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89화 (89/250)

제24장. 유대 (6)

노래를 불러라.

지금 여기서 당장!

이런 내 말을 들은 준서와 니암, 딜런은 순간적으로 석화 스킬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이 굳어졌다.

네크로맨서의 수작 때문에 갑자기 저렇게 몸이 경직된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내 말 때문인가 보다.

“왜? 노래 부르는 거, 어렵지 않잖아. 춤까지 출 필요는 없고, 딱 노래만. 오케이?”

“아니, 대체 왜…….”

니암이 내 말을 도저히 이해 못 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와중에 돼지 괴물들이 니암을 덮쳤다.

“읏!”

옆으로 데굴데굴 구르면서 돌진하는 돼지 괴물들의 일격을 겨우 피해 내는 데에 성공한 니암.

만약에 나처럼 랭크가 높은 헌터라면, 저기서 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잔칫상에 올려놓으면 딱 좋을 만큼의 사이즈로 돼지 괴물의 모가지를 따 버렸을 것이다.

한창 나와 헌터걸스가 부른 노래를 들으면서 비교적 여유로운 전투를 펼치던 니암이었지만, 지금은 노래 버프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기에 저렇게 필사적으로 돼지 괴물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내가 저거 때문에 우리 멤버들에게 라이브를 지시한 거다.

“전투력을 올리고 싶으면 노래를 불러야지!”

“라이브로도 가능합니까?”

“당연히 가능하지! 내가 세이렌하고 노래로 일대일 뜬 거 몰라?”

나름 전설적인 일화로 기록되었는데.

우리 회사 소속이라는 녀석이 그런 것도 모르니까 왠지 모를 섭섭함이 들었다.

준서가 돼지 괴물 하나와 필사의 술래잡기를 하면서 내게 다급하게 외쳤다.

“형이 불러 주시면 되잖아요! 제일 여유 있어 보이시는데!”

“나도 그러고 싶은데, 내가 노래를 부르려고 할 때마다 이 망할 검은 연기들이 자꾸 소리를 삼켜 버리더라고. 그래서 안 될 거 같아.”

아, 결코 귀찮아서 그러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진 말라고.

하지만 준서는 내 말을 못 믿겠다는 눈빛으로 한동안 나를 응시했다.

“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으른의 말을 못 믿어, 마!”

“……알았어요. 하면 되잖아요. 니암 형, 딜런 형! 우리 파트 분배한 대로 부르면 되는 거죠?”

둘이 준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창 레코딩 중이었으니까.

파트 정도는 알아서 잘 나눴을 것이다.

“잘 불러야 한다? 사람들 몇 명이 너희 지켜보고 있으니까.”

심지어 스마트폰으로 촬영까지 하는 몇몇 사람들도 보였다.

아마 아까 네크로맨서가 터트린 폭탄의 범위 밖에 있던 사람들인 것 같다.

순간,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틀어 달라고 하려다 그만뒀다.

저들이 노래를 틀면 네크로맨서가 저쪽을 먼저 공격할 것 같기도 했고, 우리 헌터보이즈가 부를 노래의 힘을 믿으니까.

어쨌든 이런 거 하나하나가 나중에 아카튜브 영상으로 업로드되어서 크게 화제 몰이를 하게 된다는 걸 나는 여러 경험으로 깨닫고 있었다.

준서가 ‘이 형이 진짜…….’라는 식으로 나를 책망하는 눈길을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사실인 걸 어떻게 하라고.

이래저래 투덜거려도, 준서는 내가 시키는 대로 다른 멤버들과 함께 자신들의 타이틀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딜런이 먼저 시작을 알렸다.

불타오르는 빛이

어느 날 내 마음을

하얗게 태워 버렸어.

딜런이 각 잡고 노래를 부르는 건 거의 본 적 없었다.

나 말고 트레이너들이나 최 프로듀서가 훨씬 많이 봤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이래저래 할 일이 많아서 바빴으니까.

그래서 멤버들의 보컬, 댄스 트레이닝은 전적으로 우리 회사 스태프들에게 맡기기로 했는데.

‘잘 부르는데?’

뒤이어 니암의 차례가 되었다.

몰아쳐라, 빛의 폭풍.

널 향한 나의 사랑이

지지 않는 태양처럼 타오르고 있어.

Burn my heart, heart, heart.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순간적으로 안무를 펼칠 뻔했던 니암.

