같은 팀이다.
“잘됐구만.”
나도 모르게 내뱉은 혼잣말.
딜런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잘됐다니, 뭐가요?”
“안 그래도 준서한테 복수하고 싶었거든.”
“아까 그 축구 게임 내기에서 진 거 때문에요?”
“어.”
당한 건 무조건 갚아 준다.
이것이 내 신념이다.
플레이어 숫자가 적기 때문에 반코트로 경기를 펼치기로 했다.
니암이 공을 높이 던졌다.
나와 데이브가 동시에 점프를 뛰었다.
내 손끝에 먼저 닿은 농구공이 딜런에게 향했다.
그러나 내가 먼저 공을 차지할 거라는 사실을 예측이라도 했는지, 준서가 인터셉트에 성공했다.
하여간 잔머리 하나는 참 좋은 녀석이다.
하지만.
‘잔머리가 좋아도 압도적인 피지컬을 누를 순 없지!’
나도 모르게 마나를 폭발시키면서 순식간에 준서의 앞으로 도달했다.
준서가 기겁을 하는 사이.
공을 빼앗아 그대로 골대에 넣었다.
이런 나를 보면서 데이브가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흘렸다.
“애들 상대로 살살 좀 해 주면 안 되겠냐?”
아무래도 내가 너무 진지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