워낙 연습을 많이 한 탓에 안무가 버릇처럼 튀어나온 것이다.

본인은 아차 싶었을 테지만, 나는 오히려 좋았다.

‘노력 많이 했구만.’

니암은 일단 목소리 톤이 사기다.

낮게 깔리는 중저음이라서 조금만 무게를 잡고 노래를 불러도 남성 특유의 중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는 노래를 잘 이어 가고 있었다.

헌터보이즈의 노래 덕분에 주변에서 전투를 펼치던 헌터들이 한결 수월한 표정으로 돼지 괴물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네크로맨서를 집중 마크 하는 데이브와 아이리스 남매 역시도 이들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아이리스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효과 좋은데요?”

MML 수치가 1.3에 불과하지만, 이것도 체감상 상당히 크다.

정말 실력 좋은 버퍼 포지션의 헌터가 아무리 버프를 잘 줘 봤자 MML 수치 1.2의 효과를 넘기기 힘드니까 말이다.

게다가 그럴 경우 범위도 상당히 좁고, 캐스팅을 해야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반면, 노래를 통해 주는 버프는 범위, 캐스팅 이런 거에 구애받지 않는다.

노래를 들을 수만 있는 거리라면 버프를 받는 게 가능해진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이철민 소장이 미리 말을 했듯이 버프가 우리 노래를 ‘좋아서 듣는 헌터’에게만 한정적으로 적용된다는 거였다.

그래도 데뷔곡이 꽤 좋았던 모양인지, 이 근처에 있는 헌터들 대다수가 버프 적용을 받고 있었다.

네크로맨서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 노래만 차단하면, 나머지는 자기가 계속해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건 큰 오산이지.’

노래로 버프를 줄 수 있는 헌터들의 숫자는 나를 제외하고도 여덟 명이나 있다.

아니지, 슬혜는 헌터가 아니니까 제외하는 게 좋으려나.

아무튼, 네크로맨서가 이것저것 조사를 많이 해 온 거 같긴 한데.

이것까지는 조사를 제대로 못 한 모양인가 보다.

‘하긴, 헌터보이즈는 데뷔도 안 했으니까.’

우리 멤버들의 노래에 맞춰서 돼지 괴물들이 한 마리 한 마리씩 도륙되기 시작했다.

딜런이 후렴구를 부르려고 하는 순간.

네크로맨서가 직접 행동에 나섰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그 입을 틀어막아 주는 수밖에 없겠군!”

네크로맨서의 팔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졌다.

근육과 뼈가 찢어지면서 흉측한 모습이 되었다.

안 그래도 못생긴 녀석이, 더 못생겨지니까 나도 모르게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읍……!”

손으로 딜런의 머리를 감싸 쥔 네크로맨서.

노래가 멈췄으니 곧 버프 효과도 사라질 터.

데이브가 딜런을 구하기 위해 창을 열심히 휘둘렀다.

처음에는 남아 있던 버프의 힘으로 어떻게 뚫는가 했는데, 네크로맨서 녀석도 조금만 버티면 된다는 걸 알아챘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용을 썼다.

그러다 곧 버프가 사라졌고, 데이브의 공격이 다시 네크로맨서의 흑마법에 가로막히기 시작했다.

“칫……!”

어떻게든 노래를 이어 가야 한다.

그러나 다른 멤버들은 돼지 괴물들의 집중 협공에 맥을 못 추고 있었다.

내가 불러 줄까 했지만, 여전히 네크로맨서가 흑마법으로 소환한 검은 연기들이 벼르고 있는 상태고.

남은 건 한 명밖에 없다.

“데이브-!”

내가 데이브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이때가 아니면 네 손으로 저 녀석한테 복수 못 할 거다! 그래도 되냐!”

나와 시선을 마주친 데이브가 짧게 혀를 찼다.

멤버들에게 말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데이브도 멤버들의 데뷔곡을 알고 있다는 거였다.

마침내 데이브가 입을 열었다.

지지 않아.

너라는 태양을 지키기 위해

난 다시 일어서.

wake up, Burning Up

울려 퍼지는 헌터보이즈의 데뷔곡.

준서와 니암이 깜짝 놀란 얼굴로 데이브를 바라봤다.

“선배님!”

“나 찾을 시간에 노래나 이어서 불러라! 어서! 버프 효과 계속 이어 가야 할 거 아니야!”

데이브가 다시 노래를 이어 부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데이브의 MML 수치는 1.5다.

멤버들이 불렀을 때보다도 0.2 높은 효과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데이브가 노래를 시작하자, 멤버들도 부랴부랴 자신들의 목소리를 노래에 곁들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완성된 멤버들의 하모니.

네크로맨서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데이브를 노려봤다.

데이브는 노래를 부르면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창을 크게 휘둘렀다.

화르르륵!

아이템 끝에서 뿜어져 나온 화기(火氣)가 딜런의 머리를 터뜨려 버릴 기세로 꽉 붙잡고 있던 네크로맨서의 팔을 꿰뚫었다.

그제야 자유가 된 딜런이 콜록이면서 겨우 몸을 가눴다.

사실 데이브가 네크로맨서의 흑마법을 단독으로 마크했기에 살아남은 거지, 조금의 틈이라도 있었다면 딜런은 벌써 송장이 되었을 터였다.

“형!”

“괜찮아?”

준서와 니암이 딜런을 부축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멤버들은 데이브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선배님이 어떻게 우리 노래를…….”

궁금해하는 멤버들을 위해서 내가 속사정을 알려 줬다.

“너희가 데이브하고 따로 갈라서기로 한 순간부터 데이브는 가끔씩 너희가 준비를 잘하는지 몰래 보곤 했거든. 그러다가 나한테 몇 번 걸리기도 했고.”

“그, 그랬습니까?”

“어. 너희 데뷔곡 나왔다고 해서 데이브가 궁금해하길래. 내가 노래 직접 들려줬어. 처음에는 싫다고 내뺐는데, 나중에는 자기가 먼저 알아서 찾아 듣고, 그러더라.”

그래서 데이브가 멤버들의 노래를 알고 있는 거였다.

데이브도 멤버들이 굉장히 신경 쓰였을 것이다.

이번에는 준서가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데이브 형, 우리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요?”

“싫어하는 게 아니야. 녀석은 단지 표현이 서툴 뿐이거든.”

이건 내가 확실히 대답해 줄 수 있는 거였다.

왜냐하면 나만큼 오랫동안 데이브와 알고 지내 온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좋은 녀석이다.

대신에, 그 ‘알고 보면’의 과정이 좀 짜증 나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데이브는 원래 혼자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했던 녀석이거든.”

“네? 하지만 헌터로 활동할 때에는 팀 작전 같은 거, 거의 참여 안 했다고 들었는데…….”

“예전엔 했었어. 같은 팀원들이 네크로맨서에게 전부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는.”

데이브는 그것이 자신이 약해서 벌어진 참극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이후, 데이브는 혼자서 활동하게 되었다.

계속해서 강함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내가 네크로맨서에게 복수의 대상인 것처럼.

네크로맨서도 데이브에게 복수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이제 데이브의 복수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네크로맨서는 네크로맨서였다.

어느 순간부터 다시 데이브와 아이리스, 그리고 헌터들을 몰아붙여 가기 시작했다.

쐐기를 박으려는 모양인지, 네크로맨서가 갑자기 걸치고 있던 낡은 로브를 풀어 헤쳤다.

동시에 보이는 두 개의 심장들.

그제야 나는 네크로맨서가 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저 녀석, 목숨이 세 개였구만.”

무슨 오락실 코인도 아니고, 처음부터 녀석은 삼세판의 기회를 거머쥐고 있었다.

이미 심장 하나는 내가 도려냈으니까 없고.

남은 두 개의 심장 중 하나를 자기의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러더니, 그것을 그대로 뽑아냈다.

검은색 연기가 주변에 철철 흘러넘쳤다.

네크로맨서가 싸늘한 시선으로 데이브와 아이리스, 그리고 헌터들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좋다, 인정하지. 네놈들을 없애려면, 보통 수단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손에 쥔 심장을 콱! 하고 터뜨렸다.

검은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피와 연기 들이 네크로맨서에게 전부 흡수되었다.

방금 전까지 거의 다 죽어 가는 모습을 했던 네크로맨서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자신의 심장을 희생해서 본인의 능력을 강화시킨 거였다.

덩달아 돼지 괴물들의 능력도 상승했다.

이쯤 되니까 데이브와 멤버들의 노래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까지구만.”

네크로맨서가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큭큭 웃으면서 물었다.

“너희 세계의 남은 시간을 말하는 건가?”

“아니.”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거 같아서 내가 제대로 알려 주기로 했다.

“네 남은 목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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